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임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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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진콘테스트'는 1963년, 동아일보사가 창설하여 1960년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전개에 크게 기여한 사진 공모전이다. 「동아사진동우회」를 운영하면서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을 확산시켰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함께 민전과 관전, 리얼리즘 사진과 예술 사진이라는 경쟁과 견제의 관계를 유지하며 1960년대 우리나라 사진계를 견인한 공모전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동아사진콘테스트 (東亞寫眞contest)
'동아사진콘테스트'는 1963년, 동아일보사가 창설하여 1960년대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전개에 크게 기여한 사진 공모전이다. 「동아사진동우회」를 운영하면서 생활주의리얼리즘 사진을 확산시켰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와 함께 민전과 관전, 리얼리즘 사진과 예술 사진이라는 경쟁과 견제의 관계를 유지하며 1960년대 우리나라 사진계를 견인한 공모전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림스그램은 1930년대, 임응식이 자신의 영문 성 ‘임’과 ‘포토그램’을 붙여 만든 합성어로 암실에서 광원과 감광재료 사이에 물체를 놓고 노광을 주어 이미지를 만들어 낸 사진 연작이다. 「Limbsgram-A」, 「Limbsgram-B」, 「작렬」, 「혼란」, 「용해」, 「소생」, 「역사」가 그가 남긴 림스그램 연작이다. 림스그램은 살롱사진 일색이었던 일제강점기에 실험성을 선취하여 한국사진의 전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림스그램 (Limbsgram)
림스그램은 1930년대, 임응식이 자신의 영문 성 ‘임’과 ‘포토그램’을 붙여 만든 합성어로 암실에서 광원과 감광재료 사이에 물체를 놓고 노광을 주어 이미지를 만들어 낸 사진 연작이다. 「Limbsgram-A」, 「Limbsgram-B」, 「작렬」, 「혼란」, 「용해」, 「소생」, 「역사」가 그가 남긴 림스그램 연작이다. 림스그램은 살롱사진 일색이었던 일제강점기에 실험성을 선취하여 한국사진의 전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이란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고양된 사회의식과 더불어 사진의 기록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사진 경향이다. 1950~60년대 한국사진의 지배적 미학으로, 사진의 본질은 기계적 기록성과 사실성이며 사진은 역사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기록이며 현실의 시공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사진 창작의 경향이다. 일제시기부터 유행한 예술 사진과 영업 사진 등 기존의 사진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 (生活主義 ―寫眞)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이란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 고양된 사회의식과 더불어 사진의 기록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함으로써 나타난 대표적인 사진 경향이다. 1950~60년대 한국사진의 지배적 미학으로, 사진의 본질은 기계적 기록성과 사실성이며 사진은 역사적인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기록이며 현실의 시공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사진 창작의 경향이다. 일제시기부터 유행한 예술 사진과 영업 사진 등 기존의 사진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장치로 작동하기도 하였다.
'예술사진동인전'은 1949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창립부터 참여했던 중견 사진가들이 모여 서울 충무로의 대원화랑에서 개최한 단체전이다. 당시 사진 단체로 '조선사진동맹'이 득세하고 1948년 '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람회'가 성공을 거두자,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핵심 회원들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사진전이었다. 이해선, 박필호, 현일영, 김광배, 박영진, 김정래. 임응식, 최계복 등 당시 사진계의 중견들이 참여하였다.
예술사진동인전 (藝術寫眞同人展)
'예술사진동인전'은 1949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창립부터 참여했던 중견 사진가들이 모여 서울 충무로의 대원화랑에서 개최한 단체전이다. 당시 사진 단체로 '조선사진동맹'이 득세하고 1948년 '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람회'가 성공을 거두자,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핵심 회원들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사진전이었다. 이해선, 박필호, 현일영, 김광배, 박영진, 김정래. 임응식, 최계복 등 당시 사진계의 중견들이 참여하였다.
살롱사진은 일제강점기 공모전에 출품된 예술사진 일반 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공모전 출품 사진 일반에 대하여 해방 이후에 지칭한 용어이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은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930~40년대까지 각종 공모전을 통해 확산되었던 사진 조류였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살롱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살롱사진 (―寫眞)
살롱사진은 일제강점기 공모전에 출품된 예술사진 일반 또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공모전 출품 사진 일반에 대하여 해방 이후에 지칭한 용어이다. 일제강점기의 예술사진은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1930~40년대까지 각종 공모전을 통해 확산되었던 사진 조류였다. 해방 이후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했던 작가들은 예술사진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살롱사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시각은 1979년 사진가 주명덕이 설립한 사진집 전문 출판사이다. 편견없이 원로작가, 기성작가, 신진작가 등 다양한 층위의 작가들의 작품집을 고루 출판했으며, 1984년부터 1990년까지 팜플렛 형태의 작품집 12권을 출간하여 『시각 Camera Work』라는 제목의 시리즈물로 엮어냈다. 2014년 가현문화재단이 인수했다.
시각 (視覺)
시각은 1979년 사진가 주명덕이 설립한 사진집 전문 출판사이다. 편견없이 원로작가, 기성작가, 신진작가 등 다양한 층위의 작가들의 작품집을 고루 출판했으며, 1984년부터 1990년까지 팜플렛 형태의 작품집 12권을 출간하여 『시각 Camera Work』라는 제목의 시리즈물로 엮어냈다. 2014년 가현문화재단이 인수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는 1961년 전국에 산재한 사진 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 작가 단체이다. 1977년 한국사진작가협회로 개칭했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공모전을 주도하며 1970년 이후 여러 사진 단체를 포괄하는 중심 단체로 자리잡았다. 1982년부터 대한민국사진전람회를 주관했으나, 공모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 위세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韓國寫眞作家協會)
한국사진작가협회는 1961년 전국에 산재한 사진 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 작가 단체이다. 1977년 한국사진작가협회로 개칭했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공모전을 주도하며 1970년 이후 여러 사진 단체를 포괄하는 중심 단체로 자리잡았다. 1982년부터 대한민국사진전람회를 주관했으나, 공모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 위세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한국창작사진협회는1964년, 임응식의 주도로 사진의 순수 예술성을 지향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며 사진예술의 수준을 향상할 것을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임응식은 1952년 본인의 주도로 창립한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재건해 ‘한국창작사진협회’를 설립하였고, 한국사진협회와 경쟁적으로 공모전과 협회전을 주최하며 사진 및 사진인의 예술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국전 사진부’ 설립과 그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71년 한국사진협회와 통합했다.
한국창작사진협회 (韓國寫眞創作協會)
한국창작사진협회는1964년, 임응식의 주도로 사진의 순수 예술성을 지향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며 사진예술의 수준을 향상할 것을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임응식은 1952년 본인의 주도로 창립한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재건해 ‘한국창작사진협회’를 설립하였고, 한국사진협회와 경쟁적으로 공모전과 협회전을 주최하며 사진 및 사진인의 예술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국전 사진부’ 설립과 그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71년 한국사진협회와 통합했다.
강릉사우회는 1935년 임응식 등이 일본인들과 함께 강릉에서 결성한 아마추어 사진 단체이다. 임응식의 주장에 따르면 ‘강릉사우회’는 한국인이 최초로 만들고 주재한 예술사진 단체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강릉사우회는 그 발족의 일자가 분명치 않지만 최초의 회장은 이곳에서 영업사진관을 개업 중이던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었다.” 이에 대해 임응식은 당시의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한국인 최초의 예술사진 단체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강릉사우회 (江陵寫友會)
강릉사우회는 1935년 임응식 등이 일본인들과 함께 강릉에서 결성한 아마추어 사진 단체이다. 임응식의 주장에 따르면 ‘강릉사우회’는 한국인이 최초로 만들고 주재한 예술사진 단체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강릉사우회는 그 발족의 일자가 분명치 않지만 최초의 회장은 이곳에서 영업사진관을 개업 중이던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었다.” 이에 대해 임응식은 당시의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한국인 최초의 예술사진 단체임을 증명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