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사학 ()

근대사
개념
한국 역사학계의 한 학풍으로 식민지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일제의 식민사학에 저항하면서 유물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관점을 보였던 역사학을 지칭하는 사회학용어.
내용 요약

사회경제사학은 한국 역사학계의 한 학풍으로 식민지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일제의 식민사학에 저항하면서 유물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관점을 보였던 역사학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1920년대 유물사관이 도입되어 역사연구에 활용하면서 하나의 학풍으로 정착하였다. 특히 1930년대에 전통적 사회경제연구와 역사주의 경제사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백남운 등이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위에서 한국사의 전개 과정을 정리하였다. 식민사학의 봉건제 결여론과 조선 정체성론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응하여 한국사의 수준을 높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정의
한국 역사학계의 한 학풍으로 식민지 현실인식에 기초하여 일제의 식민사학에 저항하면서 유물론에 입각한 보편주의적 관점을 보였던 역사학을 지칭하는 사회학용어.
연원 및 변천

사회경제사적 연구에는 유물론뿐만 아니라 역사주의 경제사학 등을 모두 포함하겠지만 일제하 역사학계의 분류문제에 있어서 사회경제사학이라면 유물사관을 의미하였다. 유물사관에 입각한 역사연구가 하나의 학풍으로 정착된 것은 1930년대 중반이지만, 이미 1920년대 초부터 유물사관이 도입되어 역사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전통시대 실학자들이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사회경제의 역사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각 제도의 역사적 연원을 밝히려고 한 것도 일종의 사회경제사에 대한 선구적 연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하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역사를 연구한 부류로는 크게 전통적 사회경제연구, 역사주의 경제사학, 유물사관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전통적인 사회경제 연구에서 출발한 인물로는 이능화 · 김두헌 · 송석하 · 이여성 · 문정창 · 유자후 · 이훈구 · 최익한 · 배성룡 등을 들 수 있다. 사회나 제도의 사회경제적 측면을 밝힌다는 점은 사회경제사학과 통하겠으나 기초한 사상은 근대 경제학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1930년대 이후 유물사관으로 전환되어 갔다.

역사주의 경제사학자로는 1920년대의 백일규(白一圭)를 비롯하여 이극로(李克魯) · 최호진(崔虎鎭) · 고승제(高承濟)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영국의 자유무역론에 대항하면서 경제 현상의 조사나 통계를 통해 개별 민족의 특수성을 중시하는 독일의 역사학파 경제학을 수용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 이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된 것으로 한국사에서의 과학적이고 법칙적인 발전을 사회구성체적 시각에서 찾으려 하였던 유물사관을 들 수 있다. 백남운(白南雲)을 비롯하여 이청원(李淸源) · 이북만(李北滿) · 김광진(金洸鎭) · 한흥수(韓興洙) · 김태준(金台俊) · 도유호(都宥浩) 등이 논저를 통해 유물사관을 보이고 있다.

1940년대에 들어와서는 후일 북한학계를 이끌어간 김석형(金錫亨) · 박시형(朴時亨) · 전석담(全錫淡) 등이 사회경제사와 관련된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으며, 문석준(文錫俊)도 활동을 시작하였다. 경제학에서는 인정식(印貞植) · 노동규(盧東奎) · 박극채(朴克采) · 박문규(朴文圭) · 김한주(金漢周) 등도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였다.

유물사관론자들은 일제에 의한 탄압이 가중되던 1940년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대부분이 학계를 떠나거나 은거 · 망명생활에 들어가 침체를 면하지 못하였다.

광복 이후 사회주의 역사학에서는 일제하 사회경제사학의 연구전통을 이어 1930년대 이래 활동하였던 학자들이 다시 연구를 재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김사억(金思億) · 임건상(林建相) · 김일출(金一出) · 이진영(李辰永) 등이 가세하였다. 러시아에서는 계봉우(桂奉瑀)가 초기의 민족주의 · 문화주의 색채에서 전환하여 유물사관을 수용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역사학은 차츰 남한에서 배제되기 시작하였으며, 1946년 김일성 대학 설립 이후 사회주의계열의 학자들은 대체로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북한에서의 연구성과로는 1946년 함흥에서 문석준의 유고가 출판되었으며, 1949년 조선력사편찬위원회 명의로 『조선민족해방투쟁사』가 간행되었다.

이후 북한에서는 역사 해석에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도식적으로 적용하여 역사를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하였으며, 남한에서도 유물사관을 표방한 연구가 자취를 감추고 미숙하거나 절충적 방식의 경제사 연구만 남게 되어 남북한에서 모두 사회경제사학에서의 다양한 사상적 실험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내용

백남운(白南雲)은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1933)와 『조선봉건사회경제사(朝鮮封建社會經濟史)』상(1937)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위에서 한국사의 전개과정을 정리하려고 하였다. 백남운은 역사주의 경제학의 입장에서 조선사회 정체성을 주장하였던 식민주의자들의 논리를 유물론의 ‘세계사적인 일원적 역사법칙’에 따라 공격하였다.

한국사는 바로 보편적이고 일원론적인 발전법칙에 의하여 다른 제 민족과 거의 동궤적 발전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한국사의 전개과정에 대해 원시공산제사회, 노예제사회, 아시아적 봉건제사회, 봉건제 해체와 자본주의 맹아, 이식자본주의사회를 거친 것으로 정리하였다. 그는 노예제사회를 설정하여 한국사에 세계사적인 보편성이 관철된다고 보았으며, 삼국 말기 이후를 봉건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공식주의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으나, 식민주의 역사학의 봉건제 결여론과 조선사회 정체론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학문적 대응이었다. 그는 역사발전의 필연적인 발전법칙에 입각하여야 신비적 · 감상적 특수사정론에 젖어 있는 우리 역사연구에서의 식민지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청원(李淸源)은 『조선사회사독본(朝鮮社會史讀本)』(1936)에서 한국사의 발전단계를 원시공산제사회, 아시아적 노예제사회, 아시아적 봉건제사회, 이식자본주의사회로 설정하고 한국사를 통사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청원이 설정한 노예제사회는 공동체적 토지 소유를 물적 기반으로 한 아시아적 노예제 사회로 삼국에서 고려시기에 해당시키고 있다. 또한 이청원은 사적유물론을 기반으로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한국사상을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 역사학도 유교훈화적 사관으로 공격하였다.

이 외에도 이북만 · 김광진 · 전석담 등은 백남운이나 이청원과는 달리 노예제사회 결여론에 입각하여 봉건사회로의 직접적인 이행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원시 사회 이래 공동체적 요소의 강인한 존속으로 한국사회가 노예제적 단계로의 진입이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공동체 내부에서의 광범위한 농노화를 통해 봉건제가 성립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노예제적 구성의 혁명적 지양이 없이 공동체적 유제를 포섭하면서 이룩되었음을 지적하여 조선 사회의 경제적 낙후성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유물사관에 의한 한국사 연구는 당시 한국사학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명확히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학문적 연구방법이 근대 경제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한국사의 수준을 높이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유물사관을 통해 사회변혁의 필연성을 자각시켜 현실에서의 사회주의 혁명 달성에 대한 신념을 제고시키는 현실의식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유물사관에 의한 보편적 역사법칙의 적용은 일본 식민사학의 조선 정체성론과 특수사정론에 대한 학문적 극복으로 나타남으로써 민족사학으로서의 역할까지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역사적용에 있어서는 교조적 공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구체적인 실증에서도 많은 한계를 보였다. 연구방법상에서는 법칙적인 발전과정의 해명과 계급관계의 분석에 함몰되어 한국사회가 전개되는 데 작용하였던 여러 다른 변수들과의 전체적 연관관계를 밝히는 데는 실패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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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사학(社會經濟史學)의 도입(導入)과 전개(展開)」(강진철,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2, 국사편찬위원회, 1989)
「사회경제사학(社會經濟史學)과 실증사학(實證史學)의 문제(問題)」(이기백, 『문학(文學)과 지성(知性)』3, 1971년 봄호)
집필자
박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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