"키워드 : 민족_대표"
검색결과 총 16건
김병조는 1919년 3 · 1운동에서 기독교계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한국독립운동사략』 상권을 저술하였다.
김병조 (金秉祚)
김병조는 1919년 3 · 1운동에서 기독교계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한국독립운동사략』 상권을 저술하였다.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권동진 (權東鎭)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김완규는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기관지인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하였다.
김완규 (金完圭)
김완규는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기관지인 『천도교회월보』의 발행인을 역임하는 등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다가 1919년 3 · 1운동 당시 천도교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르고 만기 출옥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명진학교 교장, 한국민단부 부장, 혁신공보 사장 등을 역임한 승려·독립운동가.
백초월 (白初月)
일제강점기 때, 명진학교 교장, 한국민단부 부장, 혁신공보 사장 등을 역임한 승려·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를 역임하며 민중교화운동에 힘쓴 천도교인·독립운동가.
나인협 (羅仁協)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를 역임하며 민중교화운동에 힘쓴 천도교인·독립운동가.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포한 선언서.
3·1독립선언서 (三一獨立宣言書)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선포한 선언서.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일제에 의한 신사참배 및 전승기원예배 등을 거부한 감리교 목사·독립운동가.
신석구 (申錫九)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일제에 의한 신사참배 및 전승기원예배 등을 거부한 감리교 목사·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오산학교 교장, 기독교 대표, 동아일보사 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이승훈 (李昇薰)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오산학교 교장, 기독교 대표, 동아일보사 사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임예환 (林禮煥)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천도교 도사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종교활동과 육영사업에 힘쓴 교육자·목사독립운동가.
이필주 (李弼柱)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종교활동과 육영사업에 힘쓴 교육자·목사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이갑성 (李甲成)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청년층을 대표하여 학교의 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해방 이후, 민의원, 자유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여대는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나,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지 않고 평안북도 의주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준비한 후 직접 이끌었다.
유여대 (劉如大)
유여대는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나,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지 않고 평안북도 의주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준비한 후 직접 이끌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고려혁명위원회 고문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이종훈 (李鍾勳)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고려혁명위원회 고문 등을 역임한 천도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의식과 경전 등을 번역하여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힘쓴 승려·독립운동가.
진종 (震鍾)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의식과 경전 등을 번역하여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힘쓴 승려·독립운동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에 있는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
서울 탑골공원 (서울 塔골公園)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에 있는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