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는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독립운동 세력의 이념 대립을 해소하고, 최고지도기관의 성립을 위한 좌우합작운동이자 민족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 이후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과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모체가 되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중국 관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좌우합작의 단일전선 구축에 대한 논의가 분출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원세훈(元世勳) 등이 주도하여 1926년 10월 28일 '대독립당북경촉성회(大獨立黨北京促成會)'가 설립되었다.
북경촉성회의 설립은 상하이에도 영향을 끼쳤다. 『독립신문』에 대독립당 결성을 적극 지지하는 글들이 수록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가운데 임시정부 국무령(國務領)이 된 홍진(洪震)은 12월 9일 국무령을 사임하고 민족유일당 결성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홍남표(洪南杓), 정백(鄭栢) 등을 만나 대독립당 결성을 협의하였다.
1927년 3월 21일 상하이 삼일당(三一堂)에서 '한국유일독립당상해촉성회'가 결성되었다. 상해촉성회는 이동녕(李東寧), 홍진, 홍남표, 조완구(趙琬九), 조상섭(趙尙燮), 이유필(李裕弼), 김두봉(金枓奉), 이규홍(李圭洪), 송영석, 김구(金九), 김철(金澈), 최창식(崔昌植), 이민달(李敏達), 최석순(崔錫淳), 박철범, 강경선(姜景善), 현정건(玄鼎健), 정백, 황훈(黃勳), 진덕삼(陳德三), 조소앙(趙素昻), 김명준(金明濬), 곽헌(郭憲), 정태희(鄭泰熙), 김문희(金文熙) 등 25명의 집행위원을 선임하였다.
집행위원회에는 임시정부 출신 인사와 사회주의자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상해촉성회는 선언서를 통해서 "(1) 본회는 한국의 유일한 대독립당 성립을 촉성함. (2) 본회는 한국 독립의 필요한 민족적 일절 혁명역량의 총집중을 노력함."이라는 두 개의 강령을 선언하였다.
상해촉성회 성립 이후에 광둥[廣東], 우한[武漢], 난징[南京] 등에서도 촉성회가 결성되어 민족유일당 결성을 촉구하였다. 상해촉성회를 비롯한 각지의 촉성회들은 이후, 각지의 촉성회를 하나로 묶을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결성된 '한국독립당관내촉성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의 산하로 포함되었다.
민족유일당 결성을 위해 조직된 상해촉성회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통합 방식을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활동 동력을 상실하였다. 1929년 10월 26일, 상해촉성회 해체가 결정되었다. 좌익계열 민족운동가들은 바로 '유호한인독립운동자동맹(留滬韓國獨立運動者同盟)'을 설립하였다가 1931년에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을 결성하였다. 민족주의 계열의 민족운동가들은 1930년 1월 25일에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결성하였다.
상해촉성회는 독립운동 세력이 좌우로 분열된 상황 속에서 독립운동 역량의 통합을 시도한 좌우합작운동이자, 민족통일전선의 구축을 목표로 했다는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