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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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강릉부녹사, 지공거, 정치도감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돈 (金永旽)
고려 후기에, 강릉부녹사, 지공거, 정치도감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 원나라에 의하여 설치되었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관직.
도사 (都事)
고려 후기 원나라에 의하여 설치되었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관직.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에서 정복지의 총독, 감독관으로 두었다가 지방장관으로도 사용된 직명이다. 고려에는 1232년(고종 19)에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후인 1270년부터 1278년까지 개경에 상주하였다.
다루가치 (達魯花赤)
다루가치는 고려 후기에 몽골제국에서 정복지의 총독, 감독관으로 두었다가 지방장관으로도 사용된 직명이다. 고려에는 1232년(고종 19)에 처음 설치되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후인 1270년부터 1278년까지 개경에 상주하였다.
기철은 고려 후기 요양행성(遼陽行省) 평장정사(平章政事)를 역임한 부원세력(附元勢力)이다. 몽골식 이름은 바얀부카[伯顔不花]로, 누이동생이 원나라 기황후(奇皇后)이다. 원나라로부터 요양행성 평장정사에 임명되고, 고려에서는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충혜왕을 체포하여 원나라로 압송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356년(공민왕 5) 기황후의 위세를 믿고 토지를 점탈하는 등 횡포를 일삼았고, 쌍성총관부 반민과 역모를 꾸몄다는 점을 들어 권겸(權謙)·노책(盧頙)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기철 (奇轍)
기철은 고려 후기 요양행성(遼陽行省) 평장정사(平章政事)를 역임한 부원세력(附元勢力)이다. 몽골식 이름은 바얀부카[伯顔不花]로, 누이동생이 원나라 기황후(奇皇后)이다. 원나라로부터 요양행성 평장정사에 임명되고, 고려에서는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충혜왕을 체포하여 원나라로 압송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356년(공민왕 5) 기황후의 위세를 믿고 토지를 점탈하는 등 횡포를 일삼았고, 쌍성총관부 반민과 역모를 꾸몄다는 점을 들어 권겸(權謙)·노책(盧頙)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몽고 (蒙古)
몽고는 13세기 초에서 14세기 말(15세기 초)까지 몽골 초원에서 활동하던 부족이자 칭기즈칸에 의해 건국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세력을 확대하며 존재하였던 국가이다. 고려와는 30여 년에 이르는 전쟁을 치렀고, 이후 10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이 관계는 고려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후기에, 호군, 군부판서, 행성이문 등을 역임한 문신.
배전 (裵佺)
고려 후기에, 호군, 군부판서, 행성이문 등을 역임한 문신.
평안북도 삭주군 삭주면 온풍동에 있는 온천.
삭주온천 (朔州溫泉)
평안북도 삭주군 삭주면 온풍동에 있는 온천.
왕삼석은 고려 후기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고려 충숙왕 대에 활동한 남만 사람이다. 1320년대 초반 충숙왕이 원에 체재할 때의 인연으로 1325년(충숙왕 12) 귀국하는 왕을 따라 고려에 왔다. 의술에 능해 왕의 총애를 받았다.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바 있으며,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형벌을 처리하는 등 방자하였다. 1330년(충숙왕 17)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삼석 (王三錫)
왕삼석은 고려 후기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고려 충숙왕 대에 활동한 남만 사람이다. 1320년대 초반 충숙왕이 원에 체재할 때의 인연으로 1325년(충숙왕 12) 귀국하는 왕을 따라 고려에 왔다. 의술에 능해 왕의 총애를 받았다. 정동행성유학제거를 역임한 바 있으며,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거나 형벌을 처리하는 등 방자하였다. 1330년(충숙왕 17)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종1품 최고 관직.
승상 (丞相)
고려 후기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종1품 최고 관직.
이문소는 고려 후기 개경에서 대원(對元) 관계 범죄를 다스렸던 정동행성(征東行省) 예하의 기구이다. 몽골(원)에서 행성에 두던 예하 기구의 하나로, 고려 후기 개경에 있던 정동행성에 설치되었다. 주로 대원 관계의 범죄를 다스렸으며, 기철 등 기씨 일족을 비롯한 부원 세력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 폐지되었다.
이문소 (理問所)
이문소는 고려 후기 개경에서 대원(對元) 관계 범죄를 다스렸던 정동행성(征東行省) 예하의 기구이다. 몽골(원)에서 행성에 두던 예하 기구의 하나로, 고려 후기 개경에 있던 정동행성에 설치되었다. 주로 대원 관계의 범죄를 다스렸으며, 기철 등 기씨 일족을 비롯한 부원 세력의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 폐지되었다.
고려후기 비서감,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폐신(嬖臣).
오연 (吳演)
고려후기 비서감, 좌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폐신(嬖臣).
오잠은 고려 후기에 상의회의도감사, 삼사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지신사, 지밀직사사, 감찰대부 등을 거쳐 지도첨의사사에 올랐으나, 항상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모함하여 이간시켰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고 살해하여 많은 원망을 샀다. 원나라에 압송되어 안서(安西: 장안의 서쪽 변방)에 유배되었다. 충선왕 때 다시 등용되어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삼사사, 찬성사에 이어 구성군에 봉해졌다. 1323년(충숙왕 10)에는 고려에 행성을 설치하여 원나라의 직할령으로 두어야 한다는 입성책동을 벌여 고려 측에 많은 해를 끼쳤다.
오잠 (吳潛)
오잠은 고려 후기에 상의회의도감사, 삼사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간신이다. 지신사, 지밀직사사, 감찰대부 등을 거쳐 지도첨의사사에 올랐으나, 항상 충렬왕·충선왕 부자를 모함하여 이간시켰고, 어진 신하들을 모함하고 살해하여 많은 원망을 샀다. 원나라에 압송되어 안서(安西: 장안의 서쪽 변방)에 유배되었다. 충선왕 때 다시 등용되어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삼사사, 찬성사에 이어 구성군에 봉해졌다. 1323년(충숙왕 10)에는 고려에 행성을 설치하여 원나라의 직할령으로 두어야 한다는 입성책동을 벌여 고려 측에 많은 해를 끼쳤다.
고려 후기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속관(屬官).
유학제거사 (儒學提擧司)
고려 후기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속관(屬官).
고려 후기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속관(屬官).
의학제거사 (醫學提擧司)
고려 후기 원나라가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속관(屬官).
총관은 고려 후기 몽골(원)이 쌍성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몽골(원)이 행성의 하부 조직인 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로의 규모에 따라 정3품 또는 종3품이며, 몽골(원)이 고려의 양계 지역을 확보하고 동녕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그 총관부에도 설치되었다. 총관은 이들 총관부의 장관직에 해당한다.
총관 (摠管)
총관은 고려 후기 몽골(원)이 쌍성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몽골(원)이 행성의 하부 조직인 총관부 등에 설치한 관직이다. 로의 규모에 따라 정3품 또는 종3품이며, 몽골(원)이 고려의 양계 지역을 확보하고 동녕부,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그 총관부에도 설치되었다. 총관은 이들 총관부의 장관직에 해당한다.
입성책동은 고려 후기 고려를 원나라의 행정 구역 중 하나인 행중서성(行中書省)으로 편입하고자 획책했던 사건이다. 총 7차례에 걸쳐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1차와 2차는 요양행성(遼陽行省)과 그곳의 고관이었던 홍중희(洪重喜)가, 3차와 4차, 7차는 부원(附元)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일으켰으며, 5차와 6차는 원나라 측 인사들이 주도하였다. 고려 측은 고려 왕조 체제를 보전하는 것이 세조(世祖) 황제의 유지라는 점과 행성을 설립했을 경우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입성책동 (立省策動)
입성책동은 고려 후기 고려를 원나라의 행정 구역 중 하나인 행중서성(行中書省)으로 편입하고자 획책했던 사건이다. 총 7차례에 걸쳐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1차와 2차는 요양행성(遼陽行省)과 그곳의 고관이었던 홍중희(洪重喜)가, 3차와 4차, 7차는 부원(附元)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일으켰으며, 5차와 6차는 원나라 측 인사들이 주도하였다. 고려 측은 고려 왕조 체제를 보전하는 것이 세조(世祖) 황제의 유지라는 점과 행성을 설립했을 경우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였고, 결과적으로 이 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변경 방어 등 군비책의 하나로 설치되었던 관서.
축성사 (築城司)
조선시대 변경 방어 등 군비책의 하나로 설치되었던 관서.
충렬왕은 고려 제25대(재위: 1274~1308) 왕이다. 무신 집권자에 의해 폐위된 부왕을 복위시키는 과정에서 몽골 공주와 혼인하였다. 몽골 측 지적에 따라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였고, 몽골의 1·2차 일본 원정에 조력하면서 정동행성 장관직을 겸하게 되었다.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왕위를 아들 충선왕에게 물려주었다가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는 그 지지 세력이 충선왕 지지 세력과 벌이는 정쟁이 지속되었다. 정쟁에서 패한 후 1308년(충렬왕 34) 사망하였다.
충렬왕 (忠烈王)
충렬왕은 고려 제25대(재위: 1274~1308) 왕이다. 무신 집권자에 의해 폐위된 부왕을 복위시키는 과정에서 몽골 공주와 혼인하였다. 몽골 측 지적에 따라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였고, 몽골의 1·2차 일본 원정에 조력하면서 정동행성 장관직을 겸하게 되었다.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왕위를 아들 충선왕에게 물려주었다가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는 그 지지 세력이 충선왕 지지 세력과 벌이는 정쟁이 지속되었다. 정쟁에서 패한 후 1308년(충렬왕 34) 사망하였다.
평장정사는 고려 후기 몽골(원)이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의 고위 관직이다. 행성에 설치된 관직으로, 품계는 종1품, 정원은 2인이다. 원의 행성 관제에 의하면 장관인 승상의 바로 아래 관직이며, 승상을 임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승상 대신 각 행성의 최고관직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에도 몽골(원)이 정동행성을 두면서 그 관직이 마련되어 종종 임명한 사례가 보인다.
평장정사 (平章政事)
평장정사는 고려 후기 몽골(원)이 고려에 설치하였던 정동행성의 고위 관직이다. 행성에 설치된 관직으로, 품계는 종1품, 정원은 2인이다. 원의 행성 관제에 의하면 장관인 승상의 바로 아래 관직이며, 승상을 임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승상 대신 각 행성의 최고관직으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려에도 몽골(원)이 정동행성을 두면서 그 관직이 마련되어 종종 임명한 사례가 보인다.
외지에 출정한 군사가 머무르는 주둔지 일대에 구축한 성을 지칭하는 용어.
행영성 (行營城)
외지에 출정한 군사가 머무르는 주둔지 일대에 구축한 성을 지칭하는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