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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선사시대 (先史時代)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문벌 (門閥)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조선후기 제26대 고종 연간에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라고 내린 명령.
서원훼철령 (書院毁撤令)
조선후기 제26대 고종 연간에 전국의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하라고 내린 명령.
해원은 몽골 황제인 무제의 원찰인 숭은복원사 주지를 지낸 유가종 승려이다. 유가종은 무신정권기에 침체되었으나, 원 간섭기에 몽골제국의 요청에 따라 사경승을 파견하고 유가종의 학승들이 활약하면서 다시 부각되었다. 해원은 원 간섭기의 대표적인 유가종 승려로 만년에 대도의 대숭은복원사 주지로 머물렀다.
해원 (海圓)
해원은 몽골 황제인 무제의 원찰인 숭은복원사 주지를 지낸 유가종 승려이다. 유가종은 무신정권기에 침체되었으나, 원 간섭기에 몽골제국의 요청에 따라 사경승을 파견하고 유가종의 학승들이 활약하면서 다시 부각되었다. 해원은 원 간섭기의 대표적인 유가종 승려로 만년에 대도의 대숭은복원사 주지로 머물렀다.
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달구벌 천도 계획 (達句伐 遷都 計劃)
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고용보는 고려 후기 원나라 황실에서 활동한 고려 출신 환관이다. 원나라에서 휘정원사(徽政院使)로 활동했던 고려 출신 환관 정투멘데르[鄭禿透滿迭兒]와는 다른 사람이다. 충혜왕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진 후 기황후 세력으로 활동하였으며, 1343년(충혜왕 복위 4) 11월 충혜왕을 체포하여 원나라로 압송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의 난 때 피신하여 죽음을 면하고 해인사에 숨어 지내다가 1362년 공민왕이 보낸 어사중승 정지상에게 주살되었다.
고용보 (高龍普)
고용보는 고려 후기 원나라 황실에서 활동한 고려 출신 환관이다. 원나라에서 휘정원사(徽政院使)로 활동했던 고려 출신 환관 정투멘데르[鄭禿透滿迭兒]와는 다른 사람이다. 충혜왕 때 삼중대광(三重大匡)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진 후 기황후 세력으로 활동하였으며, 1343년(충혜왕 복위 4) 11월 충혜왕을 체포하여 원나라로 압송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의 난 때 피신하여 죽음을 면하고 해인사에 숨어 지내다가 1362년 공민왕이 보낸 어사중승 정지상에게 주살되었다.
이공수는 고려 후기에, 판밀직사사, 정당문학, 삼사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08년에 태어나 1366년에 사망했다. 1340년에 과거에 급제해 전의주부·성균관직강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성절사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을 따라 남행하였다. 1363년 원나라에서 덕흥군을 옹립하자 공민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오히려 통역관 이득춘의 모함으로 파직되었다가 무고로 밝혀져 공신에 책봉되었다. 공민왕이 복위된 후 귀국하였으나 신돈이 시기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남촌선생이라 자칭하며 여생을 보냈다.
이공수 (李公遂)
이공수는 고려 후기에, 판밀직사사, 정당문학, 삼사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08년에 태어나 1366년에 사망했다. 1340년에 과거에 급제해 전의주부·성균관직강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성절사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을 따라 남행하였다. 1363년 원나라에서 덕흥군을 옹립하자 공민왕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오히려 통역관 이득춘의 모함으로 파직되었다가 무고로 밝혀져 공신에 책봉되었다. 공민왕이 복위된 후 귀국하였으나 신돈이 시기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남촌선생이라 자칭하며 여생을 보냈다.
지원보초는 1287년(충렬왕 13, 지원 24)에 원(元) 세조가 발행한 원나라의 지폐이다. 원 정부는 재정적 압박으로 기존에 발행하던 중통보초(中統寶鈔)의 발행량이 늘고 가치가 하락하자 새로운 지폐의 발행을 모색하였다. 1287년에는 남송(南宋) 정벌로 인해 재정 압박이 더욱 커지자 새로운 보초의 발행을 결정하였다.
지원보초 (至元寶鈔)
지원보초는 1287년(충렬왕 13, 지원 24)에 원(元) 세조가 발행한 원나라의 지폐이다. 원 정부는 재정적 압박으로 기존에 발행하던 중통보초(中統寶鈔)의 발행량이 늘고 가치가 하락하자 새로운 지폐의 발행을 모색하였다. 1287년에는 남송(南宋) 정벌로 인해 재정 압박이 더욱 커지자 새로운 보초의 발행을 결정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관음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입상.
익산 관음사 목조 보살 입상 (益山 觀音寺 木造 菩薩 立像)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관음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입상.
조선시대 필요한 근무일수가 되어야 자품(資品)이 올라가는 제도.
사만 (仕滿)
조선시대 필요한 근무일수가 되어야 자품(資品)이 올라가는 제도.
방신우는 고려 후기 몽골제국에서 태자첨사, 휘정원사, 저경사사 등을 역임한 고려 출신 환관이다.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 때에 주로 활동하였으며, 몽골 제국 내에서 7명의 황제를 섬기며 입성책동을 중지시키는 등 고려 정부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방신우 (方臣祐)
방신우는 고려 후기 몽골제국에서 태자첨사, 휘정원사, 저경사사 등을 역임한 고려 출신 환관이다. 고려 충선왕과 충숙왕 때에 주로 활동하였으며, 몽골 제국 내에서 7명의 황제를 섬기며 입성책동을 중지시키는 등 고려 정부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원고려기사』는 1917년에 간행된 고려와 몽골(원)에 관한 역사서이다. 청나라 말의 문정식이 『영락대전』 권4446과 『원사』 고려전 등을 참고하여 1900~1904년 사이에 엮은 책이다. 그가 1904년에 죽은 후 『신원사』를 지은 가소민, 나진옥 등을 거쳐 왕국유가 그 원고 간 산일될 것을 우려하여 1917년에 간행되었다. 1216~1301년 사이 고려-몽골 관계 기록을 서문, 본기, 부록의 셋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에서는 탐라 관계 기사를 다루고 있다.
원고려기사 (元高麗紀事)
『원고려기사』는 1917년에 간행된 고려와 몽골(원)에 관한 역사서이다. 청나라 말의 문정식이 『영락대전』 권4446과 『원사』 고려전 등을 참고하여 1900~1904년 사이에 엮은 책이다. 그가 1904년에 죽은 후 『신원사』를 지은 가소민, 나진옥 등을 거쳐 왕국유가 그 원고 간 산일될 것을 우려하여 1917년에 간행되었다. 1216~1301년 사이 고려-몽골 관계 기록을 서문, 본기, 부록의 셋으로 나누어 수록하고 있으며, 부록에서는 탐라 관계 기사를 다루고 있다.
원산시는 북한의 강원도 동해안 영흥만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1946년 9월 함경남도에서 강원도로 편입되었고, 현재 강원도 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314.4㎢이다. 2008년 현재 인구는 36만 3,127명이고, 행정구역은 45동 14리로 구성되어 있다.
원산시 (元山市)
원산시는 북한의 강원도 동해안 영흥만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1946년 9월 함경남도에서 강원도로 편입되었고, 현재 강원도 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314.4㎢이다. 2008년 현재 인구는 36만 3,127명이고, 행정구역은 45동 14리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