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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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사회에서 모국인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목표로 전개한 사회운동.
재미한인 민주화운동 (在美韓人 民主化運動)
재미한인사회에서 모국인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목표로 전개한 사회운동.
민주화 운동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설립된 공공법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民主化運動記念事業會)
민주화 운동의 계승·발전을 위하여 설립된 공공법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18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조사위원회이다. 1980년 5월 광주 일원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하여 군부 등에 의한 헌정 질서 파괴 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하여 2018년 3월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4조에 따라 설치된 특별위원회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五一八民主化運動 眞相糾明調査委員會)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18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조사위원회이다. 1980년 5월 광주 일원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하여 군부 등에 의한 헌정 질서 파괴 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하여 2018년 3월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4조에 따라 설치된 특별위원회이다.
문익환은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큰 영향력을 끼친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목사이다. 1918년 6월 1일 중국 길림성 화룡현 지신진 명동촌 동거우에서 태어나 1994년 1월 18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기독교장로회라는 진보 계열의 개신교 목사로서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다. 또한 성서 학자로서 감리교 목사인 이현주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개신교 측 번역자로 참여하는 등 신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문익환 (文益煥)
문익환은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큰 영향력을 끼친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목사이다. 1918년 6월 1일 중국 길림성 화룡현 지신진 명동촌 동거우에서 태어나 1994년 1월 18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기독교장로회라는 진보 계열의 개신교 목사로서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다. 또한 성서 학자로서 감리교 목사인 이현주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개신교 측 번역자로 참여하는 등 신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김재준은 해방 이후 『낙수』, 『요한계시록주석』, 『황야에 외치는 소리』 등을 저술한 신학자이자 목사, 재야 민주화운동가이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기독교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아빙돈 단권 주석 사건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 논쟁의 중심 인물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제명 처분은 1953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한 이래 재야인사로서 한국의 민주화 통일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김재준 (金在俊)
김재준은 해방 이후 『낙수』, 『요한계시록주석』, 『황야에 외치는 소리』 등을 저술한 신학자이자 목사, 재야 민주화운동가이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기독교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아빙돈 단권 주석 사건과 같은 자유주의 신학 논쟁의 중심 인물이며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제명 처분은 1953년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창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여한 이래 재야인사로서 한국의 민주화 통일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경상남도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항쟁 사건.
부마민주항쟁 (釜馬民主抗爭)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경상남도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반정부 항쟁 사건.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장준하 (張俊河)
장준하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되어 활동한 독립운동가, 언론인, 정치인, 민주화운동가이다. 1918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으로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탈출해 광복군이 되었다. 1945년 12월 김구와 함께 입국 후 1952년 『사상』을, 1953년 피난지에서 『사상계』를 창간했다. 1966년 대통령명예훼손 혐의로 복역하던 중 옥중 출마해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연이은 민주화운동으로 10여 차례 투옥되었으며, 1975년 등산 중 의문사했다. 1962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상)을 수상했다.
민중가요는 한국 현대의 서민적 노래문화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주류 노래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닌 대중들이 기존 대중가요 시장 바깥에서 구전 등의 독자적 유통구조를 통해 향유하는 노래이다. 운동권가요라고도 한다. 1970년대 후반의 민중가요는 기존의 대중가요, 데모노래, 동요, 민요 등을 새롭게 소환한 형태이다. 1980년대 민중가요는 대학생들이 창작한 노래가 대부분이다. 1987년 6월 시민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중가요와 노래운동은 비약적 발전을 한다. 1992년을 기점으로 학생운동·노동운동의 쇠퇴로 민중가요가 유통되고 향유할 수용자 집단도 함께 약화되었다.
민중가요 (民衆歌謠)
민중가요는 한국 현대의 서민적 노래문화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주류 노래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닌 대중들이 기존 대중가요 시장 바깥에서 구전 등의 독자적 유통구조를 통해 향유하는 노래이다. 운동권가요라고도 한다. 1970년대 후반의 민중가요는 기존의 대중가요, 데모노래, 동요, 민요 등을 새롭게 소환한 형태이다. 1980년대 민중가요는 대학생들이 창작한 노래가 대부분이다. 1987년 6월 시민항쟁과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중가요와 노래운동은 비약적 발전을 한다. 1992년을 기점으로 학생운동·노동운동의 쇠퇴로 민중가요가 유통되고 향유할 수용자 집단도 함께 약화되었다.
대한제국기에 조선통감부가 서울 현저동에 설치한 감옥.
서대문형무소 (西大門刑務所)
대한제국기에 조선통감부가 서울 현저동에 설치한 감옥.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천관우 (千寬宇)
천관우는 해방 이후 조선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주필, 한국신문편집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 역사학자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91년에 사망했다. 1944년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한국사를 전공하였다. 1951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역임하였다. 1971년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의 공동대표로 반독재·민주화운동에 주력하였다. 유신체제하에서 한국사의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여 고조선과 삼한, 가야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학생운동은 대학 및 정치·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는 학생주도의 집단적·조직적·지속적인 사회운동이다. 서구의 학생운동이 기성세대에 대한 학생집단의 반항적 심리의 표출이라면 한국의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이자 다른 사회세력을 대변하는 운동의 측면이 강하다. 예비 지식인으로서의 학생 집단이 정치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를 제기하고 특정 지배질서나 정책결정에 항의하며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이다. 조선조 성균관 유생들의 집단행동에서부터 시작한 학생운동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사회변혁기마다 나라의 발전을 이끄는 주요 추진 동력으로 기능했다.
학생운동 (學生運動)
학생운동은 대학 및 정치·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는 학생주도의 집단적·조직적·지속적인 사회운동이다. 서구의 학생운동이 기성세대에 대한 학생집단의 반항적 심리의 표출이라면 한국의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이자 다른 사회세력을 대변하는 운동의 측면이 강하다. 예비 지식인으로서의 학생 집단이 정치 사회 변화에 대한 요구를 제기하고 특정 지배질서나 정책결정에 항의하며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이다. 조선조 성균관 유생들의 집단행동에서부터 시작한 학생운동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의 사회변혁기마다 나라의 발전을 이끄는 주요 추진 동력으로 기능했다.
195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문제와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개신교단체. 산선.
도시산업선교회 (都市産業宣敎會)
195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 문제와 도시빈민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개신교단체. 산선.
해방 이후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노동운동가. 노동자.
전태일 (全泰壹)
해방 이후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노동운동가. 노동자.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은 1948년에 설립된 한국 개신교 기독학생운동의 연합체이다. 국내 6개 개신교 교단이 소속되어 있으며 1945년 이후, 개별 활동을 하던 전국의 기독학생회가 연합하여 1948년에 설립되었다. 신앙과 학문의 세계를 결합하고 학원과 사회에서 선교적 사명을 다하며 세상의 변화에 책임 있는 기독 지성인의 역할을 강조하여 성서교육과 사회참여운동, 사회선교 실천을 전개하고자 설립되었다.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韓國基督學生會總聯盟)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은 1948년에 설립된 한국 개신교 기독학생운동의 연합체이다. 국내 6개 개신교 교단이 소속되어 있으며 1945년 이후, 개별 활동을 하던 전국의 기독학생회가 연합하여 1948년에 설립되었다. 신앙과 학문의 세계를 결합하고 학원과 사회에서 선교적 사명을 다하며 세상의 변화에 책임 있는 기독 지성인의 역할을 강조하여 성서교육과 사회참여운동, 사회선교 실천을 전개하고자 설립되었다.
1987년 6월 9일부터 15일까지 공연된 이애주(李愛珠)의 즉흥 춤 제목.
바람맞이
1987년 6월 9일부터 15일까지 공연된 이애주(李愛珠)의 즉흥 춤 제목.
1971년에 결성된 최초의 재야 민주화운동 상설조직.
민주수호국민협의회 (民主守護國民協議會)
1971년에 결성된 최초의 재야 민주화운동 상설조직.
1984년 5월에 결성된 재야 정치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체.
민주화추진협의회 (民主化推進協議會)
1984년 5월에 결성된 재야 정치인들의 민주화운동 조직체.
삼팔민주의거(三八民主義擧)는 1960년 3월 8일부터 3월 10일까지 충청남도 대전 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불법 ·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이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회의 참여를 막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행위에 항의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3·8민주의거 (三八民主義擧)
삼팔민주의거(三八民主義擧)는 1960년 3월 8일부터 3월 10일까지 충청남도 대전 지역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불법 ·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이는 1960년 3월 8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연설회의 참여를 막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행위에 항의하여 일어난 운동이다.
박관현은 1980년 5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민주화운동가이다.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들불야학의 강학으로 활동하였으며, 1980년 5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민족·민주화 성회'를 이끌었다. 1982년 10월 광주교도소에서 재소자 처우 개선과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하다가 사망하였다.
박관현 (朴寬賢)
박관현은 1980년 5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낸 민주화운동가이다.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들불야학의 강학으로 활동하였으며, 1980년 5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민족·민주화 성회'를 이끌었다. 1982년 10월 광주교도소에서 재소자 처우 개선과 5·18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하다가 사망하였다.
윤한봉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전남북 책임자로 활동하고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내려진 수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화운동가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윤한봉 (尹漢琫)
윤한봉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전남북 책임자로 활동하고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함께 내려진 수배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민주화운동가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