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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평안남도 대동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 개설 덕화리 제1호분과 나란히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 벽화고분은 60여 기에 달한다. 그 중 별모양을 그린 고구려 벽화고분은 21기나 되며, 벽면이나 천장면의 회가 떨어져서 알 수 없는 고분까지 고려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별그림들은 거의 모든 고분에 한 개 또는 몇 개의 성좌들과 개별적인 별 몇 개가 그려져 있을 뿐, 덕화리 제2호분에서처럼 10여 개의 별자리에 해당하는 72개의 별들이 그려진 것은 보기 드물다. 그러므로 덕화리 제2호분의 별그림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 내용 이 고분은 6세기경에 축조된 봉토분으로, 구조는 연도가 달린 단실묘로서 천장은 정팔각평행굄이다. 벽화는 주실과...
대동 덕화리 2호분 (大同 德化里 二號墳)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벽화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 개설 덕화리 제1호분과 나란히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 벽화고분은 60여 기에 달한다. 그 중 별모양을 그린 고구려 벽화고분은 21기나 되며, 벽면이나 천장면의 회가 떨어져서 알 수 없는 고분까지 고려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별그림들은 거의 모든 고분에 한 개 또는 몇 개의 성좌들과 개별적인 별 몇 개가 그려져 있을 뿐, 덕화리 제2호분에서처럼 10여 개의 별자리에 해당하는 72개의 별들이 그려진 것은 보기 드물다. 그러므로 덕화리 제2호분의 별그림에 대한 연구는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 내용 이 고분은 6세기경에 축조된 봉토분으로, 구조는 연도가 달린 단실묘로서 천장은 정팔각평행굄이다. 벽화는 주실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 # 내용 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만6569㎡. 이 절터는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백제시대의 군수리사지(軍水里寺址)가 있고, 북쪽으로도 역시 백제시대의 절터인 정림사지(定林寺址)가 있어 이들 백제시대의 절터 가운데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8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절터의 규모가 부분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사찰건물의 배치를 보면, 중문(中門)·금당(金堂)·강당(講堂)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회랑은 강당의 좌우에 마련된 건물에서 남쪽으로 뻗어 중문에 연결되었다. 각 건물 기단터[基壇址]의 규모를 보면, 금당의 경우 동서 100척(약 30m), 남북 70척(약 21m), 강당은 동서 174척(약 52m), 남북 70척(약 21m), 문은 동서...
동남리 사지 (東南里 寺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 # 내용 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만6569㎡. 이 절터는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백제시대의 군수리사지(軍水里寺址)가 있고, 북쪽으로도 역시 백제시대의 절터인 정림사지(定林寺址)가 있어 이들 백제시대의 절터 가운데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8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절터의 규모가 부분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사찰건물의 배치를 보면, 중문(中門)·금당(金堂)·강당(講堂)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놓이고 회랑은 강당의 좌우에 마련된 건물에서 남쪽으로 뻗어 중문에 연결되었다. 각 건물 기단터[基壇址]의 규모를 보면, 금당의 경우 동서 100척(약 30m), 남북 70척(약 21m), 강당은 동서 174척(약 52m), 남북 70척(약 21m), 문은 동서...
북한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동물화석·석기·골각기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 내용 동관진 유적의 지층은 표토밑이 제1황토층(북쪽단애 3.5m, 서쪽단애 2.0m)이며, 그 밑으로 차례로 흑색을 띤 황토층(2.4m), 제2황토층(2.8m)이고, 그 아래는 가는 모래와 작은 자갈이 섞여 있으며(1.0m), 그 밑은 역석층(礫石層)이다. 북쪽 단애의 황색황토층에서 많은 수의 땅쥐(Myosphalax epsilanus Thomas) · 누렁이(Cervus elephus L.) 등의 화석이 나왔으며, 서쪽 단애의 제1황토층에서는 다량의 하이에나(Hyaena ultima dokantieussubsp. nov.) · 털코끼리(Elephas primige-nius) · 털코뿔소(Rhinoceros antiquitatisBlum) · 옛소(Bos primigenius Boj.) 등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또한 같은 층에서 인공이 가해진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 2점과 다수의...
동관진 유적 (潼關鎭 遺蹟)
북한 함경북도 종성군 종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구석기의 동물화석·석기·골각기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 내용 동관진 유적의 지층은 표토밑이 제1황토층(북쪽단애 3.5m, 서쪽단애 2.0m)이며, 그 밑으로 차례로 흑색을 띤 황토층(2.4m), 제2황토층(2.8m)이고, 그 아래는 가는 모래와 작은 자갈이 섞여 있으며(1.0m), 그 밑은 역석층(礫石層)이다. 북쪽 단애의 황색황토층에서 많은 수의 땅쥐(Myosphalax epsilanus Thomas) · 누렁이(Cervus elephus L.) 등의 화석이 나왔으며, 서쪽 단애의 제1황토층에서는 다량의 하이에나(Hyaena ultima dokantieussubsp. nov.) · 털코끼리(Elephas primige-nius) · 털코뿔소(Rhinoceros antiquitatisBlum) · 옛소(Bos primigenius Boj.) 등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또한 같은 층에서 인공이 가해진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 2점과 다수의...
대구광역시 남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 #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중창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았지만 구전 및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신라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 말의 한 왕에게는 대를 이을 왕자가 없었다. 어느 날 왕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서쪽으로 수백 리 되는 곳에 산 좋고 물 맑은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정성을 다하면 소원을 이루리라.”고 하였다. 그 뒤 왕명을 받은 신하들이 보름 만에 고산골에 이르렀는데, 앞뒤에 산이 포근히 둘러싸인 데다 옥 같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왕은 그 곳에 절을 짓고 고산사(高山寺)라 하였으며, 왕비와 시녀를 보내 백일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백일기도 후...
대덕산 법장사 (大德山 法藏寺)
대구광역시 남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하는 사찰. #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 및 중창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았지만 구전 및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신라 말기에 창건된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신라 말의 한 왕에게는 대를 이을 왕자가 없었다. 어느 날 왕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서쪽으로 수백 리 되는 곳에 산 좋고 물 맑은 곳이 있으니 그 곳에 절을 짓고 정성을 다하면 소원을 이루리라.”고 하였다. 그 뒤 왕명을 받은 신하들이 보름 만에 고산골에 이르렀는데, 앞뒤에 산이 포근히 둘러싸인 데다 옥 같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왕은 그 곳에 절을 짓고 고산사(高山寺)라 하였으며, 왕비와 시녀를 보내 백일기도를 드리게 하였다. 백일기도 후...
북한 평양직할시 중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평양성 내성(內城)의 동쪽 문(門). 성문. # 내용 평양성 내성(內城)의 동문(東門)이다. 전체 높이 19m, 석축 높이 6.5m이고, 문루는 정면 3칸(15.9m), 측면 3칸(10.34m)의 중층 팔작지붕[^1] 누각이다. 6세기 중엽에 세워졌는데,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이르러 그 자리에 지금의 성문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1635년(인조 13) 석축의 무지개문〔虹蜺門〕을 고쳤다. 축대는 화강석을 다듬어 정교하게 쌓았고 그 복판에 무지개문길을 내었다. 평면상 네 모서리를 바깥쪽으로 점차 넓혀 힘을 잘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축대 위에 세운 2층 문루는 1층 가운데칸에만 1.5m 높이의 널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모두 흘림기둥[^2] 형식으로 하였다. 네 모서리의 기둥은...
대동문 (大同門)
북한 평양직할시 중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평양성 내성(內城)의 동쪽 문(門). 성문. # 내용 평양성 내성(內城)의 동문(東門)이다. 전체 높이 19m, 석축 높이 6.5m이고, 문루는 정면 3칸(15.9m), 측면 3칸(10.34m)의 중층 팔작지붕[^1] 누각이다. 6세기 중엽에 세워졌는데, 조선 중기인 1576년(선조 9)에 이르러 그 자리에 지금의 성문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1635년(인조 13) 석축의 무지개문〔虹蜺門〕을 고쳤다. 축대는 화강석을 다듬어 정교하게 쌓았고 그 복판에 무지개문길을 내었다. 평면상 네 모서리를 바깥쪽으로 점차 넓혀 힘을 잘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축대 위에 세운 2층 문루는 1층 가운데칸에만 1.5m 높이의 널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모두 흘림기둥[^2] 형식으로 하였다. 네 모서리의 기둥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국가의 비보사찰 및 왕실의 원찰로서 사용된 사찰. # 내용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성단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고려 시대 국가의 비보사찰(裨補寺刹)로서, 또 왕실의 원찰(願刹)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덕종과 정종은 물론 문종·예종·인종·의종·명종·신종·희종·고종·원종·충숙왕·충혜왕·충목왕 등이 수시로 이 절에 행차하여 분향하거나 불사(佛事)를 일으켰고, 기우제를 지내거나 기복도량(祈福道場)을 개설하였으며, 마리지천도량(摩利支天道場)을 개설하여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마리지천은 신통(神通)이 있는 승리의 천신으로서 무사들의 숭배대상이었으며, 1066년...
마니산 묘통사 (摩尼山 妙通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摩尼山)에 있었던 고려시대 국가의 비보사찰 및 왕실의 원찰로서 사용된 사찰. # 내용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성단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 고려 시대 국가의 비보사찰(裨補寺刹)로서, 또 왕실의 원찰(願刹)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덕종과 정종은 물론 문종·예종·인종·의종·명종·신종·희종·고종·원종·충숙왕·충혜왕·충목왕 등이 수시로 이 절에 행차하여 분향하거나 불사(佛事)를 일으켰고, 기우제를 지내거나 기복도량(祈福道場)을 개설하였으며, 마리지천도량(摩利支天道場)을 개설하여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마리지천은 신통(神通)이 있는 승리의 천신으로서 무사들의 숭배대상이었으며, 1066년...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 후비 등을 안장한 9개의 왕릉을 지칭하는 용어. 왕릉·왕비릉.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서울六百年史-史蹟篇-』(서울特別市史編纂委員會, 1987) - 『문화유적총람』(文化財管理局, 1977) - 문화재청(www.cha.go.kr) - 동구릉(donggu.cha.go.kr)
구리 동구릉 (九里 東九陵)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 후비 등을 안장한 9개의 왕릉을 지칭하는 용어. 왕릉·왕비릉.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단종실록(端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순조실록(純祖實錄)』 - 『서울六百年史-史蹟篇-』(서울特別市史編纂委員會, 1987) - 『문화유적총람』(文化財管理局, 1977) - 문화재청(www.cha.go.kr) - 동구릉(donggu.cha.go.kr)
중국 요령성 안산시 수암만족자치현(岫巖滿族自治縣) 양가보향(楊家堡鄕) 낭랑성촌(娘娘城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또 성 남쪽의 험준한 곳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생 연개소영(淵蓋蘇英)의 무덤으로 전하는 대형 분묘유적이 있는데, 만주국 때 일본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이 산성은 규모나 지리적 위치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고구려의 적리성(積利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적리성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당태종의 대규모 침략이 실패하고 2년 후인 647년(보장왕 6)에 당의 장군 우진달(牛進達) 등이 석성을 쳐서 함락하고 이어 적리성을 공격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석성을 요령성 장하현(莊河縣)의 성산산성(城山山城)으로 비정할 경우...
낭랑산성 (娘娘山城)
중국 요령성 안산시 수암만족자치현(岫巖滿族自治縣) 양가보향(楊家堡鄕) 낭랑성촌(娘娘城村)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포곡식 석축 성곽. 산성. 또 성 남쪽의 험준한 곳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생 연개소영(淵蓋蘇英)의 무덤으로 전하는 대형 분묘유적이 있는데, 만주국 때 일본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이 산성은 규모나 지리적 위치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고구려의 적리성(積利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적리성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당태종의 대규모 침략이 실패하고 2년 후인 647년(보장왕 6)에 당의 장군 우진달(牛進達) 등이 석성을 쳐서 함락하고 이어 적리성을 공격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석성을 요령성 장하현(莊河縣)의 성산산성(城山山城)으로 비정할 경우...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조선후기 대동법 시행 기념비. # 개설 197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비는 1651년(효종 2)에 김육(金堉)이 영의정으로 있을 때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하여 왕의 허락을 얻어 실시하였고, 왕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우도록 하였다. 원래 대동법은 1608년 경기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이전에 각 지방의 특산물로 내던 공물(貢物)은 국가에서의 소요 시기와 백성의 납부 시기가 맞지 않는 등 폐단이 많았다. 이에 각 지방의 대소에 구분 없이 토지의 결수(結數)에 기준으로 쌀로 환산해서 납부하고 산간 · 해안지역에서는 무명으로 납부하게 한 조세제도이다. # 내용 1651년 영의정 김육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청도에도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하여 효종의 윤허를 얻어...
대동법 시행기념비 (大同法 施行記念碑)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조선후기 대동법 시행 기념비. # 개설 197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비는 1651년(효종 2)에 김육(金堉)이 영의정으로 있을 때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하여 왕의 허락을 얻어 실시하였고, 왕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우도록 하였다. 원래 대동법은 1608년 경기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이전에 각 지방의 특산물로 내던 공물(貢物)은 국가에서의 소요 시기와 백성의 납부 시기가 맞지 않는 등 폐단이 많았다. 이에 각 지방의 대소에 구분 없이 토지의 결수(結數)에 기준으로 쌀로 환산해서 납부하고 산간 · 해안지역에서는 무명으로 납부하게 한 조세제도이다. # 내용 1651년 영의정 김육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청도에도 대동법을 시행토록 상소하여 효종의 윤허를 얻어...
북한 평양직할시 용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 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유적은 돌무지무덤과 봉토분의 두 종류가 있는데, 봉토분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2권)에 실린 사진과 도면이 유일한 것이다. 이 실측도에 의하면, 고분은 석실봉토분으로 돌방의 장축은 약간 서쪽으로 향한 남북 방향이며, 남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는데 다른 고분에 비해 짧은 것이 특색이다. 널방[玄室]은 남북길이가 약간 길어 2.72m이고 동서길이는 2.18m이며 바닥에 널받침[棺臺]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천장은 벽과 나란하게 3단에 걸쳐 죄어가다가 그 위에 모줄임[抹角藻井]으로 마무리하였다. 벽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 「평양 부근에 있는 고구려시기의 무덤들」(채희국...
대동 사동 유적 (大同 寺洞 遺蹟)
북한 평양직할시 용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굴식 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유적은 돌무지무덤과 봉토분의 두 종류가 있는데, 봉토분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2권)에 실린 사진과 도면이 유일한 것이다. 이 실측도에 의하면, 고분은 석실봉토분으로 돌방의 장축은 약간 서쪽으로 향한 남북 방향이며, 남쪽에 널길[羨道]이 달려 있는데 다른 고분에 비해 짧은 것이 특색이다. 널방[玄室]은 남북길이가 약간 길어 2.72m이고 동서길이는 2.18m이며 바닥에 널받침[棺臺]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천장은 벽과 나란하게 3단에 걸쳐 죄어가다가 그 위에 모줄임[抹角藻井]으로 마무리하였다. 벽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 「평양 부근에 있는 고구려시기의 무덤들」(채희국...
경기도 북부 지역 또는 충청북도 지역으로 비정되는 삼국시대 김유신과 관련된 성곽. 7세기 전반기의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는 오늘날의 임진강 유역이어서 문제가 있으나 지명이 그대로 전존되어 주목되고 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문화재지(文化財誌)』(충청북도, 1982) -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 「낭비성(娘臂城)과 낭자곡성고(娘子谷城考)」(김윤우, 『사학지』21, 단국대학교사학회, 1988.4) - 「백제낭비성고(百濟娘臂城考)」(이원근, 『사학지』10, 단국대학교사학회, 1976) - 『朝鮮歷史地理』(津田左右吉, 南滿洲鐵道株式會社, 1913)
낭비성 (娘臂城)
경기도 북부 지역 또는 충청북도 지역으로 비정되는 삼국시대 김유신과 관련된 성곽. 7세기 전반기의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는 오늘날의 임진강 유역이어서 문제가 있으나 지명이 그대로 전존되어 주목되고 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대동지지(大東地志)』 - 『문화재지(文化財誌)』(충청북도, 1982) -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문화재관리국, 1977) - 「낭비성(娘臂城)과 낭자곡성고(娘子谷城考)」(김윤우, 『사학지』21, 단국대학교사학회, 1988.4) - 「백제낭비성고(百濟娘臂城考)」(이원근, 『사학지』10, 단국대학교사학회, 1976) - 『朝鮮歷史地理』(津田左右吉, 南滿洲鐵道株式會社, 1913)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사찰. 법주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사찰이다. 진표의 제자 영심이 중창하면서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이 되었고, 이후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유정이 팔상전을 중건하는 등 수 차례 중건·중수를 거쳤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목탑인 팔상전을 비롯하여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여러 문화재가 있어 신앙 유적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신앙 유적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1]: 계사별의 하나. 석가모니가 마련한 율법을 이른다.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734) [^2]: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속리산 법주사 (俗離山 法住寺)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사찰. 법주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에 있는 사찰이다. 진표의 제자 영심이 중창하면서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이 되었고, 이후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유정이 팔상전을 중건하는 등 수 차례 중건·중수를 거쳤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목탑인 팔상전을 비롯하여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여러 문화재가 있어 신앙 유적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신앙 유적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1]: 계사별의 하나. 석가모니가 마련한 율법을 이른다.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4734) [^2]: 승려가 살면서 불도를 닦는...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기류·철제무기류 등이 출토된 무덤. 유적은 평양의 동북방 약 20㎞ 떨어진 상리의 북쪽 구릉 기슭에 위치한다. # 내용 첫 번째의 유물 발견 당시에는 표면에 성토(盛土) 등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깎인 표토 아래 약 25㎝ 내외의 깊이에서 철갈래창[鐵戟] · 철투겁창[鐵鉾] 등이 먼저 발견되었다. 확장하여 동서 약 2m, 남북 1.5m 내의 범위에서 수레부속품[車輿具]을 비롯한 일괄유물이 발견되었다. 두 번째 조사에서는 첫 번째 발견장소에서 남북으로 확장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동쪽으로 50㎝ 정도 굴진(掘進)한 장소에서 철도끼[鐵斧] 2점이 발견됐을 뿐이다. 첫 번째와 같이 얇은 흑색층이 확인되었다. 세 번째 조사에서도 주위를 확장하였으나...
대동 상리 유적 (大同 上里 遺蹟)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 용악면에 있는 철기시대 청동기류·철제무기류 등이 출토된 무덤. 유적은 평양의 동북방 약 20㎞ 떨어진 상리의 북쪽 구릉 기슭에 위치한다. # 내용 첫 번째의 유물 발견 당시에는 표면에 성토(盛土) 등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깎인 표토 아래 약 25㎝ 내외의 깊이에서 철갈래창[鐵戟] · 철투겁창[鐵鉾] 등이 먼저 발견되었다. 확장하여 동서 약 2m, 남북 1.5m 내의 범위에서 수레부속품[車輿具]을 비롯한 일괄유물이 발견되었다. 두 번째 조사에서는 첫 번째 발견장소에서 남북으로 확장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동쪽으로 50㎝ 정도 굴진(掘進)한 장소에서 철도끼[鐵斧] 2점이 발견됐을 뿐이다. 첫 번째와 같이 얇은 흑색층이 확인되었다. 세 번째 조사에서도 주위를 확장하였으나...
삼국시대에, 창건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청화산(靑華山)에 있는 사찰. 법주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청화산(靑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후기인 1660년에 목조 아미타삼존불상을 조성하고 1690년에 주 법당인 보광명전을 새로 지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과 판석에 조각한 석불 입상이 있다. 보광명전의 용마루에서 다수의 불교 경전이 발견되었다.1979년 작성된 『법주사사기』와 절의 내력을 적은 청화산 법주사 유적비에 따르면 493년(소지왕 15)년 은점조사가 창건하였으며, 1158년(의종 12)에 불일보조국사가 주석하였다고[^2] 한다. 1623년(인조 1)에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어 1660년(현종 1)에 다시 지었으며, 1690년(숙종 17) 보광명전(현, 영산전)을 새로...
청화산 법주사 (靑華山 法住寺)
삼국시대에, 창건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청화산(靑華山)에 있는 사찰. 법주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청화산(靑華山)에 있는 사찰이다. 조선 후기인 1660년에 목조 아미타삼존불상을 조성하고 1690년에 주 법당인 보광명전을 새로 지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오층석탑과 판석에 조각한 석불 입상이 있다. 보광명전의 용마루에서 다수의 불교 경전이 발견되었다.1979년 작성된 『법주사사기』와 절의 내력을 적은 청화산 법주사 유적비에 따르면 493년(소지왕 15)년 은점조사가 창건하였으며, 1158년(의종 12)에 불일보조국사가 주석하였다고[^2] 한다. 1623년(인조 1)에 화재로 법당이 소실되어 1660년(현종 1)에 다시 지었으며, 1690년(숙종 17) 보광명전(현, 영산전)을 새로...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벽암 각성이 중건한 사찰건물. # 개설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되고 776년(혜공왕 12)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碧巖)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보전은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의 중심이 되는 주요 건물 중 하나이다. # 내용 법주사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인 중층(重層) 전각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건평 170평, 높이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이다. 위층에 비하여 아래층의 높이가 훨씬 낮아서 탑파와 비슷한 비례를 보이며, 정면에는 모두 살문을 달았고...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報恩 法住寺 大雄寶殿)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승려 벽암 각성이 중건한 사찰건물. # 개설 198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되고 776년(혜공왕 12)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碧巖)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보전은 팔상전과 함께 법주사의 중심이 되는 주요 건물 중 하나이다. # 내용 법주사 대웅보전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 가운데 하나인 중층(重層) 전각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건평 170평, 높이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이다. 위층에 비하여 아래층의 높이가 훨씬 낮아서 탑파와 비슷한 비례를 보이며, 정면에는 모두 살문을 달았고...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승려 벽암대사 각성의 탑비. # 내용 1664년(현종 5)에 건립되었고 비신의 높이 214㎝, 너비 108㎝, 두께 35㎝이며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금강문(金剛門) 앞에 위치하는데, 커다란 반석(盤石)에 홈을 파고 비신을 세웠으며, 그 위에 우진각지붕 모양의 덮개돌을 얹었다. 비문은 대사의 제자 처능(處能)의 부탁으로 동부승지 정두경(鄭斗卿)이 지었고, 글씨는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가 썼으며,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이 두전(頭篆)을 썼다. 비문에는 대사의 용맹을 보여주는 일화, 스승 부휴(浮休)와 함께 왕에게 친국(親鞠) 받았을 때의 일화, 인조 때 팔도도총섭(八道都總攝)이 되어 승도를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조한 일...
보은 법주사 벽암대사비 (報恩 法住寺 碧岩大師碑)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건립된 승려 벽암대사 각성의 탑비. # 내용 1664년(현종 5)에 건립되었고 비신의 높이 214㎝, 너비 108㎝, 두께 35㎝이며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금강문(金剛門) 앞에 위치하는데, 커다란 반석(盤石)에 홈을 파고 비신을 세웠으며, 그 위에 우진각지붕 모양의 덮개돌을 얹었다. 비문은 대사의 제자 처능(處能)의 부탁으로 동부승지 정두경(鄭斗卿)이 지었고, 글씨는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가 썼으며,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이 두전(頭篆)을 썼다. 비문에는 대사의 용맹을 보여주는 일화, 스승 부휴(浮休)와 함께 왕에게 친국(親鞠) 받았을 때의 일화, 인조 때 팔도도총섭(八道都總攝)이 되어 승도를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조한 일...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맞배지붕 형태의 문(門). 사찰문. # 내용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2024년 4월 2일 국가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중앙 어간(御間) 1칸은 통로이고, 양쪽 2칸에는 높이 5.7m, 둘레 1.8m인 사천왕상을 2구씩 배치하였다.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되었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중건한 것으로, 그 뒤 1971년 해체, 복원되었고, 사천왕상도 보수되었다. - 『한국의 사찰』5(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6)
보은 법주사 사천왕문 (報恩 法住寺 四天王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조선후기 맞배지붕 형태의 문(門). 사찰문. # 내용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2024년 4월 2일 국가유산 보물로 승격되었다. 중앙 어간(御間) 1칸은 통로이고, 양쪽 2칸에는 높이 5.7m, 둘레 1.8m인 사천왕상을 2구씩 배치하였다.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되었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중건한 것으로, 그 뒤 1971년 해체, 복원되었고, 사천왕상도 보수되었다. - 『한국의 사찰』5(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6)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등. #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9m. 대웅보전 앞마당에 있다. 단면이 8각인 받침돌과 화사석(火舍石)[^1], 지붕돌 등으로 구성되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화사석에 균열이 조금 나 있지만,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석등은 4장의 돌로 조립된 바닥돌 위에 서 있다.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단마다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아랫단은 일부가 손상되었지만, 8각의 각 면마다 안상(眼象)이 얕게 오목새김되었다. 윗단은 너비가 아랫단보다 줄어들었는데, 아랫부분에는 2단의 각진 층급을 너비를 조금씩 줄여 새겨 놓았고, 윗부분에도 3단의 각진 층급이 역시 너비가 줄어든 채...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 (報恩 法住寺 四天王 石燈)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등. # 내용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9m. 대웅보전 앞마당에 있다. 단면이 8각인 받침돌과 화사석(火舍石)[^1], 지붕돌 등으로 구성되어,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화사석에 균열이 조금 나 있지만,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석등은 4장의 돌로 조립된 바닥돌 위에 서 있다. 아래받침돌은 윗단과 아랫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단마다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다. 아랫단은 일부가 손상되었지만, 8각의 각 면마다 안상(眼象)이 얕게 오목새김되었다. 윗단은 너비가 아랫단보다 줄어들었는데, 아랫부분에는 2단의 각진 층급을 너비를 조금씩 줄여 새겨 놓았고, 윗부분에도 3단의 각진 층급이 역시 너비가 줄어든 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세력의 배척을 위해 세운 척화비. # 내용 1993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가로 45㎝, 세로 16㎝, 높이 150㎝로 화강석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이를 자손만년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지어 신미년에 세움(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이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이 비의 설립배경은 외척의 세도정권을 약화시키고 새롭게 실권을 쥔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외정책 변화로 나타난 산물이다. 흥선대원군 정권은 국내적으로 국정쇄신을 통한 왕권강화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대외적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제국에 대해 점차 쇄국정책으로 치달았다....
가덕도 척화비 (加德島 斥和碑)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세력의 배척을 위해 세운 척화비. # 내용 1993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가로 45㎝, 세로 16㎝, 높이 150㎝로 화강석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이를 자손만년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지어 신미년에 세움(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이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이 비의 설립배경은 외척의 세도정권을 약화시키고 새롭게 실권을 쥔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외정책 변화로 나타난 산물이다. 흥선대원군 정권은 국내적으로 국정쇄신을 통한 왕권강화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대외적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제국에 대해 점차 쇄국정책으로 치달았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로 만든 연꽃 모양 연못. 석련지. # 내용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1.95m. 돌로 만든 연꽃 모양의 연못으로, 받침돌 위에 둥근 물그릇 모양의 석련지[^1]를 올려 놓은 모습이다. 여러 장의 길고 큰 돌로 구성된 바닥돌 위에는 단면이 8각인 아래받침돌이 놓였다. 아래바닥돌 바깥쪽은 길고 큰 돌을 1줄로 돌려 구획이 마련되었는데, 석련지의 무거운 무게를 의식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석련지를 보호하는 장치로 짐작된다. 아래받침돌의 각 면에는 좌우에 모서리기둥이 조각되었고, 모서리기둥 사이에는 안상(眼象)이 1구씩 오목새김되었는데, 안상 안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안상 위는 덮개돌 모양으로 이루어졌고, 윗면에는 높직한 2단의 굄과...
보은 법주사 석련지 (報恩 法住寺 石蓮池)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로 만든 연꽃 모양 연못. 석련지. # 내용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1.95m. 돌로 만든 연꽃 모양의 연못으로, 받침돌 위에 둥근 물그릇 모양의 석련지[^1]를 올려 놓은 모습이다. 여러 장의 길고 큰 돌로 구성된 바닥돌 위에는 단면이 8각인 아래받침돌이 놓였다. 아래바닥돌 바깥쪽은 길고 큰 돌을 1줄로 돌려 구획이 마련되었는데, 석련지의 무거운 무게를 의식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석련지를 보호하는 장치로 짐작된다. 아래받침돌의 각 면에는 좌우에 모서리기둥이 조각되었고, 모서리기둥 사이에는 안상(眼象)이 1구씩 오목새김되었는데, 안상 안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안상 위는 덮개돌 모양으로 이루어졌고, 윗면에는 높직한 2단의 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