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천도교를 대표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주요 활동
1919년 2월 26일 오세창으로부터 기독교 · 불교와 함께 독립선언서에 민족 대표로서 서명을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찬성하였다. 다음날인 2월 27일 천도교 대표들과 함께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3월 1일 아침 최린으로부터 독립선언식 장소가 탑골공원에서 명월관 지점 태화관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후 2시경 태화관에 민족 대표로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29명이 모였다. 독립선언식을 마친 후 민족 대표들과 함께 경찰에 체포되어 경무총감부에 구금되었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으로부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경성감옥으로 이감되어 1921년 11월 4일 만기 출옥하였다.
1922년 2월 손병희로부터 법암이라는 도호를 받았고, 같은 해 4월에 천도교중앙총부 서무과 주임에 임명되었다. 천도교중앙총부 근무를 그만둔 후에는 경기도 동두천에서 살다가 1925년 5월 충청남도 서산으로 이주하였다.
광복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재정부장,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한성지부 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7년에 천도교 도령 자리에 올랐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논문
- 이현희, 「천도교의 민족대표 김완규와 그의 독립정신」(『동학학보』 14, 2007)
주석
-
주1
: 서울특별시 종로 2가에 있는 공원. 원래 조선 세조 때에 세워진 원각사가 있던 곳으로 광무 원년(1897)에 영국인 고문 브라운이 설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으로 건립되었다. 3ㆍ1 운동 때 독립 선언문을 낭독한 곳으로 유명하며, 원각사지, 팔각정, 앙부일영의 대석(臺石), 13층 탑, 귀부(龜趺) 비석 따위가 남아 있다. 정식 명칭은 ‘서울 탑골 공원’이다. 우리말샘
-
주2
: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