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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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도는 평안북도 염주군 다사노동자구에 있던 섬이다. 압록강의 남쪽 하구 간석지에 둘러싸인 작은 섬으로 대다사도와 소다사도로 나누어져 있었다. 다사도(多獅島)라는 명칭은 압록강이 운반한 토사가 파도에 의해 퇴적돼 만들어진 섬이어서 모래가 많다는 뜻의 다사도(多砂島)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압록강 하구 3항 중 하나로 얼지 않는 부동항이다. 다사도 간석지개발사업과 함께 큰 간석지벌로 되었다가 간척이 이루어져 육지와 이어졌다. 다사도 지구 간석지 건설이 진행되면서 농촌마을에서 도시로 발전하였다. 간척 개발이 된 후에도 항만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다사도 (多獅島)
다사도는 평안북도 염주군 다사노동자구에 있던 섬이다. 압록강의 남쪽 하구 간석지에 둘러싸인 작은 섬으로 대다사도와 소다사도로 나누어져 있었다. 다사도(多獅島)라는 명칭은 압록강이 운반한 토사가 파도에 의해 퇴적돼 만들어진 섬이어서 모래가 많다는 뜻의 다사도(多砂島)라 부른 데서 유래한다. 압록강 하구 3항 중 하나로 얼지 않는 부동항이다. 다사도 간석지개발사업과 함께 큰 간석지벌로 되었다가 간척이 이루어져 육지와 이어졌다. 다사도 지구 간석지 건설이 진행되면서 농촌마을에서 도시로 발전하였다. 간척 개발이 된 후에도 항만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에 조선인을 광부로 강제동원한 사건이다. 사도광산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에 1,519명 이상의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광산이다. 1939년 2월부터 동원된 조선인의 다수는 갱내 노동에 투입되어 진폐에 노출되었고, 당국의 통제 아래에서도 파업과 탈출을 감행하다가 1945년 12월 말 이후에 귀국했다. 2024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산업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반영하기로 한 일본 정부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佐渡鑛山 朝鮮人 强制動員)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동원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사도광산에 조선인을 광부로 강제동원한 사건이다. 사도광산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에 1,519명 이상의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광산이다. 1939년 2월부터 동원된 조선인의 다수는 갱내 노동에 투입되어 진폐에 노출되었고, 당국의 통제 아래에서도 파업과 탈출을 감행하다가 1945년 12월 말 이후에 귀국했다. 2024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산업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반영하기로 한 일본 정부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만안교 (萬安橋)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있는 조선후기 제22대 정조가 현륭원 전배를 위해 가설한 다리. 홍교·석교.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벽파 (僻派)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병풍도(屛風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 있는 섬이다. 섬 북단에 있는 병풍 모양의 바위가 유명하고, 지명도 이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섬 주민들과 신안군 행정이 힘을 합쳐 섬 전역에 맨드라미 꽃을 심어 정원과 산책길을 조성하여, ‘맨드라미의 섬’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병풍도 남쪽과 ‘12사도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는 대기점도가 연결되어 있다.
병풍도 (屛風島)
병풍도(屛風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 있는 섬이다. 섬 북단에 있는 병풍 모양의 바위가 유명하고, 지명도 이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섬 주민들과 신안군 행정이 힘을 합쳐 섬 전역에 맨드라미 꽃을 심어 정원과 산책길을 조성하여, ‘맨드라미의 섬’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병풍도 남쪽과 ‘12사도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는 대기점도가 연결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관직.
사공 (司空)
고려시대의 관직.
1735년(영조 11) 7월에 사도세자의 보양청을 설립할 때부터 이듬해 원단(元旦)에 폐지할 때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경모궁보양청일기 (景慕宮輔養廳日記)
1735년(영조 11) 7월에 사도세자의 보양청을 설립할 때부터 이듬해 원단(元旦)에 폐지할 때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일지. 관청일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박치륭 (朴致隆)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헌경왕후 (獻敬王后)
본관은 풍산(豊山).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 어머니는 한산이씨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고 정조의 어머니이다. 1744년 10세에 세자빈이 되고, 16세에 의소세손, 18세에 정조를 낳았다. 1762년 29세에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홀로 됐고, 1815(순조 15) 81세로 사망하였다.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뒤주대왕신 (뒤주大王神)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고려시대의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의 총칭.
삼공 (三公)
고려시대의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의 총칭.
해·달·지구가 하늘에 떠있으며 지구도 달처럼 회전한다는 조선시대의 우주론. 삼환설.
삼대환공부설 (三大丸空浮說)
해·달·지구가 하늘에 떠있으며 지구도 달처럼 회전한다는 조선시대의 우주론. 삼환설.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 (暎嬪 李氏)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후궁.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수원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수원부 (水原府)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수원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구역.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의, 연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심지한 (沈之漢)
조선 후기에, 승지, 호조참의, 연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용주사는 경기도 화성시 화산에 있던 갈양사터에 창건된 조선 후기 현륭원의 능침사이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하였다. 용주사 주지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화산 용주사 (花山 龍珠寺)
용주사는 경기도 화성시 화산에 있던 갈양사터에 창건된 조선 후기 현륭원의 능침사이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의 하나가 되어 승풍을 규정하였다. 용주사 주지는 팔도도총섭을 겸임하였다. 1955년 사찰 정화 뒤에 조계종 제2교구 본사가 되었다.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화면 중앙에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두고, 주위에 보살과 사천왕·제자·분신불(分身佛) 등 권속을 배치하여, 세 부처의 모임을 한 화면에 그렸다. 화기가 없어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석가모니불 대좌 아래쪽에 왕실 인사의 안녕을 비는 축원문이 적혀 있어 왕실 원당에 봉안된 불화임을 알려준다.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 (龍珠寺 大雄殿 後佛幀畵)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불화이다. 화면 중앙에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아미타불, 왼쪽에 약사불을 두고, 주위에 보살과 사천왕·제자·분신불(分身佛) 등 권속을 배치하여, 세 부처의 모임을 한 화면에 그렸다. 화기가 없어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지만, 석가모니불 대좌 아래쪽에 왕실 인사의 안녕을 비는 축원문이 적혀 있어 왕실 원당에 봉안된 불화임을 알려준다.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인 호족.
아자개 (阿玆蓋)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아버지인 호족.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시파 (時派)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광현 (李光鉉)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