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검색결과 총 25,761건
1928년 대구에서 조직된 만주 지역의 독립군 보강을 위한 비밀결사.# 내용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하여 1927년에 신간회(新幹會)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합법적 단체로 조직되었으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 인사 간에 이념 차이와 사회주의 내부의 알력으로 민족 운동은 통일적, 효과적으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이에 신간회의 대구지회 간부인 노차용(盧且用), 장택원(張澤遠), 정대봉(鄭大鳳), 이상화(李相和), 문상직(文相直) 등이 1928년 4월문상직의 하숙집에 모여 독립운동을 위한 단체구성을 협의하였다. 그 해 5월 20일에 신간회 부산 지회의 이강희(李康熙), 의성 지회의 유상묵(柳尙默) 등이 대구에 온 것을 계기로 비밀 결사 계획이 구체화되어 단체명과 임원 선정을 완료하였다. 이 당의 조직 목적은, 전도 유망한 청년들을...
ㄱ당 (ㄱ黨)
1928년 대구에서 조직된 만주 지역의 독립군 보강을 위한 비밀결사.# 내용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위하여 1927년에 신간회(新幹會)가 국내에서 활동하는 합법적 단체로 조직되었으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 인사 간에 이념 차이와 사회주의 내부의 알력으로 민족 운동은 통일적, 효과적으로 전개되지 못하였다. 이에 신간회의 대구지회 간부인 노차용(盧且用), 장택원(張澤遠), 정대봉(鄭大鳳), 이상화(李相和), 문상직(文相直) 등이 1928년 4월문상직의 하숙집에 모여 독립운동을 위한 단체구성을 협의하였다. 그 해 5월 20일에 신간회 부산 지회의 이강희(李康熙), 의성 지회의 유상묵(柳尙默) 등이 대구에 온 것을 계기로 비밀 결사 계획이 구체화되어 단체명과 임원 선정을 완료하였다. 이 당의 조직 목적은, 전도 유망한 청년들을...
죄수의 목에 채우는 형구(刑具).# 내용 보통 ‘칼’이라고 하였다. 칼은 마른 나무널판으로 만든 형틀로 죄수의 목에 씌워 보행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칼과 같은 나무형틀로, 손에 채우는 추(杻 : 소칼, 수갑)가 있는데, 이는 발에 채우는 질(桎)과 한 벌로 되어 있었다. 죄수에게 가추 등을 채우는 형벌은 당(唐) · 송(宋)시대의 옥관령(獄官令)에서 이미 정비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명률』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여 가를 만들었다. 가의 길이는 5자 5치, 두활(頭闊)은 1자 5치이고, 무게는 사죄인(死罪人)에게 씌우는 것은 25근, 도형(徒刑)과 유형(流刑)은 각 20근, 장죄(杖罪)는 15근이며, 그 규격을 나무칼에 새겨놓았다. 정조 때의 『흠휼전칙(欽恤典則)』에는 길이 5자 5치, 두활 1자 2치이고, 무게는 22근, 18근, 14근으로 각각...
가 (枷)
죄수의 목에 채우는 형구(刑具).# 내용 보통 ‘칼’이라고 하였다. 칼은 마른 나무널판으로 만든 형틀로 죄수의 목에 씌워 보행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칼과 같은 나무형틀로, 손에 채우는 추(杻 : 소칼, 수갑)가 있는데, 이는 발에 채우는 질(桎)과 한 벌로 되어 있었다. 죄수에게 가추 등을 채우는 형벌은 당(唐) · 송(宋)시대의 옥관령(獄官令)에서 이미 정비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대명률』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여 가를 만들었다. 가의 길이는 5자 5치, 두활(頭闊)은 1자 5치이고, 무게는 사죄인(死罪人)에게 씌우는 것은 25근, 도형(徒刑)과 유형(流刑)은 각 20근, 장죄(杖罪)는 15근이며, 그 규격을 나무칼에 새겨놓았다. 정조 때의 『흠휼전칙(欽恤典則)』에는 길이 5자 5치, 두활 1자 2치이고, 무게는 22근, 18근, 14근으로 각각...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문서를 보존, 관리하던 관청.# 개설 1356년 경에 설치되었으며, 1468년(세조 14)에 폐지되었다. # 내용 위치는 고려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조 때에는 경복궁 정전(政殿) 좌측에 있었고 1432년(세종 14)중추원(中樞院) 자리로 옮겼으며 1462년 소장문서의 도난과 산실(散失)을 염려하여 다시 의정부로 옮겼다. 소장자료는 주로 공문서로서 수교(受敎), 대신수의(大臣收議), 군국긴관문서(軍國緊關文書)를 비롯하여 관공서나 종실의 노비문서와 각사에서의 재용물, 차용물에 대한 물건 문서가 주를 이루고, 약간의 전적도 수장되어 있었다. 이의 관리는 고려 공민왕 때에는 승(丞, 종7품), 주부(注簿, 종8품) 각 1인이 담당하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1394년(태조 1)에는 승 2인, 주부 2인, 직장(直長...
가각고 (架閣庫)
고려 후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문서를 보존, 관리하던 관청.# 개설 1356년 경에 설치되었으며, 1468년(세조 14)에 폐지되었다. # 내용 위치는 고려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조 때에는 경복궁 정전(政殿) 좌측에 있었고 1432년(세종 14)중추원(中樞院) 자리로 옮겼으며 1462년 소장문서의 도난과 산실(散失)을 염려하여 다시 의정부로 옮겼다. 소장자료는 주로 공문서로서 수교(受敎), 대신수의(大臣收議), 군국긴관문서(軍國緊關文書)를 비롯하여 관공서나 종실의 노비문서와 각사에서의 재용물, 차용물에 대한 물건 문서가 주를 이루고, 약간의 전적도 수장되어 있었다. 이의 관리는 고려 공민왕 때에는 승(丞, 종7품), 주부(注簿, 종8품) 각 1인이 담당하였으며, 조선조에 들어와 1394년(태조 1)에는 승 2인, 주부 2인, 직장(直長...
조선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다섯 관서. # 내용 한성부의 중(中) · 동(東) · 남(南) · 서(西) · 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사항과 교량 · 도로 · 반화(頒火 : 매년 병조에서 써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 · 금화(禁火) · 가대타량(家垈打量 :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도읍지의 행정구획을 동 · 서 · 남 · 북 · 중의 방위로 구분하여 행정력을 표시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문헌상 왕조의 수도를 방위로 구분, 구획한 것은 고려 태조가 개경에 동 · 남 · 서 · 북 · 중 오부를 둔 것으로, 조선왕조가 성립된 뒤 한성 천도 후에도 그대로 계승하여 한성오부가 성립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고려 문종...
오부 (五部)
조선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다섯 관서. # 내용 한성부의 중(中) · 동(東) · 남(南) · 서(西) · 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사항과 교량 · 도로 · 반화(頒火 : 매년 병조에서 써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 · 금화(禁火) · 가대타량(家垈打量 :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도읍지의 행정구획을 동 · 서 · 남 · 북 · 중의 방위로 구분하여 행정력을 표시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문헌상 왕조의 수도를 방위로 구분, 구획한 것은 고려 태조가 개경에 동 · 남 · 서 · 북 · 중 오부를 둔 것으로, 조선왕조가 성립된 뒤 한성 천도 후에도 그대로 계승하여 한성오부가 성립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고려 문종...
고려전기 제6대 예종의 제3왕비. # 개설 종실 진한후(辰韓侯) 왕유(王愉)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진한후는 고려 문종과 이자연(李子淵)의 딸인 제3비 인경현비(仁敬賢妃)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이다. 따라서, 예종의 부왕인 숙종과는 어머니를 달리하는(숙종의 어머니는 역시 이자연의 딸인 仁睿順德太后임) 형제이며 동시에 이종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종과 문정왕후의 혼인은 친계 사촌혼이며, 외가로는 육촌관계가 되는 근친혈족혼인 것이다. 이러한 근친혼의 습속은 4대 광종이 그 이복누이와 혼인한 이래 계속되어왔다. 예종이 승하한 뒤 영정궁(永貞宮)에서 거처하다가 1129년(인종 7) 귀비(貴妃)로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고려사(高麗史)』 - 「고려초기 혼인정책의 추이와 왕실족내혼의 성립」...
문정왕후 (文貞王后)
고려전기 제6대 예종의 제3왕비. # 개설 종실 진한후(辰韓侯) 왕유(王愉)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진한후는 고려 문종과 이자연(李子淵)의 딸인 제3비 인경현비(仁敬賢妃)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이다. 따라서, 예종의 부왕인 숙종과는 어머니를 달리하는(숙종의 어머니는 역시 이자연의 딸인 仁睿順德太后임) 형제이며 동시에 이종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예종과 문정왕후의 혼인은 친계 사촌혼이며, 외가로는 육촌관계가 되는 근친혈족혼인 것이다. 이러한 근친혼의 습속은 4대 광종이 그 이복누이와 혼인한 이래 계속되어왔다. 예종이 승하한 뒤 영정궁(永貞宮)에서 거처하다가 1129년(인종 7) 귀비(貴妃)로 봉하여졌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고려사(高麗史)』 - 「고려초기 혼인정책의 추이와 왕실족내혼의 성립」...
조선 후기에 주로 세 개의 지공(指孔)과 한 개의 취공(吹孔)을 가졌던 관악기.《진작의궤》 권1 35장 악기풍물에 기록된 설명에 의하면, 가 한 쌍이 방향, 해금, 당금, 생, 당적 등 여러 악기와 함께 장악원(掌樂院)에서 새로 제조되었음이 분명하며, 새로 제조된 가는 한나라 또는 수나라에서 사용되던 악기와 역사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궁중 잔치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새로 만든 가는 권수(卷首) 29장의 도식(圖式)에 악기의 상단부에 뚫려 있는 한 개의 취구와 몸통의 중간 아랫부분에 뚫린 세 개의 지공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몸통의 길이가 3척 5촌이고, 몸통의 둘레가 4촌 가량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취구와 그 반대쪽은 몸통 부분보다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외관상 특징이고, 다른 관악기처럼 대나무로 제조되지...
가 (笳)
조선 후기에 주로 세 개의 지공(指孔)과 한 개의 취공(吹孔)을 가졌던 관악기.《진작의궤》 권1 35장 악기풍물에 기록된 설명에 의하면, 가 한 쌍이 방향, 해금, 당금, 생, 당적 등 여러 악기와 함께 장악원(掌樂院)에서 새로 제조되었음이 분명하며, 새로 제조된 가는 한나라 또는 수나라에서 사용되던 악기와 역사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궁중 잔치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새로 만든 가는 권수(卷首) 29장의 도식(圖式)에 악기의 상단부에 뚫려 있는 한 개의 취구와 몸통의 중간 아랫부분에 뚫린 세 개의 지공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몸통의 길이가 3척 5촌이고, 몸통의 둘레가 4촌 가량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취구와 그 반대쪽은 몸통 부분보다 약간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외관상 특징이고, 다른 관악기처럼 대나무로 제조되지...
선사시대, 그릇 안에 돌이나 흙으로 빚은 방울알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만든 토기. # 내용 ‘영부배(鈴付杯)’라고도 한다. 형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의 바닥에 투공(透孔)을 한겹 내지 두겹 돌린 반구형(半球形) 또는 모난 구슬 모양의 방울 몸체[鈴部]를 맞붙인 것이다. 방울 몸체에 비해서 잔은 목이 길고 크며, 긴 목은 아래가 좁고 위가 넓게 벌어져 있다. 방울 몸체에 원추형의 대각(臺脚)을 덧붙인 것도 있고, 잔의 몸체에 고사리 모양의 장식을 부착시킨 것도 있다. 방울 몸체에 뚫려 있는 투공은 소원형(小圓形)과 삼각형, 제형(梯形) 그리고 볼록렌즈형 등 여러가지가 있다. 방울잔의 전체 크기는 대체로 7∼20㎝ 정도이며 비교적 작은 편이다. 백제의 방울잔은 몸체에 아무런 장식이 없이 형태가 단순하고 소박한 점이 특징이다....
방울잔 (방울盞)
선사시대, 그릇 안에 돌이나 흙으로 빚은 방울알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만든 토기. # 내용 ‘영부배(鈴付杯)’라고도 한다. 형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의 바닥에 투공(透孔)을 한겹 내지 두겹 돌린 반구형(半球形) 또는 모난 구슬 모양의 방울 몸체[鈴部]를 맞붙인 것이다. 방울 몸체에 비해서 잔은 목이 길고 크며, 긴 목은 아래가 좁고 위가 넓게 벌어져 있다. 방울 몸체에 원추형의 대각(臺脚)을 덧붙인 것도 있고, 잔의 몸체에 고사리 모양의 장식을 부착시킨 것도 있다. 방울 몸체에 뚫려 있는 투공은 소원형(小圓形)과 삼각형, 제형(梯形) 그리고 볼록렌즈형 등 여러가지가 있다. 방울잔의 전체 크기는 대체로 7∼20㎝ 정도이며 비교적 작은 편이다. 백제의 방울잔은 몸체에 아무런 장식이 없이 형태가 단순하고 소박한 점이 특징이다....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이며, 명종의 어머니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17년(중종 12)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45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동안 동생인 소윤(少尹) 윤원형(尹元衡)에게 정권을 쥐게 한 결과 인종의 외척인 대윤(大尹) 윤임(尹任) 일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원로(尹元老)를 해남(海南)으로 귀양보내고 윤임 등을 사사하였다. 승 보우(普雨)를 신임하여 불교의 부흥을 꾀하여 1550년(명종 5)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였고, 중종의 능을 보우가 주지로 있는 봉은사(奉恩寺)로 이장시켰다. 1553년 국정을 왕에게 맡겼으나 실질적인...
문정왕후 (文定王后)
조선전기 제11대 중종의 왕비. #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이며, 명종의 어머니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17년(중종 12)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1545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는 동안 동생인 소윤(少尹) 윤원형(尹元衡)에게 정권을 쥐게 한 결과 인종의 외척인 대윤(大尹) 윤임(尹任) 일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을사사화를 일으켜 윤원로(尹元老)를 해남(海南)으로 귀양보내고 윤임 등을 사사하였다. 승 보우(普雨)를 신임하여 불교의 부흥을 꾀하여 1550년(명종 5)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였고, 중종의 능을 보우가 주지로 있는 봉은사(奉恩寺)로 이장시켰다. 1553년 국정을 왕에게 맡겼으나 실질적인...
고려·조선시대에 과거급제자에게 지급하였던 토지. # 내용 이는 고려 초기부터 있었는데 문종 때 재정비되었다. 그 중요한 내용은 제술(製述)·명경(明經)·명법(明法)·명서(明書)·명산(明算)·의복(醫卜)·지리업(地理業) 등의 여러 과거에 급제한 사람 중 갑과 출신에게는 토지 20결을 주고, 그 이하에게는 17결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과거급제자에게 토지를 지급하는 이러한 고려의 등과전제도는 조선에도 계승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친시지전(親試之田)’·‘친시등과전(親試登科田)’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친시에서 등제한 사람에게만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친시등과전은 별사전(別賜田)의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무사패별사전(無賜牌別賜田)으로 분류되어 자손에게 상속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태종의 명에 의하여...
등과전 (登科田)
고려·조선시대에 과거급제자에게 지급하였던 토지. # 내용 이는 고려 초기부터 있었는데 문종 때 재정비되었다. 그 중요한 내용은 제술(製述)·명경(明經)·명법(明法)·명서(明書)·명산(明算)·의복(醫卜)·지리업(地理業) 등의 여러 과거에 급제한 사람 중 갑과 출신에게는 토지 20결을 주고, 그 이하에게는 17결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과거급제자에게 토지를 지급하는 이러한 고려의 등과전제도는 조선에도 계승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친시지전(親試之田)’·‘친시등과전(親試登科田)’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친시에서 등제한 사람에게만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친시등과전은 별사전(別賜田)의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무사패별사전(無賜牌別賜田)으로 분류되어 자손에게 상속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태종의 명에 의하여...
북한 남포특별시 와우도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풍속도·장식무늬 관련 벽화무덤. 굴식 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내용 1913년에 조사 발표되었으며 초기에는 ‘대연화총(大蓮華塚)’으로 불리웠다. 구조는 원형의 봉토에 널길 및 좌우 양쪽에 하나씩 두 개의 감(龕)이 있는 장방형 앞방과 방형의 널방으로 이루어진 두방무덤[二室墳]이다. 천장 가구(架構)는 앞방은 궁륭천장이고 널방은 궁륭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회칠한 벽면에 그려져 있으나 박락이 심하여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앞방과 널방의 각 벽 모서리에는 기둥과 두공(抖拱)이 그려져 있고, 널길에는 기마인물, 전실의 동벽에는 시자·시녀, 서벽에는 인물상·산악(山岳)·신선, 남벽에는 고취·악대·수레·인물상, 북벽에는 주작도·인물상·연꽃무늬가 그려져...
감신총 (龕神塚)
북한 남포특별시 와우도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풍속도·장식무늬 관련 벽화무덤. 굴식 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내용 1913년에 조사 발표되었으며 초기에는 ‘대연화총(大蓮華塚)’으로 불리웠다. 구조는 원형의 봉토에 널길 및 좌우 양쪽에 하나씩 두 개의 감(龕)이 있는 장방형 앞방과 방형의 널방으로 이루어진 두방무덤[二室墳]이다. 천장 가구(架構)는 앞방은 궁륭천장이고 널방은 궁륭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회칠한 벽면에 그려져 있으나 박락이 심하여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앞방과 널방의 각 벽 모서리에는 기둥과 두공(抖拱)이 그려져 있고, 널길에는 기마인물, 전실의 동벽에는 시자·시녀, 서벽에는 인물상·산악(山岳)·신선, 남벽에는 고취·악대·수레·인물상, 북벽에는 주작도·인물상·연꽃무늬가 그려져...
해방 이후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단군조선사연구」·「고조선사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당백당(柏堂)이다. 부산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상남도 동래군 서기를 지내다가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학해 이듬해 3월 졸업했다. 경기도 수원군 속, 1927년 경상남도 울산군 속, 1928년 동래군 속, 1930년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 속(1930), 1932년 10월에는 조선 쇼와[昭和]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 속, 1941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 속,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등을 거쳤다. 1943년 3월 군수로 승진하여 황해도 은율군수를 거쳐 1945년 6월부터...
문정창 (文定昌)
해방 이후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단군조선사연구」·「고조선사연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당백당(柏堂)이다. 부산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상남도 동래군 서기를 지내다가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학해 이듬해 3월 졸업했다. 경기도 수원군 속, 1927년 경상남도 울산군 속, 1928년 동래군 속, 1930년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 속(1930), 1932년 10월에는 조선 쇼와[昭和]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 속, 1941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 속,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등을 거쳤다. 1943년 3월 군수로 승진하여 황해도 은율군수를 거쳐 1945년 6월부터...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1대인 동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 내용 대동강 서북안의 작은 구릉지대에 있으며, 주위에도 약 15, 16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강동한왕묘로 불리게 된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며, ‘황제묘’라고도 불린다. 방형(方形)의 2층 기단 위에 봉토하여 원분(圓墳)을 만들었으며, 널방[玄室]이 남쪽으로 면하게 되어 있다. 봉토의 지름이 약 54m, 높이 10.8m로 평양 부근 고분 중 최대 규모이다. 봉토의 표면에서 약 30㎝ 깊이에 각종 기와조각을 깔아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였다. 널방은 평면이 방형이며 네 벽은 큰 판석(板石)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천장은 네 벽선과 평행하게 2단의 역(逆)계단형 받침돌을 내밀어 천장면적을 줄인 다음 네 귀에 삼각형의 받침돌을 걸친 뒤 그 위에...
강동 한왕묘 (江東 漢王墓)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1대인 동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 내용 대동강 서북안의 작은 구릉지대에 있으며, 주위에도 약 15, 16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강동한왕묘로 불리게 된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며, ‘황제묘’라고도 불린다. 방형(方形)의 2층 기단 위에 봉토하여 원분(圓墳)을 만들었으며, 널방[玄室]이 남쪽으로 면하게 되어 있다. 봉토의 지름이 약 54m, 높이 10.8m로 평양 부근 고분 중 최대 규모이다. 봉토의 표면에서 약 30㎝ 깊이에 각종 기와조각을 깔아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였다. 널방은 평면이 방형이며 네 벽은 큰 판석(板石)을 이용해서 축조하였다. 천장은 네 벽선과 평행하게 2단의 역(逆)계단형 받침돌을 내밀어 천장면적을 줄인 다음 네 귀에 삼각형의 받침돌을 걸친 뒤 그 위에...
조선 후기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김장생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활동하며 군사 및 군량미 모집에 힘쓴 의병. # 개설 본관은 용성(龍城). 자는 이성(而省), 호는 만오(晩悟). 증조가 방한걸(房漢傑)이며, 할아버지는 방응현(房應賢)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대박(梁大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28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3년간 문과에 대비하여 학업에 열중하였으나 정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신흠(申欽)의 천거로 찰방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방원진 (房元震)
조선 후기에,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김장생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활동하며 군사 및 군량미 모집에 힘쓴 의병. # 개설 본관은 용성(龍城). 자는 이성(而省), 호는 만오(晩悟). 증조가 방한걸(房漢傑)이며, 할아버지는 방응현(房應賢)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양대박(梁大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28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유생으로 3년간 문과에 대비하여 학업에 열중하였으나 정국이 어지러움을 보고 과거를 단념하고 낙향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신흠(申欽)의 천거로 찰방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27년 정묘호란 때 호소사(號召使) 김장생(金長生)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군사와 군량미를 모집하는 데 활약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조선시대 법정 정원 외에 추가로 임용하거나 중요 관직에 결원이 생겼을 경우 타관이 겸임하는 임시관직. # 내용 조선 초기에 가관이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연산군 이후부터는 여러 가지 명목의 가관들이 많이 두어지게 되었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선공감 · 사옹원 · 통례원 등에서 많은 임시직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는 과다한 행정업무의 처리를 위하여 필요한 일이었으나, 업무가 적은 관서에까지 남용되는 일이 많았고, 관직 희망자들이 관료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추가예산이 소요되었고, 정식관원들의 직무위임으로 인한 관리들의 기강해이와 가관들의 직권남용 등의 폐단을 초래하게 되어 여러 차례 그 조정문제가 논의되었다. 1517년(중종 12) 7월의 가관실태와 감축내역을 보면, 왕자군...
가관 (假官)
조선시대 법정 정원 외에 추가로 임용하거나 중요 관직에 결원이 생겼을 경우 타관이 겸임하는 임시관직. # 내용 조선 초기에 가관이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연산군 이후부터는 여러 가지 명목의 가관들이 많이 두어지게 되었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선공감 · 사옹원 · 통례원 등에서 많은 임시직을 활용하고 있었다. 이는 과다한 행정업무의 처리를 위하여 필요한 일이었으나, 업무가 적은 관서에까지 남용되는 일이 많았고, 관직 희망자들이 관료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추가예산이 소요되었고, 정식관원들의 직무위임으로 인한 관리들의 기강해이와 가관들의 직권남용 등의 폐단을 초래하게 되어 여러 차례 그 조정문제가 논의되었다. 1517년(중종 12) 7월의 가관실태와 감축내역을 보면, 왕자군...
조선 후기에, 임천군수, 평양서윤,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대백(大伯). 아버지는 군수 김안묵(金安默)이며, 어머니는 참봉 한사중(韓思重)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783년(정조 7) 진사가 된 후[^1] 1785년 영릉(永陵) · 명릉(明陵)의 참봉을 거쳐 의금부동부도사 ·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 형조좌랑 · 형조정랑 · 호조정랑 등을 거쳐 사도시 · 사옹원 · 장악원의 첨정과 돈녕부판관 · 선혜낭청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삼등(三登) · 영유(永柔)현령, 순안 · 맹산현감, 함흥 · 광주판관, 선산 · 장성부사 및 임천군수 · 평양서윤 · 충주목사 등을 거쳤다. 지방수령으로 재직 중에는 관개 · 교량 등의 사업에 힘썼고 군역의 폐단이던 첨정(簽丁: 黃口簽丁의 준말로 어린 아이를 군역자로...
김기풍 (金基豊)
조선 후기에, 임천군수, 평양서윤, 충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대백(大伯). 아버지는 군수 김안묵(金安默)이며, 어머니는 참봉 한사중(韓思重)의 딸이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783년(정조 7) 진사가 된 후[^1] 1785년 영릉(永陵) · 명릉(明陵)의 참봉을 거쳐 의금부동부도사 ·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 형조좌랑 · 형조정랑 · 호조정랑 등을 거쳐 사도시 · 사옹원 · 장악원의 첨정과 돈녕부판관 · 선혜낭청 등을 역임하였다. 외직으로는 삼등(三登) · 영유(永柔)현령, 순안 · 맹산현감, 함흥 · 광주판관, 선산 · 장성부사 및 임천군수 · 평양서윤 · 충주목사 등을 거쳤다. 지방수령으로 재직 중에는 관개 · 교량 등의 사업에 힘썼고 군역의 폐단이던 첨정(簽丁: 黃口簽丁의 준말로 어린 아이를 군역자로...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515048) ##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단행본 -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혜안, 2006) -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일조각, 1974) ## 논문 - 김희만, 「신라 관명 ‘대사’의 운용과 그 성격」(『동국사학』 54,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
대사 (大舍)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515048) ##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 단행본 - 하일식, 『신라 집권 관료제 연구』(혜안, 2006) -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일조각, 1974) ## 논문 - 김희만, 「신라 관명 ‘대사’의 운용과 그 성격」(『동국사학』 54,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
고려 전기, 제11대 왕. 문종은 고려 전기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46~1083년이며, 형인 제10대 왕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형제 상속의 형태를 취해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 재위기는 고려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문물제도가 크게 정비된 시기였다. 양반전시과가 다시 정비되고 관제가 개편되었으며, 백관의 서열과 녹과가 제정되는 등 지배체제 확립을 위한 정치·경제제도가 완비되었다. 형법 정비와 재면법 마련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이 있었다. 몇 차례 동여진의 침략도 모두 격퇴하고 여진과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1995) - 이태진, 「휴전고: 통일신라·고려시대 수도작법의 유추」 (『한국학보』 10, 일지사, 1978) - 조좌호, 「여대남반고」 (『동국사학』 5, 동국역사문화연구소, 1957)
문종 (文宗)
고려 전기, 제11대 왕. 문종은 고려 전기 제1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046~1083년이며, 형인 제10대 왕 정종에게 아들이 있었지만 형제 상속의 형태를 취해 왕위를 계승했다. 문종 재위기는 고려의 황금기라 할 정도로 문물제도가 크게 정비된 시기였다. 양반전시과가 다시 정비되고 관제가 개편되었으며, 백관의 서열과 녹과가 제정되는 등 지배체제 확립을 위한 정치·경제제도가 완비되었다. 형법 정비와 재면법 마련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고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발전이 있었다. 몇 차례 동여진의 침략도 모두 격퇴하고 여진과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1995) - 이태진, 「휴전고: 통일신라·고려시대 수도작법의 유추」 (『한국학보』 10, 일지사, 1978) - 조좌호, 「여대남반고」 (『동국사학』 5, 동국역사문화연구소, 1957)
고려시대,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 경령전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고려시대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이다. 고려 원묘(原廟) 중의 하나로 태조·황고(太祖皇考)의 별묘(別廟)라고 불렸다. 태조와 국왕의 직계 4대친(부·조·증조·고조)의 진영을 봉안한 영전(影殿)으로 5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왕은 나라와 왕실의 중요 행사를 경령전에 고하였다. 주고(奏告)와 부묘(祔廟) 의례는 태묘 의례를 따랐다. 의례의 위상은 원구·사직·태묘와 같이 대사에 올라 있었다. 매년 정월 초하루와 단오·추석·중구일에 국왕이 친히 제사하였다.(『역사교육논집』 43, 역사교육학회, 2009) - 홍영의, 「고려 궁궐내 경령전의 구조와...
경령전 (景靈殿)
고려시대,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 경령전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고려시대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이다. 고려 원묘(原廟) 중의 하나로 태조·황고(太祖皇考)의 별묘(別廟)라고 불렸다. 태조와 국왕의 직계 4대친(부·조·증조·고조)의 진영을 봉안한 영전(影殿)으로 5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왕은 나라와 왕실의 중요 행사를 경령전에 고하였다. 주고(奏告)와 부묘(祔廟) 의례는 태묘 의례를 따랐다. 의례의 위상은 원구·사직·태묘와 같이 대사에 올라 있었다. 매년 정월 초하루와 단오·추석·중구일에 국왕이 친히 제사하였다.(『역사교육논집』 43, 역사교육학회, 2009) - 홍영의, 「고려 궁궐내 경령전의 구조와...
북한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신도·장식무늬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내용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벽화고분이다. 고분의 분구는 원형이며, 기저부의 지름은 약 51.6m, 높이는 8.86m이다. 무덤의 구조는 널방 남벽의 중앙에 달린 널길과 평면이 방형인 널방으로 된 외방무덤이다. 널방 네 벽과 천장은 각각 한 장의 질이 좋고 잘 다듬어진 큰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천장은 2단의 평행 굄돌을 안쪽으로 내밀고 그 위에 2단의 삼각 굄돌을 얹고서 덮개돌을 덮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사신도(四神圖) 및 장식무늬로 회칠을 하지 않은 잘 다듬어진 널방 돌벽면에 직접 그려졌다. 널방 남벽의 입구 주변에는 인동·당초무늬를 그려 장식하고, 좌우의 좁은 벽에는 주작을 한 마리씩 그렸으며, 동벽에는 청룡...
강서 대묘 (江西 大墓)
북한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신도·장식무늬 관련 벽화무덤. 횡혈식석실분.# 내용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벽화고분이다. 고분의 분구는 원형이며, 기저부의 지름은 약 51.6m, 높이는 8.86m이다. 무덤의 구조는 널방 남벽의 중앙에 달린 널길과 평면이 방형인 널방으로 된 외방무덤이다. 널방 네 벽과 천장은 각각 한 장의 질이 좋고 잘 다듬어진 큰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천장은 2단의 평행 굄돌을 안쪽으로 내밀고 그 위에 2단의 삼각 굄돌을 얹고서 덮개돌을 덮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사신도(四神圖) 및 장식무늬로 회칠을 하지 않은 잘 다듬어진 널방 돌벽면에 직접 그려졌다. 널방 남벽의 입구 주변에는 인동·당초무늬를 그려 장식하고, 좌우의 좁은 벽에는 주작을 한 마리씩 그렸으며, 동벽에는 청룡...
조선의 제5대(재위: 1450년~1452년) 왕. 문종은 조선전기 제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50∼1452년이며, 세종의 맏아들이다. 세종 재위시에 세자로서 섭정을 하면서 실제적인 정치 경험을 쌓았다. 학문을 좋아했고 학자들을 아꼈으며 많은 서적들을 편찬했다. 『고려사』 개찬과 『고려사절요』 편찬은 조선왕조의 정치·제도·문화의 정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 사업이었다. 군제도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해 정비했다. 유학뿐 아니라 천문·역수·산술에도 정통했고 서도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 재위 2년 4개월 만인 39세에 병사하고 나이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했다.『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의 편찬은 전 왕조의 역사의 정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정치 · 제도 · 문화의 정리를 위해서도...
문종 (文宗)
조선의 제5대(재위: 1450년~1452년) 왕. 문종은 조선전기 제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50∼1452년이며, 세종의 맏아들이다. 세종 재위시에 세자로서 섭정을 하면서 실제적인 정치 경험을 쌓았다. 학문을 좋아했고 학자들을 아꼈으며 많은 서적들을 편찬했다. 『고려사』 개찬과 『고려사절요』 편찬은 조선왕조의 정치·제도·문화의 정리를 위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 사업이었다. 군제도 스스로 개혁안을 마련해 정비했다. 유학뿐 아니라 천문·역수·산술에도 정통했고 서도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허약해 재위 2년 4개월 만인 39세에 병사하고 나이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했다.『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의 편찬은 전 왕조의 역사의 정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조의 정치 · 제도 · 문화의 정리를 위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