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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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는 교단이나 선교회에 소속되어 해외나 낯선 지역에서 종교 교리를 전파하는 종교인이다. 한국에서는 1794년부터 천주교 선교사 입국이 시작되었고, 개신교 선교사 입국은 1884년부터 시작되었다. 선교사는 제국주의 통치에 협력하였다는 비판도 받지만, 한국 기독교 성장의 주역이자 근대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된다.
선교사 (宣敎師)
선교사는 교단이나 선교회에 소속되어 해외나 낯선 지역에서 종교 교리를 전파하는 종교인이다. 한국에서는 1794년부터 천주교 선교사 입국이 시작되었고, 개신교 선교사 입국은 1884년부터 시작되었다. 선교사는 제국주의 통치에 협력하였다는 비판도 받지만, 한국 기독교 성장의 주역이자 근대화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된다.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선교사 네비어스가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하여 창안한 선교 방법론이다. 네비어스는 1854년부터 1893년까지 중국에서 40년간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네비어스는 선교 경험을 정리하여 1885년에 「선교사의 토착교회 설립 및 육성방안」을 발표하였다. 네비어스 선교 정책은 자전(自傳), 자립, 자치로 요약할 수 있다. 자전은 토착인이 토착인에게 전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립은 토착 교인이 토착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 운영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착 교회 문제를 토착 교인들이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자치이다.
네비어스 선교정책 (Nevius 宣敎政策)
네비어스 선교정책은 선교사 네비어스가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하여 창안한 선교 방법론이다. 네비어스는 1854년부터 1893년까지 중국에서 40년간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네비어스는 선교 경험을 정리하여 1885년에 「선교사의 토착교회 설립 및 육성방안」을 발표하였다. 네비어스 선교 정책은 자전(自傳), 자립, 자치로 요약할 수 있다. 자전은 토착인이 토착인에게 전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립은 토착 교인이 토착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 운영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토착 교회 문제를 토착 교인들이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자치이다.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친일승려들을 규탄하는 등 불교계 중심인물이 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한 승려·독립운동가.
김상호 (金尙昊)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를 지원하고 친일승려들을 규탄하는 등 불교계 중심인물이 되어 항일투쟁을 전개한 승려·독립운동가.
조선후기 승려 윤우·혜장 등이 해남 대흥사의 창건과 부속암자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여 1823년에 간행한 사적기.
대둔사지 (大屯寺誌)
조선후기 승려 윤우·혜장 등이 해남 대흥사의 창건과 부속암자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여 1823년에 간행한 사적기.
조선전기 교종판사도대사를 역임한 승려.
수진 (守眞)
조선전기 교종판사도대사를 역임한 승려.
『나암잡저』는 조선 명종 대에 선종판사(禪宗判事)를 역임한 허응 보우(虛應普雨)의 법어와 기문 등을 수록한 문집이다. 제자 태균(太均)이 편찬했으며 사명 유정(四溟惟政)이 교정을 보았다. 보우는 선승을 표방했지만 교학에 정통했으며 본서에서도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나암잡저 (懶庵雜著)
『나암잡저』는 조선 명종 대에 선종판사(禪宗判事)를 역임한 허응 보우(虛應普雨)의 법어와 기문 등을 수록한 문집이다. 제자 태균(太均)이 편찬했으며 사명 유정(四溟惟政)이 교정을 보았다. 보우는 선승을 표방했지만 교학에 정통했으며 본서에서도 그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보우는 조선전기 봉은사 주지, 판선종사도대선사, 선종판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509년(중종 4)에 태어나 1565년(명종 20)에 사망했다.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고 재상 정만종과의 교유를 통해 문정대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선교일체론을 주창했고 일정성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도첩제와 승과를 다시 실시했다. 1565년 4월에 회암사 중창사업을 마치고 낙성식을 겸한 무차대회를 열었지만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보우 (普雨)
보우는 조선전기 봉은사 주지, 판선종사도대선사, 선종판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509년(중종 4)에 태어나 1565년(명종 20)에 사망했다.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고 재상 정만종과의 교유를 통해 문정대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선교일체론을 주창했고 일정성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도첩제와 승과를 다시 실시했다. 1565년 4월에 회암사 중창사업을 마치고 낙성식을 겸한 무차대회를 열었지만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승가사는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재해의 극복을 위해 국왕들이 행차하여 법회를 열었고,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약사신앙으로 유명했다. 세종 대 선교양종의 선종 18사의 하나였으며 조선 말에도 왕실의 기도처로서 지원을 받았다.
승가사 (僧伽寺)
승가사는 통일신라 시대 수태가 승가대사상을 조성하며 창건한 서울 종로구 북한산에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에는 재해의 극복을 위해 국왕들이 행차하여 법회를 열었고,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약사신앙으로 유명했다. 세종 대 선교양종의 선종 18사의 하나였으며 조선 말에도 왕실의 기도처로서 지원을 받았다.
『불교(佛敎)』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기관지로 발행한 월간 불교 잡지이다. 종교성을 다룬 논설, 불교개혁론, 경전의 번역, 전통 문화의 소개, 불교 문학 작품 등 근대 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잡지는 당대 불교계의 동향과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의미가 크다.
불교 (佛敎)
『불교(佛敎)』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기관지로 발행한 월간 불교 잡지이다. 종교성을 다룬 논설, 불교개혁론, 경전의 번역, 전통 문화의 소개, 불교 문학 작품 등 근대 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잡지는 당대 불교계의 동향과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의미가 크다.
조선시대 종6품 하계(下階) 문신의 품계.
선무랑 (宣務郎)
조선시대 종6품 하계(下階) 문신의 품계.
고려말 조선초에 있었던 불교의 한 종파.
시흥종 (始興宗)
고려말 조선초에 있었던 불교의 한 종파.
유정(惟政)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일파.
사명문 (泗溟門)
유정(惟政)을 중심으로 한 불교의 일파.
일제강점기 중국 초대 선교사로 파견된 목사.
사병순 (史秉淳)
일제강점기 중국 초대 선교사로 파견된 목사.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성우 (惺牛)
성우는 개항기 선의 일상화로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킨 승려이다. 1846년 전라북도 전주 출생으로, 9세에 과천의 청계사로 출가해 계허 밑에서 수학한 후 계룡산 동학사에서 불교경론을 배웠다. 1879년 깨달음을 얻고 천장암에서 제자 만공, 혜월, 수월을 지도했다. 이후 충청남도 일대의 개심사와 부석사에서 교화를 펼치며 선풍을 떨쳤다. 선의 생활화·일상화를 모색하여 대중 속에서 선의 이념을 실현하였으며, 설법뿐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 선을 선양하였다. 근대 한국불교를 중흥시켰다고 평가되며,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다. 1912년 4월 입적하였다.
수선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이루어진 혁신불교적인 신앙결사의 단체명인 동시에 사찰의 명칭이다. 무신정변 이후 불교계와 불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비판의식이 대두되었고 학문불교이자 체제불교적 성격이 강한 교종을 대신해 선종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각 지방의 신앙단체로서 결사가 유행했는데 선종에서는 수선사가, 천태종에서는 백련사가 탄생했다. 지눌은 수선사 결사를 통해 돈오점수설에 입각한 정혜쌍수의 법을 주창했고 다시 화엄사상과 결합하여 화엄과 선이 하나임을 밝혔다. 수선사의 불교는 오늘날까지도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선사 (修禪社)
수선사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이루어진 혁신불교적인 신앙결사의 단체명인 동시에 사찰의 명칭이다. 무신정변 이후 불교계와 불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비판의식이 대두되었고 학문불교이자 체제불교적 성격이 강한 교종을 대신해 선종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각 지방의 신앙단체로서 결사가 유행했는데 선종에서는 수선사가, 천태종에서는 백련사가 탄생했다. 지눌은 수선사 결사를 통해 돈오점수설에 입각한 정혜쌍수의 법을 주창했고 다시 화엄사상과 결합하여 화엄과 선이 하나임을 밝혔다. 수선사의 불교는 오늘날까지도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화춘은 남감리회의 북간도지역 선교사로 활동한 기독교 목사이다. 남감리회 전도인으로 1907년 만주 선교사로 임명되어 용정을 중심으로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1908년 만주 선교를 캐나다장로회 선교부에 이양하고 귀국해서 개성과 금천, 서울 등지에서 목회하다가 1924년 재차 북간도지역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였다.
이화춘 (李和春)
이화춘은 남감리회의 북간도지역 선교사로 활동한 기독교 목사이다. 남감리회 전도인으로 1907년 만주 선교사로 임명되어 용정을 중심으로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1908년 만주 선교를 캐나다장로회 선교부에 이양하고 귀국해서 개성과 금천, 서울 등지에서 목회하다가 1924년 재차 북간도지역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였다.
조선시대 외명부 중 문무관처에게 내린 정·종6품 작호(爵號).
의인 (宜人)
조선시대 외명부 중 문무관처에게 내린 정·종6품 작호(爵號).
장로교는 기독교(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종교 개혁자 칼뱅의 신학과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발전한 개혁교회의 한 지파로 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파이다. 한국에는 1884년 알렌이 첫 정주 선교사로 입국하였고 같은 해 사상륜 등에 의해 황해도 장연 솔내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1887년 새문안교회가 장로교 직제를 갖춘 첫 조직교회로 설립되었다. 1907년 선교회 간의 협력으로 독로회를 조직하였고 1912년에는 총회가 조직되었다. 해방 이후 분열을 거듭하여 2018년 현재 300개가 넘는 장로교 교파가 있다.
장로교 (長老敎)
장로교는 기독교(개신교)의 한 교파이다. 종교 개혁자 칼뱅의 신학과 신앙 고백을 중심으로 발전한 개혁교회의 한 지파로 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파이다. 한국에는 1884년 알렌이 첫 정주 선교사로 입국하였고 같은 해 사상륜 등에 의해 황해도 장연 솔내에 교회가 설립되었다. 1887년 새문안교회가 장로교 직제를 갖춘 첫 조직교회로 설립되었다. 1907년 선교회 간의 협력으로 독로회를 조직하였고 1912년에는 총회가 조직되었다. 해방 이후 분열을 거듭하여 2018년 현재 300개가 넘는 장로교 교파가 있다.
우리나라 초기 장로교회의 전도·교육·사회사업 등 선교사업 일체의 역사와 통계를 수록하여 1918년에 간행한 개신교서. 개신교자료집.
장로교회사전휘집 (長老敎會事典彙集)
우리나라 초기 장로교회의 전도·교육·사회사업 등 선교사업 일체의 역사와 통계를 수록하여 1918년에 간행한 개신교서. 개신교자료집.
의천은 고려전기 국사, 승통, 국청사 제1대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055년(문종 9)에 태어나 1101년(숙종 6)에 사망했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자원하여 11세에 출가했다. 송나라에 유학해 수도 변경의 여러 절에 머물면서 화엄과 천태 등의 교학에 대해 토론하며 견문을 넓혔다. 1086년(선종 3) 불교 전적 3000여 권을 가지고 귀국한 뒤,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불교전적 정비·편찬에 힘썼다. 1097년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개립하여 교단의 통일과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의천 (義天)
의천은 고려전기 국사, 승통, 국청사 제1대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055년(문종 9)에 태어나 1101년(숙종 6)에 사망했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자원하여 11세에 출가했다. 송나라에 유학해 수도 변경의 여러 절에 머물면서 화엄과 천태 등의 교학에 대해 토론하며 견문을 넓혔다. 1086년(선종 3) 불교 전적 3000여 권을 가지고 귀국한 뒤,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불교전적 정비·편찬에 힘썼다. 1097년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개립하여 교단의 통일과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