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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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훈(白光勳)은 조선 전기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옥봉집』을 저술한 시인이다. 그의 본관은 해미(海美)이며,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백광훈은 이산해(李山海), 최립(崔岦) 등과 더불어 팔문장(八文章)의 칭호를 받았고, 글씨에도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며, 송시(宋詩)의 풍조를 버리고 당시(唐詩)를 따르며 16세기 조선 문단의 시풍(詩風)을 혁신하였다.
백광훈 (白光勳)
백광훈(白光勳)은 조선 전기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옥봉집』을 저술한 시인이다. 그의 본관은 해미(海美)이며, 자는 창경(彰卿), 호는 옥봉(玉峯)이다. 백광훈은 이산해(李山海), 최립(崔岦) 등과 더불어 팔문장(八文章)의 칭호를 받았고, 글씨에도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며, 송시(宋詩)의 풍조를 버리고 당시(唐詩)를 따르며 16세기 조선 문단의 시풍(詩風)을 혁신하였다.
김병연은 조선 후기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그의 집안은 홍경래의 난이 발발하였을 때, 조부였던 평안도 선천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이 반란군에 투항한 죄로 폐족(廢族)을 당하였다. 김병연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 세계는 그가 방랑 이후 10년 동안 창작한 작품과 그 이후에 창작한 작품으로 구분된다. 방랑 이후 10년 동안 창작한 작품에서는 방랑 과정에서 느꼈던 고뇌와 좌절감이 드러나는 반면, 이후 작품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특징적인 면모를 보인다.
김병연 (金炳淵)
김병연은 조선 후기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그의 집안은 홍경래의 난이 발발하였을 때, 조부였던 평안도 선천부사(宣川府使) 김익순(金益淳)이 반란군에 투항한 죄로 폐족(廢族)을 당하였다. 김병연은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 세계는 그가 방랑 이후 10년 동안 창작한 작품과 그 이후에 창작한 작품으로 구분된다. 방랑 이후 10년 동안 창작한 작품에서는 방랑 과정에서 느꼈던 고뇌와 좌절감이 드러나는 반면, 이후 작품에서는 풍자와 해학이 특징적인 면모를 보인다.
윤곤강은 일제강점기 『대지』·『만가』·『동물시집』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1933년 센슈대학을 졸업하고 귀국과 동시에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했다. 1934년 제2차 카프검거사건 때 체포되었다. 1936년부터 시와 시론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였다. 1939년에는 『시학』 동인으로 활약했다.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새로운 시 세계를 개척하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묘사나 설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시작 태도 때문에 전체적으로 응축력이 결여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곤강 (尹崑崗)
윤곤강은 일제강점기 『대지』·『만가』·『동물시집』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1933년 센슈대학을 졸업하고 귀국과 동시에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했다. 1934년 제2차 카프검거사건 때 체포되었다. 1936년부터 시와 시론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창작 활동을 벌였다. 1939년에는 『시학』 동인으로 활약했다.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의 작품은 새로운 시 세계를 개척하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묘사나 설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시작 태도 때문에 전체적으로 응축력이 결여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창조사에서 조지훈의 시 「파초우」·「고풍의상」·「승무」 등을 수록하여 1952년에 간행한 시집.
풀잎단장 (풀잎斷章)
창조사에서 조지훈의 시 「파초우」·「고풍의상」·「승무」 등을 수록하여 1952년에 간행한 시집.
강준흠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원(百源), 호는 삼명(三溟)이다. 1794년(정조18) 문과에 급제해 1833년(순조33)년 죽을 때까지 중간에 약 10년을 제외하고는 지속해서 관직을 역임했으며, 공서파에 적극 가담하여 남인 시파와 대립하였다. 시문에 조예가 깊어 당대 문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저술로는 『삼명집』과 『삼명시화』가 있다.
강준흠 (姜浚欽)
강준흠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원(百源), 호는 삼명(三溟)이다. 1794년(정조18) 문과에 급제해 1833년(순조33)년 죽을 때까지 중간에 약 10년을 제외하고는 지속해서 관직을 역임했으며, 공서파에 적극 가담하여 남인 시파와 대립하였다. 시문에 조예가 깊어 당대 문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저술로는 『삼명집』과 『삼명시화』가 있다.
지안(志安, 1664~1729)은 조선 후기 편양파(鞭羊派)의 주류 계보를 잇는 승려로 선과 교를 겸수하여 융합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를 저술하고, 화엄 강학과 대규모 화엄 법회를 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선과 교를 모두 아우르며 실천한 선승이자 종장이었다.
지안 (志安)
지안(志安, 1664~1729)은 조선 후기 편양파(鞭羊派)의 주류 계보를 잇는 승려로 선과 교를 겸수하여 융합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를 저술하고, 화엄 강학과 대규모 화엄 법회를 열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선과 교를 모두 아우르며 실천한 선승이자 종장이었다.
조선 후기에, 지평, 장령, 춘방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최성대 (崔成大)
조선 후기에, 지평, 장령, 춘방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동명사제』는 김재소가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사적을 시로 읊고 주석을 달아 189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891년 고종의 명령으로 고구려 동명왕릉비를 건립하고 왕릉을 개봉하였다. 이때 감독관이었던 김재소가 『삼국사기』의 동명성왕 본기와 『고씨가승』 중에서 발췌하여 칠언율시로 엮었다. 31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금와의 탄생,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 주몽의 고구려 건립 과정을 비롯하여 그의 업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또한 『고씨가승』 편성에 관여한 동명왕의 후손 고기의 발론과 풍수설과 관련된 「산론유서」의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동명사제 (東明事題)
『동명사제』는 김재소가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사적을 시로 읊고 주석을 달아 1892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1891년 고종의 명령으로 고구려 동명왕릉비를 건립하고 왕릉을 개봉하였다. 이때 감독관이었던 김재소가 『삼국사기』의 동명성왕 본기와 『고씨가승』 중에서 발췌하여 칠언율시로 엮었다. 31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금와의 탄생, 해모수와 유화의 결합, 주몽의 고구려 건립 과정을 비롯하여 그의 업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또한 『고씨가승』 편성에 관여한 동명왕의 후손 고기의 발론과 풍수설과 관련된 「산론유서」의 내용을 덧붙이고 있다.
『매호유고』는 고려 후기 문신 진화(陳澕)의 시문 작품을 수록하여 178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진화는 이규보와 시명(詩名)이 나란했을 정도로 뛰어난 문인이다. 『매호유고』에는 시 53수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에는 사실(事實) · 수창(酬唱) · 평품(評品) · 예빈경공시(禮賓卿公詩)가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역대 시화집 또는 시집에서 수습한 것이다.
매호유고 (梅湖遺稿)
『매호유고』는 고려 후기 문신 진화(陳澕)의 시문 작품을 수록하여 178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진화는 이규보와 시명(詩名)이 나란했을 정도로 뛰어난 문인이다. 『매호유고』에는 시 53수가 수록되어 있고, 부록에는 사실(事實) · 수창(酬唱) · 평품(評品) · 예빈경공시(禮賓卿公詩)가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역대 시화집 또는 시집에서 수습한 것이다.
조선후기 『도애시집』, 『도애시문선』, 『동국세시기』 등을 저술한 문인. 학자.
홍석모 (洪錫謨)
조선후기 『도애시집』, 『도애시문선』, 『동국세시기』 등을 저술한 문인. 학자.
청색지사에서 김달진이 ‘시인부락’과 ‘시원’ 등의 동인활동을 하면서 지은 시를 편집하여 1940년에 간행한 시집.
청시 (靑枾)
청색지사에서 김달진이 ‘시인부락’과 ‘시원’ 등의 동인활동을 하면서 지은 시를 편집하여 1940년에 간행한 시집.
1945년에 설립되었던 문화단체.
중앙문화협회 (中央文化協會)
1945년에 설립되었던 문화단체.
수초(守初, 1590~1668)는 조선 후기 부휴계 벽암 각성(碧巖覺性)의 수제자로 『취미대사시집(翠微大師詩集)』을 저술한 승려이다. 성삼문(成三問)의 후손으로 유학에도 정통하였고 선과 교를 널리 폈다. 수선은 부휴계의 적전 계보를 이었으며, 제자로는 백암 성총(栢庵性聰)이 있다.
수초 (守初)
수초(守初, 1590~1668)는 조선 후기 부휴계 벽암 각성(碧巖覺性)의 수제자로 『취미대사시집(翠微大師詩集)』을 저술한 승려이다. 성삼문(成三問)의 후손으로 유학에도 정통하였고 선과 교를 널리 폈다. 수선은 부휴계의 적전 계보를 이었으며, 제자로는 백암 성총(栢庵性聰)이 있다.
새봉(璽封, 1687~1767)은 조선 후기 편양파의 주류 계보를 이은 승려이다. 그는 화엄학에 정통하였으며,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을 저술한 학승이다. 선암사(仙巖寺) 극준(極俊)에게 출가했고, 소요파 화악 문신(華岳文信)에게 구족계를 받았으며, 편양파 설암 추붕(雪巖秋鵬)의 법을 이었다. 새봉이 강의했던 1754년 선암사 화엄대회에는 1,287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룰 정도로 그의 강학은 유명했다. 대둔사(大芚寺) 제9대 종사로서 선암사와 대둔사 등에 탑과 비가 세워졌다.
새봉 (璽封)
새봉(璽封, 1687~1767)은 조선 후기 편양파의 주류 계보를 이은 승려이다. 그는 화엄학에 정통하였으며,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을 저술한 학승이다. 선암사(仙巖寺) 극준(極俊)에게 출가했고, 소요파 화악 문신(華岳文信)에게 구족계를 받았으며, 편양파 설암 추붕(雪巖秋鵬)의 법을 이었다. 새봉이 강의했던 1754년 선암사 화엄대회에는 1,287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룰 정도로 그의 강학은 유명했다. 대둔사(大芚寺) 제9대 종사로서 선암사와 대둔사 등에 탑과 비가 세워졌다.
『범해선사유고(梵海禪師遺稿)』는 19세기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편양파(鞭羊派) 승려 범해 각안(梵海覺岸)의 문집과 시집을 모아 1921년에 펴낸 시문집이다. 각안은 편양파의 계보를 위주로 『동사열전(東史列傳)』을 펴내는 등 불교사와 불교 전통을 집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시문집은 『범해선사문집』 2권과 『범해선사시집』 2권, 부록 「범해유집보유(梵海遺集補遺)」를 합친 것이다.
범해선사유고 (梵海禪師遺稿)
『범해선사유고(梵海禪師遺稿)』는 19세기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편양파(鞭羊派) 승려 범해 각안(梵海覺岸)의 문집과 시집을 모아 1921년에 펴낸 시문집이다. 각안은 편양파의 계보를 위주로 『동사열전(東史列傳)』을 펴내는 등 불교사와 불교 전통을 집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시문집은 『범해선사문집』 2권과 『범해선사시집』 2권, 부록 「범해유집보유(梵海遺集補遺)」를 합친 것이다.
조선시대 이조참판, 세자좌빈객, 양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유인길 (柳寅吉)
조선시대 이조참판, 세자좌빈객, 양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후기 『사명자시집』을 저술한 시인.
차좌일 (車佐一)
조선후기 『사명자시집』을 저술한 시인.
이하윤이 외국의 시 110편을 번역하여 1933년에 간행한 시집. 번역시집.
실향의 화원 (失香의 花園)
이하윤이 외국의 시 110편을 번역하여 1933년에 간행한 시집. 번역시집.
조선전기 문신·서예가 양사언이 친필로 쓴 시문을 모아 엮은 서첩.
봉래유묵 (蓬萊遺墨)
조선전기 문신·서예가 양사언이 친필로 쓴 시문을 모아 엮은 서첩.
조선 후기에, 연천군수, 중추원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현일 (玄鎰)
조선 후기에, 연천군수, 중추원지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