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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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 사이에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무신 세력은 삼별초 등 사병집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정방·교정별감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전횡을 일삼고 독재정치를 행하였다. 무신정권기에 불법적 토지 강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제도가 붕괴되고 농민과 천민 등 하부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란 발생과 더불어 신분질서의 동요가 일어났다. 무신정권 집권 후반부 40년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팔만대장경 제조 등으로 강렬한 민족주체의식이 발휘되었고 이는 후대의 배원정책으로 이어졌다.
무신정권 (武臣政權)
무신정권은 1170년부터 1270년 사이에 무신 세력에 의해 주도된 고려 왕조의 정권이다. 무신 세력은 삼별초 등 사병집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정방·교정별감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전횡을 일삼고 독재정치를 행하였다. 무신정권기에 불법적 토지 강점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토지제도가 붕괴되고 농민과 천민 등 하부계층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민란 발생과 더불어 신분질서의 동요가 일어났다. 무신정권 집권 후반부 40년은 강화도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팔만대장경 제조 등으로 강렬한 민족주체의식이 발휘되었고 이는 후대의 배원정책으로 이어졌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의 옛 지명.
고부 (古阜)
전북특별자치도 정읍 지역의 옛 지명.
중방(重房)은 고려시대 이군육위(二軍六衛)의 지휘관인 상장군 · 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 기관이다. 설치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대로 추정된다. 상장군 8인, 대장군 8인의 총 16인으로 구성되었다. 응양군 상장군은 반주(班主)라고 불렀고, 그 대표가 되었다. 궁궐 · 도성의 수비와 치안 등 이군육위의 임무와 관련된 주요 안건을 다루었다. 직책으로는 장교, 도장교, 서리 등이 있었다. 중방은 좌 · 우번으로 편성되었으며, 회의체 이외에 건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무신정권기에는 군사적 임무를 넘어 정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였고 1393년에 폐지되었다.
중방 (重房)
중방(重房)은 고려시대 이군육위(二軍六衛)의 지휘관인 상장군 · 대장군으로 구성된 회의 기관이다. 설치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현종대로 추정된다. 상장군 8인, 대장군 8인의 총 16인으로 구성되었다. 응양군 상장군은 반주(班主)라고 불렀고, 그 대표가 되었다. 궁궐 · 도성의 수비와 치안 등 이군육위의 임무와 관련된 주요 안건을 다루었다. 직책으로는 장교, 도장교, 서리 등이 있었다. 중방은 좌 · 우번으로 편성되었으며, 회의체 이외에 건물을 지칭하기도 한다. 무신정권기에는 군사적 임무를 넘어 정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였고 1393년에 폐지되었다.
고려시대 종3품 무관직.
대장군 (大將軍)
고려시대 종3품 무관직.
고려 후기에, 병부상서, 서경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위총 (趙位寵)
고려 후기에, 병부상서, 서경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의 정4품 무관직.
장군 (將軍)
고려시대의 정4품 무관직.
장군방은 고려시대, 2군6위(二軍六衛)의 정4품 무관직인 장군들의 회의 기구이다. 총 45명의 장군들이 있었다. 상장군 · 대장군들의 합좌 기구인 중방과 대비되며 여기서의 결정 사항을 저지한다고 할 정도로 독자적인 지위를 가졌다. 설치 시기는 무신정권의 설립 이후 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초까지 이어져 1400년(정종 2)에 폐지되었으며, 의체를 총괄하는 방주(房主)와 실무를 집행하는 장무관(掌務官)이 있었다. 호군으로 바뀐 뒤에는 호군방으로 불리었다. 지정된 촌락에서 조세를 수취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군방 (將軍房)
장군방은 고려시대, 2군6위(二軍六衛)의 정4품 무관직인 장군들의 회의 기구이다. 총 45명의 장군들이 있었다. 상장군 · 대장군들의 합좌 기구인 중방과 대비되며 여기서의 결정 사항을 저지한다고 할 정도로 독자적인 지위를 가졌다. 설치 시기는 무신정권의 설립 이후 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 초까지 이어져 1400년(정종 2)에 폐지되었으며, 의체를 총괄하는 방주(房主)와 실무를 집행하는 장무관(掌務官)이 있었다. 호군으로 바뀐 뒤에는 호군방으로 불리었다. 지정된 촌락에서 조세를 수취하여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두승산성 (斗升山城)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지사리 고분군 (智士里 古墳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영원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구덩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부여 정동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정동리 와요지 뒷산 주장산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데 괴임식 돌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축조 시기는 대략 웅진시대보다 늦은 사비천도 이후인 6세기 후반 정도로 보인다. 지표 아래에서 문양전(무늬벽돌) 조각 18개를 발견하였고 서쪽으로 50∼70㎝ 떨어진 곳에서 괴석 4개가 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돌의 무늬는 무문전, 연화문전, 대방명문전, 중방명문전 등이다. 벽돌 조각은 무덤 내부 바닥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정동리 고분군 (扶餘 井洞里 古墳群)
부여 정동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정동리 와요지 뒷산 주장산 남쪽 사면에 분포하는데 괴임식 돌방무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축조 시기는 대략 웅진시대보다 늦은 사비천도 이후인 6세기 후반 정도로 보인다. 지표 아래에서 문양전(무늬벽돌) 조각 18개를 발견하였고 서쪽으로 50∼70㎝ 떨어진 곳에서 괴석 4개가 열을 이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벽돌의 무늬는 무문전, 연화문전, 대방명문전, 중방명문전 등이다. 벽돌 조각은 무덤 내부 바닥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후기 부엌 좌·우측에 방이 달린 형태의 주택.
안동 의촌동 초가 도투마리집 (安東 宜村洞 草家 도투마리집)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후기 부엌 좌·우측에 방이 달린 형태의 주택.
고려후기 내시낭장, 병부원외랑 등을 역임한 관리.
장보 (莊甫)
고려후기 내시낭장, 병부원외랑 등을 역임한 관리.
고려시대 궁중의 마굿간을 관장하던 관부.
봉거서 (奉車署)
고려시대 궁중의 마굿간을 관장하던 관부.
고려후기 대장군, 지병마사, 상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최유공 (崔愈恭)
고려후기 대장군, 지병마사, 상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후기 최우암살미수사건과 관련된 관리. 무신.
고수겸 (高壽謙)
고려후기 최우암살미수사건과 관련된 관리. 무신.
고려후기 호군, 지언부사, 판중문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이인기 (李仁琪)
고려후기 호군, 지언부사, 판중문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 후기에, 안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전의 (全懿)
고려 후기에, 안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