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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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UN) 중국대표권 문제는 유엔에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구를 중국 대표 정부로 할 것인지를 놓고 발생한 문제이다. 1949년 국공내전으로 인해 중국이 두 정부로 분단되면서 유엔에서 중국대표권 문제가 야기되었다. 장제스의 중화민국과 중국본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가 중국의 대표권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였다. 1971년까지 공산주의를 반대한 서방국가들에 의해 중화민국이 대표권을 가졌다. 그러나 1971년 10월 유엔 결의에 따라, 중화민국은 유엔에서 대표권을 잃고 탈퇴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대표권을 얻게 되었다.
국제연합(UN) 중국대표권 문제 (國際聯合(UN) 中國代表權 問題)
국제연합(UN) 중국대표권 문제는 유엔에서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구를 중국 대표 정부로 할 것인지를 놓고 발생한 문제이다. 1949년 국공내전으로 인해 중국이 두 정부로 분단되면서 유엔에서 중국대표권 문제가 야기되었다. 장제스의 중화민국과 중국본토를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 중 누가 중국의 대표권을 가질 것인가의 문제였다. 1971년까지 공산주의를 반대한 서방국가들에 의해 중화민국이 대표권을 가졌다. 그러나 1971년 10월 유엔 결의에 따라, 중화민국은 유엔에서 대표권을 잃고 탈퇴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대표권을 얻게 되었다.
마준은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과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검거된 후 옥중에서 변절하면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 특무로 활동하였다.
마준 (馬駿)
마준은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 조직부장과 중국공산당 동만특별위원회 위원 겸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를 역임하였다. 검거된 후 옥중에서 변절하면서 만주국 헌병대 분재소 특수사업반 반장과 헌병대 특무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대한정의군정사 (大韓正義軍政司)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제1지대장 및 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58년 사망했다. 1919년에 의열단을 조직하여 요인 암살, 국내 경찰서 폭파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이끌었다. 이후 중국 국민당의 북벌에 합류했으며, 한국민족혁명당 조직,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 조선의용대 편성 등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임시정부의 군사부분 주요직을 역임했고 해방 후에는 좌우합작에 주력했다. 여운형 암살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국가검열상, 내각노동상 등을 역임하다 1958년 숙청당했다.
김원봉 (金元鳳)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제1지대장 및 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58년 사망했다. 1919년에 의열단을 조직하여 요인 암살, 국내 경찰서 폭파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이끌었다. 이후 중국 국민당의 북벌에 합류했으며, 한국민족혁명당 조직,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 조선의용대 편성 등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임시정부의 군사부분 주요직을 역임했고 해방 후에는 좌우합작에 주력했다. 여운형 암살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국가검열상, 내각노동상 등을 역임하다 1958년 숙청당했다.
「금강취유기」는 작자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금강산 취유정에 사는 정덕현이 선계의 노인에게 받은 옥소를 인연으로 광풍에 실려온 소계월과 혼인한다. 흩어진 소계월의 가족이 다시 모이는 과정에서 부귀영화를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옥소전」·「옥소기연」과 「월봉기」·「월봉산기」·「소운전」·「소학사전」 등과 관련성이 있으며 신소설 문체로 개작한 「봉황금」, 최근에 소개된 「조봉추전」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있다. 중국 소설 「소지현나합재삼」을 바탕으로 새로운 읽을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금강취유기 (金剛聚遊記)
「금강취유기」는 작자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금강산 취유정에 사는 정덕현이 선계의 노인에게 받은 옥소를 인연으로 광풍에 실려온 소계월과 혼인한다. 흩어진 소계월의 가족이 다시 모이는 과정에서 부귀영화를 얻게 되는 이야기이다. 「옥소전」·「옥소기연」과 「월봉기」·「월봉산기」·「소운전」·「소학사전」 등과 관련성이 있으며 신소설 문체로 개작한 「봉황금」, 최근에 소개된 「조봉추전」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있다. 중국 소설 「소지현나합재삼」을 바탕으로 새로운 읽을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 임시정부 선전위원회 선전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입법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박건웅 (朴健雄)
일제강점기 때,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 임시정부 선전위원회 선전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입법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개모성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 탑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고구려 개모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요동 평원에서 천산산맥을 넘어가는 입구에 해당되는 곳으로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전체 둘레 1km 이하의 작은 규모이지만, 성내에서 주춧돌 및 고구려 기와가 다수 발견되는 등 지방 통치의 거점 성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개모성 (蓋牟城)
개모성은 중국 요령성 심양시 소가둔 탑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고구려 개모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요동 평원에서 천산산맥을 넘어가는 입구에 해당되는 곳으로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전체 둘레 1km 이하의 작은 규모이지만, 성내에서 주춧돌 및 고구려 기와가 다수 발견되는 등 지방 통치의 거점 성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사실이 중국에 잘못 알려질 경우 이를 해명 또는 정정하기 위하여 보내는 특별사절 또는 그 사신.
변무사 (辨誣使)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중요사실이 중국에 잘못 알려질 경우 이를 해명 또는 정정하기 위하여 보내는 특별사절 또는 그 사신.
김철산은 일제강점기 중국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7년 중국 광저우에서 소비에트 건립을 목적으로 발생한 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왕우구지부, 연화현위원회, 의란구위원회, 화룡현위원회 등의 서기를 지냈다.
김철산 (金鐵山)
김철산은 일제강점기 중국공산당 화룡현위원회 서기를 지낸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7년 중국 광저우에서 소비에트 건립을 목적으로 발생한 봉기에 참가하였다가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왕우구지부, 연화현위원회, 의란구위원회, 화룡현위원회 등의 서기를 지냈다.
조선후기 승려 도안이 선종의 전법을 기록하여 1688년에 판각한 불교서. 불교종파도.
불조종파지도 (佛祖宗派之圖)
조선후기 승려 도안이 선종의 전법을 기록하여 1688년에 판각한 불교서. 불교종파도.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김홍일 (金弘壹)
김홍일은 일제강점기 1·8 일왕저격, 4·29 상해의거 당시의 독립운동가이다.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사망했다. 신천경신학교 교사 재직 중 항일단체 가담 혐의로 심한 고문을 받고 풀려난 뒤 중국으로 망명했다. 1920년 중국 육군강무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독립군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벌였다. 김구의 요청으로 1932년 이봉창의 1·8 일왕저격 및 윤봉길의 4·29 상해의거용 폭탄을 제작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한국군 초기 설립에 공을 세웠고, 이후 국회의원, 정당 당수 등 정치가로 활동했다.
당악은 중국 전래의 속악과 그 체제에 의하여 창작된 악곡을 포괄한 궁정음악의 한 갈래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속악으로 한정되었지만, 고려시대 이후로는 중국 속악을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의 당악을 바탕으로 송조의 속악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광종대를 시작으로 문종대에 활발해졌으며, 예종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전래 당악 외에 새로운 당악을 창제하였으나, 양란 이후로 쇠퇴일로로 치달아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을 비롯한 일부 창작곡들만 연주되고 있다.
당악 (唐樂)
당악은 중국 전래의 속악과 그 체제에 의하여 창작된 악곡을 포괄한 궁정음악의 한 갈래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당나라의 속악으로 한정되었지만, 고려시대 이후로는 중국 속악을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성행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의 당악을 바탕으로 송조의 속악을 수용하면서 전개되었다. 광종대를 시작으로 문종대에 활발해졌으며, 예종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 전래 당악 외에 새로운 당악을 창제하였으나, 양란 이후로 쇠퇴일로로 치달아 현재 「보허자」와 「낙양춘」을 비롯한 일부 창작곡들만 연주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임해 동양철학학풍을 이끈 중국철학 분야의 개척자로, 『유교철학사상개요』, 『중국철학개론』 등을 저술한 철학자.
김경탁 (金敬琢)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임해 동양철학학풍을 이끈 중국철학 분야의 개척자로, 『유교철학사상개요』, 『중국철학개론』 등을 저술한 철학자.
김희남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1929년 이래 중국, 만주에서 중국 항일군, 중국 철혈군 또는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중국 동삼성에 거주하는 한인을 보호하고 항일군의 통합적인 활동을 위하여 애썼다.
김희남 (金熙南)
김희남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1929년 이래 중국, 만주에서 중국 항일군, 중국 철혈군 또는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중국 동삼성에 거주하는 한인을 보호하고 항일군의 통합적인 활동을 위하여 애썼다.
중국의 한무제(漢武帝)가 서기전 108년 동이(東夷)의 조선(위만조선) 지역에 설치한 군(郡).
낙랑군 (樂浪郡)
중국의 한무제(漢武帝)가 서기전 108년 동이(東夷)의 조선(위만조선) 지역에 설치한 군(郡).
낙양군관학교는 1933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에 설립되었던 국민정부 군관학교이다. 1932년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투탄의거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장개석과 김구는 낙양군관학교 내에 한인훈련반이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모집한 한국인 99명이 입학하여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를 편성하였다. 중국식 훈련이 아니라 한국인 교관이 학생의 정치·군사훈련을 담당하였다. 일본 영사의 해산 요구로 1935년 1기생 65명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졸업생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독립군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낙양군관학교 (洛陽軍官學校)
낙양군관학교는 1933년 중국 허난성[河南省] 낙양에 설립되었던 국민정부 군관학교이다. 1932년 한인애국단원 윤봉길의 홍커우공원 투탄의거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장개석과 김구는 낙양군관학교 내에 한인훈련반이 설치하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모집한 한국인 99명이 입학하여 육군군관훈련반 제17대를 편성하였다. 중국식 훈련이 아니라 한국인 교관이 학생의 정치·군사훈련을 담당하였다. 일본 영사의 해산 요구로 1935년 1기생 65명을 배출하고 문을 닫았다. 졸업생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선 독립군 지도자로 성장하였다.
대방군은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군현이다. 지금의 한강 이북 경기도 지방과 자비령 이남의 황해도 지방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고조선에 복속된 진번국의 영역이었으나 고조선이 멸망하고 진번군이 설치되었다. 중국 군현지배에 대한 토착세력의 반발로 인해 낙랑군(樂浪郡)에 통합되었다. 요동의 독자세력으로 성장한 공손씨 정권이 낙랑군을 나누어 대방군을 설치하였다. 238년 위나라가 공손씨 정권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265년 위나라가 진나라에 멸명된 후에는 진나라에 인계되었다가 고구려에 의해 멸망되었다.
대방군 (帶方郡)
대방군은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군현이다. 지금의 한강 이북 경기도 지방과 자비령 이남의 황해도 지방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고조선에 복속된 진번국의 영역이었으나 고조선이 멸망하고 진번군이 설치되었다. 중국 군현지배에 대한 토착세력의 반발로 인해 낙랑군(樂浪郡)에 통합되었다. 요동의 독자세력으로 성장한 공손씨 정권이 낙랑군을 나누어 대방군을 설치하였다. 238년 위나라가 공손씨 정권을 멸망시키고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265년 위나라가 진나라에 멸명된 후에는 진나라에 인계되었다가 고구려에 의해 멸망되었다.
문갑송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지시로 ‘간도 5·30봉기’를 지휘하였다.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 동만특별위원회 조직부장 겸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광복 후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문갑송 (文甲松)
문갑송은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고,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의 지시로 ‘간도 5·30봉기’를 지휘하였다. 연화중심현위원회 서기, 동만특별위원회 조직부장 겸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8·15광복 후 사회노동당, 근로인민당에서 활동하였다.
조선시대 문안을 목적으로 중국에 보낸 사절 또는 사신.
문안사 (問安使)
조선시대 문안을 목적으로 중국에 보낸 사절 또는 사신.
고구려는 서기전 1세기부터 668년까지 존속한 고대 왕국이다. 압록강 중류 지역에서 초기 성읍국가로 출발하여 주변의 예·맥족은 물론 옥저·동예·부여·조선 등 여러 종족들을 융합하여 보다 확대된 고구려인을 형성하면서 강대한 국가로 발전했다. 중국 한나라의 침입을 받아 한의 군현이 설치되는 등 위축된 시기도 있었으나 이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국력이 더욱 강해졌고 중국의 통일 왕조인 수와 당의 침략도 물리치며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후기에 성립한 귀족연립정권의 내부분열로 국력이 약화되어,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고구려 (高句麗)
고구려는 서기전 1세기부터 668년까지 존속한 고대 왕국이다. 압록강 중류 지역에서 초기 성읍국가로 출발하여 주변의 예·맥족은 물론 옥저·동예·부여·조선 등 여러 종족들을 융합하여 보다 확대된 고구려인을 형성하면서 강대한 국가로 발전했다. 중국 한나라의 침입을 받아 한의 군현이 설치되는 등 위축된 시기도 있었으나 이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국력이 더욱 강해졌고 중국의 통일 왕조인 수와 당의 침략도 물리치며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후기에 성립한 귀족연립정권의 내부분열로 국력이 약화되어,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의 공격으로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