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최명길 묘소(淸州 崔鳴吉 墓所)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그는 윤근수(尹根壽), 이항복(李恒福), 신흠(申欽) 등 여러 문인들에게 수학하였다. 1605년(선조 38) 문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때에 육조의 좌랑을 거치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적극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다. 이후 정묘호란(丁卯胡亂), 병자호란(丙子胡亂) 때에는 대표적 주화론자(主和論者)로 활약하였고, 요직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묘역(墓域)은 약 200평의 평지에 조성되었다. 3기의 봉분이 품(品)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중앙 봉분이 최명길의 것이며, 좌측이 첫 번째 부인 인동장씨, 우측이 두 번째 부인 양천허씨(陽川許氏)의 봉분이다. 최명길의 봉분은 주위에 높이 50㎝의 호석(護石)을 둘렀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