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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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校方市]에 있는 백제국왕과 우두천왕을 모신 사당.
백제왕 신사 (百濟王 神社)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히라카타시[校方市]에 있는 백제국왕과 우두천왕을 모신 사당.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었던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산신각. 무속신사.
감악산 신사 (紺岳山 神祠)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었던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산신각. 무속신사.
일본 나라현[奈良縣] 오우지정[王寺町]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계 이주민과 관련된 사당.
구도신사 (久度神社)
일본 나라현[奈良縣] 오우지정[王寺町]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계 이주민과 관련된 사당.
고래신사(高來神社)는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나카군[中郡] 오이소정[大磯町]에 있는 신사이다. 고려신사의 유래에 관해서는 고구려 이주민 약광(若光)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오이소의 고구려 이주민들이 세웠다는 설, 진쿠왕후가 삼한을 정벌한 이후 고구려의 신을 모셔와 세웠다는 설, 진무왕이 진쿠왕후와 그의 아들 오진왕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는 설 등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래신사 (高來神社)
고래신사(高來神社)는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나카군[中郡] 오이소정[大磯町]에 있는 신사이다. 고려신사의 유래에 관해서는 고구려 이주민 약광(若光)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오이소의 고구려 이주민들이 세웠다는 설, 진쿠왕후가 삼한을 정벌한 이후 고구려의 신을 모셔와 세웠다는 설, 진무왕이 진쿠왕후와 그의 아들 오진왕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는 설 등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신사(高麗神社)는 일본 사이타마현[埼玉縣] 히다카시[日高市]에 있는 고구려계 이주민이 세운 신사(神社)이다. 고구려 이주민의 수장이었던 약광(若光)을 비롯하여 천손이 강림할 때 길을 안내한 사루타히코노미코토[猿田彦命] 신인(神人), 그리고 삼한정벌의 전설이 있는 진쿠왕후[神功王后]가 신라로 출정할 때 영혼의 매개자적 역할을 한 중신인 다케우치노스쿠네[武內宿禰]를 제신(祭神)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사례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한일 문화 교류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고려신사 (高麗神社)
고려신사(高麗神社)는 일본 사이타마현[埼玉縣] 히다카시[日高市]에 있는 고구려계 이주민이 세운 신사(神社)이다. 고구려 이주민의 수장이었던 약광(若光)을 비롯하여 천손이 강림할 때 길을 안내한 사루타히코노미코토[猿田彦命] 신인(神人), 그리고 삼한정벌의 전설이 있는 진쿠왕후[神功王后]가 신라로 출정할 때 영혼의 매개자적 역할을 한 중신인 다케우치노스쿠네[武內宿禰]를 제신(祭神)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사례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한일 문화 교류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신라 신사란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난조군[南條郡] 미나미에치젠조[南越前町] 이마조[今庄]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관련 신을 모시는 신사(神社)이다. 주신(主神)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命]를 비롯한 오호아나무치노미코노[大已貴命] 이외에 4명의 신을 모시고 있다. 이 신사의 건립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과거에는 축산(燧山)에 있었으나 덴몬[天文] 연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1627년 영주인 마쓰다이라 다다마사[松平忠昌]에 의해 사전(社殿)이 재건되고, 1871년에는 시라히게 신사에 합병되나 1875년에는 다시 분리되었다.
신라 신사 (新羅 神社)
신라 신사란 일본 후쿠이현[福井縣] 난조군[南條郡] 미나미에치젠조[南越前町] 이마조[今庄]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관련 신을 모시는 신사(神社)이다. 주신(主神)인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命]를 비롯한 오호아나무치노미코노[大已貴命] 이외에 4명의 신을 모시고 있다. 이 신사의 건립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과거에는 축산(燧山)에 있었으나 덴몬[天文] 연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1627년 영주인 마쓰다이라 다다마사[松平忠昌]에 의해 사전(社殿)이 재건되고, 1871년에는 시라히게 신사에 합병되나 1875년에는 다시 분리되었다.
일본 사가현[佐賀縣] 사가시[佐賀市] 도진마치(唐人町)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조선인 이종환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神社).
당인신사 (唐人神社)
일본 사가현[佐賀縣] 사가시[佐賀市] 도진마치(唐人町)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조선인 이종환을 제신으로 모신 신사(神社).
신사참배거부운동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주로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신앙수호를 위한 항일운동이다. 일제는 자국 국민의 정신적 지배와 사상통일을 위한 신사참배를 식민지에도 강요하여 식민지의 민족혼까지 말살하려 했다. 1930년대에 대륙침략을 재개하면서 기독교계 사립학교에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하자 기독교계는 신사참배 강요금지 청원운동과 더불어 신사참배 거부권유 운동을 전개하여 맞서 싸웠다. 이 투쟁으로 투옥된 이가 2,000여 명에 이르고 200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만도 50여 명에 이르렀다.
신사참배 거부운동 (神社參拜 拒否運動)
신사참배거부운동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광복이 되기까지 주로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신앙수호를 위한 항일운동이다. 일제는 자국 국민의 정신적 지배와 사상통일을 위한 신사참배를 식민지에도 강요하여 식민지의 민족혼까지 말살하려 했다. 1930년대에 대륙침략을 재개하면서 기독교계 사립학교에까지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하자 기독교계는 신사참배 강요금지 청원운동과 더불어 신사참배 거부권유 운동을 전개하여 맞서 싸웠다. 이 투쟁으로 투옥된 이가 2,000여 명에 이르고 200여 교회가 폐쇄되었으며 순교자만도 50여 명에 이르렀다.
일본 니가타현[新瀉縣] 세키야마 신사[關山神社]에 있는 삼국시대의 금동보살입상.
관산신사 금동 보살 입상 (關山神社 金銅 菩薩 立像)
일본 니가타현[新瀉縣] 세키야마 신사[關山神社]에 있는 삼국시대의 금동보살입상.
조선 후기에 박이화(朴履和)가 지은 가사.
만고가 (萬古歌)
조선 후기에 박이화(朴履和)가 지은 가사.
조선후기 제25대 철종의 어진을 그린 화가.
김용원 (金鏞元)
조선후기 제25대 철종의 어진을 그린 화가.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고려신학교를 인정하지 않자 한상동 등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세웠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고려신학교를 인정하지 않자 한상동 등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세웠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독노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1967년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혁신복구파'로도 알려져 있다. 이 교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장로교의 신사참배 가결과 일본기독교단으로의 편입을 한국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고 교회의 혁신과 복구의 방편으로 독자적인 교단을 조직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독노회의 전통을 이어받아 1967년 출범한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혁신복구파'로도 알려져 있다. 이 교단은 일제강점기 조선장로교의 신사참배 가결과 일본기독교단으로의 편입을 한국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고 교회의 혁신과 복구의 방편으로 독자적인 교단을 조직하였다.
1480년(성종 11)박성건(朴成乾)이 지은 경기체가.
금성별곡 (錦城別曲)
1480년(성종 11)박성건(朴成乾)이 지은 경기체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전개한 개신교인.
박관준 (朴寬俊)
일제강점기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전개한 개신교인.
조선 후기의 문인, 조운종의 시·기·논·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면암유고 (勉庵遺稿)
조선 후기의 문인, 조운종의 시·기·논·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개신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목표로 성립한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이다. 로마가톨릭교회 및 동방정교회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전통을 이루고 있는 개신교는 교회 전통보다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교회 전통과 구별된다. 19세기 후반 시작된 한국 개신교는 초기부터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을 병행하면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나 이웃 종교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는가 하면 냉전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시민 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개신교 (改新敎)
개신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목표로 성립한 기독교의 다양한 교파이다. 로마가톨릭교회 및 동방정교회와 함께 기독교의 3대 전통을 이루고 있는 개신교는 교회 전통보다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교회 전통과 구별된다. 19세기 후반 시작된 한국 개신교는 초기부터 복음 전파만이 아니라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사회복지사업을 병행하면서 한국 사회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전통문화나 이웃 종교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는가 하면 냉전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시민 사회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관련된 개신교인. 전도사.
박의흠 (朴義欽)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과 관련된 개신교인. 전도사.
김환기는 「향(響)」, 「월광」, 「영원의 노래」, 「산월」, 「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수화이다. 일본 니혼대학 재학 시절인 1934년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를 만들고 추상 미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백만회를 조직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새로운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 위원과 대한미술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김환기는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구현했다.
김환기 (金煥基)
김환기는 「향(響)」, 「월광」, 「영원의 노래」, 「산월」, 「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수화이다. 일본 니혼대학 재학 시절인 1934년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를 만들고 추상 미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백만회를 조직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새로운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 위원과 대한미술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김환기는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구현했다.
김길창은 일제강점기,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및 조선교단 경남 교구장으로서 적극적으로 부일협력 활동을 한 장로교 목사이다. 해방 후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실업여학교의 재산을 인수하고, 대규모의 적산(敵産) 땅을 불하받아 학교법인 남성·훈성·대동·한성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한국기독교연합회 회장과 부산신학교 교장, 이사장도 역임했다.
김길창 (金吉昌)
김길창은 일제강점기,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및 조선교단 경남 교구장으로서 적극적으로 부일협력 활동을 한 장로교 목사이다. 해방 후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실업여학교의 재산을 인수하고, 대규모의 적산(敵産) 땅을 불하받아 학교법인 남성·훈성·대동·한성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한국기독교연합회 회장과 부산신학교 교장, 이사장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