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앙정보부"
검색결과 총 18건
김형욱은 해방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중앙정보부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79년에 사망했다. 황해도 신천 출신으로 독학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1963년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하였다. 박정희의 최측근으로 정치공작과 공안사건을 통해 박정희 체제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1973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정희 체제의 내부비리를 폭로하였다. 1979년 파리에서 납치된 이후 공식 행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김형욱 (金炯旭)
김형욱은 해방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 중앙정보부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5년에 태어나 1979년에 사망했다. 황해도 신천 출신으로 독학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1963년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하였다. 박정희의 최측근으로 정치공작과 공안사건을 통해 박정희 체제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1973년 미국으로 망명한 이후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정희 체제의 내부비리를 폭로하였다. 1979년 파리에서 납치된 이후 공식 행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67년 7월 8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
동백림 사건 (東伯林 事件)
1967년 7월 8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주도 하에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金大中 拉致事件)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한국 중앙정보부의 주도 하에 괴한들에 의해 납치된 사건.
박동선의 미국 정치계 로비활동이 문제가 되어 발생한 사건.
박동선 사건 (朴東宣 事件)
박동선의 미국 정치계 로비활동이 문제가 되어 발생한 사건.
국가의 정보활동에 관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정보기관.
국가정보원 (國家情報院)
국가의 정보활동에 관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정보기관.
이후락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 육군본부 정보국차장, 국무총리 안보담당 비서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2009년에 사망했다. 1943년 울산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1944년 일본 육군 하사로 전역했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육군참모대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귀국하여 특수부대를 창설하였고 미국 CIA에 의해 정보부대의 책임자로 낙점되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 시절에 정보기관에서 활동했다. 1972년 박정희의 밀사로 김일성을 만나 7·4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켰다.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해임되었다가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이후락 (李厚洛)
이후락은 해방 이후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 육군본부 정보국차장, 국무총리 안보담당 비서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2009년에 사망했다. 1943년 울산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1944년 일본 육군 하사로 전역했다. 해방 이후 미국에서 육군참모대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귀국하여 특수부대를 창설하였고 미국 CIA에 의해 정보부대의 책임자로 낙점되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 시절에 정보기관에서 활동했다. 1972년 박정희의 밀사로 김일성을 만나 7·4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켰다.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해임되었다가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李穗根)이 남측에 귀순하여 살다가 1969년 1월 여권을 위조하여 해외로 출국하여 체포된 후 간첩으로 몰리게 된 사건.
이수근 사건 (李穗根 事件)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李穗根)이 남측에 귀순하여 살다가 1969년 1월 여권을 위조하여 해외로 출국하여 체포된 후 간첩으로 몰리게 된 사건.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고문 등을 역임하였으며, 민주공화당의 주류인 김종필계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정치인.
김용태 (金龍泰)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고문 등을 역임하였으며, 민주공화당의 주류인 김종필계의 대표적 인물로 꼽히는 정치인.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 차장 등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에서 핵심 세력으로 활동한 법조인·정치인.
김치열 (金致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 차장 등을 역임하며 박정희 정부에서 핵심 세력으로 활동한 법조인·정치인.
1979년 5월 안동카톨릭농민회 오원춘을 중앙정보부가 납치, 폭행하였다는 주장을 두고 벌어진 사건.
오원춘사건 (吳元春事件)
1979년 5월 안동카톨릭농민회 오원춘을 중앙정보부가 납치, 폭행하였다는 주장을 두고 벌어진 사건.
1967년 중앙정보부가 서울대학교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구속한 사건.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 (民族主義比較硏究會 事件)
1967년 중앙정보부가 서울대학교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관련자들을 구속한 사건.
이병희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장, 국회의원, 국회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6년 출생하여 1997년 사망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정보계통(육군특무대)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1962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을 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다. 1962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이듬해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었다. 이후 7·8·9·10·13·15대까지 지역구에서만 7선을 기록하였다. 1969년에는 국회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1964년부터 1996년까지는 아세아자유청년연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이병희 (李秉禧)
이병희는 5·16군사정변의 핵심 인물로, 중앙정보부 서울지부장, 국회의원, 국회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6년 출생하여 1997년 사망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정보계통(육군특무대)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인 1962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었을 때 서울시 지부장을 지냈다. 1962년 대령으로 예편하여, 이듬해 제6대 국회의원선거에 당선되었다. 이후 7·8·9·10·13·15대까지 지역구에서만 7선을 기록하였다. 1969년에는 국회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1964년부터 1996년까지는 아세아자유청년연맹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11월 13일 서울대 제적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국가 전복을 위해 내란 음모를 모의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서울大生 內亂陰謀 事件)
1971년 11월 13일 서울대 제적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국가 전복을 위해 내란 음모를 모의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육군 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 중앙정보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김용순 (金容珣)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였으며, 경남지구 계엄사령관, 육군 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 중앙정보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南朝鮮解放戰略黨事件)은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공안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재혁 등 13명에 대하여 “국가 전복을 꾀하는 조직을 만들었다.”라는 혐의를 적용하였고, 주모자로 지목된 권재혁을 이듬해 11월 사형 집행하였다. 2009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이 사건을 조작했다고 발표하였으며, 2011년 1월 14일 재심 결과, 사건 관계자 4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 (南朝鮮解放戰略黨事件)
남조선해방전략당사건(南朝鮮解放戰略黨事件)은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공안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권재혁 등 13명에 대하여 “국가 전복을 꾀하는 조직을 만들었다.”라는 혐의를 적용하였고, 주모자로 지목된 권재혁을 이듬해 11월 사형 집행하였다. 2009년 4월, 진실화해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이 사건을 조작했다고 발표하였으며, 2011년 1월 14일 재심 결과, 사건 관계자 4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최종길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자 교수로, 1973년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수사관의 고문과 폭행에 의해 숨진 인물이다. 1973년 중앙정보부는 최종길의 조사 과정에서 간첩임을 자백하고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최종길의 간첩 자백 사실과 사망 현장 검증 등을 허위로 조작하였고, 그의 죽음이 고문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최종길 (崔鍾吉)
최종길은 대한민국의 법학자이자 교수로, 1973년 간첩 혐의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 수사관의 고문과 폭행에 의해 숨진 인물이다. 1973년 중앙정보부는 최종길의 조사 과정에서 간첩임을 자백하고 7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였다고 발표하였으나,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중앙정보부가 최종길의 간첩 자백 사실과 사망 현장 검증 등을 허위로 조작하였고, 그의 죽음이 고문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1975년 11월부터 12월까지 재일동포 유학생 20여 명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등 공안기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체포 및 기소되었던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공안기관은 북괴가 그들의 공작원을 유학생으로 가장, 서울대 등 국내 학원에 침투시켜 국가 변란을 획책해 온 대규모 학원 침투 북괴간첩단사건으로 발표하였다. 1970~80년대 숱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사건으로 20여 명이 체포-구속되었고, 일부는 10년 이상의 형을 살았다.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在日僑胞 留學生 間諜團 事件)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1975년 11월부터 12월까지 재일동포 유학생 20여 명이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등 공안기관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체포 및 기소되었던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이다. 당시 공안기관은 북괴가 그들의 공작원을 유학생으로 가장, 서울대 등 국내 학원에 침투시켜 국가 변란을 획책해 온 대규모 학원 침투 북괴간첩단사건으로 발표하였다. 1970~80년대 숱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사건으로 20여 명이 체포-구속되었고, 일부는 10년 이상의 형을 살았다.
초산테러사건은 1969년 6월 20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승용차에서 괴한들에 의한 초산병 투척 습격을 받은 사건이다. 김영삼은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3선개헌 추진 움직임을 제2의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반대하였고, 초산테러를 당한 후 김영삼과 야당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정치 테러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초산테러사건 (硝酸―事件)
초산테러사건은 1969년 6월 20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승용차에서 괴한들에 의한 초산병 투척 습격을 받은 사건이다. 김영삼은 당시 여당인 공화당의 3선개헌 추진 움직임을 제2의 쿠데타로 규정하고 비판하면서 반대하였고, 초산테러를 당한 후 김영삼과 야당은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정치 테러로 규정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으나 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