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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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사건은 1942년 10월부터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검거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만주사변 후 일제가 조선민족 말살을 위해 조선어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중에도 조선어학회는 민족정신의 상징인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편찬작업에 참가 중이던 교사 정태진을 취조하던 중에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낸 일제는 조선민족 노예화에 방해가 되는 단체를 해산시킬 꼬투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어학회 핵심 관련자들을 내란죄로 검거·기소함으로써 학회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조선어학회 사건 (朝鮮語學會 事件)
조선어학회사건은 1942년 10월부터 일제가 조선어학회 회원 및 관련 인물을 검거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이다. 만주사변 후 일제가 조선민족 말살을 위해 조선어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중에도 조선어학회는 민족정신의 상징인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편찬작업에 참가 중이던 교사 정태진을 취조하던 중에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낸 일제는 조선민족 노예화에 방해가 되는 단체를 해산시킬 꼬투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선어학회 핵심 관련자들을 내란죄로 검거·기소함으로써 학회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1935년 정인섭이 고안한 조선어음의 국제음성기호 표기법. 조선어음의국제음성부호표기법·조선어음의만국음성부호표기.
조선어음만국음성기호표기법 (朝鮮語音萬國音聲記號表記法)
1935년 정인섭이 고안한 조선어음의 국제음성기호 표기법. 조선어음의국제음성부호표기법·조선어음의만국음성부호표기.
일제강점기 때, 『큰 사전』 편찬 전문위원, 내명학교 교장, 경안중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한글학자.
강병주 (姜炳周)
일제강점기 때, 『큰 사전』 편찬 전문위원, 내명학교 교장, 경안중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한글학자.
1935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김문준 등이 재일 조선인을 대상으로 창간한 한국어 신문.
민중시보 (民衆時報)
1935년에, 일본 오사카에서 김문준 등이 재일 조선인을 대상으로 창간한 한국어 신문.
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일 (朴一)
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김도연 (金度演)
김도연은 일제강점기 2·8독립운동, 조선어학회사건 등과 관련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4년 경기도 양천군 출생으로 1919년 게이오 대학 이재학부를 수료했다. 유학 시절 2·8독립운동을 주도하다 9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미국 유학 후 1931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인사회의 발전과 해외동포 구제를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6년 이후 다수의 의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91년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김석형 (金錫亨)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시대일보사, 중외일보사를 설립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고, 조선어사전편찬회에 재정을 지원한 독립운동가.
이우식 (李祐植)
일제강점기 때, 시대일보사, 중외일보사를 설립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고, 조선어사전편찬회에 재정을 지원한 독립운동가.
1931년 국문학자 김태준의 한국한문학사에 관한 학술서.
조선한문학사 (朝鮮漢文學史)
1931년 국문학자 김태준의 한국한문학사에 관한 학술서.
조지훈(趙芝薰)은 해방 이후 『청록집』, 『풀잎단장』, 『역사앞에서』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1939년 잡지 『문장(文章)』에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 「승무」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또한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 제6권을 기획 및 출간하는 등 한국학의 기틀을 마련한 국문학자이다.
조지훈 (趙芝薰)
조지훈(趙芝薰)은 해방 이후 『청록집』, 『풀잎단장』, 『역사앞에서』 등을 저술한 시인이자 국문학자이다. 1939년 잡지 『문장(文章)』에 추천을 받아 「고풍의상」, 「승무」 등을 발표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1942년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위원이 되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심문을 받고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에서 지냈다. 또한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한국문화사대계(韓國文化史大系)』 제6권을 기획 및 출간하는 등 한국학의 기틀을 마련한 국문학자이다.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점자 (點字)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한글학회는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세운 민족학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의 시초인 ‘가갸날’로 정하였다. 1928년에 착수한 『큰사전』 편찬 작업을 28년 만인 1957년 마무리 하였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41년에는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간행하였다. 광복을 맞은 후에는 교과서를 편찬·보급하였으며, 국어 교사를 양성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말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글학회 (한글學會)
한글학회는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이다.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세운 민족학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인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의 시초인 ‘가갸날’로 정하였다. 1928년에 착수한 『큰사전』 편찬 작업을 28년 만인 1957년 마무리 하였다.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1941년에는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간행하였다. 광복을 맞은 후에는 교과서를 편찬·보급하였으며, 국어 교사를 양성하였다. 광복 후에는 한글문화를 보급하고, 우리 말글의 선양 사업을 펼치고 있다.
『조선관역어』는 15세기 말경 회동관의 통사들이 사용한 한·한대역 어휘집이다.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중국 관청인 회동관에서 통역관의 교육을 위해 만든 조선어 교재이다. 중국어와 인근 국가 언어의 대역 어휘집인 세 종류 『화이역어』 중 병종(丙種)에 속해 있다. 『화이역어』의 각 항목은 중국어 의미와 음역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의 한국 한자음을 추가한 3단 구성은 이 어휘집에서만 보이는 특징이다. 이 어휘집의 국어 표기는 고어의 모습을 잘 보여주어 역사 언어학적 가치가 크다. 현재 런던대학본, 하노이본, 아와노쿠니분코본, 이나바 기미야마본, 미토쇼코칸본이 전한다.
조선관역어 (朝鮮館驛語)
『조선관역어』는 15세기 말경 회동관의 통사들이 사용한 한·한대역 어휘집이다.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중국 관청인 회동관에서 통역관의 교육을 위해 만든 조선어 교재이다. 중국어와 인근 국가 언어의 대역 어휘집인 세 종류 『화이역어』 중 병종(丙種)에 속해 있다. 『화이역어』의 각 항목은 중국어 의미와 음역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의 한국 한자음을 추가한 3단 구성은 이 어휘집에서만 보이는 특징이다. 이 어휘집의 국어 표기는 고어의 모습을 잘 보여주어 역사 언어학적 가치가 크다. 현재 런던대학본, 하노이본, 아와노쿠니분코본, 이나바 기미야마본, 미토쇼코칸본이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물산장려회,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특별재정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신현모 (申鉉謨)
일제강점기 때, 조선물산장려회,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특별재정위원,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재일조선인 김호영이 국문으로 1934년에 창간한 신문. 재일조선인신문.
도쿄조선민보 (Tôkyô[東京]朝鮮民報)
재일조선인 김호영이 국문으로 1934년에 창간한 신문. 재일조선인신문.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서 재일조선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1936년에 창간한 신문.
조선신문 (朝鮮新聞)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서 재일조선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1936년에 창간한 신문.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한신교육사건 (阪神敎育事件)
한신교육사건은 1948년 전후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전개된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운동이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조선인을 위한 국어강습소는 1946년 전국에 500여 개, 학생 수는 6만 명에 달했다. 1947년 GHQ(연합국 군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재일조선인도 일본의 교육법에 따르도록 지시했고, 이를 어기는 학교는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야마구치현 지사가 1948년 3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한다고 통고를 하자 수많은 조선인이 현청 앞에서 투쟁했다. 이 사건을 기념하여 재일본조선인연맹은 4월 24일을 우리말, 우리글을 지킨 ‘교육투쟁 기념일’로 정했다.
조선어학회에서 중등학교의 국어 교육을 위하여 1946년 9월 ~ 1947년 5월 어간에 발행한 교과서이다. 광복 직후의 중학교 6년 과정(초급중학 3년, 고급중학 3년) 학제에 적용된 바로서, 조선어학회가 저작하고 미군정청 학무국이 발행하였다. 상권은 174쪽에 53개과, 중권은 204쪽에 40개과, 하권은 180쪽에 28개과로 편제되어 있다. 3책 모두 각 단원 끝에 「익힘」을 제시하여 학습 내용을 복습하도록 하였는데, 이와 같은 방식은 광복 후의 교과서들 중에서 처음이다. 저명한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정서와 지적 개발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중등국어교본 (中等國語敎本)
조선어학회에서 중등학교의 국어 교육을 위하여 1946년 9월 ~ 1947년 5월 어간에 발행한 교과서이다. 광복 직후의 중학교 6년 과정(초급중학 3년, 고급중학 3년) 학제에 적용된 바로서, 조선어학회가 저작하고 미군정청 학무국이 발행하였다. 상권은 174쪽에 53개과, 중권은 204쪽에 40개과, 하권은 180쪽에 28개과로 편제되어 있다. 3책 모두 각 단원 끝에 「익힘」을 제시하여 학습 내용을 복습하도록 하였는데, 이와 같은 방식은 광복 후의 교과서들 중에서 처음이다. 저명한 작가와 작품들을 소개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정서와 지적 개발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가 초·중등학교용 우리말 교재 편찬 방침과 지도 방법을 안내하기 위하여 1945년에 편찬한 지침서. 교사용지침서.
초등 국어 교본 한글 교수 지침 (初等 國語 敎本 한글 敎授 指針)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가 초·중등학교용 우리말 교재 편찬 방침과 지도 방법을 안내하기 위하여 1945년에 편찬한 지침서. 교사용지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