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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다섯 관서. # 내용 한성부의 중(中) · 동(東) · 남(南) · 서(西) · 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사항과 교량 · 도로 · 반화(頒火 : 매년 병조에서 써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 · 금화(禁火) · 가대타량(家垈打量 :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도읍지의 행정구획을 동 · 서 · 남 · 북 · 중의 방위로 구분하여 행정력을 표시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문헌상 왕조의 수도를 방위로 구분, 구획한 것은 고려 태조가 개경에 동 · 남 · 서 · 북 · 중 오부를 둔 것으로, 조선왕조가 성립된 뒤 한성 천도 후에도 그대로 계승하여 한성오부가 성립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고려 문종...
오부 (五部)
조선시대 한성부에 설치한 다섯 관서. # 내용 한성부의 중(中) · 동(東) · 남(南) · 서(西) · 북(北)의 부의 종5품 아문으로 오부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위법사항과 교량 · 도로 · 반화(頒火 : 매년 병조에서 써오던 불씨를 버리고 새로운 불씨를 만들던 의식) · 금화(禁火) · 가대타량(家垈打量 : 집터 측량),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검시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도읍지의 행정구획을 동 · 서 · 남 · 북 · 중의 방위로 구분하여 행정력을 표시하게 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문헌상 왕조의 수도를 방위로 구분, 구획한 것은 고려 태조가 개경에 동 · 남 · 서 · 북 · 중 오부를 둔 것으로, 조선왕조가 성립된 뒤 한성 천도 후에도 그대로 계승하여 한성오부가 성립된 것이다. 관원으로는 고려 문종...
고려·조선시대에 과거급제자에게 지급하였던 토지. 과거급제자에게 토지를 지급하는 이러한 고려의 등과전제도는 조선에도 계승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친시지전(親試之田)’·‘친시등과전(親試登科田)’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친시에서 등제한 사람에게만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친시등과전은 별사전(別賜田)의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무사패별사전(無賜牌別賜田)으로 분류되어 자손에게 상속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태종의 명에 의하여 사패가 수여된 뒤 사패별사전으로 분류되고 상속이 허용되었다. 그 규모는 1411년(태종 11)의 친시에 등제한 변계량(卞季良)에게 토지 20결과 노·비 각 1구(口)를 하사한 것으로 보아 고려의 경우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 『고려사(高麗史)』 - 『태종실록(太宗實錄)』
등과전 (登科田)
고려·조선시대에 과거급제자에게 지급하였던 토지. 과거급제자에게 토지를 지급하는 이러한 고려의 등과전제도는 조선에도 계승되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를 ‘친시지전(親試之田)’·‘친시등과전(親試登科田)’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보아 친시에서 등제한 사람에게만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 친시등과전은 별사전(別賜田)의 하나였는데, 처음에는 무사패별사전(無賜牌別賜田)으로 분류되어 자손에게 상속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태종의 명에 의하여 사패가 수여된 뒤 사패별사전으로 분류되고 상속이 허용되었다. 그 규모는 1411년(태종 11)의 친시에 등제한 변계량(卞季良)에게 토지 20결과 노·비 각 1구(口)를 하사한 것으로 보아 고려의 경우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 『고려사(高麗史)』 - 『태종실록(太宗實錄)』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장부. # 내용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가계부 기록의 시초는 조선 영조 때인 1733년에 작성된 박문수 종가의 가계부 ≪양입제출≫에서 찾을 수 있다. 기록방법이 오늘날의 가계부와 비슷하게 되어 있는데, 수입으로서 논밭에서의 생산량,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물, 농경지의 경작료 등을 합산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매달 지출하는 액수를 기록하였다. 당시의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명절을 쇠는 비용이며, 다음이 하인들의 새경으로 나타났다. 또한, 검소한 생활비 지출 등의 양상이 가계부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에 와서 가계부가 널리 보급되어 일반화되기는 했으나 가계부의 기록 방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가계 수입과 가계 지출을 항목별로 세분해서 기록하는 등...
가계부 (家計簿)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을 적는 장부. # 내용 현재까지 밝혀진 자료에 의하면 가계부 기록의 시초는 조선 영조 때인 1733년에 작성된 박문수 종가의 가계부 ≪양입제출≫에서 찾을 수 있다. 기록방법이 오늘날의 가계부와 비슷하게 되어 있는데, 수입으로서 논밭에서의 생산량,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물, 농경지의 경작료 등을 합산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매달 지출하는 액수를 기록하였다. 당시의 생활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명절을 쇠는 비용이며, 다음이 하인들의 새경으로 나타났다. 또한, 검소한 생활비 지출 등의 양상이 가계부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에 와서 가계부가 널리 보급되어 일반화되기는 했으나 가계부의 기록 방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가계 수입과 가계 지출을 항목별로 세분해서 기록하는 등...
조선시대 법정 정원 외에 추가로 임용하거나 중요 관직에 결원이 생겼을 경우 타관이 겸임하는 임시관직. 또, 병조의 당상관이나 낭관들은 숙직을 불편하게 여겨, 조그만 유고가 있어도 그것을 핑계로 가관을 차출하여 숙직을 대리하게 하였는데, 그들을 가참지(假參知) · 가낭관이라 하였다. 또한, 문신과 마찬가지로 무신도 가관직제도를 운용하였는데, 특히 전쟁중 어느 장수가 결원이 생겼을 경우 주장(主將)의 명령으로 임시로 장군의 직책을 맡는 예가 있었다. 가관에 임용되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그 자리에 정식관원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 『연산군일기』 - 『중종실록』 - 『속대전』
가관 (假官)
조선시대 법정 정원 외에 추가로 임용하거나 중요 관직에 결원이 생겼을 경우 타관이 겸임하는 임시관직. 또, 병조의 당상관이나 낭관들은 숙직을 불편하게 여겨, 조그만 유고가 있어도 그것을 핑계로 가관을 차출하여 숙직을 대리하게 하였는데, 그들을 가참지(假參知) · 가낭관이라 하였다. 또한, 문신과 마찬가지로 무신도 가관직제도를 운용하였는데, 특히 전쟁중 어느 장수가 결원이 생겼을 경우 주장(主將)의 명령으로 임시로 장군의 직책을 맡는 예가 있었다. 가관에 임용되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그 자리에 정식관원으로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 『연산군일기』 - 『중종실록』 - 『속대전』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 내용 신라의 경위 17관등 중 12등이기도 하다. 관등으로서의 대사는 울주 천전리 각석 원명(原銘)에서는 대사제지(大舍帝智), 영천 청제비 병진명(丙辰銘)」에서는 대사제(大舍第)라고 되어 있다. 이는 관등을 가리키는 ‘대사'와 존칭 접미사인 '제(지)'가 합쳐진 구조로 보이는데, 이후 접미사가 생략되면서...
대사 (大舍)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 내용 신라의 경위 17관등 중 12등이기도 하다. 관등으로서의 대사는 울주 천전리 각석 원명(原銘)에서는 대사제지(大舍帝智), 영천 청제비 병진명(丙辰銘)」에서는 대사제(大舍第)라고 되어 있다. 이는 관등을 가리키는 ‘대사'와 존칭 접미사인 '제(지)'가 합쳐진 구조로 보이는데, 이후 접미사가 생략되면서...
고려시대에, 승과에 급제한 승려에게 하사되던 승계. 대사(大師)는 고려시대 승계 중 하나이다. 신라 하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대개 승과에 급제한 승려들이 대덕을 거쳐 제수받는 승계로 종파의 구분 없이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승과가 폐지된 뒤에는 일반 승려들을 칭하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내용 대사(大師)는 원래 부처님에 대한 존칭인 대도사(大導師)의 줄임말로 승려를 높이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법계(法階)의 하나로도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조정에서 고승들에게 호를 내릴 때 대사라는 칭호를 덧붙였는데, 780년 당나라 의종(懿宗)^1]이 운호에게 삼혜대사(三慧大師), 승철에게 정광대사(淨光大師)의 호를 내린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고승에게 대사의 호를...
대사 (大師)
고려시대에, 승과에 급제한 승려에게 하사되던 승계. 대사(大師)는 고려시대 승계 중 하나이다. 신라 하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대개 승과에 급제한 승려들이 대덕을 거쳐 제수받는 승계로 종파의 구분 없이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 승과가 폐지된 뒤에는 일반 승려들을 칭하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내용 대사(大師)는 원래 부처님에 대한 존칭인 대도사(大導師)의 줄임말로 승려를 높이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법계(法階)의 하나로도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조정에서 고승들에게 호를 내릴 때 대사라는 칭호를 덧붙였는데, 780년 당나라 의종(懿宗)^1]이 운호에게 삼혜대사(三慧大師), 승철에게 정광대사(淨光大師)의 호를 내린 것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고승에게 대사의 호를...
등기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법원에 두는 기관. # 내용 등기소라는 명칭을 가진 관서뿐만 아니라 등기사무를 처리하는 지방법원과 그 지원도 「부동산등기법」상으로는 등기소에 해당한다. 지방법원 관내에 등기소를 어떻게 설치하고 그 위치와 사무관할구역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하게 되어 있는데, 그 관할구역은 대체로 행정구역인 구 · 시 · 군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등기소에서 등기사무를 처리하는 등기 공무원은 법원서기관 · 법원사무관 · 법원주사 또는 법원주사보 중에서 지방법원장이 지정한다. 토지 · 건물에 대한 각종 등기에 관하여는 「부동산등기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법인 또는 부부재산계약의 등기를 비롯하여 상호등기, 각종 회사등기에 관하여는 「비송사건절차법」에 규정되어 있다....
등기소 (登記所)
등기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법원에 두는 기관. # 내용 등기소라는 명칭을 가진 관서뿐만 아니라 등기사무를 처리하는 지방법원과 그 지원도 「부동산등기법」상으로는 등기소에 해당한다. 지방법원 관내에 등기소를 어떻게 설치하고 그 위치와 사무관할구역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은 대법원규칙으로 정하게 되어 있는데, 그 관할구역은 대체로 행정구역인 구 · 시 · 군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등기소에서 등기사무를 처리하는 등기 공무원은 법원서기관 · 법원사무관 · 법원주사 또는 법원주사보 중에서 지방법원장이 지정한다. 토지 · 건물에 대한 각종 등기에 관하여는 「부동산등기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법인 또는 부부재산계약의 등기를 비롯하여 상호등기, 각종 회사등기에 관하여는 「비송사건절차법」에 규정되어 있다....
향토방위와 후방근무지원을 수행하기 위해 소집된 병역 자원. # 내용 1969년 4월에 제정, 공포된 「병역법」에 의거하여 제도화되었으며 우리나라 특유의 병역방식이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징집대상자가 1970년대초부터 현역징집소요를 초과하게 됨에 따라 잉여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병역의무의 형평을 유지하기 위하여 채택되었다. 방위병 소집대상자는 보충역 중에서 신체등위·학력·연령 등을 감안한 판정에 의하여 결정되며 시·군·읍·면 단위로 편성, 소집된다. 방위병의 복무기간은 원칙적으로 18개월이지만 부모가 60세 이상인 독자나 2대독자 등은 6개월이었다. 복무내용은 군부대나 예비군부대에서 병사업무나 민방위업무의 보조요원으로서 근무하거나 주요시설의 경계근무를 주로 하였으며...
방위병 (防衛兵)
향토방위와 후방근무지원을 수행하기 위해 소집된 병역 자원. # 내용 1969년 4월에 제정, 공포된 「병역법」에 의거하여 제도화되었으며 우리나라 특유의 병역방식이다. 6·25전쟁 이후 태어난 징집대상자가 1970년대초부터 현역징집소요를 초과하게 됨에 따라 잉여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병역의무의 형평을 유지하기 위하여 채택되었다. 방위병 소집대상자는 보충역 중에서 신체등위·학력·연령 등을 감안한 판정에 의하여 결정되며 시·군·읍·면 단위로 편성, 소집된다. 방위병의 복무기간은 원칙적으로 18개월이지만 부모가 60세 이상인 독자나 2대독자 등은 6개월이었다. 복무내용은 군부대나 예비군부대에서 병사업무나 민방위업무의 보조요원으로서 근무하거나 주요시설의 경계근무를 주로 하였으며...
조선시대,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의 당상관직. 대사간은 조선시대에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다. 사간원은 사헌부와 함께 양사 혹은 대간으로 지칭되며 언론을 담당하였는데, 대사간은 최고 책임자로서 사간 이하의 간관들을 통솔하며 논의를 주도하거나 내부 이견을 조정하였다. 1506년(연산군12)애 사간원이 폐지될 당시 대사간직 역시 폐지되었으나 중종반정 직후 복구되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182710) ## 원전 - 『경국대전』 - 『성종실록』 - 『세조실록』 - 『세종실록』 - 『연산군일기』 - 『용재총화』 - 『중종실록』 - 『태조실록』 - 『태종실록』 ## 단행본 - 최승희, 『조선초기 언론사연구』(지식산업사, 2004) - 박용운, 『고려시대의 대간제도연구』...
대사간 (大司諫)
조선시대,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의 당상관직. 대사간은 조선시대에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다. 사간원은 사헌부와 함께 양사 혹은 대간으로 지칭되며 언론을 담당하였는데, 대사간은 최고 책임자로서 사간 이하의 간관들을 통솔하며 논의를 주도하거나 내부 이견을 조정하였다. 1506년(연산군12)애 사간원이 폐지될 당시 대사간직 역시 폐지되었으나 중종반정 직후 복구되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182710) ## 원전 - 『경국대전』 - 『성종실록』 - 『세조실록』 - 『세종실록』 - 『연산군일기』 - 『용재총화』 - 『중종실록』 - 『태조실록』 - 『태종실록』 ## 단행본 - 최승희, 『조선초기 언론사연구』(지식산업사, 2004) - 박용운, 『고려시대의 대간제도연구』...
국토방위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과세하던 조세.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대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로 자주국방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면서 방위세제도의 실시를 검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반재정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비압력을 줄여 경제개발의 위축을 피하면서 국방의 자립화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목적하에 1975년 7월 <방위세법>이 제정, 공포되어 실시되었으며, 이는 1990년 12월 31일까지의 한시법(限時法)이었다. 방위세가 지니는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위세의 수입을 국방비의 재원으로만 사용하는 목적세라는 점이다. 따라서 방위세는 자주국방체제의 확립을 위한 재원조달의 목적상 필요한 기간 동안만 시행하는 시한법적(時限法的) 조세였다. 둘째, 우리 나라의 방위세는...
방위세 (防衛稅)
국토방위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목적으로 과세하던 조세.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대 이후 국제정세의 변화로 자주국방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면서 방위세제도의 실시를 검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반재정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방비압력을 줄여 경제개발의 위축을 피하면서 국방의 자립화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목적하에 1975년 7월 <방위세법>이 제정, 공포되어 실시되었으며, 이는 1990년 12월 31일까지의 한시법(限時法)이었다. 방위세가 지니는 기본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방위세의 수입을 국방비의 재원으로만 사용하는 목적세라는 점이다. 따라서 방위세는 자주국방체제의 확립을 위한 재원조달의 목적상 필요한 기간 동안만 시행하는 시한법적(時限法的) 조세였다. 둘째, 우리 나라의 방위세는...
고려시대에 죄인을 잡아가두는 일을 담당하던 관부. # 내용 가구옥(街衢獄)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제사도감각색조(諸司都監各色條)에 의하면, 1076년(문종 30) 수도에 설치하였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기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무신의 난 당시에 정중부(鄭仲夫) 등이 가구소에 이르러 별감김수장(金守藏) 등을 죽였다는 사실로 보아 별감이라는 직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변천과 현황 이 관부가 비록 1076년에 설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활동시기는 고려 후기까지 계속하여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의의와 평가 가구소가 단순히 죄인을 잡아가두는 기능을 넘어서서 재판과 처단까지도 하고 있었고, 또 도적의 퇴치라는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형옥기관(刑獄機關)이라고 할 수 있다....
가구소 (街衢所)
고려시대에 죄인을 잡아가두는 일을 담당하던 관부. # 내용 가구옥(街衢獄)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제사도감각색조(諸司都監各色條)에 의하면, 1076년(문종 30) 수도에 설치하였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기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무신의 난 당시에 정중부(鄭仲夫) 등이 가구소에 이르러 별감김수장(金守藏) 등을 죽였다는 사실로 보아 별감이라는 직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변천과 현황 이 관부가 비록 1076년에 설치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활동시기는 고려 후기까지 계속하여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의의와 평가 가구소가 단순히 죄인을 잡아가두는 기능을 넘어서서 재판과 처단까지도 하고 있었고, 또 도적의 퇴치라는 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형옥기관(刑獄機關)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후기 예문춘추관의 종2품 관직. # 내용 1308년(충선왕 복위) 한림원(翰林院)의 후신인 문한서(文翰署)와 사관(史館)을 합쳐 예문춘추관으로 개편하면서 처음 설치하였다. 예문춘추관의 최고 관직인 종2품이며 정원은 3인이며, 모두 재상이 겸하였다. 1311년 대제학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대학사, 대제학으로 여러 차례 고쳐지다가 조선시대에 예문관의 정2품 관직인 대제학으로 이어졌다.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고려한림원고(高麗翰林院考)」(최제숙, 『한국사논총(韓國史論叢)』 4, 1981)
대사백 (大詞伯)
고려 후기 예문춘추관의 종2품 관직. # 내용 1308년(충선왕 복위) 한림원(翰林院)의 후신인 문한서(文翰署)와 사관(史館)을 합쳐 예문춘추관으로 개편하면서 처음 설치하였다. 예문춘추관의 최고 관직인 종2품이며 정원은 3인이며, 모두 재상이 겸하였다. 1311년 대제학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대학사, 대제학으로 여러 차례 고쳐지다가 조선시대에 예문관의 정2품 관직인 대제학으로 이어졌다. - 『고려사(高麗史)』 - 『경국대전(經國大典)』 - 「고려한림원고(高麗翰林院考)」(최제숙, 『한국사논총(韓國史論叢)』 4, 1981)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설치 목적 및 변천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成均館)의 장(長)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며, 정원은 1인이다. 성균관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국학(國學)이라 하며 학궁(學宮)[^1] 혹은 반궁(泮宮)[^2]이라고도 하였다. 성균관이라는 명칭은 고려 충렬왕...
대사성 (大司成)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설치 목적 및 변천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成均館)의 장(長)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며, 정원은 1인이다. 성균관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국학(國學)이라 하며 학궁(學宮)[^1] 혹은 반궁(泮宮)[^2]이라고도 하였다. 성균관이라는 명칭은 고려 충렬왕...
1908년 항로표지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 내용 1902년 3월 정부는 주요항로에 등대를 건설하기 위하여 해관등대국을 설치하였는데, 1905년 12월 이를 세관공사부(稅關工事部) 등대국으로 개편하면서 항로표지에 관한 모든 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1908년 1월 다시 이를 등대국으로 개편하고, 탁지부대신의 관리하에 두고 관세총장의 지휘 · 감독을 받게 하였다. 직원은 국장 1인, 기사 3인, 주사 5인, 기수(技手) 12인, 간수(看手) 52인을 두었다. 1910년 4월 항로표지관리소로 개칭되었다.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Ⅵ(송병기 외, 국회도서관, 1971) - 『統監府時代の財政』(水田直昌, 友邦協會, 1974)
등대국 (燈臺局)
1908년 항로표지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 내용 1902년 3월 정부는 주요항로에 등대를 건설하기 위하여 해관등대국을 설치하였는데, 1905년 12월 이를 세관공사부(稅關工事部) 등대국으로 개편하면서 항로표지에 관한 모든 사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1908년 1월 다시 이를 등대국으로 개편하고, 탁지부대신의 관리하에 두고 관세총장의 지휘 · 감독을 받게 하였다. 직원은 국장 1인, 기사 3인, 주사 5인, 기수(技手) 12인, 간수(看手) 52인을 두었다. 1910년 4월 항로표지관리소로 개칭되었다. - 『한말근대법령자료집(韓末近代法令資料集)』 Ⅵ(송병기 외, 국회도서관, 1971) - 『統監府時代の財政』(水田直昌, 友邦協會, 1974)
근대 개항기 황실재산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산하 관청. # 내용 1905년 3월에 설치되었다. 일제가 황실재산을 침탈하기 위해 내장원을 내장사와 경리원으로 분리, 독립시킬 때 설치되어 황실재산(世傳莊園의 관리, 收賭 · 礦業 · 蔘政)을 총괄하였다. 서무 · 삼정 · 지응(支應) · 종목(種牧) · 장원 5과를 두었다. 관리는 경(卿, 칙임) 1인, 감독(칙임) 1인, 과장(주임) 5인, 주사(판임) 15인 이하, 기사(주임) 3인, 기수(판임) 7인, 기수보(판임) · 감수(監守, 판임) 등을 두었다. 1907년 8월 궁내부 소속 광산도 <광업법>에 의해 관리하도록 됨에 따라 광업관계 사무와 광산관리권을 농상공부로 이관하였고, 1907년 12월에는 경리원이 완전히 폐지되었다(이 때 내장사는 내장원으로 개칭됨.). 경리원 폐지에 따라 소관...
경리원 (經理院)
근대 개항기 황실재산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궁내부산하 관청. # 내용 1905년 3월에 설치되었다. 일제가 황실재산을 침탈하기 위해 내장원을 내장사와 경리원으로 분리, 독립시킬 때 설치되어 황실재산(世傳莊園의 관리, 收賭 · 礦業 · 蔘政)을 총괄하였다. 서무 · 삼정 · 지응(支應) · 종목(種牧) · 장원 5과를 두었다. 관리는 경(卿, 칙임) 1인, 감독(칙임) 1인, 과장(주임) 5인, 주사(판임) 15인 이하, 기사(주임) 3인, 기수(판임) 7인, 기수보(판임) · 감수(監守, 판임) 등을 두었다. 1907년 8월 궁내부 소속 광산도 <광업법>에 의해 관리하도록 됨에 따라 광업관계 사무와 광산관리권을 농상공부로 이관하였고, 1907년 12월에는 경리원이 완전히 폐지되었다(이 때 내장사는 내장원으로 개칭됨.). 경리원 폐지에 따라 소관...
신라시대의 관직. # 내용 신라 왕경(경주)의 도시행정(都市行政)을 맡아보던 전읍서(典邑署)의 관직 명칭으로, 장관인 경(卿) 또는 감(監)을 보좌하였다. 정원은 6인이며, 관등이 사지(舍知)에서 나마(奈麻)까지인 자로 임용하였다. - 『삼국사기』
대사읍 (大司邑)
신라시대의 관직. # 내용 신라 왕경(경주)의 도시행정(都市行政)을 맡아보던 전읍서(典邑署)의 관직 명칭으로, 장관인 경(卿) 또는 감(監)을 보좌하였다. 정원은 6인이며, 관등이 사지(舍知)에서 나마(奈麻)까지인 자로 임용하였다. - 『삼국사기』
조선시대 북한산성의 관리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 # 내용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이 축성되자 축성에 참가한 3군문, 즉 훈련도감 · 금위영 · 어영청에서 감관(監官)을 파견하여 산성을 분담, 관리하도록 하는 조처가 있었다. 그런데 산성 안에 비축할 군량미가 5, 6만석이나 되어 그것을 썩지 않게 보관하면서 산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담관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아, 이듬해에 경리청이 산성 안에 설치되었다. 당시의 경리청은 활동이 활발하여서 군수미 확보면에서도 3군문의 보미(保米) 외에 환곡 및 조지서(造紙署)에서 제조한 지류의 판매를 통한 수익활동으로 재력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경종 이후 혁파논의가 자주 대두되어 업무가 크게 위축되었으며, 결국 1747년(영조 23) 군영체제의 재정비로...
경리청 (經理廳)
조선시대 북한산성의 관리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관서. # 내용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이 축성되자 축성에 참가한 3군문, 즉 훈련도감 · 금위영 · 어영청에서 감관(監官)을 파견하여 산성을 분담, 관리하도록 하는 조처가 있었다. 그런데 산성 안에 비축할 군량미가 5, 6만석이나 되어 그것을 썩지 않게 보관하면서 산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담관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높아, 이듬해에 경리청이 산성 안에 설치되었다. 당시의 경리청은 활동이 활발하여서 군수미 확보면에서도 3군문의 보미(保米) 외에 환곡 및 조지서(造紙署)에서 제조한 지류의 판매를 통한 수익활동으로 재력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경종 이후 혁파논의가 자주 대두되어 업무가 크게 위축되었으며, 결국 1747년(영조 23) 군영체제의 재정비로...
조선시대, 귀양 간 사람에게 내리던 형벌의 하나로, 귀양살이하는 죄인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가두어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한 가택연금 형식의 형벌. 가극은 조선시대에 귀양 간 사람에게 내리던 형벌의 하나로, 귀양살이하는 죄인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가두어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한 가택연금 형식의 형벌이다. 유배인이 유배지에서 새로 집을 구하고, 집 둘레에 스스로 탱자나무를 둘러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유배살이의 괴로움 때문에 뇌물을 주어 읍내로 이주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제정 목적 섬 등 벽지에 죄인을 감금 상태로 두어 외부와의 연락을 끊음으로써 고통을 주어 죄를 뉘우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내용 위리안치(圍籬安置)와 같은...
가극 (加棘)
조선시대, 귀양 간 사람에게 내리던 형벌의 하나로, 귀양살이하는 죄인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가두어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한 가택연금 형식의 형벌. 가극은 조선시대에 귀양 간 사람에게 내리던 형벌의 하나로, 귀양살이하는 죄인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가두어 외부와의 접촉을 제한한 가택연금 형식의 형벌이다. 유배인이 유배지에서 새로 집을 구하고, 집 둘레에 스스로 탱자나무를 둘러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유배살이의 괴로움 때문에 뇌물을 주어 읍내로 이주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제정 목적 섬 등 벽지에 죄인을 감금 상태로 두어 외부와의 연락을 끊음으로써 고통을 주어 죄를 뉘우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 내용 위리안치(圍籬安置)와 같은...
부여시대의 관명. # 내용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데, 최고 족장급인 제가(諸加) 다음 급의 지위이다. ≪삼국지≫의 판본에 따라서는 ‘견사자(犬使者)’라고 한 것도 있다. - 『삼국사기』 - 『삼국지(三國志)』 -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김철준,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
대사자 (大使者)
부여시대의 관명. # 내용 ≪삼국지≫ 동이전에 보이는데, 최고 족장급인 제가(諸加) 다음 급의 지위이다. ≪삼국지≫의 판본에 따라서는 ‘견사자(犬使者)’라고 한 것도 있다. - 『삼국사기』 - 『삼국지(三國志)』 - 「고구려·신라의 관계조직의 성립과정」(김철준, 『이병도박사화갑기념논총』, 1956)
1880년(고종 17)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의 각 사(司)의 사무(司務)를 관장하던 관직. # 내용 약칭은 경리당상(經理堂上)·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경리사(經理事) 등이다. 당상관으로 임명하였으며, 다른 관직에 있는 관리를 겸직, 임명하였다. 정원은 처음에 10명이었으나 곧 수시로 늘거나 줄어 일정하지 않았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다시 집권하게 된 대원군에 의하여 통리기무아문이 폐지될 때 함께 폐지되었다. →통리기무아문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한국사』-최근세편-(이선근, 진단학회, 1961) - 「통리기무아문 설치의 경위에 대하여」(전해종, 『역사학보』 17·18합집, 1962)
경리통리기무아문사 (經理統理機務衙門事)
1880년(고종 17)에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의 각 사(司)의 사무(司務)를 관장하던 관직. # 내용 약칭은 경리당상(經理堂上)·당상경리사(堂上經理事)·경리사(經理事) 등이다. 당상관으로 임명하였으며, 다른 관직에 있는 관리를 겸직, 임명하였다. 정원은 처음에 10명이었으나 곧 수시로 늘거나 줄어 일정하지 않았다. 1882년 임오군란으로 다시 집권하게 된 대원군에 의하여 통리기무아문이 폐지될 때 함께 폐지되었다. →통리기무아문 -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한국사』-최근세편-(이선근, 진단학회, 1961) - 「통리기무아문 설치의 경위에 대하여」(전해종, 『역사학보』 17·18합집,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