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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의 구산선문 중 희양산문(曦陽山門)을 대표하는 승려.
긍양 (兢讓)
삼국시대 신라의 구산선문 중 희양산문(曦陽山門)을 대표하는 승려.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령이 집무를 보던 관청.
거제현 관아 (巨濟縣 官衙)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령이 집무를 보던 관청.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 7진의 군영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관청. 객사.
거제 기성관 (巨濟 岐城館)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에 있는 조선전기 거제현 7진의 군영 본부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된 관청. 객사.
경흥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삼미륵경소』와 『금광명경최승왕경약찬』 등을 저술한 승려다. 백제의 웅천주 사람으로 성은 수씨(水氏)였으며 18세에 출가하였다. 백제가 신랑에 합병된 문무왕의 유언을 받들어 신문왕이 경흥을 국로로 삼고 삼랑사에 머물게 하였다. 경흥이 병이 들어 누워 있을 때 한 비구니가 그를 웃게 하였고, 이에 경흥의 병이 나았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경흥은 원효, 태현과 함께 신라의 삼대 저술가로 평가될 정도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약 40여 부의 저술 중 3종이 현전한다. 그의 저술은 신라 불교 교학의 지형을 연상케 한다.
경흥 (憬興)
경흥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삼미륵경소』와 『금광명경최승왕경약찬』 등을 저술한 승려다. 백제의 웅천주 사람으로 성은 수씨(水氏)였으며 18세에 출가하였다. 백제가 신랑에 합병된 문무왕의 유언을 받들어 신문왕이 경흥을 국로로 삼고 삼랑사에 머물게 하였다. 경흥이 병이 들어 누워 있을 때 한 비구니가 그를 웃게 하였고, 이에 경흥의 병이 나았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경흥은 원효, 태현과 함께 신라의 삼대 저술가로 평가될 정도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약 40여 부의 저술 중 3종이 현전한다. 그의 저술은 신라 불교 교학의 지형을 연상케 한다.
경기도 강화 지방에 전승되는 두 개의 피리를 한데 묶어 부는 관악기.
쌍피리 (雙피리)
경기도 강화 지방에 전승되는 두 개의 피리를 한데 묶어 부는 관악기.
일제강점기 평양교구장에 서임된 사제. 주교.
홍용호 (洪龍浩)
일제강점기 평양교구장에 서임된 사제. 주교.
해방 이후 주교회의인성회 총재주교, 한국천주교사회복지협의회 총재주교 등에 서임된 사제. 주교, 인권운동가.
지학순 (池學淳)
해방 이후 주교회의인성회 총재주교, 한국천주교사회복지협의회 총재주교 등에 서임된 사제. 주교, 인권운동가.
제주도 무속 의식에서 쓰는 타악기.
울징
제주도 무속 의식에서 쓰는 타악기.
조원환은 해방 이후 만주국협화회 봉천 조선인청년단 단장, 명동성당 총회장 등을 맡은 천주교인이자 청년단체활동가이다. 1892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으로, 관립 임시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재판소 통역생 등으로 근무했다. 1935년 만주로 이주해 친일관변단체 흥아협회에서 활동하며 『재만조선인통신』을 발행하고, 한인 중등교육기관 설립에 관여하였다. 일본의 만주 통치와 황민화를 선전하며 일제에 적극 협력했고, 1940년 창씨개명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기소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났고, 천주교 전교 활동에 전념하며 사회지도층을 천주교에 입교시켰다. 1964년 사망했다.
조원환 (曺元煥)
조원환은 해방 이후 만주국협화회 봉천 조선인청년단 단장, 명동성당 총회장 등을 맡은 천주교인이자 청년단체활동가이다. 1892년 충청남도 서산 출생으로, 관립 임시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재판소 통역생 등으로 근무했다. 1935년 만주로 이주해 친일관변단체 흥아협회에서 활동하며 『재만조선인통신』을 발행하고, 한인 중등교육기관 설립에 관여하였다. 일본의 만주 통치와 황민화를 선전하며 일제에 적극 협력했고, 1940년 창씨개명하였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기소되었으나 병보석으로 풀려났고, 천주교 전교 활동에 전념하며 사회지도층을 천주교에 입교시켰다. 1964년 사망했다.
장복추는 조선 후기에 유학의 전통성 유지에 힘쓴 영남 지방의 유학자로, 『태극도설문답』, 『숙흥야매잠집설』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15년 출생으로 경북 예천 출신이다. 1859년 유학의 기본 골격을 정리한 후, 앞으로의 학문 방향을 설정하였다. 1862년 민란이 발생하자 몸소 현장에 뛰어들어 난민들을 설득해 안정을 회복시켰다. 우산서원이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자 복건을 앞장서 주청하는 등 유학의 전통성 유지와 실천에 힘쓴 정통 유학자였다. 일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영남 유학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계속 재야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장복추 (張福樞)
장복추는 조선 후기에 유학의 전통성 유지에 힘쓴 영남 지방의 유학자로, 『태극도설문답』, 『숙흥야매잠집설』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815년 출생으로 경북 예천 출신이다. 1859년 유학의 기본 골격을 정리한 후, 앞으로의 학문 방향을 설정하였다. 1862년 민란이 발생하자 몸소 현장에 뛰어들어 난민들을 설득해 안정을 회복시켰다. 우산서원이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자 복건을 앞장서 주청하는 등 유학의 전통성 유지와 실천에 힘쓴 정통 유학자였다. 일정한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영남 유학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계속 재야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해방 이후 가톨릭대학 학장, 명동성당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교육자, 교회음악가.
이문근 (李文根)
해방 이후 가톨릭대학 학장, 명동성당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교육자, 교회음악가.
조선 후기에, 이항로의 학설을 따르는 화서학파로 활동하였으며, 유인석의 의병운동을 가까이서 뒷받침해주었던 학자.
유중악 (柳重岳)
조선 후기에, 이항로의 학설을 따르는 화서학파로 활동하였으며, 유인석의 의병운동을 가까이서 뒷받침해주었던 학자.
개항기 때, 일본을 규탄하는 포고문을 지으며 독립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유교 전통을 수호하는데 힘썼으며, 『석농집』 등을 저술한 학자.
오진영 (吳震泳)
개항기 때, 일본을 규탄하는 포고문을 지으며 독립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유교 전통을 수호하는데 힘썼으며, 『석농집』 등을 저술한 학자.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하며 사용하는 타악기.
태왁
제주도 해녀들이 물질하며 사용하는 타악기.
해방 이후 『그리스도를 따라서』, 『공동번역구약성서』 등을 저술한 신부.
선종완 (宣鍾完)
해방 이후 『그리스도를 따라서』, 『공동번역구약성서』 등을 저술한 신부.
제주도에서 물을 길을 때 쓰는 항아리이자 타악기.
허벅
제주도에서 물을 길을 때 쓰는 항아리이자 타악기.
「평조회상(平調會相)」 등 평조(平調) 곡을 연주하는데 사용되는 단소.
평조단소 (平調短簫)
「평조회상(平調會相)」 등 평조(平調) 곡을 연주하는데 사용되는 단소.
일제강점기 때, 조선 유학자로서 유일하게 당시 일본의 석학들과 교류하였으며, 『해동춘추』, 『반도서경』 등을 편찬한 학자.
박장현 (朴章鉉)
일제강점기 때, 조선 유학자로서 유일하게 당시 일본의 석학들과 교류하였으며, 『해동춘추』, 『반도서경』 등을 편찬한 학자.
고동은 군영이나 농촌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소라나 나무(혹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이다. 현재 군영악기로서의 기능은 소멸되고 농악 등에 쓰인다. 고동은 오늘날 나각 계통과 대각 계통의 두 종류로 전승된다. 소라로 만든 것은 나각, 대나무나 동으로 만든 것은 대각이라고 한다. 나각 계열 고동은 소라의 끝부분을 갈아 취구를 붙여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나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시대부터이다. 대각 계열 고동은 긴 대나무 끝에 쇠뿔을 달아 만들거나 나무로 만든다. 나각과 대각은 단성이라서 두 손으로 잡고 불면 소리가 난다.
고동
고동은 군영이나 농촌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하던 소라나 나무(혹은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이다. 현재 군영악기로서의 기능은 소멸되고 농악 등에 쓰인다. 고동은 오늘날 나각 계통과 대각 계통의 두 종류로 전승된다. 소라로 만든 것은 나각, 대나무나 동으로 만든 것은 대각이라고 한다. 나각 계열 고동은 소라의 끝부분을 갈아 취구를 붙여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나각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 시대부터이다. 대각 계열 고동은 긴 대나무 끝에 쇠뿔을 달아 만들거나 나무로 만든다. 나각과 대각은 단성이라서 두 손으로 잡고 불면 소리가 난다.
짚으로 날을 촘촘하게 결어서 볏섬 크기로 만든 그릇.
멱서리
짚으로 날을 촘촘하게 결어서 볏섬 크기로 만든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