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성수"
검색결과 총 14건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성수대교 (聖水大橋)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한 사건.
성수대교 붕괴 사건 (聖水大橋 崩壞 事件)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48m가 붕괴한 사건.
삼국시대 고구려의 지방관직.
수사 (守事)
삼국시대 고구려의 지방관직.
시화는 한문학 분야에서 시에 대한 평론이나 시인과 관련된 일화 · 행적 등을 적은 글이다. 시평(詩評) · 시담(詩談) · 시설(詩說) · 시품(詩品) 등의 순수 시 비평집을 비롯해 소설(小說) · 패설(稗說) · 유설(類說) · 연담(軟談) 등과 같이 잡록(雜錄) 형태로 시화가 삽입된 것들도 모두 시화로 통칭한다. ‘시화’라는 명칭은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시화는 고려시대·조선 초기·조선 중기·조선 후기에 따라 변모 과정을 겪었다.
시화 (詩話)
시화는 한문학 분야에서 시에 대한 평론이나 시인과 관련된 일화 · 행적 등을 적은 글이다. 시평(詩評) · 시담(詩談) · 시설(詩說) · 시품(詩品) 등의 순수 시 비평집을 비롯해 소설(小說) · 패설(稗說) · 유설(類說) · 연담(軟談) 등과 같이 잡록(雜錄) 형태로 시화가 삽입된 것들도 모두 시화로 통칭한다. ‘시화’라는 명칭은 송나라의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시화는 고려시대·조선 초기·조선 중기·조선 후기에 따라 변모 과정을 겪었다.
조선시대 「규정」, 「증운강」 등을 저술한 시인.
옥봉 이씨 (玉峰 李氏)
조선시대 「규정」, 「증운강」 등을 저술한 시인.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회정대사가 창건한 사찰.
마니산 정수사 (摩尼山 淨水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회정대사가 창건한 사찰.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서울경동초등학교 (서울京東初等學校)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사신의 하나로 남쪽을 관장하는 신령. 주조(朱鳥).
주작 (朱雀)
사신의 하나로 남쪽을 관장하는 신령. 주조(朱鳥).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관음사에 있는 조선후기 조각승 무염이 조성한 목조 불상.
관음사 목조 관음보살상 (觀音寺 木造 觀音菩薩像)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관음사에 있는 조선후기 조각승 무염이 조성한 목조 불상.
함양 백운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에 있는 조선 후기 성조 등 7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목조불상이다. 201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높이 113㎝, 무릎 폭 80.8㎝이다. 발원문에 따르면 1674년 아미타삼존상으로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본존 아미타여래만이 남아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고, 두 손을 모두 무릎 위에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결하였다. 이 불상은 굴곡과 윤곽까지는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는 조선 후기에 추구한 평담한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함양 백운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咸陽 白雲庵 木造 阿彌陀如來 坐像)
함양 백운암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암에 있는 조선 후기 성조 등 7명의 조각승들이 조성한 목조불상이다. 201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높이 113㎝, 무릎 폭 80.8㎝이다. 발원문에 따르면 1674년 아미타삼존상으로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본존 아미타여래만이 남아 있다. 머리와 육계의 구분이 없고, 두 손을 모두 무릎 위에 올리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결하였다. 이 불상은 굴곡과 윤곽까지는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는 조선 후기에 추구한 평담한 미의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불갑사 목조 삼세불 좌상 (佛甲寺 木造 三世佛 坐像)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사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
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69년(선조 2)에 태어나 1618년(광해군 10)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문재에 뛰어났고 학문은 유성룡에게, 시는 이달에게 배웠다. 명 사신 접대에 종사관으로 기용되어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명나라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광해군 즉위 후 대북파에 가담하여 폐모론을 적극 주장했다. 유학 외에 불교와 도교 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비판적 개혁사상가로서 여러 이론을 개진했고,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 「한정록」 등의 작품을 남겼다.
허균 (許筠)
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이다. 1569년(선조 2)에 태어나 1618년(광해군 10)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문재에 뛰어났고 학문은 유성룡에게, 시는 이달에게 배웠다. 명 사신 접대에 종사관으로 기용되어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명나라에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광해군 즉위 후 대북파에 가담하여 폐모론을 적극 주장했다. 유학 외에 불교와 도교 등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비판적 개혁사상가로서 여러 이론을 개진했고,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 「한정록」 등의 작품을 남겼다.
대전 비래사 목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사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높이가 83㎝인 중형 불상으로 1650년 조각승 무염, 성수 등이 제작하였다. 불상 속 개금중수기에 1861년에 대둔산 안심사 심검당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언제 비래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은 두 손은 모아 쥔 지권인의 모습으로 상체를 곧게 세우고 있다.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고 목에는 완만한 곡선의 삼도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무염의 작품 중 가장 미적 완성도가 높아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작이 된다.
대전 비래사 목조 비로자나불 좌상 (大田 飛來寺 木造 毘盧遮▽那佛 坐像)
대전 비래사 목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사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이다. 높이가 83㎝인 중형 불상으로 1650년 조각승 무염, 성수 등이 제작하였다. 불상 속 개금중수기에 1861년에 대둔산 안심사 심검당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언제 비래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불상은 두 손은 모아 쥔 지권인의 모습으로 상체를 곧게 세우고 있다. 머리에는 나발과 육계가 있고 목에는 완만한 곡선의 삼도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무염의 작품 중 가장 미적 완성도가 높아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기준작이 된다.
해운정사 전법게(海雲精舍 傳法偈)는 근현대, 대선사 혜월 혜명 · 운봉 성수 · 향곡 혜림이 지어 운봉 성수 · 향곡 혜림 · 진제 법원에게 각각 선법과 법맥을 남긴 개별 불교문서이다. 이 전법게는 경허(鏡虛) 성우(惺牛)의 법맥을 이은 혜월(慧月) 혜명(慧明)이 운봉(雲峰) 성수(性粹)에게, 운봉 성수가 향곡(香谷) 혜림(蕙林)에게, 향곡 혜림이 진제(眞際) 법원(法遠)에게 각각 남긴 전법게 3종 3건과 등등상속(燈燈相續) 3종 3건이다.
해운정사 전법게 (海雲精舍 傳法偈)
해운정사 전법게(海雲精舍 傳法偈)는 근현대, 대선사 혜월 혜명 · 운봉 성수 · 향곡 혜림이 지어 운봉 성수 · 향곡 혜림 · 진제 법원에게 각각 선법과 법맥을 남긴 개별 불교문서이다. 이 전법게는 경허(鏡虛) 성우(惺牛)의 법맥을 이은 혜월(慧月) 혜명(慧明)이 운봉(雲峰) 성수(性粹)에게, 운봉 성수가 향곡(香谷) 혜림(蕙林)에게, 향곡 혜림이 진제(眞際) 법원(法遠)에게 각각 남긴 전법게 3종 3건과 등등상속(燈燈相續) 3종 3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