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국독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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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동북의용군 사령, 중한연합군 부사령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김병조 (金炳朝)
일제강점기 때, 한국독립당 동북의용군 사령, 중한연합군 부사령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과 한국독립당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백여범 (白汝範)
일제강점기 때, 흥사단과 한국독립당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노종균은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인 김구 휘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서장인 김립을 처단하고, 한인애국단 결성과 운영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특무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설치된 한인특별반 학생들의 관리를 맡았다.
노종균 (盧鍾均)
노종균은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장인 김구 휘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서장인 김립을 처단하고, 한인애국단 결성과 운영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특무 활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설치된 한인특별반 학생들의 관리를 맡았다.
김철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에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창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핵심 역할을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두루 거치며 활동하였고, 한국독립당 창당에도 관여하였다.
김철 (金澈)
김철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에 망명하여 신한청년당을 창립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할 때 핵심 역할을 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두루 거치며 활동하였고, 한국독립당 창당에도 관여하였다.
김홍서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과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 의원으로 시작해 193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의원직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하였다.
김홍서 (金弘敍)
김홍서는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과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 의원으로 시작해 1930년대 중반까지 여러 차례 의원직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하였으나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조선민족혁명당에서 활동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서로군정서 경비대장, 한국독립당 의용군 중대장 등을 역임한 군인·독립운동가.
오광선 (吳光鮮)
일제강점기 때, 신흥무관학교 교관, 서로군정서 경비대장, 한국독립당 의용군 중대장 등을 역임한 군인·독립운동가.
송복덕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 대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충칭 시절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내무부 경위대 대원에 임명되어 요인 경호 및 경찰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관병소비합작사의 사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독립당원으로도 활약하였다.
송복덕 (宋福德)
송복덕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경위대 대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충칭 시절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내무부 경위대 대원에 임명되어 요인 경호 및 경찰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국광복군총사령부 관병소비합작사의 사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독립당원으로도 활약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윤복영 (尹復榮)
일제강점기 때, 전만통일준비회 집행위원, 신민부 고문, 한족동향회 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신한독립당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규채 (李圭彩)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정치부위원, 신한독립당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한인청년당과 의열단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임시의정원 충청남도 대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종건 (李鍾乾)
일제강점기 때, 한인청년당과 의열단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임시의정원 충청남도 대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조소앙 (趙素昻)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는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독립운동 세력의 이념 대립을 해소하고, 최고지도기관의 성립을 위한 좌우합작운동이자 민족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이후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모체가 되었다.
한국유일독립당 상해촉성회 (韓國唯一獨立黨 上海促成會)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는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독립운동 세력의 이념 대립을 해소하고, 최고지도기관의 성립을 위한 좌우합작운동이자 민족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이후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모체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병인의용대를 조직하여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성구 (李成九)
일제강점기 때, 병인의용대를 조직하여 친일파 처단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한국혁명당은 1932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에 가입하여 항일 독립운동단체의 대동단결을 통해 중국 국민정부와의 연합전선을 꾀하였다. 재만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합당을 추진하여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을 결성하였다.
한국혁명당 (韓國革命黨)
한국혁명당은 1932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에 가입하여 항일 독립운동단체의 대동단결을 통해 중국 국민정부와의 연합전선을 꾀하였다. 재만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과 합당을 추진하여 신한독립당(新韓獨立黨)을 결성하였다.
한족총연합회는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좌진(金佐鎭)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南大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李鵬海)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일파의 연합으로 결성되었다. 창립 이후 조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방조직 재정비 작업이 실시되었고, 교육 사업으로 50여 개소의 소학교를 운영하였다.
한족총연합회 (韓族總聯合會)
한족총연합회는 192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좌진(金佐鎭) 등 민족주의자들과 남대관(南大觀), 이을규(李乙奎), 이붕해(李鵬海) 등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일파의 연합으로 결성되었다. 창립 이후 조직 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지방조직 재정비 작업이 실시되었고, 교육 사업으로 50여 개소의 소학교를 운영하였다.
혁신의회는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삼부(三府)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김좌진(金佐鎭),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李靑天)] 등이 중심이 되고, 일부 좌익계열 단체가 합류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의 성격을 가진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등을 목표로 하고, 군정부(軍政府) 설립을 추진하였다.
혁신의회 (革新議會)
혁신의회는 1928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삼부(三府) 통합운동의 과정에서 김동삼(金東三), 김좌진(金佐鎭), 지청천(池靑天)[일명 이청천(李靑天)] 등이 중심이 되고, 일부 좌익계열 단체가 합류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의 성격을 가진다. 재만 한인 보호, 대일 무장투쟁 등을 목표로 하고, 군정부(軍政府) 설립을 추진하였다.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노영재 (盧英哉)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
박영준 (朴英俊)
박영준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에 참여하였고,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배속되어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서무과에 배속되었으며, 1943년 1월 20일 한국독립당 한국청년회의 예술간사, 임시정부 재무부 이재과, 내무부 경무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제3지대 제1구대장 겸 제3지대 훈련총대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 등에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