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충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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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은 고려후기 정당문학, 판삼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문인이다.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1367년(공민왕 16)에 사망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연경의 만권당에 머물면서 원의 유명한 학자·문인들과 교유하고 중국 내륙 여행을 하며 학문과 식견을 넓혔다. 관료로서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 성리학 도입에 공이 컸고, 『익재집』을 남겼으며 시·사에 뛰어나 고려 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현 (李齊賢)
이제현은 고려후기 정당문학, 판삼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문인이다.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1367년(공민왕 16)에 사망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연경의 만권당에 머물면서 원의 유명한 학자·문인들과 교유하고 중국 내륙 여행을 하며 학문과 식견을 넓혔다. 관료로서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 성리학 도입에 공이 컸고, 『익재집』을 남겼으며 시·사에 뛰어나 고려 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방은 1225년(고종 12) 6월,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한 인사담당 기관이다. 정당·정사당·죽당이라고도 한다. 최충헌 때부터 자신의 집에서 문무백관의 인사행정을 마음대로 해 오던 것을 최우가 공식 인사기구로 정착시킨 것이 정방이다. 무신정권은 행정실무와 문서작성에 능한 관리가 필요했고 여기에 벼슬길 진출을 갈망하던 사인층의 요구가 서로 부응하면서 설치되었다. 정방은 관리의 임명과 해임, 승진과 좌천 등 모든 권한을 장악하여 인사행정을 다루었다. 무신정권 이후에도 국가기관으로 변해 폐지와 재설립을 반복하다가 1388년(우왕 14)에 폐지되었다.
정방 (政房)
정방은 1225년(고종 12) 6월, 최우가 자기 집에 설치한 인사담당 기관이다. 정당·정사당·죽당이라고도 한다. 최충헌 때부터 자신의 집에서 문무백관의 인사행정을 마음대로 해 오던 것을 최우가 공식 인사기구로 정착시킨 것이 정방이다. 무신정권은 행정실무와 문서작성에 능한 관리가 필요했고 여기에 벼슬길 진출을 갈망하던 사인층의 요구가 서로 부응하면서 설치되었다. 정방은 관리의 임명과 해임, 승진과 좌천 등 모든 권한을 장악하여 인사행정을 다루었다. 무신정권 이후에도 국가기관으로 변해 폐지와 재설립을 반복하다가 1388년(우왕 14)에 폐지되었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충렬왕은 고려 제25대(재위: 1274~1308) 왕이다. 무신 집권자에 의해 폐위된 부왕을 복위시키는 과정에서 몽골 공주와 혼인하였다. 몽골 측 지적에 따라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였고, 몽골의 1·2차 일본 원정에 조력하면서 정동행성 장관직을 겸하게 되었다.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왕위를 아들 충선왕에게 물려주었다가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는 그 지지 세력이 충선왕 지지 세력과 벌이는 정쟁이 지속되었다. 정쟁에서 패한 후 1308년(충렬왕 34) 사망하였다.
충렬왕 (忠烈王)
충렬왕은 고려 제25대(재위: 1274~1308) 왕이다. 무신 집권자에 의해 폐위된 부왕을 복위시키는 과정에서 몽골 공주와 혼인하였다. 몽골 측 지적에 따라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였고, 몽골의 1·2차 일본 원정에 조력하면서 정동행성 장관직을 겸하게 되었다.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왕위를 아들 충선왕에게 물려주었다가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는 그 지지 세력이 충선왕 지지 세력과 벌이는 정쟁이 지속되었다. 정쟁에서 패한 후 1308년(충렬왕 34) 사망하였다.
민지(閔漬)는 고려 후기 예빈윤, 한림직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종대의 이규보, 원종대의 김구를 잇는 대표적 문장으로 평가되었다.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 등 42권의 저작이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왕명으로 인각사의 보각국사(『삼국유사』의 일연) 비의 비문을 지었다.
민지 (閔漬)
민지(閔漬)는 고려 후기 예빈윤, 한림직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종대의 이규보, 원종대의 김구를 잇는 대표적 문장으로 평가되었다. 『세대편년절요(世代編年節要)』, 『본국편년강목(本國編年綱目)』 등 42권의 저작이 있으나 전하지 않는다. 왕명으로 인각사의 보각국사(『삼국유사』의 일연) 비의 비문을 지었다.
만권당은 1314년(충숙왕 1)에 충선왕이 원나라의 연경(燕京, 北京)에 세운 서재(書齋)이다. 이곳에서 남송(南宋) 출신의 유학자인 당대의 명유(名儒)들과 고려의 명유 이제현(李齊賢)이 서로 교유(交遊)하였고, 그 결과 만권당을 중심으로 고려와 원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만권당 (萬卷堂)
만권당은 1314년(충숙왕 1)에 충선왕이 원나라의 연경(燕京, 北京)에 세운 서재(書齋)이다. 이곳에서 남송(南宋) 출신의 유학자인 당대의 명유(名儒)들과 고려의 명유 이제현(李齊賢)이 서로 교유(交遊)하였고, 그 결과 만권당을 중심으로 고려와 원의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고려 충선왕 때 왕실에서 일어난 무고(誣告) 사건.
조비무고사건 (趙妃誣告事件)
고려 충선왕 때 왕실에서 일어난 무고(誣告) 사건.
충숙왕은 1313년~1330년과 1332년~1339년에 재위한 고려 제27대 왕이다. 1313년(충선왕 5) 충선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충선왕의 영향력 아래에서 정치 일선에 나서지 못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충선왕이 실각한 후 정치 세력 개혁을 도모하였으나 충선왕 지지 세력이 일으킨 심왕옹립운동 및 입성론 등으로 인해 장기간 원에 억류되었다. 1330년(충숙왕 17) 충혜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가 1332년(충숙왕 복위1) 복위하였다.
충숙왕 (忠肅王)
충숙왕은 1313년~1330년과 1332년~1339년에 재위한 고려 제27대 왕이다. 1313년(충선왕 5) 충선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충선왕의 영향력 아래에서 정치 일선에 나서지 못하였다. 1320년(충숙왕 7) 충선왕이 실각한 후 정치 세력 개혁을 도모하였으나 충선왕 지지 세력이 일으킨 심왕옹립운동 및 입성론 등으로 인해 장기간 원에 억류되었다. 1330년(충숙왕 17) 충혜왕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가 1332년(충숙왕 복위1) 복위하였다.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부원세력 (附元勢力)
부원세력은 원나라에 기대어 고려와 고려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정치세력이다. 부원배라고도 부른다. 몽골의 고려 침략에서 기원하였으며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 더욱 확대되었다. 몽골의 고려 침략과 고려 영토 점령에 적극 협조한 부류와 몽골의 고려 내정 간섭에 적극 협조해 고려의 정국을 혼란에 빠뜨린 부류가 있다. 원간섭기에 왕권을 위협하면서 고려 정국을 주도했던 정치세력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1356년 공민왕의 반원개혁 운동으로 다수가 제거되었으며, 신흥무장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에 의해 축출되었다.
조인규는 고려 후기에 중찬, 사도, 시중, 참지광정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37년(고종 24)에 태어나 1308년(충렬왕 34)에 사망했다. 몽고어 통역관으로 충렬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탁월한 몽고어 구사력으로 원나라 세조에게 신임을 받아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딸이 세자비로 간택되어 정치적 지위가 더욱 높아졌다. 충선왕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다가 조비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끌려가 안서에 유배되었다. 원나라 무종을 옹립한 공으로 충선왕의 정치력이 복권되면서 선충익대보조공신이 되었다.
조인규 (趙仁規)
조인규는 고려 후기에 중찬, 사도, 시중, 참지광정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37년(고종 24)에 태어나 1308년(충렬왕 34)에 사망했다. 몽고어 통역관으로 충렬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탁월한 몽고어 구사력으로 원나라 세조에게 신임을 받아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딸이 세자비로 간택되어 정치적 지위가 더욱 높아졌다. 충선왕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다가 조비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끌려가 안서에 유배되었다. 원나라 무종을 옹립한 공으로 충선왕의 정치력이 복권되면서 선충익대보조공신이 되었다.
고려 후기에, 지공거, 벽상삼한삼중대광 수사공 등을 역임한 문신.
정가신 (鄭可臣)
고려 후기에, 지공거, 벽상삼한삼중대광 수사공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손자로, 연안군에 봉해졌으며, 충선왕에게 심왕위를 이어받아 고려왕위를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한 종실.
왕고 (王暠)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손자로, 연안군에 봉해졌으며, 충선왕에게 심왕위를 이어받아 고려왕위를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한 종실.
고려 후기에, 계림부원군, 우정승, 영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왕후 (王煦)
고려 후기에, 계림부원군, 우정승, 영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계국대장공주는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왕비이다. 본명은 보탑실련(寶塔實憐)으로, 원(元) 진왕(晉王) 감말라[甘麻剌]의 딸이다. 충선왕과 불화하여 충선왕 폐위의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충렬왕과 충선왕의 갈등 상황 속에서 그 개가(改嫁)가 추진되기도 하였다. 1315년에 사망하였다.
계국대장공주 (薊國大長公主)
계국대장공주는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왕비이다. 본명은 보탑실련(寶塔實憐)으로, 원(元) 진왕(晉王) 감말라[甘麻剌]의 딸이다. 충선왕과 불화하여 충선왕 폐위의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충렬왕과 충선왕의 갈등 상황 속에서 그 개가(改嫁)가 추진되기도 하였다. 1315년에 사망하였다.
고려 말에 원(元)나라의 화가인 진감여(陳鑑如)가 그린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초상화.
이제현 초상 (李齊賢 肖像)
고려 말에 원(元)나라의 화가인 진감여(陳鑑如)가 그린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초상화.
덕릉(德陵)은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능이다. 1325년 충선왕의 사후 개성부 서쪽으로 12리에 안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1377년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의 정릉 재실을 조영할 때 덕릉의 나무를 베어 조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현정릉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덕릉 (德陵)
덕릉(德陵)은 고려 제26대 충선왕의 능이다. 1325년 충선왕의 사후 개성부 서쪽으로 12리에 안장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고 있지 않다. 다만 1377년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의 정릉 재실을 조영할 때 덕릉의 나무를 베어 조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현정릉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오는 고려 후기 천태종 사찰인 백련사, 묘련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승려이다. 그는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대에 왕실과 밀착해 불교계의 교권을 장악하였다. 그의 행적을 통해 원 간섭기 천태종의 동향을 알 수 있다.
정오 (丁午)
정오는 고려 후기 천태종 사찰인 백련사, 묘련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승려이다. 그는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대에 왕실과 밀착해 불교계의 교권을 장악하였다. 그의 행적을 통해 원 간섭기 천태종의 동향을 알 수 있다.
고려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제6왕비.
순비 (順妃)
고려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제6왕비.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
박효수 (朴孝修)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전법판서, 첨의참리 등을 역임한 문신.
최문도 (崔文度)
고려 후기에, 전법판서, 첨의참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