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본사상(民本思想)
이러한 고대 부족국가로부터 차차 국가형태가 확대, 발전되면서 신라가 민주적 화백제도(和白制度)를 운영하거나, 고구려가 태학(太學)을 세우고 국가의 인재들을 양성하며 유학을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근본 원리로 수용한 것도 민본사상의 기틀을 다진 것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 뒤 최고 학부로서 통일신라의 국학(國學), 고려의 국자감(國子監), 조선의 성균관(成均館) 등의 국립대학을 통해 문화를 체계화, 이론화하며 백성을 교화한 것도 모두 국가 발전과 중민(重民)·애민 의식에 입각한 국책이었던 것이다. 특히, 조선의 세종은 예악 정치를 실현하고자 <여민락 與民樂>이라는 노래를 제작, 백성과 더불어 함께 즐기고자 했으며, 훈민정음을 반포해 백성들을 일깨우고자 했다는 점에서 위민 의식이 충만한 민본사상의 실천자라 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