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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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대통령수석정무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행정가, 경제관료.
김학렬 (金鶴烈)
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대통령수석정무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행정가, 경제관료.
철기는 철기시대 이후 인류가 철을 소재로 만든 도구, 무기, 기구의 총체이다. 인류는 서기전 2,000년부터 인공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이후 동서양으로 철기 생산 기술이 확산되며,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형성한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서기전 3세기대 전국계 철기의 유입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낙동강 유역 내 철기 생산 기술의 보유는 이후 신라, 가야로 이어지는 철기 문화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철기 (鐵器)
철기는 철기시대 이후 인류가 철을 소재로 만든 도구, 무기, 기구의 총체이다. 인류는 서기전 2,000년부터 인공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이후 동서양으로 철기 생산 기술이 확산되며,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형성한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서기전 3세기대 전국계 철기의 유입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낙동강 유역 내 철기 생산 기술의 보유는 이후 신라, 가야로 이어지는 철기 문화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숯가마는 숯을 구워내기 위하여 흙이나 돌로 쌓아 만든 가마이다. 목탄가마 또는 탄요라고도 한다. 숯은 목재가 불에 타서 생성되는데 제철을 비롯하여 난방, 취사, 조명 등 사회 전반에 사용되는 필수품이다. 제철에 필요한 양질의 목탄을 생산하는 백탄요는 피리형가마, 측구부탄요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원삼국시대 후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인된다. 백탄요보다 훨씬 많은 수가 확인되는 흑탄요는 말각장방형, 타원형, 선형, 역삼각형, 역사다리꼴형, 세장방형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숯을 생산하는 가마는 생활과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숯가마
숯가마는 숯을 구워내기 위하여 흙이나 돌로 쌓아 만든 가마이다. 목탄가마 또는 탄요라고도 한다. 숯은 목재가 불에 타서 생성되는데 제철을 비롯하여 난방, 취사, 조명 등 사회 전반에 사용되는 필수품이다. 제철에 필요한 양질의 목탄을 생산하는 백탄요는 피리형가마, 측구부탄요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원삼국시대 후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인된다. 백탄요보다 훨씬 많은 수가 확인되는 흑탄요는 말각장방형, 타원형, 선형, 역삼각형, 역사다리꼴형, 세장방형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숯을 생산하는 가마는 생활과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야철지는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이다. 제철유적이라고도 부른다. 작업 공정에 따라 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등으로 구분된다. 초기 야철지는 해안가나 경주를 비롯한 도성 주변에 위치하였으나 점차 철광산을 중심으로 생산유적이 옮겨졌다. 철소가 설치된 충주 등 여러 지역에서 철광석보다는 사철을 많이 이용하여 철을 생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철을 공납물로 진상하게 되면서 철을 생산하는 철장을 설치하였다. 철기 생산 기술과 철기문화의 변화상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야철지 (冶鐵址)
야철지는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이다. 제철유적이라고도 부른다. 작업 공정에 따라 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등으로 구분된다. 초기 야철지는 해안가나 경주를 비롯한 도성 주변에 위치하였으나 점차 철광산을 중심으로 생산유적이 옮겨졌다. 철소가 설치된 충주 등 여러 지역에서 철광석보다는 사철을 많이 이용하여 철을 생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철을 공납물로 진상하게 되면서 철을 생산하는 철장을 설치하였다. 철기 생산 기술과 철기문화의 변화상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인천광역시 남구 학익동에 있는 시립박물관.
송암미술관 (松巖美術館)
인천광역시 남구 학익동에 있는 시립박물관.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서 금속을 만드는 가마.
제련로 (製鍊爐)
높은 온도로 광석을 녹여서 금속을 만드는 가마.
철박물관은 충청북도 음성군에 위치한 철 전문 박물관이다. 철이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과 유기적 관계를 나타내는 유무형의 유산을 수집·보존·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세연문화재단이 '세연제철자료관'으로 개관하였다. 2002년부터 전통 제철 기술 복원 실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제철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상설 전시로 운석과 철의 제련, 세계의 기술 발달 연표, 민속자료 등이 있다. 야외에는 조선 후기 제철유적인 경주 용명리 제철로가 이전 복원되어 있다. 철관련 고금의 자료수집과 보존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철박물관 (鐵博物館)
철박물관은 충청북도 음성군에 위치한 철 전문 박물관이다. 철이 인류문명에 끼친 영향과 유기적 관계를 나타내는 유무형의 유산을 수집·보존·연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0년 세연문화재단이 '세연제철자료관'으로 개관하였다. 2002년부터 전통 제철 기술 복원 실험을 실시하고 있으며, 제철 유적지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상설 전시로 운석과 철의 제련, 세계의 기술 발달 연표, 민속자료 등이 있다. 야외에는 조선 후기 제철유적인 경주 용명리 제철로가 이전 복원되어 있다. 철관련 고금의 자료수집과 보존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화성기안동유적(華城旗安洞遺蹟)은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의 철과 노, 가마가 확인된 제철유적이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조사한 이 유적에서는 철을 생산하는 공정에 사용된 송풍관이 출토되었는데, 낙랑 제도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량의 낙랑계 토기가 수습되어 낙랑 이주민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목탄요도 확인되어 철(철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의 수급 관계를 알 수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는 송풍관의 제작 방법이 이전 발굴 유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장인 집단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성 기안동 유적 (華城 旗安洞 遺蹟)
화성기안동유적(華城旗安洞遺蹟)은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의 철과 노, 가마가 확인된 제철유적이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조사한 이 유적에서는 철을 생산하는 공정에 사용된 송풍관이 출토되었는데, 낙랑 제도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량의 낙랑계 토기가 수습되어 낙랑 이주민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목탄요도 확인되어 철(철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의 수급 관계를 알 수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는 송풍관의 제작 방법이 이전 발굴 유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장인 집단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국가축구대표팀 감독, 대우 프로축구팀 감독 등을 역임한 체육인.
조윤옥 (趙壽玉)
해방 이후 국가축구대표팀 감독, 대우 프로축구팀 감독 등을 역임한 체육인.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태완선 (太完善)
국회의원, 건설부장관, 부총리, 대한석탄공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조선시대 철과 철기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 철기생산유적.
금곡동 제철 유적 (金谷洞 製鐵 遺蹟)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조선시대 철과 철기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 철기생산유적.
충주칠금동야철유적(忠州漆琴洞冶鐵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정만이 확인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제련로는 30여 기에 달해 국내 최대 유적이다. 용광로를 만들 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땅을 깊게 파고 바닥과 측면에 목재를 빽빽하게 채운 후 그 위로 노를 조성한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칠금동식 제련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충주 칠금동 야철유적 (忠州 漆琴洞 冶鐵遺蹟)
충주칠금동야철유적(忠州漆琴洞冶鐵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정만이 확인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제련로는 30여 기에 달해 국내 최대 유적이다. 용광로를 만들 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땅을 깊게 파고 바닥과 측면에 목재를 빽빽하게 채운 후 그 위로 노를 조성한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칠금동식 제련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재령광산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과 삼강면에 걸쳐 있는 철광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광산으로,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된 규모가 큰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쓰비시광업이 관리하였으며, 생산된 철은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초기에는 노천채굴 방식이었으나, 깊이가 깊어지면서 트럭 리프트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재령광산은 북한의 주요 철광산 중 하나로, 해방 이후부터는 생산된 철광석을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재령광산은 규모 면에서 무산광산, 풍산광산, 단천광산, 은율광산 다음으로 크다.
재령광산 (載寧鑛山)
재령광산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과 삼강면에 걸쳐 있는 철광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광산으로,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된 규모가 큰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쓰비시광업이 관리하였으며, 생산된 철은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초기에는 노천채굴 방식이었으나, 깊이가 깊어지면서 트럭 리프트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재령광산은 북한의 주요 철광산 중 하나로, 해방 이후부터는 생산된 철광석을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재령광산은 규모 면에서 무산광산, 풍산광산, 단천광산, 은율광산 다음으로 크다.
포항철강산업단지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일대에 있는 산업단지이다. 세계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와의 접근성을 겨냥하여 철강과 관련된 업종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포항철강산업단지는 1단지, 2단지, 3단지, 4단지와 청림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1970~1972년, 1978~1992년, 1990~1994년, 2003~2006년, 1974~1977년에 조성되었다. 총면적은 13.183㎢이고, 2024년 4월 기준으로 359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포항철강산업단지 (浦項鐵鋼産業團地)
포항철강산업단지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일대에 있는 산업단지이다. 세계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와의 접근성을 겨냥하여 철강과 관련된 업종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포항철강산업단지는 1단지, 2단지, 3단지, 4단지와 청림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1970~1972년, 1978~1992년, 1990~1994년, 2003~2006년, 1974~1977년에 조성되었다. 총면적은 13.183㎢이고, 2024년 4월 기준으로 359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함안 월촌리 야철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시대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제철유적이다. 시굴 조사 결과 조사지역에서 제철 행위가 이루어졌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량의 슬래그가 출토되어 조사지역 인근에서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 사례가 많지 않은 고려시대 철 생산지 자료로서 함안 지역은 물론 중세 제철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함안 월촌리 야철지 (咸安 月村里 冶鐵址)
함안 월촌리 야철지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에 있는 고려시대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제철유적이다. 시굴 조사 결과 조사지역에서 제철 행위가 이루어졌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량의 슬래그가 출토되어 조사지역 인근에서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 사례가 많지 않은 고려시대 철 생산지 자료로서 함안 지역은 물론 중세 제철 관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박태준은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하여 이후 대한중석(지금의 대구텍) 사장, 포항종합제철(지금의 포스코) 초대 사장,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을 역임한 군인, 기업가, 정치인이다. 194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한 뒤 한국의 철강산업 확립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81년 민주정의당 소속 제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제13대 국회의원과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 1997년 지유민주연합 총재,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이후 포스코 명예회장과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박태준 (朴泰俊)
박태준은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하여 이후 대한중석(지금의 대구텍) 사장, 포항종합제철(지금의 포스코) 초대 사장,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을 역임한 군인, 기업가, 정치인이다. 194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한 뒤 한국의 철강산업 확립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81년 민주정의당 소속 제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제13대 국회의원과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 1997년 지유민주연합 총재,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이후 포스코 명예회장과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1958년부터 1969년까지 수립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여러 계획을 지칭한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문서상의 계획 단계, 일회성 계약의 단계, 협상을 통해 계약을 발전시킨 단계, 실제 사업으로 현실화된 단계를 밟아왔다. 결국 한국은 1969년에 신사업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한 후 일본의 협력을 도출하여 103만 톤 규모의 포항 제철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종합제철사업계획 (綜合製鐵事業計劃)
종합제철사업계획은 1958년부터 1969년까지 수립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여러 계획을 지칭한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문서상의 계획 단계, 일회성 계약의 단계, 협상을 통해 계약을 발전시킨 단계, 실제 사업으로 현실화된 단계를 밟아왔다. 결국 한국은 1969년에 신사업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한 후 일본의 협력을 도출하여 103만 톤 규모의 포항 제철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소는 1970~1983년에 경상북도 포항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일관 제철소이다. 포항제철소는 1기, 2기, 3기, 4기, 4기 2차 사업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91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을 매개로 포항제철은 세계 11위의 철강 업체로 부상했으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중화학공업화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소 (浦項製鐵所)
포항제철소는 1970~1983년에 경상북도 포항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일관 제철소이다. 포항제철소는 1기, 2기, 3기, 4기, 4기 2차 사업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91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을 매개로 포항제철은 세계 11위의 철강 업체로 부상했으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중화학공업화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광양제철소는 1985~1992년에 전라남도 광양시에 건설된 일관 제철소이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색된 제2 종합 제철 사업은 사업 주체를 포항제철, 입지를 광양으로 삼았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1,14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된 1992년에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업체로 떠올랐다.
광양제철소 (光陽製鐵所)
광양제철소는 1985~1992년에 전라남도 광양시에 건설된 일관 제철소이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색된 제2 종합 제철 사업은 사업 주체를 포항제철, 입지를 광양으로 삼았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1,14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된 1992년에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업체로 떠올랐다.
김재관은 철강, 자동차 등 우리나라 중공업의 발전 방안을 제시한 과학자이자 기술 관료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실장, 초대 중공업 차관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대 소장 등을 역임했다. 김재관은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의 모태가 된 신사업 계획의 작성을 주도했고, 고유 모델 자동차의 추진과 국가 표준 제도의 법제화에 크게 기여했다.
김재관 (金在官)
김재관은 철강, 자동차 등 우리나라 중공업의 발전 방안을 제시한 과학자이자 기술 관료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실장, 초대 중공업 차관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대 소장 등을 역임했다. 김재관은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의 모태가 된 신사업 계획의 작성을 주도했고, 고유 모델 자동차의 추진과 국가 표준 제도의 법제화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