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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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은 조선후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676년(숙종 2)에 태어나 1759년(영조 35)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의 남종화법과 오파의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수용하고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다. 거기에 자기 나름의 필묵법을 개발하여 조선의 실제 자연을 담아낸 뛰어난 진경산수화를 개척했다. 겸재파 화법이라 할 수 있는 실경산수화는 19세기 초반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정선 (鄭敾)
정선은 조선후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676년(숙종 2)에 태어나 1759년(영조 35)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의 남종화법과 오파의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수용하고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다. 거기에 자기 나름의 필묵법을 개발하여 조선의 실제 자연을 담아낸 뛰어난 진경산수화를 개척했다. 겸재파 화법이라 할 수 있는 실경산수화는 19세기 초반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준법은 산과 바위 표면의 질감과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화법이다. 산수화를 그릴 때 쓰는 기법 중 하나로 산, 바위 등의 입체감·양감·질감·명암 등을 표현한다. 20여 가지 준법이 있으나 10여 가지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귀면준법, 대부벽준법, 마아준법, 몰골준법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겸재 정선이 ‘평행진선준’, 일명 '겸재준'을 창시하였다. 이는 대나무 빗자루로 쓸어내리는 듯한 준법인데 금강산 등의 산하를 독창적으로 조형해 냈다. 20세기의 한국 산수화가였던 이상범도 미점준법을 독자적으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준법 (皴法)
준법은 산과 바위 표면의 질감과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화법이다. 산수화를 그릴 때 쓰는 기법 중 하나로 산, 바위 등의 입체감·양감·질감·명암 등을 표현한다. 20여 가지 준법이 있으나 10여 가지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귀면준법, 대부벽준법, 마아준법, 몰골준법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겸재 정선이 ‘평행진선준’, 일명 '겸재준'을 창시하였다. 이는 대나무 빗자루로 쓸어내리는 듯한 준법인데 금강산 등의 산하를 독창적으로 조형해 냈다. 20세기의 한국 산수화가였던 이상범도 미점준법을 독자적으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실경산수화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이다.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전공지의 「제주도」, 이녕의 「예성강도」 등이 높이 평가받는다. 실경의 전통은 조선 초로 이어져 명승·명소, 처소나 별장 주위의 경치를 그렸다. 명승·명소를 그린 산수화 중 「금강산도」는 중국 황실과 사신들의 선물용으로 빈번하게 제작되었다. 실경산수화는 조선 후기 완성된 진경산수화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는 이신흠의 「사천장팔경도」, 조세걸의 「곡운구곡도첩」 등이 있다.
실경산수화 (實景山水畵)
실경산수화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이다.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전공지의 「제주도」, 이녕의 「예성강도」 등이 높이 평가받는다. 실경의 전통은 조선 초로 이어져 명승·명소, 처소나 별장 주위의 경치를 그렸다. 명승·명소를 그린 산수화 중 「금강산도」는 중국 황실과 사신들의 선물용으로 빈번하게 제작되었다. 실경산수화는 조선 후기 완성된 진경산수화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는 이신흠의 「사천장팔경도」, 조세걸의 「곡운구곡도첩」 등이 있다.
금강산도는 금강산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이다. 고려 말에는 불교 성지로, 조선 초기에는 중국 사신이나 황실의 선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문인들의 활약으로 금강산이 중요한 그림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진경산수화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정선이나 심사정, 강세황 같은 대가들이 금강산을 즐겨 그리며 독특한 화법을 개발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금강산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예술적 이상을 담는 대상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금강산도는 한국적인 화풍을 발전시키며 유구한 역사와 예술적 창조성을 대변하고 있다.
금강산도 (金剛山圖)
금강산도는 금강산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이다. 고려 말에는 불교 성지로, 조선 초기에는 중국 사신이나 황실의 선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문인들의 활약으로 금강산이 중요한 그림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진경산수화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정선이나 심사정, 강세황 같은 대가들이 금강산을 즐겨 그리며 독특한 화법을 개발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금강산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예술적 이상을 담는 대상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금강산도는 한국적인 화풍을 발전시키며 유구한 역사와 예술적 창조성을 대변하고 있다.
1796년(정조 20)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화첩.
김홍도 필 병진년 화첩 (金弘道 筆 丙辰年 畵帖)
1796년(정조 20)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화첩.
자연 풍경이나 도시의 환경 등 집 밖의 경치를 그린 그림.
풍경화 (風景畵)
자연 풍경이나 도시의 환경 등 집 밖의 경치를 그린 그림.
삼공불환도는 조선 후기,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고사인물화이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중국 후한의 중장통이 전원생활에 대해 쓴 「낙지론」의 내용을 시각화한 것이다. 영의정·좌우정·우의정 삼공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행복한 전원생활을 누리는 장면을 그렸다. 관지에 의하면 1801년 순조의 병환이 완치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림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힘차면서도 웅혼한 기상을 표현한 김홍도의 대표작이다. 여유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 산수와 풍속이 혼연일체가 된 걸작이다.
삼공불환도 (三公不換圖)
삼공불환도는 조선 후기,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고사인물화이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중국 후한의 중장통이 전원생활에 대해 쓴 「낙지론」의 내용을 시각화한 것이다. 영의정·좌우정·우의정 삼공의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행복한 전원생활을 누리는 장면을 그렸다. 관지에 의하면 1801년 순조의 병환이 완치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림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그림은 힘차면서도 웅혼한 기상을 표현한 김홍도의 대표작이다. 여유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 산수와 풍속이 혼연일체가 된 걸작이다.
안중식(安中植)이 1913년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를 주제로 그린 대표적인 청록산수화.
도원문진도 (桃園問津圖·)
안중식(安中植)이 1913년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를 주제로 그린 대표적인 청록산수화.
안중식(安中植)이 1915년에 전라남도 영광의 모습을 직접 조망하고 그린 대표적인 실경산수화.
영광풍경도 (靈光風景圖)
안중식(安中植)이 1915년에 전라남도 영광의 모습을 직접 조망하고 그린 대표적인 실경산수화.
심사정(沈師正)이 1747년(영조 23)에 그린 산수화.
강상야박도 (江上夜泊圖)
심사정(沈師正)이 1747년(영조 23)에 그린 산수화.
조선 후기의 화가 김윤겸의 기행화첩.
김윤겸 필 영남기행 화첩 (金允謙 筆 嶺南紀行 畵帖)
조선 후기의 화가 김윤겸의 기행화첩.
겸재 정선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키는 미술유파. 미술용어.
정선파 (鄭敾派)
겸재 정선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키는 미술유파. 미술용어.
변관식(卞寬植)이 1955년에 자신만의 개성적 화법으로 그린 관념산수화.
무창춘색도 (武昌春色圖)
변관식(卞寬植)이 1955년에 자신만의 개성적 화법으로 그린 관념산수화.
조선후기 「고산구곡도」의 제9곡인「문산도」를 그린 문인. 서화가.
이의성 (李義聲)
조선후기 「고산구곡도」의 제9곡인「문산도」를 그린 문인. 서화가.
『삼국지연의』의 장면을 그린 조선 후기 역사고사화.
삼국지연의도 (三國志演義圖)
『삼국지연의』의 장면을 그린 조선 후기 역사고사화.
「무수동도」는 1729년(영조 5) 권이진이 화공을 시켜 자신의 고향인 무수동 일대의 경관을 그리게 한 7폭의 실경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크기는 각 폭의 세로가 121.5㎝, 가로가 48.3㎝이다. 2010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수경관의 풍치보다는 권씨 집안의 세거지인 무수동 일대의 종택과 사당, 소유 전답 등을 핵심 제재로 삼아 비중 있게 처리하였다. 조선 중기부터 활발히 제작된 양반 사대부들의 향촌 세거지와 별서를 재현한 실경 산수화로 제작 시기와 경위를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이다.
무수동도 (無愁洞圖)
「무수동도」는 1729년(영조 5) 권이진이 화공을 시켜 자신의 고향인 무수동 일대의 경관을 그리게 한 7폭의 실경 산수화이다. 종이 바탕에 수묵담채로 크기는 각 폭의 세로가 121.5㎝, 가로가 48.3㎝이다. 2010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수경관의 풍치보다는 권씨 집안의 세거지인 무수동 일대의 종택과 사당, 소유 전답 등을 핵심 제재로 삼아 비중 있게 처리하였다. 조선 중기부터 활발히 제작된 양반 사대부들의 향촌 세거지와 별서를 재현한 실경 산수화로 제작 시기와 경위를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유용한 자료이다.
1963년에 결성된 현대 한국화 단체.
청토회 (靑土會)
1963년에 결성된 현대 한국화 단체.
권영의 편지, 강원도 옹천(甕遷)과 경상남도 울산의 반구대(盤龜臺)를 그린 정선의 진경산수화 2점, 권섭이 쓴 발문이 장황(粧潢)된 서화첩.
공회첩 (孔懷帖)
권영의 편지, 강원도 옹천(甕遷)과 경상남도 울산의 반구대(盤龜臺)를 그린 정선의 진경산수화 2점, 권섭이 쓴 발문이 장황(粧潢)된 서화첩.
김윤겸은 조선 후기에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등의 작품을 남긴 도화서 화원이다. 안동 김씨 김창업의 서자이다.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찰방에 등용되었고, 여러 명사와 함께 시회와 유람을 하며 시와 그림을 남겼다. 특히 46세 이후에 금강산, 한양 근교, 단양, 영남 지방 등 전국의 명승을 여행하면서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진경산수화첩』 등이 있다.
김윤겸 (金允謙)
김윤겸은 조선 후기에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등의 작품을 남긴 도화서 화원이다. 안동 김씨 김창업의 서자이다.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찰방에 등용되었고, 여러 명사와 함께 시회와 유람을 하며 시와 그림을 남겼다. 특히 46세 이후에 금강산, 한양 근교, 단양, 영남 지방 등 전국의 명승을 여행하면서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진경산수화첩』 등이 있다.
엄치욱은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으며, 정조의 산릉 조성과 인정전의 영건에 참여하였다. 훈련도감 소속 방외화사로 여겨지며, 정선과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엄치욱 (嚴致郁)
엄치욱은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으며, 정조의 산릉 조성과 인정전의 영건에 참여하였다. 훈련도감 소속 방외화사로 여겨지며, 정선과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