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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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은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입도록 만든 제복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 막론하고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적 의미의 교복이 탄생하였다. 교복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군부정권기,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부 또는 학교장 재량으로 제정되고, 폐지되고, 다시 권장되면서, 민족 의식이 표현되거나 말살되기도 하고, 평준화, 획일성, 균일성, 통제가 강조되거나, 강제적 자율화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자부심, 소속감, 엘리트 의식이 드러나거나, 다양성과 개성, 실용성과 편안함이 추구되기도 하였다.
교복 (校服)
교복은 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입도록 만든 제복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 막론하고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근대적 의미의 교복이 탄생하였다. 교복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군부정권기, 민주화시대를 거치면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정부 또는 학교장 재량으로 제정되고, 폐지되고, 다시 권장되면서, 민족 의식이 표현되거나 말살되기도 하고, 평준화, 획일성, 균일성, 통제가 강조되거나, 강제적 자율화가 진행되기도 했으며, 자부심, 소속감, 엘리트 의식이 드러나거나, 다양성과 개성, 실용성과 편안함이 추구되기도 하였다.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덕령 장군 의복 (金德領 將軍 衣服)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천 출토 광주 이씨 의복은 1979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에 소재한 광주 이씨 이언웅과 그의 며느리 청주 한씨 묘에서 출토한 복식이다. 광주 이씨 선산 묘지를 이장하던 중 이언웅의 묘와 청주 한씨 묘에서 1550년대의 남녀 의복류와 염습구 등 54점을 수습하였다. 이 중 장옷 2점, 액주름 2점, 저고리 8점, 치마 2점 등 20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녀 복식이 섞인 채 기증되어 성별 구분에 주의가 요구된다. 16세기 여성의 저고리와 치마 양식이 확인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과천 출토 광주이씨 의복 (果川 出土 廣州李氏 衣服)
과천 출토 광주 이씨 의복은 1979년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에 소재한 광주 이씨 이언웅과 그의 며느리 청주 한씨 묘에서 출토한 복식이다. 광주 이씨 선산 묘지를 이장하던 중 이언웅의 묘와 청주 한씨 묘에서 1550년대의 남녀 의복류와 염습구 등 54점을 수습하였다. 이 중 장옷 2점, 액주름 2점, 저고리 8점, 치마 2점 등 20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녀 복식이 섞인 채 기증되어 성별 구분에 주의가 요구된다. 16세기 여성의 저고리와 치마 양식이 확인되는 귀중한 자료이다.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 (安東金氏 墓 出土 衣服)
안동김씨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경기도 광주시 추월면에 위치한 김첨과 그의 딸 안동 김씨, 손부 원주 원씨 묘에서 출토된 임진왜란 전후의 유물 15점이다. 1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김첨의 묘에서는 장옷 2점과 명주 솜누비 바지, 솜이불이 수습되었다. 김첨의 딸 묘에서는 여자 미라, 관에 ‘안동김씨지구’라고 쓰인 기, 회장저고리가 출토되었다. 17세기 말의 원주 원씨 묘에서는 누비솜저고리와 치마, 속옷이 출토되었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로 복식사의 사료적 가치가 크다.
외재 이단하 내외분 옷은 조선의 문신 이단하와 그의 부인이 입었던 17세기 옷과 부속품 6점이다. 이단하의 중치막(中致莫) 1점과 그의 부인이 입었던 원삼(圓衫) 1점, 누비저고리 1점, 봉대(鳳帶) 1점, 다리 1개 등 7점이 전해졌다. 이후 다리는 분실되어 현재 6점이 보존되어 있다. 후손에 의해 전해 내려 온 전세품으로 현재 후손 이위의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다. 17세기 후반의 복식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원삼과 그 부속품은 전세 유물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후손들이 혼례 등에 실제 사용하였으며 변형의 흔적이 많다. 1965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외재 이단하 내외분 옷 (畏齋 李端夏 內外分 옷)
외재 이단하 내외분 옷은 조선의 문신 이단하와 그의 부인이 입었던 17세기 옷과 부속품 6점이다. 이단하의 중치막(中致莫) 1점과 그의 부인이 입었던 원삼(圓衫) 1점, 누비저고리 1점, 봉대(鳳帶) 1점, 다리 1개 등 7점이 전해졌다. 이후 다리는 분실되어 현재 6점이 보존되어 있다. 후손에 의해 전해 내려 온 전세품으로 현재 후손 이위의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다. 17세기 후반의 복식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원삼과 그 부속품은 전세 유물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후손들이 혼례 등에 실제 사용하였으며 변형의 흔적이 많다. 1965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문경 평산신씨 묘 출토복식은 2004년 문경시 산양면 연소리에 소재한 황지의 부인 평산신씨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복식과 염습제구 등이다. 평산신씨의 생몰년은 미상이나 16세기 말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수의단령 1점, 단령대 1점, 장옷 5점, 당저고리 2점, 장저고리 1점, 단저고리 6점, 적삼 4점, 치마 7점, 치관제구류 등으로 모두 74점이다. 2007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문경 옛길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금선단을 포함한 일부 고급 소재 직물도 있다. 16세기 문경일대의 향촌사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문경 평산신씨 묘 출토복식 (聞慶 平山申氏 墓 出土服飾)
문경 평산신씨 묘 출토복식은 2004년 문경시 산양면 연소리에 소재한 황지의 부인 평산신씨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복식과 염습제구 등이다. 평산신씨의 생몰년은 미상이나 16세기 말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수의단령 1점, 단령대 1점, 장옷 5점, 당저고리 2점, 장저고리 1점, 단저고리 6점, 적삼 4점, 치마 7점, 치관제구류 등으로 모두 74점이다. 2007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문경 옛길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금선단을 포함한 일부 고급 소재 직물도 있다. 16세기 문경일대의 향촌사까지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깃을 달지 아니한 갓난 아이의 저고리.
배냇저고리
깃을 달지 아니한 갓난 아이의 저고리.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은 1989년 곽재우의 종질부 진주하씨 묘에서 출토된 복식 유물 81점과 언간류 168점이다. 진주하씨는 곽재우의 사촌 형제 아들인 곽주의 둘째 부인이다. 1652년 언간이 확인됨에 따라 17세기 중기에 생존하였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장옷과 중치막(포), 저고리, 바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81점과 언간류 168(172)점이 있다. 복식류는 17세기의 복식사에 귀한 자료이다. 서간문들은 당시 경상도 지역의 언어와 생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93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 (晉州河氏 墓 出土 遺物)
진주하씨 묘 출토 유물은 1989년 곽재우의 종질부 진주하씨 묘에서 출토된 복식 유물 81점과 언간류 168점이다. 진주하씨는 곽재우의 사촌 형제 아들인 곽주의 둘째 부인이다. 1652년 언간이 확인됨에 따라 17세기 중기에 생존하였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장옷과 중치막(포), 저고리, 바지, 이불, 베개, 돗자리 등 81점과 언간류 168(172)점이 있다. 복식류는 17세기의 복식사에 귀한 자료이다. 서간문들은 당시 경상도 지역의 언어와 생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93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은 1980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전 박장군 묘에서 출토된 유물 33점이다. 묘주가 명확하지 않으나 유물의 종류나 형태를 통하여 17세기 전기의 묘라고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단령, 장옷, 도포, 저고리, 바지, 치마, 모자, 홑이불, 쌍상투 등이다. 지금과는 사폭의 구조가 다른 사폭바지, 다양한 깃 모양과 길이의 저고리류, 동자문만 있는 금선단 등이 특징적이다. 다른 묘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들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8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 (淸原 傳 朴將軍 墓 出土 遺物)
청원 전 박장군 묘 출토 유물은 1980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전 박장군 묘에서 출토된 유물 33점이다. 묘주가 명확하지 않으나 유물의 종류나 형태를 통하여 17세기 전기의 묘라고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단령, 장옷, 도포, 저고리, 바지, 치마, 모자, 홑이불, 쌍상투 등이다. 지금과는 사폭의 구조가 다른 사폭바지, 다양한 깃 모양과 길이의 저고리류, 동자문만 있는 금선단 등이 특징적이다. 다른 묘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유물들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8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은 1977년 충청북도 청원군 채무이의 둘째 부인인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면서 출토된 유물이다. 묘에서는 미라가 된 김씨와 함께 철릭(帖裏), 직령(直領), 저고리, 적삼 등의 상당한 의복과 185(192)점의 언간이 출토되었다. 순천김씨의 생몰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출토된 복식과 언간은 묘주가 1580년대에 사망한 인물임을 알려준다. 1979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생활문화는 물론 우리말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 (淸州 出土 順天金氏 衣服 및 簡札)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은 1977년 충청북도 청원군 채무이의 둘째 부인인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면서 출토된 유물이다. 묘에서는 미라가 된 김씨와 함께 철릭(帖裏), 직령(直領), 저고리, 적삼 등의 상당한 의복과 185(192)점의 언간이 출토되었다. 순천김씨의 생몰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출토된 복식과 언간은 묘주가 1580년대에 사망한 인물임을 알려준다. 1979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생활문화는 물론 우리말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토황색 명주저고리는 사도세자와 혜빈 홍씨의 소생인 청연군주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두벌 저고리 1점이다. 4겹의 두벌저고리 형태이다. 저고리 모양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나타나는 왕실용 여자 상의류의 특징과 같다. 보존상태, 색상변화, 조형적·구성적 특징 등에서 다른 청연군주 유물과 흡사한 특징을 보인다. 왕실과 관련된 복식류는 일부 불복장 유물을 제외하면 19∼20세기에 한정되며 수량도 미미하다. 조선후기 왕가의 복식제도나 구성, 장속을 참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토황색 명주저고리 (土黃色 明紬저고리)
토황색 명주저고리는 사도세자와 혜빈 홍씨의 소생인 청연군주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이는 두벌 저고리 1점이다. 4겹의 두벌저고리 형태이다. 저고리 모양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나타나는 왕실용 여자 상의류의 특징과 같다. 보존상태, 색상변화, 조형적·구성적 특징 등에서 다른 청연군주 유물과 흡사한 특징을 보인다. 왕실과 관련된 복식류는 일부 불복장 유물을 제외하면 19∼20세기에 한정되며 수량도 미미하다. 조선후기 왕가의 복식제도나 구성, 장속을 참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 (長興任氏 墓 出土服飾)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6년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최진(崔縝, 16세기 인물 추정) 묘와 그의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 묘 등, 3기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출토복식(出土服飾) 59점.
문경 최진 일가 묘 출토복식 (聞慶 崔縝 一家 墓 出土服飾)
2006년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에 있는 최진(崔縝, 16세기 인물 추정) 묘와 그의 부인 안동김씨(安東金氏) 묘 등, 3기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출토복식(出土服飾) 59점.
김함의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이다. 김해 김씨 문중이 선산의 묘역을 이장하던 중 출토되었다. 김함은 임진왜란 시 전사하여 나무로 시신 형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유물은 장옷 3점, 저고리 2점, 바지 2점, 모자 1점, 누비무명버선 1쌍 등이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출토 의복은 출토 복식 연구 초기에 발견된 자료로서, 특히 의리장의 장속(葬俗)은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자료로 의미가 있다.
김함의 묘 출토 의복 (金涵의 墓 出土 衣服)
김함의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이다. 김해 김씨 문중이 선산의 묘역을 이장하던 중 출토되었다. 김함은 임진왜란 시 전사하여 나무로 시신 형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유물은 장옷 3점, 저고리 2점, 바지 2점, 모자 1점, 누비무명버선 1쌍 등이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출토 의복은 출토 복식 연구 초기에 발견된 자료로서, 특히 의리장의 장속(葬俗)은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자료로 의미가 있다.
청원 구례손씨 묘 출토 유물은 1979년 충청북도 청원군 구례손씨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전기의 복식 유물 15점이다. 구례손씨의 생몰년은 미상이나 남편 변유인과의 연령차, 유물의 형태적 특징으로 보아 17세기 전기로 추정된다. 유물에는 중치막 1점과 장옷 1점, 저고리 3점, 바지 2점, 족두리 3점 등이 있다. 저고리를 통해 목판깃에서 목판당코깃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처음 확인할 수 있다. 출토된 족두리 유물 중 최초로 발굴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17세기 전기의 복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원 구례손씨 묘 출토 유물 (淸原 求禮孫氏 墓 出土 遺物)
청원 구례손씨 묘 출토 유물은 1979년 충청북도 청원군 구례손씨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전기의 복식 유물 15점이다. 구례손씨의 생몰년은 미상이나 남편 변유인과의 연령차, 유물의 형태적 특징으로 보아 17세기 전기로 추정된다. 유물에는 중치막 1점과 장옷 1점, 저고리 3점, 바지 2점, 족두리 3점 등이 있다. 저고리를 통해 목판깃에서 목판당코깃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처음 확인할 수 있다. 출토된 족두리 유물 중 최초로 발굴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17세기 전기의 복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동의대(胴衣襨)는 왕실에서 쓰이던, 왕과 왕세자의 저고리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위에는 동의대를 입고 아래에는 봉지를 입었다. 왕실발기에 소창의에 해당하는 장의대(長衣襨)라는 옷이 동의대와 함께 기록된 것에서 동의대가 저고리임을 알 수 있다. 왕실의 발기에는 대부분 한글 명칭 ‘동의ᄃᆡ’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자어 ‘彤衣襨’, ‘同衣襨’, ‘胴衣襨’도 일부 있다. 일반 왕자는 ‘동의복’ 또는 ‘저고리’로 표기하여 차별을 두었다.
동의대 (胴衣襨)
동의대(胴衣襨)는 왕실에서 쓰이던, 왕과 왕세자의 저고리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위에는 동의대를 입고 아래에는 봉지를 입었다. 왕실발기에 소창의에 해당하는 장의대(長衣襨)라는 옷이 동의대와 함께 기록된 것에서 동의대가 저고리임을 알 수 있다. 왕실의 발기에는 대부분 한글 명칭 ‘동의ᄃᆡ’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자어 ‘彤衣襨’, ‘同衣襨’, ‘胴衣襨’도 일부 있다. 일반 왕자는 ‘동의복’ 또는 ‘저고리’로 표기하여 차별을 두었다.
「대길이네 개와 밧 담뷔」는 1913년 1월 『붉은 저고리』 창간호에 게재된 우리나라 최초의 네칸만화이다. ‘다음엇지’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만화작품이며, 작자는 미상이다. 칸과 칸 사이의 연상작용을 통한 이야기의 연속성이라는 코믹스 만화의 취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길이네 개와 밧 담뷔
「대길이네 개와 밧 담뷔」는 1913년 1월 『붉은 저고리』 창간호에 게재된 우리나라 최초의 네칸만화이다. ‘다음엇지’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만화작품이며, 작자는 미상이다. 칸과 칸 사이의 연상작용을 통한 이야기의 연속성이라는 코믹스 만화의 취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백범 김구 혈의 일괄(白凡 金九 血衣 一括)은 백범 김구가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했던 당시 착용하였던 복식이다. 백범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사저인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가 쏜 총탄에 암살 당했다. 혈의 일괄은 조끼적삼(1점), 저고리(1점), 조끼(1점), 개량속고의(1점), 바지(1점), 대님(2점), 양말(2점) 및 개량토시(1점) 등 일괄 8종 10점이다. 혈흔과 탄흔이 있어 서거 당시의 상황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다.
백범 김구 혈의 일괄 (白凡 金九 血衣 一括)
백범 김구 혈의 일괄(白凡 金九 血衣 一括)은 백범 김구가 육군 소위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했던 당시 착용하였던 복식이다. 백범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사저인 서울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가 쏜 총탄에 암살 당했다. 혈의 일괄은 조끼적삼(1점), 저고리(1점), 조끼(1점), 개량속고의(1점), 바지(1점), 대님(2점), 양말(2점) 및 개량토시(1점) 등 일괄 8종 10점이다. 혈흔과 탄흔이 있어 서거 당시의 상황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다.
저항라 적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저마사로 제직한 항라를 옷감으로 하여 만든 속저고리 또는 여름용 홑저고리이다. 옷감 이름 중의 하나인 저항라라는 명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문헌에 나타난다. 그런데 현재까지 알려진 저항라 실증 유물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서 소장한 남성용 소색 적삼의 옷감으로 사용된 한 점뿐이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이 저항라 적삼은 문헌에만 남아 있었던 저항라라는 옷감이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증명하는 유물로서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2014년에 국가 등록 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저항라 적삼 (紵亢羅 적삼)
저항라 적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저마사로 제직한 항라를 옷감으로 하여 만든 속저고리 또는 여름용 홑저고리이다. 옷감 이름 중의 하나인 저항라라는 명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문헌에 나타난다. 그런데 현재까지 알려진 저항라 실증 유물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서 소장한 남성용 소색 적삼의 옷감으로 사용된 한 점뿐이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이 저항라 적삼은 문헌에만 남아 있었던 저항라라는 옷감이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증명하는 유물로서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2014년에 국가 등록 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