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제헌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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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2·8독립선언을 주도하였고, 조선일보 영업국장, 동아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국회의원, 초대 법제사법위원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백관수 (白寬洙)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2·8독립선언을 주도하였고, 조선일보 영업국장, 동아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국회의원, 초대 법제사법위원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장, 제헌국회 국회법제정 기초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농민운동가.
서정희 (徐廷禧)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장, 제헌국회 국회법제정 기초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농민운동가.
서우석은 일제강점기 때 호남은행 촉탁, 해남흥산주식회사 지배인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민주당 고문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89년 전남 광주 출생으로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신간회 광주지회 회원, 광주상민대회 집행위원, 호남은행 촉탁, 해남흥산 지배인 등을 지냈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 위원, 한국민주당 광주지부 총무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퇴임 후에도 국민장위원회 위원과 민주당 창당 준비위원, 민주당 감찰위원, 민주당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서우석 (徐禹錫)
서우석은 일제강점기 때 호남은행 촉탁, 해남흥산주식회사 지배인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민주당 고문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89년 전남 광주 출생으로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신간회 광주지회 회원, 광주상민대회 집행위원, 호남은행 촉탁, 해남흥산 지배인 등을 지냈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부 위원, 한국민주당 광주지부 총무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퇴임 후에도 국민장위원회 위원과 민주당 창당 준비위원, 민주당 감찰위원, 민주당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배헌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운동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만주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고국에 입국해 지하활동을 전개했다. 1927년부터 신간회 운동을 전개하고, 1931년 이리야구협회 창립과 함께 부회장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8월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대한국민당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1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배헌 (裵憲)
배헌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운동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만주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후 고국에 입국해 지하활동을 전개했다. 1927년부터 신간회 운동을 전개하고, 1931년 이리야구협회 창립과 함께 부회장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8월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대한국민당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1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문시환은 일제강점기 국민대표회 개조파 간부, 의열단 군자금 모집요원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897년 부산 출생 독립운동가로 만주와 상해에서 활동하며 의열단에 입단해 무장투쟁에 참여했다. 1923년 국내에서 활동을 전개하다가 제2차 의열단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해방 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근로자 권익과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했다. 1948년 초대 경상남도 도지사로 임명되었으나, 이승만의 사퇴 종용으로 사임했다. 1973년 사망하였으며, 1995년 정부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문시환 (文時煥)
문시환은 일제강점기 국민대표회 개조파 간부, 의열단 군자금 모집요원 등으로 활동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897년 부산 출생 독립운동가로 만주와 상해에서 활동하며 의열단에 입단해 무장투쟁에 참여했다. 1923년 국내에서 활동을 전개하다가 제2차 의열단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해방 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근로자 권익과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했다. 1948년 초대 경상남도 도지사로 임명되었으나, 이승만의 사퇴 종용으로 사임했다. 1973년 사망하였으며, 1995년 정부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송필만은 일제강점기 때, 이승만 지지 세력 규합을 위해 힘쓰던 정치인이다. 1890년 충북 진천 출생으로 일본 유학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미국 유학을 전후로 하와이와 워싱턴에서 이승만을 도왔다. 해방 후 이승만 비서로 근무하며 신탁통치반대운동을 벌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지방부 부장, 민주당 중앙상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한국민주당 후보로 충북 진천군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5·16군사정변 후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다가 1963년 해금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 지지 성명 발표에 참여하였으며, 1978년 사망하였다.
송필만 (宋必滿)
송필만은 일제강점기 때, 이승만 지지 세력 규합을 위해 힘쓰던 정치인이다. 1890년 충북 진천 출생으로 일본 유학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미국 유학을 전후로 하와이와 워싱턴에서 이승만을 도왔다. 해방 후 이승만 비서로 근무하며 신탁통치반대운동을 벌였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지방부 부장, 민주당 중앙상무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한국민주당 후보로 충북 진천군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5·16군사정변 후 정치활동을 금지당했다가 1963년 해금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 지지 성명 발표에 참여하였으며, 1978년 사망하였다.
제헌국회의원, 내무부차관, 자유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홍범희 (洪範憙)
제헌국회의원, 내무부차관, 자유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복역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을 역임한 정치인.
이구수 (李龜洙)
국회의원을 역임하였으며,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복역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협의회 상무위원을 역임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교통부 교통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배영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을 역임한 의사·정치인·독립운동가.
이범교 (李範敎)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교통부 교통위원으로 활동하다가 배영학교와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을 역임한 의사·정치인·독립운동가.
제헌국회의원, 전라북도도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이요한 (李要漢)
제헌국회의원, 전라북도도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재판관, 제3·4·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정준 (鄭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재판관, 제3·4·5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국회의원, 강원도지사,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최헌길 (崔獻吉)
국회의원, 강원도지사, 경기도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진주에서 만세시위를 주동하고 청년운동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이강우 (李康雨)
일제강점기 때, 진주에서 만세시위를 주동하고 청년운동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종선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 서울 천도교 홍제소년군 단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운동과 빈민구제활동에 참여한 정치인·기업인이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세브란스의약품주식회사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 출생으로,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후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을 역임하며 대자산가이자 전라도 대지주가 되었다.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교육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으며,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였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산업노동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피살되었다.
김종선 (金鍾善)
김종선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 서울 천도교 홍제소년군 단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운동과 빈민구제활동에 참여한 정치인·기업인이다.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세브란스의약품주식회사 대표 등을 역임하였다. 1900년 출생으로,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후 조선식산신탁회사 부사장을 역임하며 대자산가이자 전라도 대지주가 되었다.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교육운동과 소년운동을 이끌었으며, 다양한 구제 활동을 벌였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국회 산업노동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중 피살되었다.
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김익노 (金益魯)
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세화당 제육지식회사 대표 취체역, 국회의원, 국회 산업노동분야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이진수 (李鎭洙)
세화당 제육지식회사 대표 취체역, 국회의원, 국회 산업노동분야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
제헌국회의원, 국회 상공위원장, 여수시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황병규 (黃炳珪)
제헌국회의원, 국회 상공위원장, 여수시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상해군정서 전북군무총장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 정치인이다. 1888년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마령면 평지리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1921년 조선독립군 청년단 의용군을 조직하다가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진안군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9년 7월 대한노농당 소속으로 대한국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오기열 (吳基烈)
일제강점기 때 상해군정서 전북군무총장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 정치인이다. 1888년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마령면 평지리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1921년 조선독립군 청년단 의용군을 조직하다가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진안군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9년 7월 대한노농당 소속으로 대한국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국회의원, 국회법기초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
이원홍 (李源弘)
국회의원, 국회법기초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
제헌의원, 민정당 선전국장, 국민당 정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이정래 (李晶來)
제헌의원, 민정당 선전국장, 국민당 정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