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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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학술서.
조선상고사 (朝鮮上古史)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신채호가 우리나라 상고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학술서.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잔치를 뜻하는 ‘이바디’에서 변한 말로서 정성을 들여 음식 등을 보내 주는 일 또는 그 음식. 이바디·신행음식·봉송·상수·차반.
이바지
잔치를 뜻하는 ‘이바디’에서 변한 말로서 정성을 들여 음식 등을 보내 주는 일 또는 그 음식. 이바디·신행음식·봉송·상수·차반.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사회경제사학은 한국 역사학계의 한 학풍으로 식민지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일제의 식민사학에 저항하면서 유물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관점을 보였던 역사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1920년대 유물사관이 도입되어 역사연구에 활용하면서 하나의 학풍으로 정착하였다. 특히 1930년대에 전통적 사회경제연구와 역사주의 경제사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백남운 등이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위에서 한국사의 전개 과정을 정리하였다. 식민사학의 봉건제 결여론과 조선 정체성론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응하여 한국사의 수준을 높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사회경제사학 (社會經濟史學)
사회경제사학은 한국 역사학계의 한 학풍으로 식민지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일제의 식민사학에 저항하면서 유물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관점을 보였던 역사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1920년대 유물사관이 도입되어 역사연구에 활용하면서 하나의 학풍으로 정착하였다. 특히 1930년대에 전통적 사회경제연구와 역사주의 경제사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백남운 등이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위에서 한국사의 전개 과정을 정리하였다. 식민사학의 봉건제 결여론과 조선 정체성론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응하여 한국사의 수준을 높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불함문화론은 1925년 최남선이 전개한 한국고대문화 관련 사론(史論)이다. 1920년대 일제의 어용 사학자들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는 식민사관이 강요되고 있었다. 이에 맞서 민족주의 사학론이 대두되었다. 특히 최남선은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려 노력하였고, ㅂㆍㄺ[P?rk] 사상에 주목하였다. ㅂㆍㄺ[P?rk]의 가장 오랜 자형(字形)인 ‘불함’이란 말을 빌려 불함문화로 규정하였다. 인류 문화에 기여한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을 천명한 이론으로 민족주의 우파에서 제시한 가장 전형적인 역사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불함문화론 (不咸文化論)
불함문화론은 1925년 최남선이 전개한 한국고대문화 관련 사론(史論)이다. 1920년대 일제의 어용 사학자들에 의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사를 왜곡하는 식민사관이 강요되고 있었다. 이에 맞서 민족주의 사학론이 대두되었다. 특히 최남선은 한국 고대문화의 세계사적 위치를 밝히려 노력하였고, ㅂㆍㄺ[P?rk] 사상에 주목하였다. ㅂㆍㄺ[P?rk]의 가장 오랜 자형(字形)인 ‘불함’이란 말을 빌려 불함문화로 규정하였다. 인류 문화에 기여한 한민족의 문화적 독창성을 천명한 이론으로 민족주의 우파에서 제시한 가장 전형적인 역사 이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만든 비공식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군부.
신군부 (新軍部)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만든 비공식 사조직인 하나회를 중심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한 군부.
춘추관은 고려·조선시대에 시정(時政)의 기록을 관장한 관서이다. 고려 초기에는 사관(史館)이라고 불렀는데 문한서(文翰署)를 병합해 예문춘추관이라고 했다가 독립기구로 분리되었다. 1389년에 예문춘추관으로 통합하였는데 조선 건국 이후 분리되었다. 이때 예문관 관원은 녹관(祿官), 춘추관직은 겸관(兼官)으로 하였다. 『경국대전』의 직제에 따르면 영사, 감사(監事), 지사, 동지사, 수찬관, 편수관, 기주관, 기사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문관을 임용하였다. 문과에 급제한 유망한 청년들이 임명되는 전임사관은 국가의 중대회의에 모두 참석하는 등 매우 중요한 직임이었다.
춘추관 (春秋館)
춘추관은 고려·조선시대에 시정(時政)의 기록을 관장한 관서이다. 고려 초기에는 사관(史館)이라고 불렀는데 문한서(文翰署)를 병합해 예문춘추관이라고 했다가 독립기구로 분리되었다. 1389년에 예문춘추관으로 통합하였는데 조선 건국 이후 분리되었다. 이때 예문관 관원은 녹관(祿官), 춘추관직은 겸관(兼官)으로 하였다. 『경국대전』의 직제에 따르면 영사, 감사(監事), 지사, 동지사, 수찬관, 편수관, 기주관, 기사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문관을 임용하였다. 문과에 급제한 유망한 청년들이 임명되는 전임사관은 국가의 중대회의에 모두 참석하는 등 매우 중요한 직임이었다.
1925년 일제가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인 어용 역사가들과 이완용, 권중현 등 친일 부역자들을 동원해 왜곡된 조선 역사를 편술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부설로 설치한 조선사 연구기관.
조선사편수회 (朝鮮史編修會)
1925년 일제가 식민지배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인 어용 역사가들과 이완용, 권중현 등 친일 부역자들을 동원해 왜곡된 조선 역사를 편술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부설로 설치한 조선사 연구기관.
이용문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 수도사단장, 남부지구 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주둔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근무하였다.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현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귀국 후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육사 제8기 특대생으로 소령에 임관하였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 명령을 거부하였다가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지휘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이용문 (李龍文)
이용문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장, 수도사단장, 남부지구 경비사령관 등을 역임한 군인이다. 1916년에 태어나 1953년에 사망했다.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주둔 참모본부인 대본영에서 근무하였다. 남방전선으로 전속되었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현지인의 도움으로 풀려나 귀국하였다. 귀국 후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48년 육사 제8기 특대생으로 소령에 임관하였다. 1952년 부산정치파동 때 군의 중립을 내세우며 병력 차출 명령을 거부하였다가 수도사단장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을 지휘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수찬 (副修撰)
부수찬은 조선시대,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종6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면서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무관학교는 1896년 1월 무관학교 관제에 따라 초급 무관 양성을 위해 설치된 근대적인 군사 교육 기관이다. 1895년 9월에 사관 양성소가 폐지된 후 설립되었다. 설립 직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유명무실해졌다가 1897년 군부 소속으로 다시 설립되었다. 연령 20∼30세의 신체 건장하고 총명한 자 중에 군부의 장·영·위관이나 칙임관의 추천이 있어야 입학할 수 있었다. 교수 과목은 무술학·군제학·병기학·축성학(築城學)·지형학·외국어학·군인 위생학 및 마학(馬學) 등이었다.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면서 정원이 축소되었다가 1909년 폐지되었다.
무관학교 (武官學校)
무관학교는 1896년 1월 무관학교 관제에 따라 초급 무관 양성을 위해 설치된 근대적인 군사 교육 기관이다. 1895년 9월에 사관 양성소가 폐지된 후 설립되었다. 설립 직후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유명무실해졌다가 1897년 군부 소속으로 다시 설립되었다. 연령 20∼30세의 신체 건장하고 총명한 자 중에 군부의 장·영·위관이나 칙임관의 추천이 있어야 입학할 수 있었다. 교수 과목은 무술학·군제학·병기학·축성학(築城學)·지형학·외국어학·군인 위생학 및 마학(馬學) 등이었다. 1907년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면서 정원이 축소되었다가 1909년 폐지되었다.
대한민국 정예 육군 장교를 배출하는 양성 교육기관으로 수업연한이 2년인 사관학교.
육군3사관학교 (陸軍三士官學校)
대한민국 정예 육군 장교를 배출하는 양성 교육기관으로 수업연한이 2년인 사관학교.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실록청 (實錄廳)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1888년(고종 25)에 설치된 사관양성학교.
연무공원 (鍊武公院)
1888년(고종 25)에 설치된 사관양성학교.
훈련대는 1895년 1월에 일본의 주도로 조직된 신식 군대이다. 갑오개혁 시기인 1895년 1월 조선 주재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의 권유에 따라 조선 군부의 위촉을 받은 일본군 포병 중좌 구스노세 유키히코〔楠瀬幸彦〕가 훈련하여 편성한 신식 군대이다.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 이후인 9월 13일 해산되었다.
훈련대 (訓鍊隊)
훈련대는 1895년 1월에 일본의 주도로 조직된 신식 군대이다. 갑오개혁 시기인 1895년 1월 조선 주재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의 권유에 따라 조선 군부의 위촉을 받은 일본군 포병 중좌 구스노세 유키히코〔楠瀬幸彦〕가 훈련하여 편성한 신식 군대이다.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 이후인 9월 13일 해산되었다.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실록 (實錄)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대한민국 공군의 장교가 될 사관생도에게 필요한 교육을 시키고 지도적 인격을 함양시키기 위해 설립된 군사학교.
공군사관학교 (空軍士官學校)
대한민국 공군의 장교가 될 사관생도에게 필요한 교육을 시키고 지도적 인격을 함양시키기 위해 설립된 군사학교.
고대 환웅과 단군시대의 관리 혹은 사관(史官).
신지 (神誌)
고대 환웅과 단군시대의 관리 혹은 사관(史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