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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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당의 난은 1173년(명종 3) 8월에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김보당은 무신 정변 이후, 공부시랑과 간의대부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반란은 무신 정변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문신 계열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이의방 등의 일방적인 정국 주도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란을 통해 거제에 부처 되었던 전 왕인 의종을 경주로 피신시켜 구지배 체제로의 복구를 시도했지만, 문신의 대대적인 살육과 의종 시해로 끝을 맺었다.
김보당의 난 (金甫當의 亂)
김보당의 난은 1173년(명종 3) 8월에 동북면병마사로 있던 김보당 등 문신 계열이 동계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김보당은 무신 정변 이후, 공부시랑과 간의대부 등의 관직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그의 반란은 무신 정변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문신 계열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이의방 등의 일방적인 정국 주도에 반발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반란을 통해 거제에 부처 되었던 전 왕인 의종을 경주로 피신시켜 구지배 체제로의 복구를 시도했지만, 문신의 대대적인 살육과 의종 시해로 끝을 맺었다.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공예태후 (恭睿太后)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대령후 (大寧侯)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무신란(武臣亂)은 1170년(의종 24)에 문신 위주의 폐정에 반발하여 일어난 무신들의 정변이다. 견룡군 무관이었던 이의방, 이고 등이 군부의 수장 정중부를 정변의 주병자로 내세워 일으킨 정변이다. 정변의 성공으로 이후 100년 간 특정의 무신 집정자가 독재적 권력을 행사하는 무신 정권 시대가 연출됨으로써 고려시대 전기, 후기를 나누는 고려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으로 인정되고 있다.
무신란 (武臣亂)
무신란(武臣亂)은 1170년(의종 24)에 문신 위주의 폐정에 반발하여 일어난 무신들의 정변이다. 견룡군 무관이었던 이의방, 이고 등이 군부의 수장 정중부를 정변의 주병자로 내세워 일으킨 정변이다. 정변의 성공으로 이후 100년 간 특정의 무신 집정자가 독재적 권력을 행사하는 무신 정권 시대가 연출됨으로써 고려시대 전기, 후기를 나누는 고려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으로 인정되고 있다.
문공원은 고려 전기,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문익(文翼)의 아들이다.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의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문공원 (文公元)
문공원은 고려 전기,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문익(文翼)의 아들이다.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수사공·서경유수사·문하시랑동평장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의종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정경(貞敬)이다.
고려후기 관노 출신의 환관.
백선연 (白善淵)
고려후기 관노 출신의 환관.
고려후기 노약순, 한수도 반란기도사건 등과 관련된 관리.
노약순 (盧若純)
고려후기 노약순, 한수도 반란기도사건 등과 관련된 관리.
고간원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문극겸 관련 사당이다. 문극겸(1122~1189)은 문무직을 겸임한 인물로 글씨에 뛰어났다. 『충숙공사실기』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문극겸의 묘 아래에 사당인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1792년 고간원이 홍수로 무너졌는데 1907년에 다시 지었고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였다. 고간원지 일대에는 고간원 이외에 문숙공신도비, 재실, 충숙선조유덕추모비, 사당인 충숙공영당, 묘소 등이 있다. 이곳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 남평문씨 집안에서 관리하며 198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간원지 (叩諫院址)
고간원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문극겸 관련 사당이다. 문극겸(1122~1189)은 문무직을 겸임한 인물로 글씨에 뛰어났다. 『충숙공사실기』에 의하면 조선 태종의 명으로 문극겸의 묘 아래에 사당인 고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1792년 고간원이 홍수로 무너졌는데 1907년에 다시 지었고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를 거듭하였다. 고간원지 일대에는 고간원 이외에 문숙공신도비, 재실, 충숙선조유덕추모비, 사당인 충숙공영당, 묘소 등이 있다. 이곳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 남평문씨 집안에서 관리하며 1984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려 전기에, 위위소경, 보문각직각, 어사중승 등을 역임한 문신.
고영부 (高瑩夫)
고려 전기에, 위위소경, 보문각직각, 어사중승 등을 역임한 문신.
신숙은 고려 전기에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인종과 의종대의 문신으로, 경서를 널리 배웠으며 청렴하고 충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참지정사로 치사하였다가 1160년(의종 14) 7월에 사망하였다.
신숙 (申淑)
신숙은 고려 전기에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인종과 의종대의 문신으로, 경서를 널리 배웠으며 청렴하고 충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참지정사로 치사하였다가 1160년(의종 14) 7월에 사망하였다.
보현원사건은 1170년(의종 24) 무신 정중부(鄭仲夫) 등이 보현원(普賢院)에서 문신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보현원은 개경 동남쪽에 있던 사찰이고, 의종이 자주 행차하여 연회를 즐긴 장소였다. 의종은 정사를 멀리하고 문신들과 더불어 연회를 즐겼던 반면, 이를 호위하던 무신들은 상대적으로 차별받았다. 승선 임종식과 기거주 한뢰 등은 의종의 총애를 믿고 무신을 멸시하여 그들의 분노가 점점 쌓였다. 같은 해 8월 의종과 문신들이 보현원으로 행차하자, 정중부 등이 정변을 일으켜 왕의 측근 문신들과 환관을 대부분 살육하였다.
보현원사건 (普賢院事件)
보현원사건은 1170년(의종 24) 무신 정중부(鄭仲夫) 등이 보현원(普賢院)에서 문신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보현원은 개경 동남쪽에 있던 사찰이고, 의종이 자주 행차하여 연회를 즐긴 장소였다. 의종은 정사를 멀리하고 문신들과 더불어 연회를 즐겼던 반면, 이를 호위하던 무신들은 상대적으로 차별받았다. 승선 임종식과 기거주 한뢰 등은 의종의 총애를 믿고 무신을 멸시하여 그들의 분노가 점점 쌓였다. 같은 해 8월 의종과 문신들이 보현원으로 행차하자, 정중부 등이 정변을 일으켜 왕의 측근 문신들과 환관을 대부분 살육하였다.
고려 의종 때 불려졌다는 동요.
보현찰 (普賢刹)
고려 의종 때 불려졌다는 동요.
김돈시는 고려 전기 의종의 측근으로, 정중부의 난 당시 살해된 문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부식이며 형은 김돈중이다. 그는 의종이 관란사(觀瀾寺)에 행차하려고 하자, 백성을 동원하여 그곳의 조경 공사를 한 공로로 의종의 측근이 되었다. 의종이 김돈시의 집을 별궁(別宮)으로 삼을 정도였는데, 정중부의 난으로 김돈시는 살해되었다.
김돈시 (金敦時)
김돈시는 고려 전기 의종의 측근으로, 정중부의 난 당시 살해된 문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김부식이며 형은 김돈중이다. 그는 의종이 관란사(觀瀾寺)에 행차하려고 하자, 백성을 동원하여 그곳의 조경 공사를 한 공로로 의종의 측근이 되었다. 의종이 김돈시의 집을 별궁(別宮)으로 삼을 정도였는데, 정중부의 난으로 김돈시는 살해되었다.
고려의 제20대(재위: 1197년~1204년) 왕.
신종 (神宗)
고려의 제20대(재위: 1197년~1204년) 왕.
고려후기 제17대 인종의 제2왕비.
선평왕후 (宣平王后)
고려후기 제17대 인종의 제2왕비.
이의방(李義方)은 1170년(의종 24) 정중부, 이고와 함께 무신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무신이다. 무신정변의 핵심 인물로서 대장군 정중부를 끌어들여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였다. 정변의 동료인 이고를 제거하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는 등 권력을 휘둘렀으나, 조위총의 난 때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 의하여 살해당하였다. 김보당의 난을 진압하고 중방의 기능을 무신정권의 주요 통치 기구로 활성화하는 등 초기 무신정권의 성립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이의방 (李義方)
이의방(李義方)은 1170년(의종 24) 정중부, 이고와 함께 무신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무신이다. 무신정변의 핵심 인물로서 대장군 정중부를 끌어들여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였다. 정변의 동료인 이고를 제거하고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들이는 등 권력을 휘둘렀으나, 조위총의 난 때 정중부의 아들 정균에 의하여 살해당하였다. 김보당의 난을 진압하고 중방의 기능을 무신정권의 주요 통치 기구로 활성화하는 등 초기 무신정권의 성립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정중부는 고려 후기 무신 정변을 일으킨 주동 인물이며 무신정권 초기의 정국을 주도했던 무신이다. 1170년(의종 24) 대장군으로서 견룡 행수 산원인 이고, 이의방과 함께 무신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옹립하여 새로운 왕으로 세웠으며 다수의 문신을 살해하였다. 무신정권을 반대하는 김보당의 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고 이고, 이의방을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집중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1179년(명종 9) 경대승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정중부 (鄭仲夫)
정중부는 고려 후기 무신 정변을 일으킨 주동 인물이며 무신정권 초기의 정국을 주도했던 무신이다. 1170년(의종 24) 대장군으로서 견룡 행수 산원인 이고, 이의방과 함께 무신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의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옹립하여 새로운 왕으로 세웠으며 다수의 문신을 살해하였다. 무신정권을 반대하는 김보당의 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고 이고, 이의방을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집중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1179년(명종 9) 경대승에 의하여 살해되었다.
조선 후기에, 광흥창봉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중명 (李重明)
조선 후기에, 광흥창봉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전기 제18대 의종의 제2 왕비.
장선왕후 (莊宣王后)
고려전기 제18대 의종의 제2 왕비.
고려후기 녹사, 남로병마사 등을 역임한 관리.
장순석 (張純錫)
고려후기 녹사, 남로병마사 등을 역임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