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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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윤증 (尹拯)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조선시대 문신·학자 김육이 『사문유취』를 기본으로 역대 고금의 서적을 참고하고 증감하여 편찬한 유서(類書).
유원총보 (類苑叢寶)
조선시대 문신·학자 김육이 『사문유취』를 기본으로 역대 고금의 서적을 참고하고 증감하여 편찬한 유서(類書).
패지는 조선시대 업무를 위임하며 작성해 준 문서이다. 조선시대에 주로 전답 등을 매매할 때 작성된 문서로 ‘패지’, ‘패자’, ‘배지’, ‘배자’, ‘ᄇᆡᄌᆞ’ 등으로 지칭되었다. 궁방에서 수세 등의 목적으로 발급한 도서패자, 관아에서 발급한 관패자, 서원이나 문중에서 발급한 패자 등 다양한 용도로 작성되었다. 위계상 고위에 있는 사람이나 기관이 하위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에 대한 이행을 지시할 때 작성하였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1500년대 이후에 작성된 300여 점의 패지가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사회상이나 법제도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패지 (牌旨)
패지는 조선시대 업무를 위임하며 작성해 준 문서이다. 조선시대에 주로 전답 등을 매매할 때 작성된 문서로 ‘패지’, ‘패자’, ‘배지’, ‘배자’, ‘ᄇᆡᄌᆞ’ 등으로 지칭되었다. 궁방에서 수세 등의 목적으로 발급한 도서패자, 관아에서 발급한 관패자, 서원이나 문중에서 발급한 패자 등 다양한 용도로 작성되었다. 위계상 고위에 있는 사람이나 기관이 하위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에 대한 이행을 지시할 때 작성하였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1500년대 이후에 작성된 300여 점의 패지가 남아 있으며 조선시대 사회상이나 법제도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언적과 아들 이전인 이 학문에 관해 나눈 내용을 기록한 문답서.
관서문답록 (關西問答錄)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언적과 아들 이전인 이 학문에 관해 나눈 내용을 기록한 문답서.
강양 요산정사에서 심재덕의 처 김씨부인 의 유서와 행실을 칭양한 글을 묶어 1909년에 간행한 언행록.
종용록 (從容錄)
강양 요산정사에서 심재덕의 처 김씨부인 의 유서와 행실을 칭양한 글을 묶어 1909년에 간행한 언행록.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경충사(景忠祠)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정기룡(鄭起龍)의 유품.
정기룡 장군 유품 (鄭起龍 將軍 遺品)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 있는 경충사(景忠祠)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정기룡(鄭起龍)의 유품.
조선시대 문신 이원익이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친필로 작성한 문서. 유언장.
이원익 유서 (李元翼 遺書)
조선시대 문신 이원익이 자손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친필로 작성한 문서. 유언장.
1916년 대종교 초대 교주 나철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국하며 남긴 대종교서. 묵서본.
순명삼조 (殉命三條)
1916년 대종교 초대 교주 나철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순국하며 남긴 대종교서. 묵서본.
주제를 33개 부문으로 나누고 관련 어구를 서적에서 발췌하여 수록한 유서(類書).
신편옥총 (新編玉叢)
주제를 33개 부문으로 나누고 관련 어구를 서적에서 발췌하여 수록한 유서(類書).
조선 중기의 문신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 포은 정몽주 등의 시를 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말년인 80세에서 87세(1626∼1633) 사이에 손자와 손녀를 위해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의 시문집에서 한시를 가려 뽑아 초서로 써서 남겼다. 포은의 시 9점과 야은 시 1점, 그리고 작자 미상의 시 3점 등 모두 1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3월 2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명문 사대부가의 가학 정신을 살필 수 있다.
광명 이원익 친필 유묵 (光明 李元翼 親筆 遺墨)
조선 중기의 문신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 포은 정몽주 등의 시를 초서로 쓴 서예 작품이다. 말년인 80세에서 87세(1626∼1633) 사이에 손자와 손녀를 위해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야은 길재(吉再, 1353∼1419)의 시문집에서 한시를 가려 뽑아 초서로 써서 남겼다. 포은의 시 9점과 야은 시 1점, 그리고 작자 미상의 시 3점 등 모두 1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3월 23일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명문 사대부가의 가학 정신을 살필 수 있다.
교서초는 1868년(고종 5) 이후 약 10년간 임금이 각 도의 감사(監司)와 유수(留守) 및 통제사(統制使)·경기수사(京畿水使)·총융사(摠戎使) 등에게 내린 36편의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초록(抄錄)한 책이다. 원문서와 다른 점은 지제교(知製敎)를 수록하고 연월일을 생략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는 교서와 유서를 문서로서의 기능보다는 수사법, 문장 형식에 관심을 두고 편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교서초 (敎書抄)
교서초는 1868년(고종 5) 이후 약 10년간 임금이 각 도의 감사(監司)와 유수(留守) 및 통제사(統制使)·경기수사(京畿水使)·총융사(摠戎使) 등에게 내린 36편의 교서(敎書)와 유서(諭書)를 초록(抄錄)한 책이다. 원문서와 다른 점은 지제교(知製敎)를 수록하고 연월일을 생략하고 있는 점이다. 여기서는 교서와 유서를 문서로서의 기능보다는 수사법, 문장 형식에 관심을 두고 편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전에 있는 문구를 초집하여 분류한 유서(類書).
예원신편 (藝苑新編)
고전에 있는 문구를 초집하여 분류한 유서(類書).
『정요비람』은 1893년 간찰서식집인 『간독정요』와 공문서식집인 『유서필지』의 주요 내용을 초록한 필사본이다. 본문은 간독정요초와 유서필지초략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발간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1893년으로 추정되며, 서식집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요비람 (精要備覽)
『정요비람』은 1893년 간찰서식집인 『간독정요』와 공문서식집인 『유서필지』의 주요 내용을 초록한 필사본이다. 본문은 간독정요초와 유서필지초략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발간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1893년으로 추정되며, 서식집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희원람』은 1803년 문인 장혼이 초학 아동들의 학습을 위하여 간행한 참고서이다. 장혼이 여러 문헌에서 초학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엮었다. 금속활자본인 정리자체 철활자본이 초간본으로 여겨지며, 금속활자본 및 목판본 등이 전국 각지에 현전한다.
아희원람 (兒戱原覽)
『아희원람』은 1803년 문인 장혼이 초학 아동들의 학습을 위하여 간행한 참고서이다. 장혼이 여러 문헌에서 초학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엮었다. 금속활자본인 정리자체 철활자본이 초간본으로 여겨지며, 금속활자본 및 목판본 등이 전국 각지에 현전한다.
『남계집』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세채의 시문집이다. 저자는 1689년 기사환국 이후 파주로 돌아온 뒤 수년 간 한거(閑居)하면서 자신의 시문을 산정해 놓았다. 이후 저자의 후손과 문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면서,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문집 간행을 둘러싸고 드났다. 그래서 문집은 결국 1732년에 이르러 조현명(趙顯命)에 의해 간행되었다. 본집은 정집 87권, 외집 16권, 속집 22권 합 56책이다. 맨 앞에 정집의 목록 2권 1책이 상·하로 실려 있다. 서문은 없다.
남계집 (南溪集)
『남계집』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박세채의 시문집이다. 저자는 1689년 기사환국 이후 파주로 돌아온 뒤 수년 간 한거(閑居)하면서 자신의 시문을 산정해 놓았다. 이후 저자의 후손과 문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면서,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문집 간행을 둘러싸고 드났다. 그래서 문집은 결국 1732년에 이르러 조현명(趙顯命)에 의해 간행되었다. 본집은 정집 87권, 외집 16권, 속집 22권 합 56책이다. 맨 앞에 정집의 목록 2권 1책이 상·하로 실려 있다. 서문은 없다.
「신여량 밀부유서」는 1605년(선조 38) 선조가 신여량에게 내린 유서이다. 1605년 행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는 신여량에게 발급한 문서이다. 유서에는 밀부 제17부를 내린다는 내용을 명시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 명령 방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양식의 유서이며, 17세기에 내려진 국왕의 유서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신여량 밀부유서 (申汝樑 密符諭書)
「신여량 밀부유서」는 1605년(선조 38) 선조가 신여량에게 내린 유서이다. 1605년 행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는 신여량에게 발급한 문서이다. 유서에는 밀부 제17부를 내린다는 내용을 명시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 명령 방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양식의 유서이며, 17세기에 내려진 국왕의 유서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강경대는 1991년 노태우 정권의 반민주적 통치에 저항한 학생운동가이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시위 중 백골단의 무차별 폭행에 의해 사망하였다. 강경대의 죽음은 1991년 5월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강경대 (姜慶大)
강경대는 1991년 노태우 정권의 반민주적 통치에 저항한 학생운동가이다.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시위 중 백골단의 무차별 폭행에 의해 사망하였다. 강경대의 죽음은 1991년 5월 투쟁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