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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4년 완성된 『세종장헌대왕실록』에 부록으로 수록된 지리서.
세종실록지리지 (世宗實錄地理志)
1454년 완성된 『세종장헌대왕실록』에 부록으로 수록된 지리서.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고려실록 (高麗實錄)
고려실록은 고려시대에 편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매년 각 관청에서 기록하던 일록(日錄)과 국왕의 언행과 신하들의 견문 기록인 사고(史藁), 문집 등을 자료로 편찬되었으며, 국왕의 사망 직후에 전문 편수관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다.
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사고 (史庫)
사고는 고려·조선시대에 역대 실록 등 중요 기록을 보관하던 시설이다. 조선 초기에는 내사고와 충주 외사고에서 실록을 보관하였으며, 이후 성주와 전주 사고가 증설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 사고본만 병화를 면하여 보존될 수 있었고, 이후 이를 저본으로 새롭게 제작한 실록 3부를 원본, 교정본과 함께 춘추관·강화부·묘향산·태백산·오대산에 분산 보관하였다. 이괄의 난으로 춘추관 실록이 소실된 이후 정족산·태백산·적상산·오대산에 실록을 분장하였으나,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상당수 훼손되었다. 현재는 규장각,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되어 있다.
고려후기 동수국사, 판이부사, 수태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최세보 (崔世輔)
고려후기 동수국사, 판이부사, 수태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칠대실록(七代實錄)』은 고려 전기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7대에 걸친 역사 기록이다. 원래 실록이 있었으나 현종 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다시 편찬하였는데, 이를 『칠대사적(七代事跡)』이라 하였다. 편찬에 참여한 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황주량(黃周亮)에 의해 주도되어 황주량의 저서처럼 되어 있다.
칠대실록 (七代實錄)
『칠대실록(七代實錄)』은 고려 전기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7대에 걸친 역사 기록이다. 원래 실록이 있었으나 현종 대 거란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다시 편찬하였는데, 이를 『칠대사적(七代事跡)』이라 하였다. 편찬에 참여한 자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면서 황주량(黃周亮)에 의해 주도되어 황주량의 저서처럼 되어 있다.
조선시대 국책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실록의 편찬이 완성되면, 사관의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사용되었던 편찬 자료들을 물에 세척하는 것을 말한다. 세초를 시행한 이유는 사초의 비밀을 유지하고 재생 종이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세초 (洗草)
조선시대 국책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실록의 편찬이 완성되면, 사관의 사초(史草)를 비롯하여 사용되었던 편찬 자료들을 물에 세척하는 것을 말한다. 세초를 시행한 이유는 사초의 비밀을 유지하고 재생 종이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실록청 (實錄廳)
실록 편찬을 위해 설치한 춘추관의 임시 관청이다. 선왕에 대한 졸곡이 끝나면 춘추관에서 전원 겸직으로 관원을 임명하였으며, 도청 및 3방의 당상과 낭청이 있어 사초,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산절, 초고 작성, 간행을 맡았고, 완성된 뒤 세초와 봉안으로 임무를 마쳤다.
편년체는 기전체 및 기사 본말체와 더불어 동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된 역사 편찬의 체재 중 하나이다. 이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하기 전까지 널리 활용되었으며, 연월일 날짜순에 따라 사건을 기록하는 연대기 형식으로 역사를 정리하는 편찬 체재이다.
편년체 (編年體)
편년체는 기전체 및 기사 본말체와 더불어 동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된 역사 편찬의 체재 중 하나이다. 이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하기 전까지 널리 활용되었으며, 연월일 날짜순에 따라 사건을 기록하는 연대기 형식으로 역사를 정리하는 편찬 체재이다.
조선시대 춘추관에서 각 관서들의 기록을 모은 파일로, 예문관 전임 사관이 관리한 기록물이다. 시정기 편찬의 시작은 1434년(세종16) 11월로, 관청에서 보고한 문서, 국정 운영과 제도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연월일 순으로 편집·정리하고, 송나라의 고사에 따라 ‘시정기’라고 명명하도록 하였다. 시정기는 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 자료로 사용되었다.
시정기 (時政記)
조선시대 춘추관에서 각 관서들의 기록을 모은 파일로, 예문관 전임 사관이 관리한 기록물이다. 시정기 편찬의 시작은 1434년(세종16) 11월로, 관청에서 보고한 문서, 국정 운영과 제도에 관한 기록들을 모아 연월일 순으로 편집·정리하고, 송나라의 고사에 따라 ‘시정기’라고 명명하도록 하였다. 시정기는 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 자료로 사용되었다.
고려 후기에, 광정대부, 첨의중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유경 (柳璥)
고려 후기에, 광정대부, 첨의중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실록 (實錄)
중국 당나라 초기 관료제의 발달로 양산된 국정 기록을 정리하는 데서 출발했으며, 사관(史官)이 당대 조정의 정치 활동을 비롯하여 경제, 사회, 풍속, 문화 등을 기록으로 남긴 사초에 근거하여 각 관청의 기록을 모아 실록청에서 국왕의 재위 단위로 편찬한 당대사 역사 편찬물이다.
오대산사고는 조선 후기 실록과 같은 국가 기록물을 보관 · 관리하던 외사고(外史庫)의 하나이다. 임진왜란 직후 새롭게 제작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1606년(선조 39) 오대산 월정사 부근에 설치되었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1913년 동경 제국 대학 도서관으로 반출되어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대부분 소실되었다. 화를 면한 실록 가운데 27책은 1932년 경성제국대학에 이관되었다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이어졌다. 2006년, 2018년 추가로 반환이 이루어져 현재 총 75책의 오대산사고본 실록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오대산사고 (五臺山史庫)
오대산사고는 조선 후기 실록과 같은 국가 기록물을 보관 · 관리하던 외사고(外史庫)의 하나이다. 임진왜란 직후 새롭게 제작한 실록을 보관하기 위해 1606년(선조 39) 오대산 월정사 부근에 설치되었다. 오대산사고본 실록은 1913년 동경 제국 대학 도서관으로 반출되어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대부분 소실되었다. 화를 면한 실록 가운데 27책은 1932년 경성제국대학에 이관되었다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으로 이어졌다. 2006년, 2018년 추가로 반환이 이루어져 현재 총 75책의 오대산사고본 실록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고려 후기에, 감수국사, 문하시중,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
이장용 (李藏用)
고려 후기에, 감수국사, 문하시중,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추밀원부사 우산기상시,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
유승단 (兪升旦)
고려 후기에, 추밀원부사 우산기상시,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선조실록』은 1567년(선조 즉위) 7월부터 1608년(선조 41) 1월까지 선조 재위 40년 7개월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221권 116책으로 된 인본(印本)으로, 1609년(광해군 1) 7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617년(광해군 9)에 편찬을 마쳤다. 처음에는 이항복(李恒福)이 총재관(摠裁官)으로 편찬했고, 계축옥사 전후로 이이첨(李爾瞻), 기자헌(奇自獻)이 편찬을 주관하였는데, 사론에 왜곡이 많아 후일 실록이 수정되었다.
선조실록 (宣祖實錄)
『선조실록』은 1567년(선조 즉위) 7월부터 1608년(선조 41) 1월까지 선조 재위 40년 7개월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이다. 221권 116책으로 된 인본(印本)으로, 1609년(광해군 1) 7월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617년(광해군 9)에 편찬을 마쳤다. 처음에는 이항복(李恒福)이 총재관(摠裁官)으로 편찬했고, 계축옥사 전후로 이이첨(李爾瞻), 기자헌(奇自獻)이 편찬을 주관하였는데, 사론에 왜곡이 많아 후일 실록이 수정되었다.
영조실록은 1778년(정조 2)에서 1781년(정조 5) 사이에 편찬한, 영조 재위 52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127권 83책의 활자본이다. 1889년(고종 26)에 ‘영종’의 묘호(廟號)를 ‘영조’로 추존했기 때문에 ‘영조실록’이라 통칭하고 있다.
영조실록 (英祖實錄)
영조실록은 1778년(정조 2)에서 1781년(정조 5) 사이에 편찬한, 영조 재위 52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실록이다. 127권 83책의 활자본이다. 1889년(고종 26)에 ‘영종’의 묘호(廟號)를 ‘영조’로 추존했기 때문에 ‘영조실록’이라 통칭하고 있다.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1455년(세조 즉위) 윤6월 11일부터 1468년(세조 14) 11월 28일까지 세조 재위 약 14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세조실록 (世祖實錄)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1455년(세조 즉위) 윤6월 11일부터 1468년(세조 14) 11월 28일까지 세조 재위 약 14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성주사고는 조선 전기에 실록과 같은, 국가 중요 사적을 보관 · 관리하던 외사고의 하나이다. 이 사고는 1439년(세종 21) 7월 춘추관이 올린 외사고 확충 계획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춘추관 내사고와 함께 외사고인 충주 · 전주 · 성주의 사고가 정비되어 4사고 체계가 성립되었다. 성주사고는 1538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보관하고 있던 실록과 함께 파괴 · 소실되었다. 전란 이후 외사고가 산간의 오지나 도서 지역으로 이설됨에 따라 성주사고를 비롯한 조선 전기의 사고는 모두 복구되지 못하였다.
성주사고 (星州史庫)
성주사고는 조선 전기에 실록과 같은, 국가 중요 사적을 보관 · 관리하던 외사고의 하나이다. 이 사고는 1439년(세종 21) 7월 춘추관이 올린 외사고 확충 계획에 따라 설치되었으며, 춘추관 내사고와 함께 외사고인 충주 · 전주 · 성주의 사고가 정비되어 4사고 체계가 성립되었다. 성주사고는 1538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구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보관하고 있던 실록과 함께 파괴 · 소실되었다. 전란 이후 외사고가 산간의 오지나 도서 지역으로 이설됨에 따라 성주사고를 비롯한 조선 전기의 사고는 모두 복구되지 못하였다.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이다. 1401년(태종 1) 1월 1일부터 1418년(태종 18) 8월 8일까지 태종의 재위 18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태종실록 (太宗實錄)
조선 전기, 제3대 왕 태종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태종공정대왕실록(太宗恭定大王實錄)’이다. 1401년(태종 1) 1월 1일부터 1418년(태종 18) 8월 8일까지 태종의 재위 18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숙종실록은 1720년(경종 즉위년)부터 1728년(영조 4)에 편찬한 숙종 재위 기간의 국정과 사회, 문화를 기록한 실록이다. 편찬 과정에서 신임사화(辛壬士禍), 경종의 죽음과 영조 즉위, 정미처분 등의 사건으로 편찬이 지연되었다.
숙종실록 (肅宗實錄)
숙종실록은 1720년(경종 즉위년)부터 1728년(영조 4)에 편찬한 숙종 재위 기간의 국정과 사회, 문화를 기록한 실록이다. 편찬 과정에서 신임사화(辛壬士禍), 경종의 죽음과 영조 즉위, 정미처분 등의 사건으로 편찬이 지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