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왜구"
검색결과 총 77건
공민왕은 고려 후기 제31대(재위: 1351~1374) 국왕이다. 1351년(충정왕 3)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공민왕 23)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하였다. 공민왕의 재위 기간은 원나라 간섭이 계속되는 가운데 명나라가 건국되어 원명 교체의 시기였다. 국내적으로는 왜구의 잦은 침탈과 홍건적 침입으로 토지가 황폐되고 인명 손실이 커서 민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공민왕은 이 같은 국내외 정세 속에서 여러 차례 개혁 정치를 추진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공민왕 (恭愍王)
공민왕은 고려 후기 제31대(재위: 1351~1374) 국왕이다. 1351년(충정왕 3)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공민왕 23)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하였다. 공민왕의 재위 기간은 원나라 간섭이 계속되는 가운데 명나라가 건국되어 원명 교체의 시기였다. 국내적으로는 왜구의 잦은 침탈과 홍건적 침입으로 토지가 황폐되고 인명 손실이 커서 민생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공민왕은 이 같은 국내외 정세 속에서 여러 차례 개혁 정치를 추진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민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대마도 정벌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왜구를 근절하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한 일이다.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였는데, 대마도는 그들의 근거지였다. 이에 고려, 조선 정부는 1389년(창왕 1), 1396년(태조 5)과 1419년(세종 1) 등 세 차례에 걸쳐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특히 세 번째 정벌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대규모 전투가 이루어졌다. 정벌 이후 대마도는 조선과 통교하고자 하는 일본 측 세력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왜구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대마도 정벌 (對馬島 征伐)
대마도 정벌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왜구를 근절하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한 일이다.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였는데, 대마도는 그들의 근거지였다. 이에 고려, 조선 정부는 1389년(창왕 1), 1396년(태조 5)과 1419년(세종 1) 등 세 차례에 걸쳐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특히 세 번째 정벌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대규모 전투가 이루어졌다. 정벌 이후 대마도는 조선과 통교하고자 하는 일본 측 세력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왜구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고려 후기에, 김해부사, 경상도도순문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박위 (朴葳)
고려 후기에, 김해부사, 경상도도순문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왜구 (倭寇)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까지 우리 나라와 중국 해안에서 약탈을 하던 일본의 해적이다. 일본 정국의 불안정으로 남부 지방 일부 세력이 해적화하고, 동아시아의 정세혼란으로 왜구퇴치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왜구의 약탈은 구조적으로 고착되어 갔다. 한반도의 해안지대만이 아니라 내륙에까지 침범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막대해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속적인 왜구소탕 작업, 고려와 조선의 쓰시마 정벌에도 불구하고 왜구 침입은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되었다.
황산대첩은 1380년(우왕 6) 9월 이성계 등이 전라도 지리산 부근 황산(荒山)에서 왜구에게 크게 이긴 전투이다. 1380년 8월에 상륙한 왜구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일대를 약탈한 후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집결하였는데, 이들을 추격한 고려군과 새로 증원된 이성계 휘하의 군사들이 이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전투로 왜구의 세력은 약화되고, 고려의 왜구대책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황산대첩 (荒山大捷)
황산대첩은 1380년(우왕 6) 9월 이성계 등이 전라도 지리산 부근 황산(荒山)에서 왜구에게 크게 이긴 전투이다. 1380년 8월에 상륙한 왜구는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일대를 약탈한 후 전라북도 남원 일대에 집결하였는데, 이들을 추격한 고려군과 새로 증원된 이성계 휘하의 군사들이 이들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 전투로 왜구의 세력은 약화되고, 고려의 왜구대책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고려후기 문하평리,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정지 (鄭地)
고려후기 문하평리, 양광전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홍산대첩은 1376년(우왕 2) 7월 최영(崔塋)이 홍산(鴻山,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 당시 왜구는 금강(錦江)을 따라 부여(扶餘), 공주(公州), 논산(論山) 일대 등 내륙 지역까지 약탈하고 있었는데, 이 전투로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이 싸움은 고려가 왜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전투로 손꼽힌다. 이 승리로 최영은 왜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홍산대첩 (鴻山大捷)
홍산대첩은 1376년(우왕 2) 7월 최영(崔塋)이 홍산(鴻山,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친 전투이다. 당시 왜구는 금강(錦江)을 따라 부여(扶餘), 공주(公州), 논산(論山) 일대 등 내륙 지역까지 약탈하고 있었는데, 이 전투로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이 싸움은 고려가 왜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전투로 손꼽힌다. 이 승리로 최영은 왜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려 말기에 군공(軍功)을 포상하기 위해 설치된 실직없는 관직.
첨설직 (添設職)
고려 말기에 군공(軍功)을 포상하기 위해 설치된 실직없는 관직.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변안열 (邊安烈)
고려후기 도순찰사, 판삼사사, 영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1383년(우왕 9) 남해현(南海縣) 북방의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전투.
관음포전투 (觀音浦戰鬪)
1383년(우왕 9) 남해현(南海縣) 북방의 관음포 앞바다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전투.
이춘부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 도첨의시중을 역임한 문신이다. 충정왕 때 우대언·밀직부사 등을 지내고, 공민왕 때에는 지추밀원사·판추밀원사·도첨의찬성사 등을 거쳐, 1368년(공민왕 17) 수상직인 도첨의시중에 올랐다. 두 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홍건적 침입 때는 안동으로 피란하는 왕을 호종하고 군사를 징발하여 전투를 지휘하였다. 신돈 집권기에 그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다가 신돈 실각과 함께 처형되었다.
이춘부 (李春富)
이춘부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 도첨의시중을 역임한 문신이다. 충정왕 때 우대언·밀직부사 등을 지내고, 공민왕 때에는 지추밀원사·판추밀원사·도첨의찬성사 등을 거쳐, 1368년(공민왕 17) 수상직인 도첨의시중에 올랐다. 두 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홍건적 침입 때는 안동으로 피란하는 왕을 호종하고 군사를 징발하여 전투를 지휘하였다. 신돈 집권기에 그 지지 세력으로 활동하다가 신돈 실각과 함께 처형되었다.
최영장군묘(崔瑩將軍墓)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산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최영의 무덤이다.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고 참형을 당한 뒤 아버지 최원직의 무덤 앞에 묻혔다. 오랫동안 봉분 위에 풀이 돋지 않아 적분(赤墳)이라 불린 최영장군묘는 후대에 정비되었으나 고려시대 방형분의 모습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도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최영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최영 장군 묘 (崔瑩 將軍 墓)
최영장군묘(崔瑩將軍墓)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산에 있는 고려 후기 무신 최영의 무덤이다. 위화도 회군으로 실각하고 참형을 당한 뒤 아버지 최원직의 무덤 앞에 묻혔다. 오랫동안 봉분 위에 풀이 돋지 않아 적분(赤墳)이라 불린 최영장군묘는 후대에 정비되었으나 고려시대 방형분의 모습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도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최영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강릉도부원수, 판덕창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권현룡 (權玄龍)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강릉도부원수, 판덕창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설치되었던 지방군.
연호군 (煙戶軍)
고려 후기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설치되었던 지방군.
포항 장기읍성(浦項 長鬐邑城)은 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세종 21년(1439)에 석축으로 개축한 읍성이다. 본래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축조하여 장기 지역의 치소성으로 사용하였으나 잦은 동여진 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조선 개국 후 석축성으로 개축하였다. 성의 둘레는 3,664척, 높이 12척이다. 샘이 두 곳, 못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며, 군창도 있었다고 전한다. 1991년 이후 6차례 이상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체성과 옹성문지, 수구 등에 대한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포항 장기읍성 (浦項 長鬐邑城)
포항 장기읍성(浦項 長鬐邑城)은 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세종 21년(1439)에 석축으로 개축한 읍성이다. 본래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축조하여 장기 지역의 치소성으로 사용하였으나 잦은 동여진 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조선 개국 후 석축성으로 개축하였다. 성의 둘레는 3,664척, 높이 12척이다. 샘이 두 곳, 못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며, 군창도 있었다고 전한다. 1991년 이후 6차례 이상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체성과 옹성문지, 수구 등에 대한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조선전기 참찬문하, 연해등처병선조전절제사 등을 역임한 장수.
나세 (羅世)
조선전기 참찬문하, 연해등처병선조전절제사 등을 역임한 장수.
고려 후기에, 양광,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곽선 (郭璇)
고려 후기에, 양광, 전라도체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예부시랑, 중서령, 세자이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익 (朴翊)
고려 후기에, 예부시랑, 중서령, 세자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의 외관직.
절제사 (節制使)
고려후기의 외관직.
고려 후기에, 동북면도순토사, 문하찬성사, 서강도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황상 (黃裳)
고려 후기에, 동북면도순토사, 문하찬성사, 서강도원수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