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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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조각가 백문기가 프랑스인 신부 안토니오 공베르를 소조로 제작한 흉상.
K신부상 (K神父像)
1941년에 조각가 백문기가 프랑스인 신부 안토니오 공베르를 소조로 제작한 흉상.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이다.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에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었으나 1895년에 공세리로 이전되면서 공세리본당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하여 192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공세리성당 (貢稅里聖堂)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이다.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에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었으나 1895년에 공세리로 이전되면서 공세리본당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하여 192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명도회는 1797~1798년경, 주문모 신부가 서울에 설립한 천주교 평신도들의 교리 연구 및 전교 단체이다. 1791년, 구베아 주교가 북경에 세운 명도회를 본떠 설립했으며, 조직은 회장과 육회(六會)로 구성되어 있다. 『명도회규』라는 회규가 있었으며, 여성 회원과 지방 회원도 있었다. 1801년에 주문모 신부와 회장인 정약종 등 지도급 신자들이 순교하면서 타격을 입었지만, 1846년경까지 회원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01년 이후, 성직자가 없던 조선 천주교회의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명도회 (明道會)
명도회는 1797~1798년경, 주문모 신부가 서울에 설립한 천주교 평신도들의 교리 연구 및 전교 단체이다. 1791년, 구베아 주교가 북경에 세운 명도회를 본떠 설립했으며, 조직은 회장과 육회(六會)로 구성되어 있다. 『명도회규』라는 회규가 있었으며, 여성 회원과 지방 회원도 있었다. 1801년에 주문모 신부와 회장인 정약종 등 지도급 신자들이 순교하면서 타격을 입었지만, 1846년경까지 회원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01년 이후, 성직자가 없던 조선 천주교회의 유지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489년(성종 20) 1월에 일어난 무고사건(誣告事件).
김방의 고변 (金方의 告變)
1489년(성종 20) 1월에 일어난 무고사건(誣告事件).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덧널무덤·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고령 쾌빈리 유적 (高靈 快賓里 遺蹟)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덧널무덤·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조선 전기에, 한성부판사, 병조판서,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신인손 (辛引孫)
조선 전기에, 한성부판사, 병조판서,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굽다리접시는 삼국시대 제기의 일종으로 접시 혹은 사발에 다양한 형태의 긴 굽을 붙인 그릇이다. 원삼국시대에 칠기를 모방해서 흙으로 만든 두형토기가 출현한 이후,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서 유행하였다. 특히 가야와 신라에서는 무덤에 대량으로 부장하거나 지역이나 집단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가 제작 · 사용되었다.
굽다리 접시
굽다리접시는 삼국시대 제기의 일종으로 접시 혹은 사발에 다양한 형태의 긴 굽을 붙인 그릇이다. 원삼국시대에 칠기를 모방해서 흙으로 만든 두형토기가 출현한 이후,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에서 유행하였다. 특히 가야와 신라에서는 무덤에 대량으로 부장하거나 지역이나 집단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가 제작 · 사용되었다.
성가소비녀회는 1943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생제(Singer, 成載德) 신부에 의하여 창설된 여성 방인수도회(邦人修道會)이자 서울대교구 설립 수도회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돕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혜화동에 설립한 수녀회는 1968년 현재의 정릉동으로 이전되었으며, 1990년대에 체제와 사업을 대폭 쇄신했다. 2008년에 의정부관구와 인천관구를 설립했다. 국내와 해외에 파견되어 선교, 본당사목, 사회사업, 의료 사업, 유아 교육, 빈민 사목, 생태 환경, 교포 사목, 한글 학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성가소비녀회 (聖家小卑女會)
성가소비녀회는 1943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생제(Singer, 成載德) 신부에 의하여 창설된 여성 방인수도회(邦人修道會)이자 서울대교구 설립 수도회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돕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혜화동에 설립한 수녀회는 1968년 현재의 정릉동으로 이전되었으며, 1990년대에 체제와 사업을 대폭 쇄신했다. 2008년에 의정부관구와 인천관구를 설립했다. 국내와 해외에 파견되어 선교, 본당사목, 사회사업, 의료 사업, 유아 교육, 빈민 사목, 생태 환경, 교포 사목, 한글 학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 용산신학교는 1911년에 건립된 예수성심신학교 건물이다. 1885년 10원 28일에 강원도 원주 부엉골(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세워진 예수성심신학교가 1886년에 조불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이듬해인 1887년 3월, 서울의 용산(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19길 49-0)으로 이전한 후, 1911년에 이르러 학생 수가 증가하자 코스트(Eugene Coste, 1842∼1896) 신부가 설계, 감독하여 지어진 신학교 건물이다.
서울 용산신학교 (서울 龍山神學校)
서울 용산신학교는 1911년에 건립된 예수성심신학교 건물이다. 1885년 10원 28일에 강원도 원주 부엉골(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세워진 예수성심신학교가 1886년에 조불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이듬해인 1887년 3월, 서울의 용산(현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19길 49-0)으로 이전한 후, 1911년에 이르러 학생 수가 증가하자 코스트(Eugene Coste, 1842∼1896) 신부가 설계, 감독하여 지어진 신학교 건물이다.
조선전기 집현전저작랑, 직제학, 우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신석조 (辛碩祖)
조선전기 집현전저작랑, 직제학, 우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후기에, 대사간, 승정원승지,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종적 (李宗迪)
조선 후기에, 대사간, 승정원승지,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최양업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사제로 11년 6개월 동안 사목 활동을 한 신부이다.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부터 1842년까지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42년 마카오를 떠나 북만주 소팔가자에 머물렀고, 1844년 페레올 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1846년부터 몇 차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조선에 입국했다. 수년간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을 도맡아 하며 순교자 행적 조사, 교리서와 기도서 번역에 힘쓰다 1861년 6월에 사망했다.
최양업 (崔良業)
최양업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사제로 11년 6개월 동안 사목 활동을 한 신부이다.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부터 1842년까지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42년 마카오를 떠나 북만주 소팔가자에 머물렀고, 1844년 페레올 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1846년부터 몇 차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조선에 입국했다. 수년간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을 도맡아 하며 순교자 행적 조사, 교리서와 기도서 번역에 힘쓰다 1861년 6월에 사망했다.
1960년에 설립된 천주교 전문서적 출판사.
바오로딸 (Paulus딸)
1960년에 설립된 천주교 전문서적 출판사.
소신학교 교사인 유영근 신부가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모아 1941년에 저술한 전기.
수선탁덕 김대건 (首先鐸德 金大建)
소신학교 교사인 유영근 신부가 김대건 신부의 행적을 모아 1941년에 저술한 전기.
조선시대 나무로 만든 궁궐 출입증.
한부 (漢符)
조선시대 나무로 만든 궁궐 출입증.
『천당직로』는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모예 신부의 한문 서적을 편역하여 간행한 천주교 신심서이다. 프랑스어로 저술된 『은총론』을 한문으로 의역한 모예 신부의 책이 언제 조선에 전래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한문본 『천당직로』는 한글로 번역되었고, 블랑 주교의 감준 아래 1884년에 간행되었다. 이후 뮈텔 주교의 감준으로 1900년과 1915년에 다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서(序)와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은총과 마땅히 지켜야 할 교리와 신앙생활의 모범인 성덕을 제시하고 있다.
천당직로 (天堂直路)
『천당직로』는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모예 신부의 한문 서적을 편역하여 간행한 천주교 신심서이다. 프랑스어로 저술된 『은총론』을 한문으로 의역한 모예 신부의 책이 언제 조선에 전래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한문본 『천당직로』는 한글로 번역되었고, 블랑 주교의 감준 아래 1884년에 간행되었다. 이후 뮈텔 주교의 감준으로 1900년과 1915년에 다시 간행되었다. 이 책은 서(序)와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이 하느님 나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은총과 마땅히 지켜야 할 교리와 신앙생활의 모범인 성덕을 제시하고 있다.
권상하 초상은 조선 후기 문신 수암 권상하의 초상화이다. 권상하(1641-1721)는 노론계 송시열과 송준길의 학맥을 이은 제자이다. 초상화는 세로 132㎝, 가로 90.3㎝로 비단 바탕에 채색이다. 오른쪽으로 살짝 돌린 얼굴을 하고 있고, 바닥에 앉은 모습을 그린 전신상이다. 그림에는 권상하가 79세 되던 해에 김진여(1675∼1760)가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유학자가 입던 겉옷인 심의에 흰색 물결 모양의 문양을 새겨넣은 것은 다른 초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 기법이다. 2024년 국가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권상하 초상 (權尙夏 肖像)
권상하 초상은 조선 후기 문신 수암 권상하의 초상화이다. 권상하(1641-1721)는 노론계 송시열과 송준길의 학맥을 이은 제자이다. 초상화는 세로 132㎝, 가로 90.3㎝로 비단 바탕에 채색이다. 오른쪽으로 살짝 돌린 얼굴을 하고 있고, 바닥에 앉은 모습을 그린 전신상이다. 그림에는 권상하가 79세 되던 해에 김진여(1675∼1760)가 초상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유학자가 입던 겉옷인 심의에 흰색 물결 모양의 문양을 새겨넣은 것은 다른 초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표현 기법이다. 2024년 국가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혼수는 남녀 간 사회적 결합체인 가족을 영위함에 필요한 살림 물품이다. 혼수품이라고도 한다. 혼수 내용은 해당 사회의 생계 수단 및 생계 방법, 혼인 후의 주거 규정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적 가족제도 하에서는 여자가 시집의 구성원 속에 흡수된다. 이에 혼수는 여자가 시집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과 시집의 경제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혼수 관행은 현대사회까지 이어져 신부 쪽에서 혼수를 장만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살림살이가 기본적 혼수를 이루는 가운데 옷감의 비중은 줄고 가구나 가전제품이 중시되고 있다.
혼수 (婚需)
혼수는 남녀 간 사회적 결합체인 가족을 영위함에 필요한 살림 물품이다. 혼수품이라고도 한다. 혼수 내용은 해당 사회의 생계 수단 및 생계 방법, 혼인 후의 주거 규정에 따라 달라진다. 전통적 가족제도 하에서는 여자가 시집의 구성원 속에 흡수된다. 이에 혼수는 여자가 시집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과 시집의 경제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혼수 관행은 현대사회까지 이어져 신부 쪽에서 혼수를 장만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살림살이가 기본적 혼수를 이루는 가운데 옷감의 비중은 줄고 가구나 가전제품이 중시되고 있다.
1928년 9월 27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국의 광복운동 후원을 위해 결성된 여성단체.
영남부인회 (嶺南婦人會)
1928년 9월 27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조국의 광복운동 후원을 위해 결성된 여성단체.
현석문은 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이자 천주교 지도자이다. 서울에서 중인 출신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누나, 아내와 아들이 모두 순교했다. 1830년대 후반 선교 사제들이 조선에 입국하는 데 참여했다. 1839년 박해 이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 행적인 『기해일기』를 작성하였다. 1844년 말 김대건 부제의 입국과 1845년 프랑스인 선교 사제 입국 과정에 참여했다.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신자들과 함께 피신했으나 7월에 체포되었고, 9월 19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현석문 (玄錫文)
현석문은 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이자 천주교 지도자이다. 서울에서 중인 출신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누나, 아내와 아들이 모두 순교했다. 1830년대 후반 선교 사제들이 조선에 입국하는 데 참여했다. 1839년 박해 이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 행적인 『기해일기』를 작성하였다. 1844년 말 김대건 부제의 입국과 1845년 프랑스인 선교 사제 입국 과정에 참여했다.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신자들과 함께 피신했으나 7월에 체포되었고, 9월 19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