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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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과 함께 조직된 최초의 건국준비단체. 약칭 ‘건준(建準)’.
조선건국준비위원회 (朝鮮建國準備委員會)
1945년 해방과 함께 조직된 최초의 건국준비단체. 약칭 ‘건준(建準)’.
1876년 8월 24일 조선정부 대표 조인희(趙寅熙)와 일본정부 대표 미야모토[宮本小一] 사이에 체결된 통상장정(通商章程)이다. 전문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무역규칙」은 제1칙에서 입항수속, 제2 · 3칙에서 수입화물의 통관 및 검사, 제4 · 5칙에서 출항 수속, 제6칙에서 미곡류 수출입의 인정 등을 규정하고, 마지막 제11칙에서 무역규칙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였다. 양미(糧米)와 잡곡의 수출입량에 대한 제한 및 관세 규정이 부재(不在)하여 일본의 무제한적인 경제적 침략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 불평등조약이다.
조일무역규칙 (朝日貿易規則)
1876년 8월 24일 조선정부 대표 조인희(趙寅熙)와 일본정부 대표 미야모토[宮本小一] 사이에 체결된 통상장정(通商章程)이다. 전문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무역규칙」은 제1칙에서 입항수속, 제2 · 3칙에서 수입화물의 통관 및 검사, 제4 · 5칙에서 출항 수속, 제6칙에서 미곡류 수출입의 인정 등을 규정하고, 마지막 제11칙에서 무역규칙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였다. 양미(糧米)와 잡곡의 수출입량에 대한 제한 및 관세 규정이 부재(不在)하여 일본의 무제한적인 경제적 침략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 불평등조약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2월 8일에 발족돼 1947년 2월까지 존재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기능을 수행한 북한 최초의 중앙정권기관이다. 조선로동당 주도로 개최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 결과로 조직되었다. 위원장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추대되었다. 북한 전역을 포괄하는 중앙기구 역할을 하였다. 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으로 해체되었다. ‘민주기지론’의 구체화된 형태로서 북한사회를 통일적으로 이끄는 중앙권력기관, 즉 북한 정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1946년 2월 8일에 발족돼 1947년 2월까지 존재하며 인민민주주의 독재 기능을 수행한 북한 최초의 중앙정권기관이다. 조선로동당 주도로 개최된 ‘북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 결과로 조직되었다. 위원장으로 소련의 지원을 받은 김일성이 추대되었다. 북한 전역을 포괄하는 중앙기구 역할을 하였다. 1947년 2월에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수립으로 해체되었다. ‘민주기지론’의 구체화된 형태로서 북한사회를 통일적으로 이끄는 중앙권력기관, 즉 북한 정부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항일유격대는 1931년에 만주 일대에 설립된 비정규 항일무장단체이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에 대한 대규모 무력 침공을 전개함에 따라 중국 전역에서 대규모의 반일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일제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면서 전민족적인 항일운동을 주창하였고, 이에 여러 항일유격대가 창설되어 항일유격 전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항일구국 선언인 8·1선언을 발표하였고, 3로군 11군에 달하는 동북인민항일연군을 조직하였다. 14년 동안 항일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항일유격대는 만주 일대 여러 항일무장세력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항일유격대 (抗日遊擊隊)
항일유격대는 1931년에 만주 일대에 설립된 비정규 항일무장단체이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에 대한 대규모 무력 침공을 전개함에 따라 중국 전역에서 대규모의 반일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중국 공산당은 일제의 무력 침공을 규탄하면서 전민족적인 항일운동을 주창하였고, 이에 여러 항일유격대가 창설되어 항일유격 전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항일구국 선언인 8·1선언을 발표하였고, 3로군 11군에 달하는 동북인민항일연군을 조직하였다. 14년 동안 항일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던 항일유격대는 만주 일대 여러 항일무장세력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였다.
1946년 좌파 세력과 민중이 대구를 시작으로 남한 전역에서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사건.
대구 십일사건 (大邱 十一事件)
1946년 좌파 세력과 민중이 대구를 시작으로 남한 전역에서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사건.
해방 이후의 북조선 중앙행정기관.
북조선 오도 행정국 (北朝鮮 5道 行政局)
해방 이후의 북조선 중앙행정기관.
유럽 중동부 내륙에 있는 공화국.
헝가리 (Hungary)
유럽 중동부 내륙에 있는 공화국.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성숙 (金星淑)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백성은 고려시대의 신분계층이다. 직역을 담당하는 인리(人吏)·향리(鄕吏)·기인(其人)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를 근거로 촌락의 지배자인 촌장(村長)·촌정(村正)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한편 지연적·혈연적으로 결합된 사회집단으로, 군현인(郡縣人)으로 구별되는 신분층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구별되는 신분층이 아니라 토성(土姓)와 연결하여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읍치가 확대되면서 주변의 촌락이 흡수되어 읍사의 지배기구에 참여하는 촌장·촌정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백성 (百姓)
백성은 고려시대의 신분계층이다. 직역을 담당하는 인리(人吏)·향리(鄕吏)·기인(其人)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를 근거로 촌락의 지배자인 촌장(村長)·촌정(村正)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한편 지연적·혈연적으로 결합된 사회집단으로, 군현인(郡縣人)으로 구별되는 신분층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구별되는 신분층이 아니라 토성(土姓)와 연결하여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읍치가 확대되면서 주변의 촌락이 흡수되어 읍사의 지배기구에 참여하는 촌장·촌정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국방위원회 산하의 군사집행기구.
인민무력부 (人民武力部)
북한 국방위원회 산하의 군사집행기구.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주축으로 창건했다는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북한은 이를 김일성이 창건한 첫 ‘주체적 혁명무력’으로서 ‘항일유격대’였다며, 창건 당시에는 ‘반일인민유격대’로 호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하며 항일투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반일인민유격대 창설 날짜인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 기념일’, 즉 ‘건군절’로 정하고 창건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는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한 것으로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선인민혁명군 (朝鮮人民革命軍)
조선인민혁명군은 김일성이 1932년 4월 25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주축으로 창건했다는 항일 무장군사조직이다. 북한은 이를 김일성이 창건한 첫 ‘주체적 혁명무력’으로서 ‘항일유격대’였다며, 창건 당시에는 ‘반일인민유격대’로 호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발전하며 항일투쟁에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반일인민유격대 창설 날짜인 4월 25일을 ‘인민군 창건 기념일’, 즉 ‘건군절’로 정하고 창건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는 ‘김일성 혁명전통’에 입각한 것으로 김일성 우상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김석형 (金錫亨)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북한에서 최말단 행정보조 조직을 가리키는 북한용어.
인민반 (人民班)
북한에서 최말단 행정보조 조직을 가리키는 북한용어.
1945년 해방 직후 여운형이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던 중도좌파 계열의 정치정당.
조선인민당 (朝鮮人民黨)
1945년 해방 직후 여운형이 주도적으로 결성하였던 중도좌파 계열의 정치정당.
유격대는 1948년 이후 남한 각지에서 기습·교란· 파괴의 유격 활동을 했던 무장부대이다. 흔히 빨치산이라고 하는데, 남부군, 공비, 공산 게릴라로 불리기도 했다. 시작은 야산대로 불리는 무장유격대이며,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인 것은 여순사건 때 산으로 숨어들었던 일부 군인에 흡수되면서부터이다. 1949년 북한에서는 조선인민유격대를 창설해 이들을 지휘하고 지원했다.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소멸단계에 이르렀다가, 한국전쟁 이후 낙오한 북한군과 합세해 무장투쟁을 벌였고 1950년대 중반까지 산발적으로 유격활동을 이어갔다.
유격대 (遊擊隊)
유격대는 1948년 이후 남한 각지에서 기습·교란· 파괴의 유격 활동을 했던 무장부대이다. 흔히 빨치산이라고 하는데, 남부군, 공비, 공산 게릴라로 불리기도 했다. 시작은 야산대로 불리는 무장유격대이며, 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인 것은 여순사건 때 산으로 숨어들었던 일부 군인에 흡수되면서부터이다. 1949년 북한에서는 조선인민유격대를 창설해 이들을 지휘하고 지원했다.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소멸단계에 이르렀다가, 한국전쟁 이후 낙오한 북한군과 합세해 무장투쟁을 벌였고 1950년대 중반까지 산발적으로 유격활동을 이어갔다.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최익한 (崔益翰)
최익한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인민공화국 간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7년 경북 울진 출생으로 3·1운동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가담하였고, 임시정부의 군자금 모금원으로 활약하였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서 유학 중 일월회와 조선공산당 일본부에서 활동했다.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가 투옥되어 7년간 복역 후 학문활동에 전념하였다. 해방 후 우익을 보다 넓게 포괄하려는 입장에서 민족주자연맹에 참여하였고, 1948년 월북한 후 학문연구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연구의 선구자로 대표적인 저술서로 『실학파와 정다산』이 있다.
권오직은 북한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 북한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3년 청년운동에 투신한 이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두 번의 수형 생활(1930년 6년형, 1939년 8년형)을 치른 후 광복을 맞아 출감하였다. 광복 직후 재건조선공산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피신해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을,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박헌영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후 평안북도 삭주의 농장으로 추방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권오직 (權五稷)
권오직은 북한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 북한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3년 청년운동에 투신한 이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두 번의 수형 생활(1930년 6년형, 1939년 8년형)을 치른 후 광복을 맞아 출감하였다. 광복 직후 재건조선공산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피신해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을,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박헌영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후 평안북도 삭주의 농장으로 추방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1959년 1월 14일에 창설된 북한 최초의 민간군사조직.
노동적위대 (勞動赤衛隊)
1959년 1월 14일에 창설된 북한 최초의 민간군사조직.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차장, 의열단원, 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근로인민당 부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장건상 (張建相)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차장, 의열단원, 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 근로인민당 부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북한주민을 통제하며 당과 수령, 국가와 사회주의제도를 보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국무위원회 직속 기관.
사회안전성
북한주민을 통제하며 당과 수령, 국가와 사회주의제도를 보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국무위원회 직속 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