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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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서울에서 창립한 민족협동전선.
신간회 (新幹會)
1927년 2월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이 연합하여 서울에서 창립한 민족협동전선.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명동 (金明東)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였고, 해방 이후,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김병로 (金炳魯)
김병로는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부장, 대법원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자 정치인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64년에 사망했다. 1910년 일본에 유학하여 법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하며 경성지방법원 소속 변호사로 개업했다.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며 다방면의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다.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장, 초대 및 제2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 밖에서 오는 온갖 압력과 간섭을 뿌리치고 사법권 독립의 기초를 다졌다.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권동진 (權東鎭)
권동진은 천도교 지도자이자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05년 천도교가 창건할 때부터 천도교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6 · 10만세운동 당시 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또한 신간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광주학생운동을 널리 알리기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남윤구 (南潤九)
일제강점기 때,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곽상훈은 동래3·1운동 참가,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이후 국회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19년 고교 재학 중 고향으로 내려가 3·1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검찰 차장을 지냈다. 2대∼5대 민의원, 1960년 4·19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같은 해 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당시 민주당 탈당 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해 비난을 받았다.
곽상훈 (郭尙勳)
곽상훈은 동래3·1운동 참가, 신간회 활동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해방 이후 국회의장, 대통령 권한 대행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96년 부산 동래 출신으로, 1919년 고교 재학 중 고향으로 내려가 3·1운동에 참가하다 체포되어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대 후반, 항일단체인 신간회에 들어가 검찰위원으로 활약했다. 해방 후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검찰 차장을 지냈다. 2대∼5대 민의원, 1960년 4·19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같은 해 민의원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당시 민주당 탈당 후 박정희 정권을 지지해 비난을 받았다.
권태석은 일제강점기 조선민흥회와 신간회,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며, 8·15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조선민족대동단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조선민흥회 상무위원, 1927년 신간회 창립 서무부 총무간사에 선임되었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신한민족당에 참여하였다.
권태석 (權泰錫)
권태석은 일제강점기 조선민흥회와 신간회, 조선공산당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며, 8·15광복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 조선민족대동단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조선민흥회 상무위원, 1927년 신간회 창립 서무부 총무간사에 선임되었다.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을 지냈으며, 8·15광복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신한민족당에 참여하였다.
박용희는 일제강점기 서울 경기 지역 3·1운동과 한성정부 조직, 신간회에 참여하고, 광복 후 남조선 과도정부 입법의원, 대한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역임한 장로회 목사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박용희 (朴容羲)
박용희는 일제강점기 서울 경기 지역 3·1운동과 한성정부 조직, 신간회에 참여하고, 광복 후 남조선 과도정부 입법의원, 대한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역임한 장로회 목사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배치문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신간회 목포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배치문 (裵致文)
배치문은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삼일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목포 지역을 중심으로 청년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신간회 목포지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변희용 (卞熙瑢)
변희용은 일제강점기 청년운동 및 신간회운동에 참여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 성균관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고 령출신. 게이오(慶應)대학을 졸업했다. 일본 사상단체인 신인회, 효민회, 코스모구락부, 십월회, 북성회 등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이었다. 1927년 신간회 고령지회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했고. 1947년 잡지 [재건]의 주간이 되었다. 1960년 4월혁명 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교수 데모를 주도했다.
김한은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본 유학을 경험하였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사법부 비서국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사회주의운동과 의혈 투쟁에 투신하여 무산자동지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김한 (金翰)
김한은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본 유학을 경험하였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사법부 비서국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사회주의운동과 의혈 투쟁에 투신하여 무산자동지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연정회는 1923년 말부터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자치운동단체이다. 민족주의 계열에서 추진했던 실력양성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자치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1923년 12월에 연정회를 조직하고자 하였으나, 절대 독립에 대한 부정은 사회주의 계열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1925년 이후 국내외 정세의 변화 속에서 부활 계획이 다시 시도되었으나, 1927년 신간회의 결성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연정회 (硏政會)
연정회는 1923년 말부터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자치운동단체이다. 민족주의 계열에서 추진했던 실력양성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자치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1923년 12월에 연정회를 조직하고자 하였으나, 절대 독립에 대한 부정은 사회주의 계열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1925년 이후 국내외 정세의 변화 속에서 부활 계획이 다시 시도되었으나, 1927년 신간회의 결성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연통제 경성군 지부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신간회 함경북도 지부를 조직하여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송관섭 (宋瓘燮)
일제강점기 때, 연통제 경성군 지부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신간회 함경북도 지부를 조직하여 민족유일당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부회장, 함흥중앙교회 장로, 동아일보 함흥지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함흥의 독립만세시위와 함흥헌병대 의거를 주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이순기 (李舜基)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부회장, 함흥중앙교회 장로, 동아일보 함흥지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함흥의 독립만세시위와 함흥헌병대 의거를 주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선전부 총무간사, 조선일보 이사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이승복 (李昇馥)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선전부 총무간사, 조선일보 이사 등을 역임한 언론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남화한인청년연맹 흑색공포단, 조선민족혁명당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용준 (李容俊)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남화한인청년연맹 흑색공포단, 조선민족혁명당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신간회 총무간사 및 경상북도 지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경희 (李慶熙)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신간회 총무간사 및 경상북도 지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조병옥은 일제강점기 신우회 회원, 신간회 재정부장, 총무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894년에 태어나 1960년에 사망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비밀 독립운동단체인 신우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신간회 간부로 일했으며 광주학생운동탄압을 규탄하는 민중대회를 열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미군정청 경무부장으로서 이승만의 정치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발병하여 도미 치료 중 사망했다.
조병옥 (趙炳玉)
조병옥은 일제강점기 신우회 회원, 신간회 재정부장, 총무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894년에 태어나 1960년에 사망했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미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비밀 독립운동단체인 신우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신간회 간부로 일했으며 광주학생운동탄압을 규탄하는 민중대회를 열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고 미군정청 경무부장으로서 이승만의 정치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으나 발병하여 도미 치료 중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동경지회 간사, 재동경조선인유학생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유원우 (柳元佑)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동경지회 간사, 재동경조선인유학생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