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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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상장군, 추밀원부사, 좌군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신 (金侁)
고려후기 상장군, 추밀원부사, 좌군사 등을 역임한 무신.
정동행성은 고려 후기 몽골 제국에서 고려에 설치한 지방 행정 기구이다. 1280년(충렬왕 6)에 처음 설치되어 일시적으로 치폐를 거친 후 몽골 제국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초기에는 몽골 제국이 추진한 일본 원정의 전방 지원 사령부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쿠빌라이 사후에는 군사적 성격은 약해지고 내지의 일반적인 지방 행정 기구와 같은 위상을 가지면서, 고려와 몽골 제국 사이의 연락 기구로서 기능하였다. 고려 국왕은 자동적으로 정동행성의 승상을 겸직했으며, 하위 관리는 국왕의 천거를 받아 몽골 황제가 임명하였다.
정동행성 (征東行省)
정동행성은 고려 후기 몽골 제국에서 고려에 설치한 지방 행정 기구이다. 1280년(충렬왕 6)에 처음 설치되어 일시적으로 치폐를 거친 후 몽골 제국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초기에는 몽골 제국이 추진한 일본 원정의 전방 지원 사령부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쿠빌라이 사후에는 군사적 성격은 약해지고 내지의 일반적인 지방 행정 기구와 같은 위상을 가지면서, 고려와 몽골 제국 사이의 연락 기구로서 기능하였다. 고려 국왕은 자동적으로 정동행성의 승상을 겸직했으며, 하위 관리는 국왕의 천거를 받아 몽골 황제가 임명하였다.
일본이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왜곡하여 외교문제로 비화된 사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 (日本 歷史敎科書 歪曲事件)
일본이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왜곡하여 외교문제로 비화된 사건.
1876년 8월 24일 조선정부 대표 조인희(趙寅熙)와 일본정부 대표 미야모토[宮本小一] 사이에 체결된 통상장정(通商章程)이다. 전문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무역규칙」은 제1칙에서 입항수속, 제2 · 3칙에서 수입화물의 통관 및 검사, 제4 · 5칙에서 출항 수속, 제6칙에서 미곡류 수출입의 인정 등을 규정하고, 마지막 제11칙에서 무역규칙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였다. 양미(糧米)와 잡곡의 수출입량에 대한 제한 및 관세 규정이 부재(不在)하여 일본의 무제한적인 경제적 침략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 불평등조약이다.
조일무역규칙 (朝日貿易規則)
1876년 8월 24일 조선정부 대표 조인희(趙寅熙)와 일본정부 대표 미야모토[宮本小一] 사이에 체결된 통상장정(通商章程)이다. 전문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무역규칙」은 제1칙에서 입항수속, 제2 · 3칙에서 수입화물의 통관 및 검사, 제4 · 5칙에서 출항 수속, 제6칙에서 미곡류 수출입의 인정 등을 규정하고, 마지막 제11칙에서 무역규칙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였다. 양미(糧米)와 잡곡의 수출입량에 대한 제한 및 관세 규정이 부재(不在)하여 일본의 무제한적인 경제적 침략을 허용하는 계기가 된 불평등조약이다.
개항기 『대한문전』, 『서유견문』, 『구당시초』 등을 저술한 개화사상가. 정치인.
유길준 (兪吉濬)
개항기 『대한문전』, 『서유견문』, 『구당시초』 등을 저술한 개화사상가. 정치인.
율령제(律令制)는 광의의 개념으로는 율령(律令)이라는 이름 혹은 형식을 가진 법률제도로 규정되는 국가 체제 혹은 통치 방식이고, 협의의 개념으로는 중국에서 발전한 법률체계로서의 율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통치 방식 혹은 율령에 반영된 국가 체제이다. 특히 중국 수(隋) ‧당(唐) 대에 이르러 중국적 율령이 완성되었다고 보고, 수 ‧ 당 대 율령에 바탕을 둔 국가 체제 혹은 통치 방식을 이르는 좁은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율령제 (律令制)
율령제(律令制)는 광의의 개념으로는 율령(律令)이라는 이름 혹은 형식을 가진 법률제도로 규정되는 국가 체제 혹은 통치 방식이고, 협의의 개념으로는 중국에서 발전한 법률체계로서의 율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통치 방식 혹은 율령에 반영된 국가 체제이다. 특히 중국 수(隋) ‧당(唐) 대에 이르러 중국적 율령이 완성되었다고 보고, 수 ‧ 당 대 율령에 바탕을 둔 국가 체제 혹은 통치 방식을 이르는 좁은 개념으로 많이 사용된다.
조선후기 황실제도국총재, 강구회 회장, 흥사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윤식 (金允植)
조선후기 황실제도국총재, 강구회 회장, 흥사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충렬왕은 고려 제25대(재위: 1274~1308) 왕이다. 무신 집권자에 의해 폐위된 부왕을 복위시키는 과정에서 몽골 공주와 혼인하였다. 몽골 측 지적에 따라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였고, 몽골의 1·2차 일본 원정에 조력하면서 정동행성 장관직을 겸하게 되었다.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왕위를 아들 충선왕에게 물려주었다가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는 그 지지 세력이 충선왕 지지 세력과 벌이는 정쟁이 지속되었다. 정쟁에서 패한 후 1308년(충렬왕 34) 사망하였다.
충렬왕 (忠烈王)
충렬왕은 고려 제25대(재위: 1274~1308) 왕이다. 무신 집권자에 의해 폐위된 부왕을 복위시키는 과정에서 몽골 공주와 혼인하였다. 몽골 측 지적에 따라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였고, 몽골의 1·2차 일본 원정에 조력하면서 정동행성 장관직을 겸하게 되었다.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왕위를 아들 충선왕에게 물려주었다가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는 그 지지 세력이 충선왕 지지 세력과 벌이는 정쟁이 지속되었다. 정쟁에서 패한 후 1308년(충렬왕 34) 사망하였다.
해방 이후 「무당」, 「청담대종사」, 「토함산해돋이」, 「명성황후」, 「전봉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생광 (朴生光)
해방 이후 「무당」, 「청담대종사」, 「토함산해돋이」, 「명성황후」, 「전봉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통감부는 1906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설치한 통치기구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제2차 한일협약을 강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이 외교사무를 대행하게 하였다.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시정 개선을 명분으로 한국의 통치 조직을 해체시켰다.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을 계기로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통감이 한국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일제 식민통치의 기본 골격을 형성한, 총독부의 무단통치를 위한 시험적 단계에 있던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통감부 (統監府)
통감부는 1906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설치한 통치기구이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제2차 한일협약을 강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이 외교사무를 대행하게 하였다.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시정 개선을 명분으로 한국의 통치 조직을 해체시켰다.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을 계기로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여 통감이 한국의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일제 식민통치의 기본 골격을 형성한, 총독부의 무단통치를 위한 시험적 단계에 있던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지섭은 의열단원으로서 일본 왕궁에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이다. 의열단에 가입하여 192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제국의회에 폭탄을 투척하고자 하였으나 휴회로 실행하지 못하게 되자,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지고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일본 지바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하였다.
김지섭 (金祉燮)
김지섭은 의열단원으로서 일본 왕궁에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이다. 의열단에 가입하여 192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제국의회에 폭탄을 투척하고자 하였으나 휴회로 실행하지 못하게 되자,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지고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일본 지바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하였다.
1906년 3월에 제정, 공포된 「농공은행조례」에 의거해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되었던 지방은행.
농공은행 (農工銀行)
1906년 3월에 제정, 공포된 「농공은행조례」에 의거해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되었던 지방은행.
개항기 때, 협판교섭통상사무, 병조참판, 우정국총판 등을 역임한 문신.
홍영식 (洪英植)
개항기 때, 협판교섭통상사무, 병조참판, 우정국총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문신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877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일동기유 (日東記遊)
개항기 문신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877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여원연합군은 삼별초 항쟁을 진압한 뒤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동원된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이다. 여몽연합군이라고도 한다. 몽골과 강화를 체결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도를 거점으로 대항하였다. 고려 조정은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해 원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삼별초를 진압하였다. 이후 고려는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원나라는 일본정벌을 위해 다시 여원연합군이 조직하여,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일본정벌을 시도하였다. 두 차례 정벌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어 실패하였고, 1294년 일본정벌 계획은 중단되었다.
여원연합군 (麗元聯合軍)
여원연합군은 삼별초 항쟁을 진압한 뒤 일본을 정벌하기 위하여 동원된 고려와 원나라의 연합군이다. 여몽연합군이라고도 한다. 몽골과 강화를 체결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도를 거점으로 대항하였다. 고려 조정은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해 원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삼별초를 진압하였다. 이후 고려는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원나라는 일본정벌을 위해 다시 여원연합군이 조직하여,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 일본정벌을 시도하였다. 두 차례 정벌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어 실패하였고, 1294년 일본정벌 계획은 중단되었다.
김방경은 고려 후기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몽골군과 함께 일본 정벌을 지휘했던 무신이다. 1248년(고종 35) 몽골 침입 때 서북면 병마판관으로서 위도(葦島)에 입보하여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함으로써 이름이 드러났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몽골군과 함께 진도와 제주도를 모두 함락하여 난을 진정시켰다.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원정에 참여하였다. 안에서는 중찬으로 내정을 총괄하였고, 전쟁에 나가서는 고려왕조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방경 (金方慶)
김방경은 고려 후기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몽골군과 함께 일본 정벌을 지휘했던 무신이다. 1248년(고종 35) 몽골 침입 때 서북면 병마판관으로서 위도(葦島)에 입보하여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함으로써 이름이 드러났다. 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몽골군과 함께 진도와 제주도를 모두 함락하여 난을 진정시켰다.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원정에 참여하였다. 안에서는 중찬으로 내정을 총괄하였고, 전쟁에 나가서는 고려왕조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 후기에, 곡산군수, 덕원부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김기수 (金綺秀)
조선 후기에, 곡산군수, 덕원부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임나 (任那)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고려시대에 원나라의 간섭 아래 설치되었던 둔전(屯田)의 관리기구.
둔전경략사 (屯田經略司)
고려시대에 원나라의 간섭 아래 설치되었던 둔전(屯田)의 관리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