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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이이 등 4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에 창건한 서원. # 내용 1672년(현종 13) 지방 유림들이 사우(祠宇) 건립을 논의하였으며, 이후 1681년(숙종 7) 이이(李珥)를 주향으로 김장생(金長生) · 김집(金集)을 배향하였다. 1703년(숙종 29) ‘문정(文井)’이라는 사액 및 치제(致祭)가 있었으며, 1718년(숙종 44) 강석기(姜碩期)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복원 여부는 미상이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 『황해도지(黃海道誌)』(1982) - 『조선명승고적(朝鮮名勝古蹟)』(1929)
문정서원 (文井書院)
조선후기, 이이 등 4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북한 황해북도 황주군에 창건한 서원. # 내용 1672년(현종 13) 지방 유림들이 사우(祠宇) 건립을 논의하였으며, 이후 1681년(숙종 7) 이이(李珥)를 주향으로 김장생(金長生) · 김집(金集)을 배향하였다. 1703년(숙종 29) ‘문정(文井)’이라는 사액 및 치제(致祭)가 있었으며, 1718년(숙종 44) 강석기(姜碩期)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복원 여부는 미상이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 『황해도지(黃海道誌)』(1982) - 『조선명승고적(朝鮮名勝古蹟)』(1929)
고려시대,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 경령전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고려시대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이다. 고려 원묘(原廟) 중의 하나로 태조·황고(太祖皇考)의 별묘(別廟)라고 불렸다. 태조와 국왕의 직계 4대친(부·조·증조·고조)의 진영을 봉안한 영전(影殿)으로 5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왕은 나라와 왕실의 중요 행사를 경령전에 고하였다. 주고(奏告)와 부묘(祔廟) 의례는 태묘 의례를 따랐다. 의례의 위상은 원구·사직·태묘와 같이 대사에 올라 있었다. 매년 정월 초하루와 단오·추석·중구일에 국왕이 친히 제사하였다.# 건립 경위 고려 원묘(原廟)^1] 중의 하나로 [태조(太祖) · 황고(皇考)[^2]의 별묘(別廟)...
경령전 (景靈殿)
고려시대,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 경령전은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만월동 고려 궁궐 내에 있던 고려시대 태조와 국왕 4대친(四代親)의 진영을 봉안한 전각이다. 고려 원묘(原廟) 중의 하나로 태조·황고(太祖皇考)의 별묘(別廟)라고 불렸다. 태조와 국왕의 직계 4대친(부·조·증조·고조)의 진영을 봉안한 영전(影殿)으로 5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왕은 나라와 왕실의 중요 행사를 경령전에 고하였다. 주고(奏告)와 부묘(祔廟) 의례는 태묘 의례를 따랐다. 의례의 위상은 원구·사직·태묘와 같이 대사에 올라 있었다. 매년 정월 초하루와 단오·추석·중구일에 국왕이 친히 제사하였다.# 건립 경위 고려 원묘(原廟)^1] 중의 하나로 [태조(太祖) · 황고(皇考)[^2]의 별묘(別廟)...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 경릉(景陵)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이다. 1843년에 목릉의 옛터에 효현왕후의 능침이 자리 잡고 1849년에 헌종이 서쪽에 쌍릉으로 능침을 조성하였다가, 1904년에 효정왕후의 능침이 건립되면서 총 3기의 봉릉이 하나의 언덕에 나란히 배치된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건립경위 1843년 8월 25일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1843)가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9월 2일에 능호를 경릉으로 정하였다. 산릉(山陵: 국장(國葬)을 하기 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새 능)의 후보지로는 창릉(昌陵)의 좌강과 용마봉 아래 신촌, 남양주휘경원...
경릉 (景陵)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 경릉(景陵)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이다. 1843년에 목릉의 옛터에 효현왕후의 능침이 자리 잡고 1849년에 헌종이 서쪽에 쌍릉으로 능침을 조성하였다가, 1904년에 효정왕후의 능침이 건립되면서 총 3기의 봉릉이 하나의 언덕에 나란히 배치된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건립경위 1843년 8월 25일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1843)가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하자, 9월 2일에 능호를 경릉으로 정하였다. 산릉(山陵: 국장(國葬)을 하기 전에 아직 이름을 정하지 않은 새 능)의 후보지로는 창릉(昌陵)의 좌강과 용마봉 아래 신촌, 남양주휘경원...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 경릉(敬陵)은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덕종 경릉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자묘로 조성되었으며, 경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석물을 추가 설치하지 않아, 이후 세자묘 조성의 기준이 되었다. 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영되어 덕종릉과 대조를 이룬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성되어 석물이 잘 갖추어져 있으나, 비례와 좌우 균형 등이 무너진 작품으로 연산군 말기 능묘 석물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西五陵)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1]: 고분 안의 돌로 된 방.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
경릉 (敬陵)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 경릉(敬陵)은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덕종 경릉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자묘로 조성되었으며, 경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석물을 추가 설치하지 않아, 이후 세자묘 조성의 기준이 되었다. 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영되어 덕종릉과 대조를 이룬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성되어 석물이 잘 갖추어져 있으나, 비례와 좌우 균형 등이 무너진 작품으로 연산군 말기 능묘 석물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西五陵)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1]: 고분 안의 돌로 된 방. [→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은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이 무덤은 모두 굴식돌방무덤으로 8기가 있다. 6기의 무덤이 조사되었으며 현재는 복원공사를 통해 고분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 보기 드문 군집된 돌방무덤이며 6호분의 경우 쌍실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백제고분으로 알려졌으나 신라토기가 출토되어 신라고분설이 나오면서 백제고분설과 신라고분설이 대립하고 있다.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서울 방이동 고분군은 시기적으로나 구조적으로 6세기 후반대의 신라 주변 지역의 돌방무덤들과 관련되어 있다.1917년 9월 방이동의 고분들이 처음으로 확인되어 백제 초기의 유적으로...
서울 방이동 고분군 (서울 芳荑洞 古墳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서울 방이동 고분군은 서울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이 무덤은 모두 굴식돌방무덤으로 8기가 있다. 6기의 무덤이 조사되었으며 현재는 복원공사를 통해 고분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 보기 드문 군집된 돌방무덤이며 6호분의 경우 쌍실로 구성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초기에는 백제고분으로 알려졌으나 신라토기가 출토되어 신라고분설이 나오면서 백제고분설과 신라고분설이 대립하고 있다.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서울 방이동 고분군은 시기적으로나 구조적으로 6세기 후반대의 신라 주변 지역의 돌방무덤들과 관련되어 있다.1917년 9월 방이동의 고분들이 처음으로 확인되어 백제 초기의 유적으로...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기반식 또는 개석식으로 추정되는 고인돌군. 지석묘군. # 내용 1987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금암동은 옛부터 잘생긴 바위가 많아 ‘금바위마을’로 불리워져 왔다. 이 일대의 구릉지와 논에 9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상석 아래가 흙 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기반식(碁盤式) 또는 개석식(蓋石式) 지석묘로 추정된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190∼600㎝, 너비 120∼334㎝, 두께 30∼145㎝이다. 장축의 방향은 동-서가 3기, 남-북이 6기이다. 상석은 화강암이며 모서리 부분에는 돌을 다듬은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제2호 지석묘로 명명된 논둑에 있는 지석묘의 상석에는 3개의 성혈(性穴)이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이 오목한 반구형(半球形)인 점과는 달리 구멍이...
오산 금암리 지석묘군 (烏山 錦岩里 支石墓群)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청동기시대 기반식 또는 개석식으로 추정되는 고인돌군. 지석묘군. # 내용 1987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금암동은 옛부터 잘생긴 바위가 많아 ‘금바위마을’로 불리워져 왔다. 이 일대의 구릉지와 논에 9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다. 상석 아래가 흙 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기반식(碁盤式) 또는 개석식(蓋石式) 지석묘로 추정된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190∼600㎝, 너비 120∼334㎝, 두께 30∼145㎝이다. 장축의 방향은 동-서가 3기, 남-북이 6기이다. 상석은 화강암이며 모서리 부분에는 돌을 다듬은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제2호 지석묘로 명명된 논둑에 있는 지석묘의 상석에는 3개의 성혈(性穴)이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이 오목한 반구형(半球形)인 점과는 달리 구멍이...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동명사터에 있는 고려 전기에 건립된 5층 석조 불탑. # 내용 높이 3.5m. 1971년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등명사 옛터에 낙가사가 건립되어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1956년에 창건할 때 암막새와 수막새, 명문기와편 등 많은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많은 자료를 수습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는 정동진리 화비령 동쪽 기슭의 궤방산 중턱이 되는데 고대의 사적기가 없으므로 정확한 창건연대와 연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 『범우고』 등 옛 기록에 단편적인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말 혹은 고려시대부터 존속하였다가 조선 말기에 폐사되어...
등명사지 오층석탑 (燈明寺址 五層石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동명사터에 있는 고려 전기에 건립된 5층 석조 불탑. # 내용 높이 3.5m. 1971년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현재 등명사 옛터에 낙가사가 건립되어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1956년에 창건할 때 암막새와 수막새, 명문기와편 등 많은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가톨릭관동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많은 자료를 수습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는 정동진리 화비령 동쪽 기슭의 궤방산 중턱이 되는데 고대의 사적기가 없으므로 정확한 창건연대와 연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 『범우고』 등 옛 기록에 단편적인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말 혹은 고려시대부터 존속하였다가 조선 말기에 폐사되어...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었던 조선전기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574년(선조 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길재(吉再)의 충절과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09년(광해군 1)에 ‘오산(吳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유지(遺址)만 남아 있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태학지(太學志)』 - 『경상북도사』(경상북도, 1983)
오산서원 (吳山書院)
경상북도 구미시에 있었던 조선전기 길재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574년(선조 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길재(吉再)의 충절과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09년(광해군 1)에 ‘오산(吳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어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유지(遺址)만 남아 있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태학지(太學志)』 - 『경상북도사』(경상북도, 1983)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성산이씨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안채 · 사랑채 · 서재 · 사당 · 대문간채 · 중문간채가 현존하며, 대략 1760년(영조 36)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집은 성산이씨(星山李氏)가 대대로 살아온 “한개”마을에 있다. 한개마을은 해발 300m의 영취산을 주산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면서 발달한 형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성산이씨 시조인 고려의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의 15대손인 이우(李友)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대략 1445년(세종 27)경이라고 한다. 인물이 다수 배출되고 공조판서까지 출자하면서 영조 때부터는 명문으로 발돋음했고, 마을에 규모 있는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집은 마을 안길...
대산동 교리댁 (大山洞 校理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성산이씨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안채 · 사랑채 · 서재 · 사당 · 대문간채 · 중문간채가 현존하며, 대략 1760년(영조 36)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집은 성산이씨(星山李氏)가 대대로 살아온 “한개”마을에 있다. 한개마을은 해발 300m의 영취산을 주산으로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면서 발달한 형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성산이씨 시조인 고려의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의 15대손인 이우(李友)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대략 1445년(세종 27)경이라고 한다. 인물이 다수 배출되고 공조판서까지 출자하면서 영조 때부터는 명문으로 발돋음했고, 마을에 규모 있는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집은 마을 안길...
북한 평안남도 룡강군 룡강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김안국과 김정국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 내용 1664년(현종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안국(金安國)과 김정국(金正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1년(숙종 21)에 ‘오산(鰲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3칸의 강당, 신문(神門),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동서 협문(夾門), 대문 등이 있었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서원등록(書院謄錄)』 - 『여지도서(輿地圖書)』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전선명승고적전...
오산서원 (鰲山書院)
북한 평안남도 룡강군 룡강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김안국과 김정국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 내용 1664년(현종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안국(金安國)과 김정국(金正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71년(숙종 21)에 ‘오산(鰲山)’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3칸의 강당, 신문(神門),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동서 협문(夾門), 대문 등이 있었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1950년대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서원등록(書院謄錄)』 - 『여지도서(輿地圖書)』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전선명승고적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호위무관 출신 이석문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훈련원 주부 이석문(李碩文)이 사도세자 참변 이후 영조 50년(1774)에 세자를 추모하며 북향으로 문을 내고 평생 은거하던 집이다. 가전(家傳)에 순조10년(1810) 손자 사헌부 장령(掌令) 이진(李鎭)이 안채와 사랑채를 신축하고 대문 안 맞배집을 서재로 개수했다 한다. 사랑채는 고종3년(1866)에 중수하였다. 원래 장판각 · 안대문채 · 마방과 뜰아랫채가 더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대문 · 안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사당과 북비댁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대문 · 방 ·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 측벽에 쪽문 내고...
대산동 북비고택 (大山洞 北扉故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사도세자의 호위무관 출신 이석문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이던 훈련원 주부 이석문(李碩文)이 사도세자 참변 이후 영조 50년(1774)에 세자를 추모하며 북향으로 문을 내고 평생 은거하던 집이다. 가전(家傳)에 순조10년(1810) 손자 사헌부 장령(掌令) 이진(李鎭)이 안채와 사랑채를 신축하고 대문 안 맞배집을 서재로 개수했다 한다. 사랑채는 고종3년(1866)에 중수하였다. 원래 장판각 · 안대문채 · 마방과 뜰아랫채가 더 있었으나 없어졌고 지금은 대문 · 안채 · 사랑채 · 안행랑채 · 사당과 북비댁이 일곽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채는 솟을대문 · 방 · 마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 측벽에 쪽문 내고...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었던 조선후기 김난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834년(순조 3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난상(金鸞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경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영주시·영풍군, 1988) - 『경상북도사』(경상북도, 1983)
오산서원 (梧山書院)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었던 조선후기 김난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 내용 1834년(순조 3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난상(金鸞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경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 『전고대방(典故大方)』 -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영주시·영풍군, 1988) - 『경상북도사』(경상북도, 1983)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11년 이전희(李銓熙)가 창건한 집이다. 1930년에 가묘와 별당을 증축하였다.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가 현존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지은 살림집이면서도 마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맥을 재현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통이 얼마나 끈질긴 보수성을 지녔는지를 일깨워 주는 한 증거일 수 있다는 점이 이집의 특성이다. 낮고 직박한 대문간채의 평문이 서편끝간에 있다. 4칸 규모인데 나머지는 헛간이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고 우측에 별당채가 있다. 중문은 별당채 지나면서 안행랑채와 이룬 골목안에 있다. 이런 구성도...
대산동 월곡댁 (大山洞 月谷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 등으로 구성된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자료(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11년 이전희(李銓熙)가 창건한 집이다. 1930년에 가묘와 별당을 증축하였다. 안채○사랑채○별당채○사당채○대문간채가 현존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지은 살림집이면서도 마을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 맥을 재현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통이 얼마나 끈질긴 보수성을 지녔는지를 일깨워 주는 한 증거일 수 있다는 점이 이집의 특성이다. 낮고 직박한 대문간채의 평문이 서편끝간에 있다. 4칸 규모인데 나머지는 헛간이다. 대문안에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이고 우측에 별당채가 있다. 중문은 별당채 지나면서 안행랑채와 이룬 골목안에 있다. 이런 구성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장헌세자와 세자비 헌경왕후의 사당. # 역사적 변천 경모전(景慕殿)이라고도 한다. 본래 1764년(영조 40) 봄에 서울 북부 순화방(順化坊 : 현재 종로구 창성동)에 처음 세웠던 것을 그 해 여름에 동부 숭교방(崇敎坊 : 현재 종로구 연건동서울대학교병원내)에 옮겨 수은묘(垂恩廟)라 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개축하기로 결정하고, 그 해 4월에 공역을 시작하여 8월에 완공, 경모궁이라 하고 정조가 현판글씨를 썼다. 그 해 9월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 서호수(徐浩修)의 요청에 의해 경모궁 악기도감(樂器都監)을 설치하고 김한기(金漢耆)·정상순(鄭尙淳)을 악기도감제조로 삼아 다음해 경모궁 악기를 완성하였다. 1780년 궁의 외장(外墻)을 쌓았고, 1784년...
경모궁 (景慕宮)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장헌세자와 세자비 헌경왕후의 사당. # 역사적 변천 경모전(景慕殿)이라고도 한다. 본래 1764년(영조 40) 봄에 서울 북부 순화방(順化坊 : 현재 종로구 창성동)에 처음 세웠던 것을 그 해 여름에 동부 숭교방(崇敎坊 : 현재 종로구 연건동서울대학교병원내)에 옮겨 수은묘(垂恩廟)라 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개축하기로 결정하고, 그 해 4월에 공역을 시작하여 8월에 완공, 경모궁이라 하고 정조가 현판글씨를 썼다. 그 해 9월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 서호수(徐浩修)의 요청에 의해 경모궁 악기도감(樂器都監)을 설치하고 김한기(金漢耆)·정상순(鄭尙淳)을 악기도감제조로 삼아 다음해 경모궁 악기를 완성하였다. 1780년 궁의 외장(外墻)을 쌓았고, 1784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유학자 한주 이진상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67년(영조 43) 이민검(李敏儉)이 창건했던 것을 1866년(고종 3) 한주 이진상(李震相)이 중건하였다. 대문간채 · 사랑채 · 안채 · 아래채 · 고방채 · 중문간채 · 사당 · 정자 · 행랑채가 현존한다. 마을의 제일 깊은 막다른 위치에 있고 경사진 비탈 끝에 동향한 평삼문형 대문이 있다. 방 · 대문 · 마구간 순으로 평면 구조인데 마구간 위에 다락이 있어 층계로 오를 수 있게 되어 특색을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사랑채가 있다. 남향한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면 4칸 반, 측면 2칸 반 규모이다. 향 좌측의 방이 큰 사랑방이다. 아랫방 · 윗방 그리고 뒤쪽의 넓은 골방, 좌측 반 칸의...
대산동 한주종택 (大山洞 寒洲宗宅)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조선후기 유학자 한주 이진상 관련 주택. # 내용 1983년 경상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67년(영조 43) 이민검(李敏儉)이 창건했던 것을 1866년(고종 3) 한주 이진상(李震相)이 중건하였다. 대문간채 · 사랑채 · 안채 · 아래채 · 고방채 · 중문간채 · 사당 · 정자 · 행랑채가 현존한다. 마을의 제일 깊은 막다른 위치에 있고 경사진 비탈 끝에 동향한 평삼문형 대문이 있다. 방 · 대문 · 마구간 순으로 평면 구조인데 마구간 위에 다락이 있어 층계로 오를 수 있게 되어 특색을 보인다. 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사랑채가 있다. 남향한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은 정면 4칸 반, 측면 2칸 반 규모이다. 향 좌측의 방이 큰 사랑방이다. 아랫방 · 윗방 그리고 뒤쪽의 넓은 골방, 좌측 반 칸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세력의 배척을 위해 세운 척화비. # 내용 1993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가로 45㎝, 세로 16㎝, 높이 150㎝로 화강석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이를 자손만년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지어 신미년에 세움(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이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이 비의 설립배경은 외척의 세도정권을 약화시키고 새롭게 실권을 쥔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외정책 변화로 나타난 산물이다. 흥선대원군 정권은 국내적으로 국정쇄신을 통한 왕권강화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대외적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제국에 대해 점차 쇄국정책으로 치달았다....
가덕도 척화비 (加德島 斥和碑)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세력의 배척을 위해 세운 척화비. # 내용 1993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가로 45㎝, 세로 16㎝, 높이 150㎝로 화강석에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니 이를 자손만년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지어 신미년에 세움(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이라는 내용의 비문이 적혀 있다. 이 비의 설립배경은 외척의 세도정권을 약화시키고 새롭게 실권을 쥔 흥선대원군 정권의 대외정책 변화로 나타난 산물이다. 흥선대원군 정권은 국내적으로 국정쇄신을 통한 왕권강화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대외적으로 서구 자본주의의 제국에 대해 점차 쇄국정책으로 치달았다....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우복 정경세 관련 누정. 누각·정자·조경건축물. 부엌 전면에는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툇마루와 연결되어 있다. 누각은 정면 2칸, 측면 5칸인데, 누하층은 북쪽 끝에 4칸 광과 앞쪽에 부엌이 연접해 있고, 부엌 앞쪽에는 구들이 시설되어 있다. 누상층은 북쪽에서부터 2칸 서고, 1칸 마루, 1칸 온돌방, 2통칸 누마루가 놓이고, 서고와 마루 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으며 누마루 전면과 좌 · 우측면에는 마루를 조금 내어 밀고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돌렸다. 계정은 一자 2칸집인데, 마루방과 온돌방 각 1칸씩을 두었다. 독특한 건물 평면과 2층 누각건물에 설치된 구들시설 등은 눈여겨볼 만하다. -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 『상주지』(상주군, 1989)
대산루 부 계정 (大山樓 附 溪亭)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우복 정경세 관련 누정. 누각·정자·조경건축물. 부엌 전면에는 2층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툇마루와 연결되어 있다. 누각은 정면 2칸, 측면 5칸인데, 누하층은 북쪽 끝에 4칸 광과 앞쪽에 부엌이 연접해 있고, 부엌 앞쪽에는 구들이 시설되어 있다. 누상층은 북쪽에서부터 2칸 서고, 1칸 마루, 1칸 온돌방, 2통칸 누마루가 놓이고, 서고와 마루 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으며 누마루 전면과 좌 · 우측면에는 마루를 조금 내어 밀고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돌렸다. 계정은 一자 2칸집인데, 마루방과 온돌방 각 1칸씩을 두었다. 독특한 건물 평면과 2층 누각건물에 설치된 구들시설 등은 눈여겨볼 만하다. -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 『상주지』(상주군, 1989)
경기도 오산시 소재. 정조가 창건한 공자의 사당. # 내용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맞배지붕의 건물. 1994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공자의 후손 공서린(孔瑞麟)이 세운 공자의 사당이다. 이 곳은 원래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공서린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뜰안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놓고 문하 제자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치며 교수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 그 나무가 자연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 뒤 정조가 화산(花山)에서 남쪽 멀리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모여들므로 괴이하게 여겨 그곳에 행차해 보니, 죽었던 늙은 은행나무에 싹이 트고 있었다. 그리하여 1792년(정조 16) 이 곳에 사당을 짓게 하고, 이곳의 지명을 궐리로...
오산시 궐리사 (烏山市 闕里祠)
경기도 오산시 소재. 정조가 창건한 공자의 사당. # 내용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맞배지붕의 건물. 1994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공자의 후손 공서린(孔瑞麟)이 세운 공자의 사당이다. 이 곳은 원래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공서린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뜰안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놓고 문하 제자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치며 교수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 그 나무가 자연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 뒤 정조가 화산(花山)에서 남쪽 멀리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모여들므로 괴이하게 여겨 그곳에 행차해 보니, 죽었던 늙은 은행나무에 싹이 트고 있었다. 그리하여 1792년(정조 16) 이 곳에 사당을 짓게 하고, 이곳의 지명을 궐리로...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월은산(月隱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용봉사(龍鳳寺)라 하였다. 또한, 신라 때 월씨국(月氏國)으로부터 표류하여 우리나라에 온 42수관음보살상(四十二手觀音菩薩像)을 봉안하여 크게 사세(寺勢)를 떨쳤다고 한다. 고려 중기 일연(一然)은 청도 각북면에 있는 용천사(湧泉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이 절의 사적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 관음상을 땅에 묻었는데, 도둑이 그것을 파내려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뒤 관음상을 다시 꺼내어 안치하였는데, 이때 왕후의 꿈에 현몽하여 왕실에서 절의 중수를 위해 시주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도둑이 야습해서...
월은산 대산사 (月隱山 臺山寺)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월은산(月隱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고 용봉사(龍鳳寺)라 하였다. 또한, 신라 때 월씨국(月氏國)으로부터 표류하여 우리나라에 온 42수관음보살상(四十二手觀音菩薩像)을 봉안하여 크게 사세(寺勢)를 떨쳤다고 한다. 고려 중기 일연(一然)은 청도 각북면에 있는 용천사(湧泉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이 절의 사적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 관음상을 땅에 묻었는데, 도둑이 그것을 파내려다가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뒤 관음상을 다시 꺼내어 안치하였는데, 이때 왕후의 꿈에 현몽하여 왕실에서 절의 중수를 위해 시주하였다. 그러나 조선 후기 도둑이 야습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고려시대 청주한씨의 시조인 개국공신 한란 관련 우물. # 내용 1990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네모 형태의 우물은 청주한씨의 시조인 고려 초 개국공신 한란(韓蘭)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 우물의 물을 음료와 용수로 썼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또한 고려태조가 후백제를 정벌가는 도중,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한란의 도움으로 십만대병이 이곳 방정의 물을 이용했는데 수량이 부족함이 없었고 또 이때 ‘방정’의 이름을 받았다고 한다. 화강석재를 다듬어 우물의 윗부분을 네모형태로 만들고 그곳에 ‘方井’이라 조각하였으며, 뒤의 벽은 막돌쌓기로 둥글게 축대를 돌려 놓았다. 현재는 우물로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우물로 그 기념성이 매우 크다.
청주 방정 (淸州 方井)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고려시대 청주한씨의 시조인 개국공신 한란 관련 우물. # 내용 1990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네모 형태의 우물은 청주한씨의 시조인 고려 초 개국공신 한란(韓蘭)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이 우물의 물을 음료와 용수로 썼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또한 고려태조가 후백제를 정벌가는 도중,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한란의 도움으로 십만대병이 이곳 방정의 물을 이용했는데 수량이 부족함이 없었고 또 이때 ‘방정’의 이름을 받았다고 한다. 화강석재를 다듬어 우물의 윗부분을 네모형태로 만들고 그곳에 ‘方井’이라 조각하였으며, 뒤의 벽은 막돌쌓기로 둥글게 축대를 돌려 놓았다. 현재는 우물로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우물로 그 기념성이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