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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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탄전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일대에 걸쳐 있는 무연탄전이다. 영월 지역의 여러 탄광을 포함하는 용어로, 대한석탄공사 영월광업소를 비롯하여 민영 탄광인 옥동·한일·동우·대성·태원·대림 등 크고 작은 탄광 모두를 포함한다. 영월탄전은 1929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사되었으며, 1935년 강원도 최초로 개광한 영월광업소가 대표적이다. 영월탄전의 매장량은 다른 탄전에 비해 매우 적지만, 상징성은 작지 않다. 영월광업소의 석탄은 삭도를 통해 공중으로 영월화력발전소까지 직송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전기 공급이 원활하였다.
영월 탄전 (寧越炭田)
영월탄전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일대에 걸쳐 있는 무연탄전이다. 영월 지역의 여러 탄광을 포함하는 용어로, 대한석탄공사 영월광업소를 비롯하여 민영 탄광인 옥동·한일·동우·대성·태원·대림 등 크고 작은 탄광 모두를 포함한다. 영월탄전은 1929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사되었으며, 1935년 강원도 최초로 개광한 영월광업소가 대표적이다. 영월탄전의 매장량은 다른 탄전에 비해 매우 적지만, 상징성은 작지 않다. 영월광업소의 석탄은 삭도를 통해 공중으로 영월화력발전소까지 직송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전기 공급이 원활하였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 11리에 위치한 공립중학교.
영월중학교 (寧越中學校)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 11리에 위치한 공립중학교.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영월초등학교 (寧越初等學校)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에 있는 명승.
영월 어라연 일원 (寧越 魚羅淵 一圓)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에 있는 명승.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에 위치한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영월 문곡리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 (寧越 文谷里 乾裂構造 및 stromatolite)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북면 문곡리에 위치한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영월부 관아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시대 영월부 치소에 건축된 관아이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1456년(세조 2)에는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이 홍수가 나자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기도 하였다. 단종이 기거하던 관풍헌은 객사의 동익헌에 해당하며, 단종의 승하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가 18세기 말 정조에 의해 중수되었다. 현재는 객사 건물 3동과 자규루만 남아 있다.
영월부 관아 (寧越府 官衙)
영월부 관아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있는 조선시대 영월부 치소에 건축된 관아이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며, 1456년(세조 2)에는 청령포에 머물던 단종이 홍수가 나자 이곳으로 옮겨 거쳐하기도 하였다. 단종이 기거하던 관풍헌은 객사의 동익헌에 해당하며, 단종의 승하 이후 폐허로 방치되다가 18세기 말 정조에 의해 중수되었다. 현재는 객사 건물 3동과 자규루만 남아 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보래산 아래쪽에 있는 조선전기 김복항이 세웠다고 전하는 팔작지붕 형태의 누정. 정자.
금강정 (錦江停)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보래산 아래쪽에 있는 조선전기 김복항이 세웠다고 전하는 팔작지붕 형태의 누정. 정자.
고려 충렬왕 때, 영월에서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
강윤명 (康允明)
고려 충렬왕 때, 영월에서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
『단종애사』는 이광수가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총 217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1930년 회동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단종애사』는 애사의 단종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이다. 단종과 수양이라는 대립적 인물 구도를 축으로 왕조적 적통성을 지닌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다. 작가는 단종의 비참한 운명이 인정과 의리의 면에서 조선인의 장처와 단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종애사 (端宗哀史)
『단종애사』는 이광수가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총 217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1930년 회동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단종애사』는 애사의 단종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이다. 단종과 수양이라는 대립적 인물 구도를 축으로 왕조적 적통성을 지닌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다. 작가는 단종의 비참한 운명이 인정과 의리의 면에서 조선인의 장처와 단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조선후기 영월과 시영이 창건한 암자. 김룡사.
운달산 대성암 (雲達山 大成庵)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조선후기 영월과 시영이 창건한 암자. 김룡사.
조선후기 청룡사 영월의 제자로 성전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상민 (詳玟)
조선후기 청룡사 영월의 제자로 성전의 법맥을 계승한 승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모전길(영흥10리)에 있는 산업수요 맞춤형 특수목적고등학교.
한국소방마이스터고등학교 (韓國消防Meister高等學校)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모전길(영흥10리)에 있는 산업수요 맞춤형 특수목적고등학교.
충청북도 단양 지역의 옛 지명.
영춘 (永春)
충청북도 단양 지역의 옛 지명.
엄수안은 고려 후기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 중랑장(中郎將),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영월의 향리 출신으로 중앙 관직에 나아간 인물이다. 무신정권(武臣政權) 말기에 집정자 김준이 남쪽의 먼 섬으로 재천도하면서 몽골과의 정면 대결을 불사하려고 하였을 때 이를 저지하였으며, 진도 삼별초(三別抄)에 호응하여 밀성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였다. 남경, 서경 등 외직으로 복무하였는데, 지방관으로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엄수안 (嚴守安)
엄수안은 고려 후기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 중랑장(中郎將),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영월의 향리 출신으로 중앙 관직에 나아간 인물이다. 무신정권(武臣政權) 말기에 집정자 김준이 남쪽의 먼 섬으로 재천도하면서 몽골과의 정면 대결을 불사하려고 하였을 때 이를 저지하였으며, 진도 삼별초(三別抄)에 호응하여 밀성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였다. 남경, 서경 등 외직으로 복무하였는데, 지방관으로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후기 『야운대선사문집』을 저술한 승려.
시성 (時聖)
조선후기 『야운대선사문집』을 저술한 승려.
북한 강원도 통천군 벽양면(碧養面)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바로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와룡이 창건한 사찰.
금강산 은적사 (金剛山 隱蹟寺)
북한 강원도 통천군 벽양면(碧養面) 금강산(金剛山)에 있는 바로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와룡이 창건한 사찰.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이 지은 시 32편을 후손 조정만이 간행한 시집.
옥봉집 (玉峰集)
조선시대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이 지은 시 32편을 후손 조정만이 간행한 시집.
고려후기 수충보절동덕좌리공신에 책록된 공신. 환관.
이신 (李信)
고려후기 수충보절동덕좌리공신에 책록된 공신. 환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신천리와 옹정리의 주천천 합류부에 위치한 하천습지.
한반도 습지 (韓半島 濕地)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신천리와 옹정리의 주천천 합류부에 위치한 하천습지.
배식단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조선 후기 장릉(莊陵)에 충절을 바친 신하들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제단이다. 숙종 대에 단종이 복위되고 영조는 단종 관련 사적을 정비하고 현창 대상을 확대시켰다. 영조의 사업을 계승한 정조는 『어정배식록』을 편찬하였다. 또한 제단 제도를 정비하여 정단에 32인을 배식하고 별단에 198인을 배식하였다. 32인이 배식된 제단의 사판(祠版)은 하나로 만들어 ‘충신지위(忠臣之位)’라고 썼고, 별단은 사판 3개를 만들어 계유년(1453)·병자년(1456)·정축년(1457)에 죽은 사람들을 각각 쓰도록 하였다.
배식단 (配食壇)
배식단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조선 후기 장릉(莊陵)에 충절을 바친 신하들을 기리기 위해 설치한 제단이다. 숙종 대에 단종이 복위되고 영조는 단종 관련 사적을 정비하고 현창 대상을 확대시켰다. 영조의 사업을 계승한 정조는 『어정배식록』을 편찬하였다. 또한 제단 제도를 정비하여 정단에 32인을 배식하고 별단에 198인을 배식하였다. 32인이 배식된 제단의 사판(祠版)은 하나로 만들어 ‘충신지위(忠臣之位)’라고 썼고, 별단은 사판 3개를 만들어 계유년(1453)·병자년(1456)·정축년(1457)에 죽은 사람들을 각각 쓰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