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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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6대(재위: 1452년~1455년) 왕. 단종은 조선전기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52년∼1455년이다. 문종이 승하하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대신들과 세종의 부탁을 받은 집현전 학사 출신들이 측근으로 보좌했다. 즉위 2년차에 숙부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도모하여 측근들을 주살하고 실권을 장악하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단종복위 사건이 나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후 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죽음을 맞았다.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에 복위되었다. 능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이다.# 개설 재위 1452년(단종 즉위년)∼1455년(단종 3).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홍위(李弘暐). 아버지는 문종이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權氏)이다. 비는...
단종 (端宗)
조선의 제6대(재위: 1452년~1455년) 왕. 단종은 조선전기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452년∼1455년이다. 문종이 승하하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문종의 고명을 받은 대신들과 세종의 부탁을 받은 집현전 학사 출신들이 측근으로 보좌했다. 즉위 2년차에 숙부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을 도모하여 측근들을 주살하고 실권을 장악하자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단종복위 사건이 나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이후 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죽음을 맞았다. 1681년(숙종 7)에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에 복위되었다. 능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이다.# 개설 재위 1452년(단종 즉위년)∼1455년(단종 3). 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홍위(李弘暐). 아버지는 문종이며, 어머니는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權氏)이다. 비는...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폐위되자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死六臣)이 주동이 되어 복위를 시도했던 거사. 이러한 때 왕의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의 심복 대신을 제거하고 정권 찬탈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1453년(단종 1) 10월 이른바 계유정난(癸酉靖亂)을 일으켰다. 이 정변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보필하는 황보인 · 김종서 등의 대신을 주살, 제거하고 자기의 정권 찬탈의 야망을 달성한 폭력 행사였다. 이 정변으로 단종의 보좌 세력은 전부 제거되고 수양대군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鄭麟趾) · 신숙주(申叔舟) · 한명회(韓明澮) · 권람(權擥) · 홍윤성(洪允成) 등은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단종복위운동 (端宗復位運動)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폐위되자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死六臣)이 주동이 되어 복위를 시도했던 거사. 이러한 때 왕의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의 심복 대신을 제거하고 정권 찬탈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1453년(단종 1) 10월 이른바 계유정난(癸酉靖亂)을 일으켰다. 이 정변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보필하는 황보인 · 김종서 등의 대신을 주살, 제거하고 자기의 정권 찬탈의 야망을 달성한 폭력 행사였다. 이 정변으로 단종의 보좌 세력은 전부 제거되고 수양대군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수양대군의 추종 세력인 정인지(鄭麟趾) · 신숙주(申叔舟) · 한명회(韓明澮) · 권람(權擥) · 홍윤성(洪允成) 등은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고 단종을 왕위에서...
조선전기 제6대 왕 단종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 서지적 사항 1452년 5월부터 1455년 윤6월까지 단종의 재위 3년 2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14권 6책. 정식 이름은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이다. 표지에는 ‘端宗大王實錄(단종대왕실록)’이라고 되어 있으나, 본문의 각 면에는 모두 ‘魯山君日記(노산군일기)’라고 표제하였다. # 내용 원래 단종은 왕위에서 밀려나 상왕(上王)이 되었으나, 2년 뒤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되고 곧 서인(庶人)이 되었다가 살해되었다. 이렇듯 양위(讓位)가 폐위(廢位)로 바뀐 결과, 죽은 뒤에도 묘호(廟號)나 시호가 없었으며, 실록도 편찬되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단종실록』은 본래에는 『노산군일기』로 편찬되었는데, 그 과정도...
단종실록 (端宗實錄)
조선전기 제6대 왕 단종의 재위 기간 동안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룬 실록. # 서지적 사항 1452년 5월부터 1455년 윤6월까지 단종의 재위 3년 2개월 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14권 6책. 정식 이름은 ‘노산군일기(魯山君日記)’이다. 표지에는 ‘端宗大王實錄(단종대왕실록)’이라고 되어 있으나, 본문의 각 면에는 모두 ‘魯山君日記(노산군일기)’라고 표제하였다. # 내용 원래 단종은 왕위에서 밀려나 상왕(上王)이 되었으나, 2년 뒤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되고 곧 서인(庶人)이 되었다가 살해되었다. 이렇듯 양위(讓位)가 폐위(廢位)로 바뀐 결과, 죽은 뒤에도 묘호(廟號)나 시호가 없었으며, 실록도 편찬되지 않았다. 지금 남아 있는 『단종실록』은 본래에는 『노산군일기』로 편찬되었는데, 그 과정도...
4월 한식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단종의 제향과 함께 개최하는 문화축제. 향토문화제. # 내용 4월 한식을 중심으로 3일간 개최하며, 단종 유배지와 단종의 묘인 장릉이 있어 단종의 제향과 함께 문화제전을 거행한다. 1698년 이후 제향만 올리다가 1967년부터 문화행사와 병행하여 제1회 단종제를 개최하였고, 그 뒤 명칭을 ‘단종문화제’로 개칭하여 1999년 현재 33회에 이르고 있다. 제1일은 전야제로, 장릉 · 창절사 · 관풍헌 · 자규루 · 낙화암 · 민충사 · 영모전 등 단종과 관계되는 유적지에 등불을 밝히고 육신봉(六臣峰)에 봉화를 올리며 불꽃놀이와 함께 낙화암 강물에도 유등불을 띄운다. 제일(祭日)에는 장릉에서 단종대왕 제향을 올리는데, 제수 · 복식 등 모든 절차가 전통왕릉의식에 따르고, 충신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단종문화제 (端宗文化祭)
4월 한식에 강원도 영월군에서 단종의 제향과 함께 개최하는 문화축제. 향토문화제. # 내용 4월 한식을 중심으로 3일간 개최하며, 단종 유배지와 단종의 묘인 장릉이 있어 단종의 제향과 함께 문화제전을 거행한다. 1698년 이후 제향만 올리다가 1967년부터 문화행사와 병행하여 제1회 단종제를 개최하였고, 그 뒤 명칭을 ‘단종문화제’로 개칭하여 1999년 현재 33회에 이르고 있다. 제1일은 전야제로, 장릉 · 창절사 · 관풍헌 · 자규루 · 낙화암 · 민충사 · 영모전 등 단종과 관계되는 유적지에 등불을 밝히고 육신봉(六臣峰)에 봉화를 올리며 불꽃놀이와 함께 낙화암 강물에도 유등불을 띄운다. 제일(祭日)에는 장릉에서 단종대왕 제향을 올리는데, 제수 · 복식 등 모든 절차가 전통왕릉의식에 따르고, 충신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6대 단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터. 단종은 조선 제6대 임금으로 1441년(세종 23)에 태어났다. 세종은 1441(재위 23)년에 손자 단종이 태어나자 자신의 태실 앞의 원구단(圓丘上)에 태실을 조영하도록 하여 그해 태실이 안치되었다. 1832(순조 32)년경에 완성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곤양군(毘陽郡)조에 의하면 ‘소곡산(所谷山)은 군의 북쪽 25리 되는 지리산 남쪽에 있다. 진주의 옥산(玉山)이 동쪽으로 와서 주맥(主脈)을 삼았는데 세종대왕과 단종대왕의 양묘태실(兩廟胎室)이 봉안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1734년(영조 10)에 세조대왕의 태실비를 세울 때 단종의 태실비도 함께 건립하였는데, 태실비에는 전면에는 ‘단종대왕태실(端宗大王胎室)’ 후면에는...
단종 태실지 (端宗 胎室址)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에 있는 조선전기 제6대 단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터. 단종은 조선 제6대 임금으로 1441년(세종 23)에 태어났다. 세종은 1441(재위 23)년에 손자 단종이 태어나자 자신의 태실 앞의 원구단(圓丘上)에 태실을 조영하도록 하여 그해 태실이 안치되었다. 1832(순조 32)년경에 완성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곤양군(毘陽郡)조에 의하면 ‘소곡산(所谷山)은 군의 북쪽 25리 되는 지리산 남쪽에 있다. 진주의 옥산(玉山)이 동쪽으로 와서 주맥(主脈)을 삼았는데 세종대왕과 단종대왕의 양묘태실(兩廟胎室)이 봉안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1734년(영조 10)에 세조대왕의 태실비를 세울 때 단종의 태실비도 함께 건립하였는데, 태실비에는 전면에는 ‘단종대왕태실(端宗大王胎室)’ 후면에는...
조선 6대 임금인 단종(端宗)에 관한 설화. 「단종 설화」는 조선 6대 임금인 단종(端宗)에 관한 설화이다. 단종이 강원도 유배지에서 보여준 행위와 장소를 연결 지은 지명 전설도 있고,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관하여 증언하거나 지역의 신이 되어 제향 받는 이야기도 있는데, 비극적으로 희생된 인물을 신격화하고, 원통한 마음을 풀어주려는 민중 의식을 살필 수 있다.#개설 단종(端宗)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어 사실에서 벗어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한편, 구전되는 설화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구전의 특징인 구비적 적층성(積層性)을 통해 전혀 다른 인물의 성격을 구현하려고 하는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허구적인 상상을 허용하는 변이의 범위가 무한정 확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종은...
단종 설화 (端宗 說話)
조선 6대 임금인 단종(端宗)에 관한 설화. 「단종 설화」는 조선 6대 임금인 단종(端宗)에 관한 설화이다. 단종이 강원도 유배지에서 보여준 행위와 장소를 연결 지은 지명 전설도 있고,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관하여 증언하거나 지역의 신이 되어 제향 받는 이야기도 있는데, 비극적으로 희생된 인물을 신격화하고, 원통한 마음을 풀어주려는 민중 의식을 살필 수 있다.#개설 단종(端宗)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어 사실에서 벗어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한편, 구전되는 설화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구전의 특징인 구비적 적층성(積層性)을 통해 전혀 다른 인물의 성격을 구현하려고 하는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허구적인 상상을 허용하는 변이의 범위가 무한정 확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종은...
조선전기 제6대 왕 단종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영모전은 원래 신목(神木) 하나만 서 있던 서낭당이었으나 현재는 단청을 한 기와집에 단종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다. 영월읍보덕사(報德寺) 등의 절에서도 단종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그림에는 백마를 탄 단종과 그 앞에 머루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충신(秋忠臣)이 같이 그려져 있으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추충신의 이름은 익한(益漢)으로 한성부윤을 지냈던 사람이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관풍헌(觀風軒)에 있을 때 산머루를 따다가 진상하고 자주 문안을 드렸다. 그날도 예외 없이 산머루를 따 가지고 단종에게 진상하려고 영월부중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연하리(蓮下里) 계사폭포에 이르렀을 때, 곤룡포에 익선관(翼蟬冠)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타고...
단종대왕신 (端宗大王神)
조선전기 제6대 왕 단종에게 부여한 무속신격. 왕신. 영모전은 원래 신목(神木) 하나만 서 있던 서낭당이었으나 현재는 단청을 한 기와집에 단종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다. 영월읍보덕사(報德寺) 등의 절에서도 단종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그림에는 백마를 탄 단종과 그 앞에 머루바구니를 들고 있는 추충신(秋忠臣)이 같이 그려져 있으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온다. 추충신의 이름은 익한(益漢)으로 한성부윤을 지냈던 사람이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외롭게 관풍헌(觀風軒)에 있을 때 산머루를 따다가 진상하고 자주 문안을 드렸다. 그날도 예외 없이 산머루를 따 가지고 단종에게 진상하려고 영월부중으로 내려오는 길인데, 연하리(蓮下里) 계사폭포에 이르렀을 때, 곤룡포에 익선관(翼蟬冠)으로 정장을 하고 백마를 타고...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이광수(李光洙)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 『단종애사』는 이광수가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총 217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1930년 회동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단종애사』는 애사의 단종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이다. 단종과 수양이라는 대립적 인물 구도를 축으로 왕조적 적통성을 지닌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다. 작가는 단종의 비참한 운명이 인정과 의리의 면에서 조선인의 장처와 단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재의 전후 맥락 『단종애사』는 십여 차례의 휴재^1] 끝에 어렵게 완성된 작품이다. 작품 연재 당시...
단종애사 (端宗哀史)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이광수(李光洙)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 『단종애사』는 이광수가 1928년 11월 30일부터 1929년 12월 1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총 217회에 걸쳐 연재되었고, 1930년 회동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단종애사』는 애사의 단종에 관한 비극적 이야기이다. 단종과 수양이라는 대립적 인물 구도를 축으로 왕조적 적통성을 지닌 단종을 지지하는 사육신 계열과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위하고자 하는 한명회, 정인지 일파의 대결이 그려진다. 작가는 단종의 비참한 운명이 인정과 의리의 면에서 조선인의 장처와 단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을 강조했다.# 연재의 전후 맥락 『단종애사』는 십여 차례의 휴재^1] 끝에 어렵게 완성된 작품이다. 작품 연재 당시...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조선후기 단종복위운동 관련 신단. 이듬해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지역 사족(士族)들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사전 밀고로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1] 숙종연간에 금성대군과 함께 순절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단(壇)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특징 금성대군신단은 2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제청과 주사가 마주하고 있고 일각문으로 들어가면 토석담장 안에 신단이 조성되어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조성하였으며 기단 앞 3곳에 계단을 설치했다. 기단 위에는 품(品)자 형으로 돌로 만든 3개의 단이 조성되어 있다. 금성대군의 신단은 중앙 뒤쪽에 있는 단으로 서쪽에는 금성대군성인신단지비...
영주 금성대군 신단 (榮州 錦城大君 神壇)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조선후기 단종복위운동 관련 신단. 이듬해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 및 지역 사족(士族)들과 더불어 단종 복위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사전 밀고로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1] 숙종연간에 금성대군과 함께 순절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단(壇)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특징 금성대군신단은 2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제청과 주사가 마주하고 있고 일각문으로 들어가면 토석담장 안에 신단이 조성되어 있다. 기단은 장대석으로 조성하였으며 기단 앞 3곳에 계단을 설치했다. 기단 위에는 품(品)자 형으로 돌로 만든 3개의 단이 조성되어 있다. 금성대군의 신단은 중앙 뒤쪽에 있는 단으로 서쪽에는 금성대군성인신단지비...
조선 전기에,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지리산에 은거하였으며, 『귀은선생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1427년(세종 9) 명경과에 합격하여 집현전학사가 되었다. 1455년(단종 3) 세조의 압력으로 단종이 물러나자 지리산에 들어가 귀은정(歸隱亭)을 짓고 은거하다가, 단종이 승하하고 육신(六臣)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나의 큰 단(壇)과 여섯 개의 작은 단을 쌓아 제사를 지냈다. 1459년(세조 4) 꿈에 성삼문(成三問)을 만나고는 곧 세상을 떠났다. 유언으로 관곽(棺槨)을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귀은선생문집(歸隱先生文集)』 2권이 있다. - 『귀은선생문집(歸隱先生文集)』
오계종 (吳繼宗)
조선 전기에,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지리산에 은거하였으며, 『귀은선생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 생애 및 활동사항 1427년(세종 9) 명경과에 합격하여 집현전학사가 되었다. 1455년(단종 3) 세조의 압력으로 단종이 물러나자 지리산에 들어가 귀은정(歸隱亭)을 짓고 은거하다가, 단종이 승하하고 육신(六臣)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나의 큰 단(壇)과 여섯 개의 작은 단을 쌓아 제사를 지냈다. 1459년(세조 4) 꿈에 성삼문(成三問)을 만나고는 곧 세상을 떠났다. 유언으로 관곽(棺槨)을 쓰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저서로는 『귀은선생문집(歸隱先生文集)』 2권이 있다. - 『귀은선생문집(歸隱先生文集)』
조선의 제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 영풍군은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이다. 이름은 전(瑔)이다. 세종의 서자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혜빈양씨의 3남이다. 단종을 보호하려다 세조 즉위 후 예안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임실로 귀양을 갔으며,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에 연루되어 위리안치 중 죽임을 당하였다.# 주요 활동 1455년(단종 3) 단종이 선위하자 어머니 혜빈양씨, 세종의 6남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 등과 처벌을 받아 예안(禮安)으로 귀양을 갔다.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으로 가산이 적몰[^1]되고 고신(告身)[^2]을 회수 당한 후 임실(任實)로 귀양갔다. 1457년(세조 3)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가 발각되어 위리안치[^3] 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영풍군 (永豊君)
조선의 제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 영풍군은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이다. 이름은 전(瑔)이다. 세종의 서자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혜빈양씨의 3남이다. 단종을 보호하려다 세조 즉위 후 예안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임실로 귀양을 갔으며,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에 연루되어 위리안치 중 죽임을 당하였다.# 주요 활동 1455년(단종 3) 단종이 선위하자 어머니 혜빈양씨, 세종의 6남 금성대군(錦城大君) 이유(李瑜) 등과 처벌을 받아 예안(禮安)으로 귀양을 갔다.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으로 가산이 적몰[^1]되고 고신(告身)[^2]을 회수 당한 후 임실(任實)로 귀양갔다. 1457년(세조 3)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가 발각되어 위리안치[^3] 되었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연분과 글씨를 쓰는 서판으로 글을 쓰는 문필 활동과 행위 또는 글을 쓴 결과물. 연참(鉛槧)의 연(鉛)은 글쓰는 데에 필요한 납가루인 연분(鉛粉)을 의미하며, 참(槧)은 글씨를 쓰는 서판(書板)을 의미한다. 이는 종이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나무 널판지에 흰색 연분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붙은 의미이다. 이에 연참은 글을 쓰는 문필 행위나 활동 또는 글을 쓴 결과물을 의미한다.1453년에 성삼문(成三問)이 단종에게 올린 상서가 『단종실록(端宗實錄)』(단종 1년 11월 24일 병자)에 실려 있는데, 자신이 “한갓 연참(鉛槧)의 말예(末藝)로 오랫동안 청화(淸華)의 직(職)을 더럽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연참’은 언사를 공무로 삼았던 문신들의 겸양어로서 ‘문필의 업’ 또는 ‘문장을 짓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일찍부터 자주 쓰인...
연참 (鉛槧)
연분과 글씨를 쓰는 서판으로 글을 쓰는 문필 활동과 행위 또는 글을 쓴 결과물. 연참(鉛槧)의 연(鉛)은 글쓰는 데에 필요한 납가루인 연분(鉛粉)을 의미하며, 참(槧)은 글씨를 쓰는 서판(書板)을 의미한다. 이는 종이가 발견되기 이전에는 나무 널판지에 흰색 연분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붙은 의미이다. 이에 연참은 글을 쓰는 문필 행위나 활동 또는 글을 쓴 결과물을 의미한다.1453년에 성삼문(成三問)이 단종에게 올린 상서가 『단종실록(端宗實錄)』(단종 1년 11월 24일 병자)에 실려 있는데, 자신이 “한갓 연참(鉛槧)의 말예(末藝)로 오랫동안 청화(淸華)의 직(職)을 더럽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연참’은 언사를 공무로 삼았던 문신들의 겸양어로서 ‘문필의 업’ 또는 ‘문장을 짓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일찍부터 자주 쓰인...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조선후기 원호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유허비. 정자. 원호는 원주출신으로 문종 때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에 이르렀으나, 1453년(단종 1) 세조의 정변이 일어나자 향리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 청령포(淸泠浦)에 유배되자 송학면 서강가에 초막을 짓고 단을 마련하여 동쪽을 향해 비읍망배(悲泣望拜)하였다. 단종이 죽자 3년상을 치르고 나서 향리로 돌아가 다시 은거하였다. 손자 숙강(叔康)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직필하여 화를 당하자 자기의 저술을 모두 불태웠다. 1699년(숙종 25) 향리에 정려가 세워졌다. 1703년(숙종 29) 원천석(元天錫)의 사당에 배향되었으며, 이후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과 원주의 칠봉서원(七峰書院)에...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 (元昊 遺墟碑 및 觀瀾亭)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조선후기 원호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유허비. 정자. 원호는 원주출신으로 문종 때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에 이르렀으나, 1453년(단종 1) 세조의 정변이 일어나자 향리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 청령포(淸泠浦)에 유배되자 송학면 서강가에 초막을 짓고 단을 마련하여 동쪽을 향해 비읍망배(悲泣望拜)하였다. 단종이 죽자 3년상을 치르고 나서 향리로 돌아가 다시 은거하였다. 손자 숙강(叔康)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직필하여 화를 당하자 자기의 저술을 모두 불태웠다. 1699년(숙종 25) 향리에 정려가 세워졌다. 1703년(숙종 29) 원천석(元天錫)의 사당에 배향되었으며, 이후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과 원주의 칠봉서원(七峰書院)에...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고려전기 승려 혜거국사가 창건한 사찰. 1457년(세조 3)에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가 중수하였다. 당시 정순왕후는 매일 이 지역에 있는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에 귀양한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1836년(헌종 2) 주지인 비구니 상심(常心)이 진허 인일(震虛 仁一)을 증명법사로 하여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인 비구니 계주(季珠)가 고봉(古峰)을 증명법사로 하여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관음전·단하각(丹霞閣)이 있으며, 유물로는 1047년에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다. 또한 대웅전 안에는 1863년(철종 14)에 제작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삼성각 안에는 1874년(고종 11)에 조성된 칠성탱화를 비롯하여 1915년에 조성된 독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서울 미타사 (서울 彌陀寺)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고려전기 승려 혜거국사가 창건한 사찰. 1457년(세조 3)에는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定順王后) 송(宋)씨가 중수하였다. 당시 정순왕후는 매일 이 지역에 있는 동망봉(東望峰)에 올라 영월에 귀양한 단종을 그리워하였다. 1836년(헌종 2) 주지인 비구니 상심(常心)이 진허 인일(震虛 仁一)을 증명법사로 하여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인 비구니 계주(季珠)가 고봉(古峰)을 증명법사로 하여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관음전·단하각(丹霞閣)이 있으며, 유물로는 1047년에 조성된 오층석탑이 있다. 또한 대웅전 안에는 1863년(철종 14)에 제작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고, 삼성각 안에는 1874년(고종 11)에 조성된 칠성탱화를 비롯하여 1915년에 조성된 독성탱화와 산신탱화가 봉안되어...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걸친 진주정씨 집안의 무덤군. 진주상대동고분군(晉州上大洞古墳群)은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걸친 진주정씨 집안의 무덤군이다. 이 무덤군에는 고려 충숙왕 대 의정부 찬성사를 역임한 정신중, 조선 전기 유학자 정이오, 단종 대 우의정을 역임한 정분 등이 안장되어 있다. 무덤의 형태는 팔각형과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 주며, 고려 후기~조선 전기 묘제의 변천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형태와 특징 진주상대동고분군은 고려 충숙왕 대 의정부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한 정신중(鄭臣重)의 무덤과 조선 전기 유학자이자 문장가인 정이오(鄭以吾)의 무덤, 그리고 조선 전기 좌의정을 지내고 단종을 위해 순절한 정분...
진주 상대동 고분군 (晉州 上大洞 古墳群)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걸친 진주정씨 집안의 무덤군. 진주상대동고분군(晉州上大洞古墳群)은 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에 걸친 진주정씨 집안의 무덤군이다. 이 무덤군에는 고려 충숙왕 대 의정부 찬성사를 역임한 정신중, 조선 전기 유학자 정이오, 단종 대 우의정을 역임한 정분 등이 안장되어 있다. 무덤의 형태는 팔각형과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 주며, 고려 후기~조선 전기 묘제의 변천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형태와 특징 진주상대동고분군은 고려 충숙왕 대 의정부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한 정신중(鄭臣重)의 무덤과 조선 전기 유학자이자 문장가인 정이오(鄭以吾)의 무덤, 그리고 조선 전기 좌의정을 지내고 단종을 위해 순절한 정분...
조선전기 문신 황보인의 유고와 연보·단원문 등을 수록하여 1836년에 간행한 실기. 연보에는 저자의 관력(官歷), 문종이 어린 단종을 잘 보좌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의 고명(顧命), 세조에게 화를 당한 사실, 신원복직(伸寃復職)된 사실 등이 실려 있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아는 데 참고자료가 되고 전기적인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전과 「순절전말」등에도 저자가 화를 당한 내막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집록」은 『설원록(雪寃錄)』·『청파극담(靑坡劇談)』·『상촌집(象村集)』·『송자대전(宋子大全)』 이외에 여러 선유(先儒)들의 문집 중에서 저자에 관한 기록을 수집한 것으로서, 그의 인품·충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지봉실기 (芝峯實紀)
조선전기 문신 황보인의 유고와 연보·단원문 등을 수록하여 1836년에 간행한 실기. 연보에는 저자의 관력(官歷), 문종이 어린 단종을 잘 보좌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의 고명(顧命), 세조에게 화를 당한 사실, 신원복직(伸寃復職)된 사실 등이 실려 있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아는 데 참고자료가 되고 전기적인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전과 「순절전말」등에도 저자가 화를 당한 내막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집록」은 『설원록(雪寃錄)』·『청파극담(靑坡劇談)』·『상촌집(象村集)』·『송자대전(宋子大全)』 이외에 여러 선유(先儒)들의 문집 중에서 저자에 관한 기록을 수집한 것으로서, 그의 인품·충의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1791년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켜 정단과 별단에 배식된 230인을 수록한 인명록.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작은아버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길 때 단종에게 충절을 다했던 여러 신하들을 추념하기 위해 1791년에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 옆에 단을 설치했는데, 정단(正壇)에는 32인, 별단(別壇)에는 198인을 추제, 배식하게 하였다. # 내용 이 책은 배식된 인명록으로서,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것이다. 정단에 배식된 32인은 다음과 같다. ① 육종영(六宗英) : 안평대군(安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과 화의군 영(和義君瓔), 한남군 어(漢南君棜), 영풍군 천(永豊君瑔), 판중추원사 이양(李穰), ② 사의척(四懿戚) : 판돈녕부사 송현수(宋玹壽), 예조판서 권자신(權自愼), 영양위(寧陽尉)정종(鄭悰), 돈녕부판관 권완(權完) 등이다. 이외에 ③ 삼상신...
장릉배식록 (莊陵配食錄)
1791년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켜 정단과 별단에 배식된 230인을 수록한 인명록. 조선 제6대 왕 단종이 작은아버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길 때 단종에게 충절을 다했던 여러 신하들을 추념하기 위해 1791년에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 옆에 단을 설치했는데, 정단(正壇)에는 32인, 별단(別壇)에는 198인을 추제, 배식하게 하였다. # 내용 이 책은 배식된 인명록으로서, 정조의 명으로 편찬한 것이다. 정단에 배식된 32인은 다음과 같다. ① 육종영(六宗英) : 안평대군(安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과 화의군 영(和義君瓔), 한남군 어(漢南君棜), 영풍군 천(永豊君瑔), 판중추원사 이양(李穰), ② 사의척(四懿戚) : 판돈녕부사 송현수(宋玹壽), 예조판서 권자신(權自愼), 영양위(寧陽尉)정종(鄭悰), 돈녕부판관 권완(權完) 등이다. 이외에 ③ 삼상신...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조선후기 생육신 원호 관련 누정. 정자. # 내용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묻히게 되자,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원호(元昊 ; 생몰년미상)가 단종을 그리면서 서강가에 단을 세우고 아침 · 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원호가 죽은 뒤, 그의 후손과 유학자들이 원호의 충의를 기리고자 1845년(헌종 11)에 비석과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에 따라 ‘관란정’이라 하였는데, 유허비(遺墟碑)도 함께 세웠다. 유허 비각은 목조기와 맞배집으로 정자 옆에 있다. 관란정은 앞면 2칸 ·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기와를 얹은 정자이다. 기단은 자연암반 위에 토단으로 하였고 주초는 정평주초로 하였다. 가구형식은 오량가이고 단청은...
관란정 (觀瀾亭)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에 있는 조선후기 생육신 원호 관련 누정. 정자. # 내용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묻히게 되자,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원호(元昊 ; 생몰년미상)가 단종을 그리면서 서강가에 단을 세우고 아침 · 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원호가 죽은 뒤, 그의 후손과 유학자들이 원호의 충의를 기리고자 1845년(헌종 11)에 비석과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에 따라 ‘관란정’이라 하였는데, 유허비(遺墟碑)도 함께 세웠다. 유허 비각은 목조기와 맞배집으로 정자 옆에 있다. 관란정은 앞면 2칸 ·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기와를 얹은 정자이다. 기단은 자연암반 위에 토단으로 하였고 주초는 정평주초로 하였다. 가구형식은 오량가이고 단청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상원이 창건한 사찰. 1394년(태조 3)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雲禪)과 함께 단(壇)을 쌓아서 고려태조를 비롯한 충정왕 · 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399년(정종 1)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이 절에 와서 정몽주 · 이색(李穡) · 길재 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단의 이름을 삼은단(三隱壇)이라 하고, 또 전각을 지어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1457년(세조 3)김시습(金時習)이 조상치(曺尙治) · 이축(李蓄) · 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다음 해에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살핀 뒤...
계룡산 동학사 (鷄龍山 東鶴寺)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계룡산(鷄龍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상원이 창건한 사찰. 1394년(태조 3)고려의 유신(遺臣) 길재(吉再)가 동학사의 승려 운선(雲禪)과 함께 단(壇)을 쌓아서 고려태조를 비롯한 충정왕 · 공민왕의 초혼제와 정몽주의 제사를 지냈다. 1399년(정종 1)고려 유신 유방택(柳芳澤)이 이 절에 와서 정몽주 · 이색(李穡) · 길재 등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다음해 이정한(李貞翰)이 공주목사로 와서 단의 이름을 삼은단(三隱壇)이라 하고, 또 전각을 지어 삼은각(三隱閣)이라 하였다. 1457년(세조 3)김시습(金時習)이 조상치(曺尙治) · 이축(李蓄) · 조려(趙旅) 등과 더불어 삼은단 옆에 단을 쌓아 사육신의 초혼제를 지내고 이어서 단종의 제단을 증설하였다. 다음 해에 세조가 동학사에 와서 제단을 살핀 뒤...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 구월산(九月山)에 있는 조선시대 한인·한웅·한검의 삼신 관련 사당. 신묘(神廟). ③ 단종 때인 1452년(단종 즉위년) 경창부윤(慶昌府尹) 이광제(李光齊)는 상소문에서 앞에서와 같은 주장을 한 다음 삼성당의 신주봉안을 강력히 주청하였다. ④ 1472년 황해도관찰사 이예(李芮)가 왕명에 따른 복명(復命)형식으로 올린 장계에서 삼성당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삼성당을 복원하고 제사드릴 것을 간청하였다. ⑤ 이러한 간청이 있은 그 해 삼성당을 삼성사로 개칭하고 한인·한웅·단군의 위판(位板)을 봉안하였으며, 평양 단군묘의 예에 따라 해마다 향축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⑥ 1765년(영조 41) 왕명으로 삼성묘(三聖廟)에 나무함[櫝]을 마련하여 제사지내게 하였다. 먼저 성종 때...
삼성사 (三聖祠)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 구월산(九月山)에 있는 조선시대 한인·한웅·한검의 삼신 관련 사당. 신묘(神廟). ③ 단종 때인 1452년(단종 즉위년) 경창부윤(慶昌府尹) 이광제(李光齊)는 상소문에서 앞에서와 같은 주장을 한 다음 삼성당의 신주봉안을 강력히 주청하였다. ④ 1472년 황해도관찰사 이예(李芮)가 왕명에 따른 복명(復命)형식으로 올린 장계에서 삼성당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삼성당을 복원하고 제사드릴 것을 간청하였다. ⑤ 이러한 간청이 있은 그 해 삼성당을 삼성사로 개칭하고 한인·한웅·단군의 위판(位板)을 봉안하였으며, 평양 단군묘의 예에 따라 해마다 향축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⑥ 1765년(영조 41) 왕명으로 삼성묘(三聖廟)에 나무함[櫝]을 마련하여 제사지내게 하였다. 먼저 성종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