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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산(廣德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산(珍山)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산(廣德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산(珍山)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통일신라 흥덕왕(興德王) 7년(832) 승려 진산(珍山)이 개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물로 지정된 고려 사경(寫經), 조선 사경, 감역교지(減役敎旨), 노사나불 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이 남아 있다.# 건립경위와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조선 숙종(肅宗) 6년(1680)에 쓰여진 『광덕사 사적기(廣德寺事蹟記)』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832년(흥덕왕(興德王) 7) 승려 진산(珍山)이...
광덕산 광덕사 (廣德山 廣德寺)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산(廣德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산(珍山)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산(廣德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진산(珍山)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통일신라 흥덕왕(興德王) 7년(832) 승려 진산(珍山)이 개창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물로 지정된 고려 사경(寫經), 조선 사경, 감역교지(減役敎旨), 노사나불 괘불탱(盧舍那佛掛佛幀)이 남아 있다.# 건립경위와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조선 숙종(肅宗) 6년(1680)에 쓰여진 『광덕사 사적기(廣德寺事蹟記)』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 832년(흥덕왕(興德王) 7) 승려 진산(珍山)이...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헌(道憲)이 창건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사찰. 봉암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헌(道憲)이 창건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사찰이다. 879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지증대사는 심층거사가 희사한 희양산 일대에 사찰을 짓고 선풍을 널리 펴 희양산문을 열었다. 881년 나라에서 봉암사 이름을 내려 주었다. 봉암사는 후삼국을 거치며 폐허 상태가 되었으나 935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소실 및 쇠퇴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1915년에 퇴락한 당우를 다시 중건하였으며, 1982년에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수행 도량이 되었다.# 건립과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末寺)^1]이다. 신라...
희양산 봉암사 (曦陽山 鳳巖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헌(道憲)이 창건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사찰. 봉암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헌(道憲)이 창건한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희양산(曦陽山)에 있는 사찰이다. 879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지증대사는 심층거사가 희사한 희양산 일대에 사찰을 짓고 선풍을 널리 펴 희양산문을 열었다. 881년 나라에서 봉암사 이름을 내려 주었다. 봉암사는 후삼국을 거치며 폐허 상태가 되었으나 935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소실 및 쇠퇴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1915년에 퇴락한 당우를 다시 중건하였으며, 1982년에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수행 도량이 되었다.# 건립과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末寺)^1]이다. 신라...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에 있는 고려시대 에 창건된 사찰. # 내용 대한불교법화종에 속한다. 고려시대에 창건하고 조선시대에 중창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절에 있는 석불은 절이 없었을 때에도 부근의 마을사람들이 찾아와서 예불 공양하기를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이 불상으로 인하여 이곳을 미륵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천광사(天光寺)라고도 불렸던 이 절은 1949년이묘련(李妙蓮)이 석불의 현몽을 얻고 초암 3칸을 세운 뒤 광덕리의 광덕을 따서 광덕사라 하였다. 1978년 무렵 도선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며, 구 요사를 헐고 새 요사를 지었다. 1999년에는 2층으로 된 현대식 요사를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산신각 · 요사채가 있다. 증평 광덕사...
보광산 광덕사 (普光山 光德寺)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에 있는 고려시대 에 창건된 사찰. # 내용 대한불교법화종에 속한다. 고려시대에 창건하고 조선시대에 중창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시기는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절에 있는 석불은 절이 없었을 때에도 부근의 마을사람들이 찾아와서 예불 공양하기를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이 불상으로 인하여 이곳을 미륵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천광사(天光寺)라고도 불렸던 이 절은 1949년이묘련(李妙蓮)이 석불의 현몽을 얻고 초암 3칸을 세운 뒤 광덕리의 광덕을 따서 광덕사라 하였다. 1978년 무렵 도선이 대웅전을 중수하였으며, 구 요사를 헐고 새 요사를 지었다. 1999년에는 2층으로 된 현대식 요사를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산신각 · 요사채가 있다. 증평 광덕사...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의 탑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의 탑비이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882년에 입적한 도헌을 현창하기 위해 893년에 최치원이 비문을 작성하였고, 924년에 비를 건립하였는데 분황사 승려 혜강이 비문을 쓰고 새겼다. 이 탑비는 지증대사의 행적을 전할 뿐 아니라 신라 불교 공인 시기 및 선종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 경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최치원이 지증대사 도헌을 현창하기 위해 893년(진성여왕 7) 무렵에 찬술한 비문(碑文)^1]이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924년(경애왕 1)에 세워진 것으로, 경상북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의 탑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봉암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지증대사 도헌의 탑비이다.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882년에 입적한 도헌을 현창하기 위해 893년에 최치원이 비문을 작성하였고, 924년에 비를 건립하였는데 분황사 승려 혜강이 비문을 쓰고 새겼다. 이 탑비는 지증대사의 행적을 전할 뿐 아니라 신라 불교 공인 시기 및 선종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건립 경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는 최치원이 지증대사 도헌을 현창하기 위해 893년(진성여왕 7) 무렵에 찬술한 비문(碑文)^1]이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924년(경애왕 1)에 세워진 것으로, 경상북도...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에 있는 조선후기 변이중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전라남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종앙사(宗仰祠), 내삼문(內三門), 7칸의 성경당(誠敬堂), 4칸의 훈덕재(薰德齋), 4칸의 경의재(景義齋), 외삼문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화차제조(火車製造) 유적지라 하여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2월 준공 때 변윤중(邊允中)을 추가 배향하였다. 매년 2월 20일과 8월 20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 『서원가고(書院可攷)』 - 『장성군사』(장성군, 1982)
봉암서원 (鳳巖書院)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에 있는 조선후기 변이중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전라남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종앙사(宗仰祠), 내삼문(內三門), 7칸의 성경당(誠敬堂), 4칸의 훈덕재(薰德齋), 4칸의 경의재(景義齋), 외삼문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화차제조(火車製造) 유적지라 하여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2월 준공 때 변윤중(邊允中)을 추가 배향하였다. 매년 2월 20일과 8월 20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 4두(豆)이다. - 『서원가고(書院可攷)』 - 『장성군사』(장성군, 1982)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에 있는 사리를 봉안한 5기의 석조 불탑. 부도. # 내용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부도는 모두 5기(基)가 있는데 4기는 홍예(虹霓)로 된 석교를 넘기 전에 있고, 1기는 4기(基)의 부도에서 동북 약 4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4기 중 3기에는 명문이 있고 1기는 명문은 없으나 가장 큰 석종형 부도이다. 왼쪽으로부터 광덕사에서 수도하시던 청상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청상당(淸霜堂), 적조스님의 사리를 모신 적조당(寂照堂), 우암스님의 사리를 모신 우암당(愚菴堂), 그리고 무명부도(無名浮屠)가 있다. 다른 1기는 신라 흥덕왕 때의 고승 진산(珍山)화상이 음각된 석종형부도로 이 부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으로 석축기단을 쌓고, 지대석과 상대석은 4매의...
광덕사 부도 (廣德寺 浮屠)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에 있는 사리를 봉안한 5기의 석조 불탑. 부도. # 내용 1978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부도는 모두 5기(基)가 있는데 4기는 홍예(虹霓)로 된 석교를 넘기 전에 있고, 1기는 4기(基)의 부도에서 동북 약 4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4기 중 3기에는 명문이 있고 1기는 명문은 없으나 가장 큰 석종형 부도이다. 왼쪽으로부터 광덕사에서 수도하시던 청상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청상당(淸霜堂), 적조스님의 사리를 모신 적조당(寂照堂), 우암스님의 사리를 모신 우암당(愚菴堂), 그리고 무명부도(無名浮屠)가 있다. 다른 1기는 신라 흥덕왕 때의 고승 진산(珍山)화상이 음각된 석종형부도로 이 부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석으로 석축기단을 쌓고, 지대석과 상대석은 4매의...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 장연면에 있는 조선후기 박세채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세채(朴世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6년(숙종 22)에 ‘봉양(鳳陽)’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강당·동재(東齋)·서재(西齋)·고사(庫舍) 등이 있었으며, 1868년(고종 5)경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가운데의 하나이다. 사우에는 박세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당시에는 장연현에 소속되었으나 1906년에 은율군으로 편입되었다. - 『서원등록(書院謄錄)』 - 『조두록(俎豆錄)』 -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 『전고대방(典故大方)...
봉양서원 (鳳陽書院)
북한 황해남도 은율군 장연면에 있는 조선후기 박세채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695년(숙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세채(朴世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6년(숙종 22)에 ‘봉양(鳳陽)’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강당·동재(東齋)·서재(西齋)·고사(庫舍) 등이 있었으며, 1868년(고종 5)경 대원군의 서원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가운데의 하나이다. 사우에는 박세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당시에는 장연현에 소속되었으나 1906년에 은율군으로 편입되었다. - 『서원등록(書院謄錄)』 - 『조두록(俎豆錄)』 -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 『전고대방(典故大方)...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조 불탑. # 내용 높이 2.8m. 1985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웅전 앞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위치로 생각된다. 넓고 높직한 장대석 3매를 결구하여 지대석을 이루고 그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며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상 · 하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층기단 면석에는 안상(眼象)이 돌려져 있다. 면석 위의 갑석은 상면이 약간 경사졌으며 낮은 굄대를 마련하여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상층의 면석에는 각 면에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중앙 1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1매석으로 조성한 상층기단 갑석(甲石)은 상면에 높직한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광덕사 삼층석탑 (廣德寺 三層石塔)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사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조 불탑. # 내용 높이 2.8m. 1985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대웅전 앞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위치로 생각된다. 넓고 높직한 장대석 3매를 결구하여 지대석을 이루고 그 위에 기단부와 탑신부를 형성하였으며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부는 상 · 하 2층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층기단 면석에는 안상(眼象)이 돌려져 있다. 면석 위의 갑석은 상면이 약간 경사졌으며 낮은 굄대를 마련하여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상층의 면석에는 각 면에 양쪽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중앙 1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정연하게 모각되었다. 1매석으로 조성한 상층기단 갑석(甲石)은 상면에 높직한 굄대를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다....
경기도 구리시 검암산(檢巖山)에 있었던 조선전기 에 창건된 사찰. # 내용 조선 태조의 능인 건원릉(健元陵)의 재궁(齋宮)이었다. 현릉(顯陵) 동쪽에 있었던 것을 능과 가깝다는 이유로 조선 초기 이곳으로 옮겼으며, 1408년(태종 8) 재궁을 개경사로 고치고 조계종에 소속시켰다. 노비 150명과 전지(田地) 100결을 이 절에 소속시켰으며, 1409년 법회를 개최하였다. 1410년송림현 선흥사(禪興寺)의 탑을 이 절로 옮겼으며, 1412년안정왕후(安定王后)의 칠재(七齋)를 행하였다. 같은 해 주지 성민(省敏)의 청에 따라 경주 백률사의 전단관음상(旃檀觀音像)을 이 절로 옮겨 모셨으며, 1413년해인사의 대장경을 인출(印出)하여 이곳에 봉안하였다. 1414년 법회를 열고 대장경을 전독하였으며, 1418년세종이 이 절에 쌀 50석을...
검암산 개경사 (檢巖山 開慶寺)
경기도 구리시 검암산(檢巖山)에 있었던 조선전기 에 창건된 사찰. # 내용 조선 태조의 능인 건원릉(健元陵)의 재궁(齋宮)이었다. 현릉(顯陵) 동쪽에 있었던 것을 능과 가깝다는 이유로 조선 초기 이곳으로 옮겼으며, 1408년(태종 8) 재궁을 개경사로 고치고 조계종에 소속시켰다. 노비 150명과 전지(田地) 100결을 이 절에 소속시켰으며, 1409년 법회를 개최하였다. 1410년송림현 선흥사(禪興寺)의 탑을 이 절로 옮겼으며, 1412년안정왕후(安定王后)의 칠재(七齋)를 행하였다. 같은 해 주지 성민(省敏)의 청에 따라 경주 백률사의 전단관음상(旃檀觀音像)을 이 절로 옮겨 모셨으며, 1413년해인사의 대장경을 인출(印出)하여 이곳에 봉안하였다. 1414년 법회를 열고 대장경을 전독하였으며, 1418년세종이 이 절에 쌀 50석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천견산(天見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6대 진평왕 당시 창건한 사찰. #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의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589년(진평왕 11)에 창건하여 봉인암(奉仁庵)이라 하였다. 1737년(영조 13)에는 태전(太顚)·해청(海淸)·치학(致學)·거암(擧庵) 등이 황폐해진 이 절을 중창하였고, 1738년에 선조의 후궁인 인빈(仁嬪) 등의 묘가 순강원(順康園)으로 승격하면서 이 절을 인빈의 원찰(願刹)로 삼고 신실(神室)을 지었으며, 절 이름을 봉영사라 하였다. 이때 토지 10결(結)을 내려 설날과 추석에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1877년(고종 14)에는 당시 고종의 숙부이면서 상국(相國)으로 있던 이공(李公)이 내탕전(內帑錢) 4,000관을 희사하여 크게 중수하였고, 1924년에는 주지 서경(西耕)이...
천견산 봉영사 (天見山 奉永寺)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천견산(天見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제26대 진평왕 당시 창건한 사찰. #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의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589년(진평왕 11)에 창건하여 봉인암(奉仁庵)이라 하였다. 1737년(영조 13)에는 태전(太顚)·해청(海淸)·치학(致學)·거암(擧庵) 등이 황폐해진 이 절을 중창하였고, 1738년에 선조의 후궁인 인빈(仁嬪) 등의 묘가 순강원(順康園)으로 승격하면서 이 절을 인빈의 원찰(願刹)로 삼고 신실(神室)을 지었으며, 절 이름을 봉영사라 하였다. 이때 토지 10결(結)을 내려 설날과 추석에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1877년(고종 14)에는 당시 고종의 숙부이면서 상국(相國)으로 있던 이공(李公)이 내탕전(內帑錢) 4,000관을 희사하여 크게 중수하였고, 1924년에는 주지 서경(西耕)이...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김제와 김주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790년(정조 14)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제(金濟)와 김주(金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98년(정조 22) ‘孤竹(고죽)’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쌍절사(雙節祠)·고죽당(孤竹堂)·동재(東齋)·서재(西齋)·신문(神門)·전사청(典祀廳)·주소(廚所) 등이 있었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고죽서원 (孤竹書院)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김제와 김주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790년(정조 14)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제(金濟)와 김주(金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98년(정조 22) ‘孤竹(고죽)’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쌍절사(雙節祠)·고죽당(孤竹堂)·동재(東齋)·서재(西齋)·신문(神門)·전사청(典祀廳)·주소(廚所) 등이 있었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1748년(영조 24)에 세워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안산(鞍山)에 있는 사찰. 봉원사는 1748년(영조 24)에 세워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안산(鞍山)에 있는 사찰이다. 1748년(영조)가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봉원사라고 사액하며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무덤인 의소묘의 원당으로 삼았고, 이후 영빈이씨(暎嬪李氏)의 무덤인 수경원(綏慶園)의 원당(願堂)이자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인 효창묘(孝昌墓)의 조포사(造泡寺)가 되었다. 조선 후기 봉원사는 왕실 원당으로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이다.# 내용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本山)^1]이다. 889년(진성여왕 3)에 [국사 도선(道詵)이 부유한 신도의 집을 희사(喜捨)^2]받아 절을 창건하고 반야암이 봉원사의 전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에 태고 보우가 중건하면서 대찰의...
안산 봉원사 (鞍山 奉元寺)
1748년(영조 24)에 세워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안산(鞍山)에 있는 사찰. 봉원사는 1748년(영조 24)에 세워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안산(鞍山)에 있는 사찰이다. 1748년(영조)가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봉원사라고 사액하며 의소세손(懿昭世孫)의 무덤인 의소묘의 원당으로 삼았고, 이후 영빈이씨(暎嬪李氏)의 무덤인 수경원(綏慶園)의 원당(願堂)이자 문효세자(文孝世子)의 무덤인 효창묘(孝昌墓)의 조포사(造泡寺)가 되었다. 조선 후기 봉원사는 왕실 원당으로 운영되었으며 현재는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이다.# 내용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산(本山)^1]이다. 889년(진성여왕 3)에 [국사 도선(道詵)이 부유한 신도의 집을 희사(喜捨)^2]받아 절을 창건하고 반야암이 봉원사의 전신으로, 고려 [공민왕 때에 태고 보우가 중건하면서 대찰의...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에 있는 해방 이후 의암 주논개(朱論介)의 영정을 모신 사당. 1960년대 후반기부터 추진된 성역화사업은 1973년에 문화공보부 승인을 얻어 정화사업에 착수하였다. 장수읍 두산리에 2만여평에 이르는 부지를 조성하여 1974년 사우(祠宇)를 이건했고 삼문(三門)과 담장을 설치하였다. 주위 조경공사를 시행하고 관리사 및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주논개 수명비(竪銘碑)도 경내에 이건하였다.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주논개가 순절한 7월 7일을 택하여 추모대제(追慕大祭)을 지냈다. 1968년부터는 이날을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계속하고 있다. 1981년 4월 1일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전국문화유적총람』2(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논개사당 (論介祠堂)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수읍에 있는 해방 이후 의암 주논개(朱論介)의 영정을 모신 사당. 1960년대 후반기부터 추진된 성역화사업은 1973년에 문화공보부 승인을 얻어 정화사업에 착수하였다. 장수읍 두산리에 2만여평에 이르는 부지를 조성하여 1974년 사우(祠宇)를 이건했고 삼문(三門)과 담장을 설치하였다. 주위 조경공사를 시행하고 관리사 및 광장을 조성하였으며, 주논개 수명비(竪銘碑)도 경내에 이건하였다.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주논개가 순절한 7월 7일을 택하여 추모대제(追慕大祭)을 지냈다. 1968년부터는 이날을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계속하고 있다. 1981년 4월 1일에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전국문화유적총람』2(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봉은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견성암이라 하였는데 1499년(연산군 5) 선릉의 능침사(陵寢寺)가 되면서 봉은사라 사액되었다. 1551년(명종 6) 이 절을 선종의 수사찰(首寺刹)로, 광릉의 봉선사는 교종의 수사찰로 삼았으며, 보우를 주지로 삼아 불교를 중흥하는 중심도량이 되게 하였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 사찰이다.# 내용 2010년 이래 대한불교조계종 직영 사찰이다. ‘봉은사’라는 절은 시대별로 신라의 수도 경주나 고려의 수도 개경에 동명이사(同名異寺)가 있어 종종 혼동되기도 하는데, 서울의 봉은사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절이다. 15세기 중반 광평대군(1425~1444)이 죽자 그 부인 신씨가 남편의...
수도산 봉은사 (修道山 奉恩寺)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 봉은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도산(修道山)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 당시에는 견성암이라 하였는데 1499년(연산군 5) 선릉의 능침사(陵寢寺)가 되면서 봉은사라 사액되었다. 1551년(명종 6) 이 절을 선종의 수사찰(首寺刹)로, 광릉의 봉선사는 교종의 수사찰로 삼았으며, 보우를 주지로 삼아 불교를 중흥하는 중심도량이 되게 하였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영 사찰이다.# 내용 2010년 이래 대한불교조계종 직영 사찰이다. ‘봉은사’라는 절은 시대별로 신라의 수도 경주나 고려의 수도 개경에 동명이사(同名異寺)가 있어 종종 혼동되기도 하는데, 서울의 봉은사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절이다. 15세기 중반 광평대군(1425~1444)이 죽자 그 부인 신씨가 남편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태조의 원당으로 창건한 사찰. 봉은사는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태조의 원당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951년에 태조의 원당으로 아버지 태조를 위해 세웠다. 951년 무렵에 태조 진전에 태조 왕건 동상이 조성되어 안치되었다. 경내 효사관(공민왕 이후 경명전)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1234년(고종 21)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는 참정 차척의 집을 봉은사로 쓰다가 환도후 중건하였다. 2월 연등회 때와 태조의 기일을 전후로 행차하여 행향하였다. 국사와 왕사의 책봉이 있었으며 중요 고승이 주석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퇴락하였다.# 내용 951년(광종 2)에 태조의 원당(願堂)^1]으로 아버지 태조를 위해 봉은사를, 어머니 [신명순성왕태후 유씨를 위해 불일사를 세웠다. 951년(광종 2)...
개성 봉은사 (開城 奉恩寺)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태조의 원당으로 창건한 사찰. 봉은사는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 태조의 원당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951년에 태조의 원당으로 아버지 태조를 위해 세웠다. 951년 무렵에 태조 진전에 태조 왕건 동상이 조성되어 안치되었다. 경내 효사관(공민왕 이후 경명전)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1234년(고종 21)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는 참정 차척의 집을 봉은사로 쓰다가 환도후 중건하였다. 2월 연등회 때와 태조의 기일을 전후로 행차하여 행향하였다. 국사와 왕사의 책봉이 있었으며 중요 고승이 주석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퇴락하였다.# 내용 951년(광종 2)에 태조의 원당(願堂)^1]으로 아버지 태조를 위해 봉은사를, 어머니 [신명순성왕태후 유씨를 위해 불일사를 세웠다. 951년(광종 2)...
고구려 보장왕의 손자 고진(高震)의 묘지. # 내용 778년(혜공왕 14)에 조성되었는데, 현재의 소재지는 중국 뤄양(洛陽)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양경(揚憼)이 지었고, 그 전문(全文)이 나진옥(羅振玉)의 『석각사료신편(石刻史料新編)』 권15 「당대해동번벌지존(唐代海東藩閥誌存)」에 실려 있다. 묘지에 의하면, 고진은 발해인(渤海人)이라 하였는데, 당시에 고구려는 이미 멸망하고 고구려를 잇는 나라로서 발해가 만주 동부지역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밝힌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할아버지는 장(藏), 즉 보장왕이고, 아버지는 연(連)이며, 맏아들은 간수(看秀)이다. 그는 773년 5월 27일 낙양 교업리(敎業里)에 있던 집에서 73세를 일기로 죽었는데, 당나라에서 받은 마지막 벼슬은 개부의동삼사 공부상서 특진...
고진 묘지 (高震 墓誌)
고구려 보장왕의 손자 고진(高震)의 묘지. # 내용 778년(혜공왕 14)에 조성되었는데, 현재의 소재지는 중국 뤄양(洛陽)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양경(揚憼)이 지었고, 그 전문(全文)이 나진옥(羅振玉)의 『석각사료신편(石刻史料新編)』 권15 「당대해동번벌지존(唐代海東藩閥誌存)」에 실려 있다. 묘지에 의하면, 고진은 발해인(渤海人)이라 하였는데, 당시에 고구려는 이미 멸망하고 고구려를 잇는 나라로서 발해가 만주 동부지역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밝힌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할아버지는 장(藏), 즉 보장왕이고, 아버지는 연(連)이며, 맏아들은 간수(看秀)이다. 그는 773년 5월 27일 낙양 교업리(敎業里)에 있던 집에서 73세를 일기로 죽었는데, 당나라에서 받은 마지막 벼슬은 개부의동삼사 공부상서 특진...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우산(禹山) 남쪽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풍속도·사신도 관련 벽화무덤. 굴식 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 내용 고분의 봉토는 방대형이며 네 귀는 동서남북의 방위선상에 놓여 있다. 무덤의 구조는 앞방 중앙에 달린 널길, 장방형의 앞방, 앞방과 널방 사이에 걸친 통로, 방형의 널방으로 된 두방무덤[二室墳]이다. 천장가구는 앞방은 천장부의 내면이 고르게 둥근 호선을 이루면서 좁혀 올라간 궁륭천장이고, 널방은 천장을 계단식으로 괴면서 팔각형으로 좁혀 올린 팔각굄천장이다. 널방은 크고 작은 석재로 축조하였으며, 널길과 앞방이 접하는 곳과 통로와 널방이 접하는 곳에는 나무문의 시설 흔적이 있고, 널방의 바닥 서반부에는 크고 작은 4장의 판석으로 된 관대가 마련되어 있다....
무용총 (舞踊塚)
중국 길림성 통화시 집안시(集安市) 우산(禹山) 남쪽 기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인물풍속도·사신도 관련 벽화무덤. 굴식 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 내용 고분의 봉토는 방대형이며 네 귀는 동서남북의 방위선상에 놓여 있다. 무덤의 구조는 앞방 중앙에 달린 널길, 장방형의 앞방, 앞방과 널방 사이에 걸친 통로, 방형의 널방으로 된 두방무덤[二室墳]이다. 천장가구는 앞방은 천장부의 내면이 고르게 둥근 호선을 이루면서 좁혀 올라간 궁륭천장이고, 널방은 천장을 계단식으로 괴면서 팔각형으로 좁혀 올린 팔각굄천장이다. 널방은 크고 작은 석재로 축조하였으며, 널길과 앞방이 접하는 곳과 통로와 널방이 접하는 곳에는 나무문의 시설 흔적이 있고, 널방의 바닥 서반부에는 크고 작은 4장의 판석으로 된 관대가 마련되어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봉천산(奉天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계평장사봉하음백 봉천우의 5세손이 창건한 사찰. # 내용 고려시대 계평장사봉하음백(季平章事封河陰伯) 봉천우(奉天佑)의 5세손이 자기의 선조가 발상(發祥)한 은혜를 기념하고 그 덕을 구호(救護)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234년(고종 21)에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하고 고참정(故參政) 차척(車倜)의 집을 봉은사에 귀속시키고 민가를 철거시켜 임금이 행차하는 연로(輦路)를 넓혔다고 한다. 이때는 강화로 천도한 초창기였지만 팔관회(八關會)·연등회·행향(行香)의 도량(道場) 등은 한결 같이 구식에 의하였다고 한다. 2월에 행하였던 연등회는 고종 22년과 23년에도 계속되었다. 그 뒤 고종 36년∼46년 열한차례나 매년 2월에 이 절에서 연등을 하였으며, 또 원종도 재위...
봉천산 봉은사 (奉天山 奉恩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봉천산(奉天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계평장사봉하음백 봉천우의 5세손이 창건한 사찰. # 내용 고려시대 계평장사봉하음백(季平章事封河陰伯) 봉천우(奉天佑)의 5세손이 자기의 선조가 발상(發祥)한 은혜를 기념하고 그 덕을 구호(救護)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234년(고종 21)에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여 연등을 하고 고참정(故參政) 차척(車倜)의 집을 봉은사에 귀속시키고 민가를 철거시켜 임금이 행차하는 연로(輦路)를 넓혔다고 한다. 이때는 강화로 천도한 초창기였지만 팔관회(八關會)·연등회·행향(行香)의 도량(道場) 등은 한결 같이 구식에 의하였다고 한다. 2월에 행하였던 연등회는 고종 22년과 23년에도 계속되었다. 그 뒤 고종 36년∼46년 열한차례나 매년 2월에 이 절에서 연등을 하였으며, 또 원종도 재위...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건립경위 1468년 9월 8일에 세조가 수강궁 정침에서 승하하였다. 세조가 죽음을 앞두고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1]과 석곽[^2]을 마련하지 말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간에 왕릉은 당연히...
남양주 광릉 (南楊州 光陵)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건립경위 1468년 9월 8일에 세조가 수강궁 정침에서 승하하였다. 세조가 죽음을 앞두고 “죽으면 속히 썩어야 하니 석실^1]과 석곽[^2]을 마련하지 말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간에 왕릉은 당연히...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때, 전라남도 강진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 무위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때 전라남도 강진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선각대사 형미(迥微, 864~917)가 주지로 있던 시기를 전후하여 창건 및 중창되었다. 조선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12년(1430)에 극락보전이 건립되었고,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과 함께 아미타여래삼존벽화(阿彌陀如來三尊壁畫),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등 극락보전에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15세기 후반에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되었다.#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건륭(乾隆)^1] 4년인 1739년에 무위사 주지 극잠(克岑)이 간행한 『무위사사적기...
월출산 무위사 (月出山 無爲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때, 전라남도 강진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 무위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때 전라남도 강진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로, 선각대사 형미(迥微, 864~917)가 주지로 있던 시기를 전후하여 창건 및 중창되었다. 조선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12년(1430)에 극락보전이 건립되었고,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과 함께 아미타여래삼존벽화(阿彌陀如來三尊壁畫),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등 극락보전에 29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15세기 후반에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되었다.# 변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건륭(乾隆)^1] 4년인 1739년에 무위사 주지 극잠(克岑)이 간행한 『무위사사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