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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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은 해방 이후 고려신학교 교장, 장로회신학교 교장, 총회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자 보수주의 신학자이다. 한국 기독교 보수신학의 거두로 손꼽힌다. 1927년 귀국하여 193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진보적인 신학 흐름을 막아내는 데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장로회의 신학교 운영을 놓고 입장을 달리하는 인사들과 갈등하면서 교회 분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신학자로서 20여 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박형룡 (朴亨龍)
박형룡은 해방 이후 고려신학교 교장, 장로회신학교 교장, 총회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자 보수주의 신학자이다. 한국 기독교 보수신학의 거두로 손꼽힌다. 1927년 귀국하여 1930년대부터 한국교회의 진보적인 신학 흐름을 막아내는 데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장로회의 신학교 운영을 놓고 입장을 달리하는 인사들과 갈등하면서 교회 분열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신학자로서 20여 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남겼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고려신학교를 인정하지 않자 한상동 등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세웠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투옥된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한국 장로교의 한 교단이다.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고려신학교를 인정하지 않자 한상동 등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자적인 교단을 세웠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62년 박병훈(朴炳勳) 목사 등에 의해 설립된 한국장로교회의 한 교단이다. 1959년 예장 통합과 분리된 예장 합동이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와의 관계를 단절하자 이에 반발한 인사들이 주도하여 세웠다. 이들은 세계교회 협의회로 대변되는 에큐메니칼운동을 용공 세력으로 비판하는 한편 국제 기독교 협의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근본주의 신학을 개진하였다. 그 후 세대 갈등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분열을 거듭하여 현재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大韓←Jesus敎長老會)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62년 박병훈(朴炳勳) 목사 등에 의해 설립된 한국장로교회의 한 교단이다. 1959년 예장 통합과 분리된 예장 합동이 국제기독교협의회(ICCC)와의 관계를 단절하자 이에 반발한 인사들이 주도하여 세웠다. 이들은 세계교회 협의회로 대변되는 에큐메니칼운동을 용공 세력으로 비판하는 한편 국제 기독교 협의회의 지원을 받으면서 근본주의 신학을 개진하였다. 그 후 세대 갈등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분열을 거듭하여 현재 여러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1929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창간한 월간 잡지.
농민생활 (農民生活)
1929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농민을 대상으로 창간한 월간 잡지.
일제강점기 간도노회초대노회장, 국민회 분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독립운동가.
김내범 (金迺範)
일제강점기 간도노회초대노회장, 국민회 분회장 등을 역임한 목사.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오산교회, 평양 서문밖교회, 대타령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부흥사.
임종순 (林鍾純)
일제강점기 오산교회, 평양 서문밖교회, 대타령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부흥사.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에 소재한 한남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1982년 설립되어 2020년 현재 종합전시실·기와전시실·백제토기요지실·문헌자료실·기독교선교자료실·민속실·기획전시실 모두 7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약 7,000여 점으로 그 중 백제기와를 포함한 와전류가 약 2,000점이다. 1983년부터 대전 용호동 유적 등 대전지역 문화유산 발굴조사에 참여하였다. 이 박물관은 대전지역의 역사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와 대전을 포함한 남장로교 기독교 선교의 발전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 (韓南大學校 中央博物館)
한남대학교 중앙박물관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에 소재한 한남대학교 부속 박물관이다. 1982년 설립되어 2020년 현재 종합전시실·기와전시실·백제토기요지실·문헌자료실·기독교선교자료실·민속실·기획전시실 모두 7개의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유물은 약 7,000여 점으로 그 중 백제기와를 포함한 와전류가 약 2,000점이다. 1983년부터 대전 용호동 유적 등 대전지역 문화유산 발굴조사에 참여하였다. 이 박물관은 대전지역의 역사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와 대전을 포함한 남장로교 기독교 선교의 발전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자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다. 188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의 조사(助事)로 기독교에 입문하여 김제 금산교회 장로, 원평교회 목사, 장로교 총회장(3선),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자익 (李自益)
이자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다. 188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의 조사(助事)로 기독교에 입문하여 김제 금산교회 장로, 원평교회 목사, 장로교 총회장(3선),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 소속되어 있는 여성 교인들의 조직.
장로회 여전도회 (長老會 女傳道會)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 소속되어 있는 여성 교인들의 조직.
조선기독청년동맹은 1945년 8월 19일 창립된 장로교·감리교 기독청년들의 연합조직이다.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결성된 이 조직은 김구·김규식 등 중도파를 지지하며 신탁통치와 단정수립에 반대했다. 귀환동포를 위한 모금 및 숙식 제공, 해방 기념 예배, 미군 환영 행사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을 지지하였다. 1947년 세계기독청년대회,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국제 연대도 모색했다. 1948년 교파환원 결정으로 해산되었지만, 해방 후 최초의 기독청년 연합단체로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조선기독청년동맹 (朝鮮基督靑年同盟)
조선기독청년동맹은 1945년 8월 19일 창립된 장로교·감리교 기독청년들의 연합조직이다.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결성된 이 조직은 김구·김규식 등 중도파를 지지하며 신탁통치와 단정수립에 반대했다. 귀환동포를 위한 모금 및 숙식 제공, 해방 기념 예배, 미군 환영 행사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을 지지하였다. 1947년 세계기독청년대회,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 창립총회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국제 연대도 모색했다. 1948년 교파환원 결정으로 해산되었지만, 해방 후 최초의 기독청년 연합단체로서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다.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
한영신 (韓永信)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 등을 맡은 여성 독립운동가.
전주 서문교회는 1896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에 의해 시작된 전라북도 전주의 장로교회이다. 1905년 9월 서문 밖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남장로교 전주 스테이션(선교기지)의 직할교회로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전주예수병원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북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전주 서문교회 (全州 西門敎會)
전주 서문교회는 1896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에 의해 시작된 전라북도 전주의 장로교회이다. 1905년 9월 서문 밖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남장로교 전주 스테이션(선교기지)의 직할교회로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전주예수병원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전북노회에 소속되어 있다.
은진중학교는 1920년 2월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된 기독교계 사립 중학교이다. 캐나다 장로파 선교사 부두일(富斗一, W.R.Foote)이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한 기독교계 사립 중학교이자 민족계 교육기관이다. 수업 과목은 자연과학을 위주로 하면서 성경 · 영어 · 한문 등을 교수하였다. 1942년 제3국민고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광복 후인 1946년 2월 잠시 동안 은진중학교로 복귀하였으나, 같은 해 8월 인근 5개의 중학교와 통합하여 길림성립용정중학교가 되었다.
은진중학교 (恩眞中學敎)
은진중학교는 1920년 2월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된 기독교계 사립 중학교이다. 캐나다 장로파 선교사 부두일(富斗一, W.R.Foote)이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에 설립한 기독교계 사립 중학교이자 민족계 교육기관이다. 수업 과목은 자연과학을 위주로 하면서 성경 · 영어 · 한문 등을 교수하였다. 1942년 제3국민고등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광복 후인 1946년 2월 잠시 동안 은진중학교로 복귀하였으나, 같은 해 8월 인근 5개의 중학교와 통합하여 길림성립용정중학교가 되었다.
윤치소는 한말, 일제 시기에 활동한 기업가이자 대지주로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인물이다. 윤치소는 경성직뉴주식회사 사장으로 활동한 기업가이자 충청남도 지역의 대지주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38년 ‘전도보국(傳道報國)’을 기치로 내걸고 조직한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 1941년 조선기독교장로교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윤치소 (尹致昭)
윤치소는 한말, 일제 시기에 활동한 기업가이자 대지주로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인물이다. 윤치소는 경성직뉴주식회사 사장으로 활동한 기업가이자 충청남도 지역의 대지주였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했으며, 1938년 ‘전도보국(傳道報國)’을 기치로 내걸고 조직한 조선기독교연합회 평의원, 1941년 조선기독교장로교 애국기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