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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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사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에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였다. 17세기 지리지에 감악산의 사찰로 소개되어 있다. 18세기 말 이전에 폐사되었다가 19세기 말 중건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감악사 (紺岳寺)
감악사는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감악산에 있었던 고려시대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존재하였다. 17세기 지리지에 감악산의 사찰로 소개되어 있다. 18세기 말 이전에 폐사되었다가 19세기 말 중건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고봉법장가집』은 1426년, 법장이 『나옹화상가송』을 확장 편찬한 불교서이다. 『보제존자삼종가』라고도 하는데, 보제존자 즉 나옹 혜근의 가송을 모은 『나옹화상가송』 중 「백납가」, 「고루가」, 「영주가」의 가(歌) 3수를 장편으로 확장 편찬하였다. 법장이 정리한 원고는 1435년 순천 송광사에서 1책으로 간행되었다.
고봉법장가집 (高峰法藏歌集)
『고봉법장가집』은 1426년, 법장이 『나옹화상가송』을 확장 편찬한 불교서이다. 『보제존자삼종가』라고도 하는데, 보제존자 즉 나옹 혜근의 가송을 모은 『나옹화상가송』 중 「백납가」, 「고루가」, 「영주가」의 가(歌) 3수를 장편으로 확장 편찬하였다. 법장이 정리한 원고는 1435년 순천 송광사에서 1책으로 간행되었다.
『몽산화상법어약록』은 조선시대, 원나라 선승 몽산 덕이의 법어를 선별하여 간행한 불교서이다. 세조대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을 간행하였고, 중종대 한문본이 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된 법어 중 하나로 간화선 수용과 관련된 서적이다.
몽산화상법어약록 (蒙山和尙法語略錄)
『몽산화상법어약록』은 조선시대, 원나라 선승 몽산 덕이의 법어를 선별하여 간행한 불교서이다. 세조대 간경도감에서 언해본을 간행하였고, 중종대 한문본이 간행되었다.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된 법어 중 하나로 간화선 수용과 관련된 서적이다.
『백의해』는 고려 후기, 승려 혜영이 『백의관음예참문』에 대한 여러 경론을 인용하여 풀이하고 주석을 붙인 불교서이다. 필사본으로 전하며 정확한 필사 시기는 미상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으며, 1책 17장으로, 앞 뒤 일부 낙장이 있다. 『백의관음예참문』에 대한 주석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고려 후기 관음신앙의 일면을 전하는 책으로 관음신앙과 밀교의 융합 그리고 예참신앙의 성행을 잘 드러낸다.
백의해 (白衣解)
『백의해』는 고려 후기, 승려 혜영이 『백의관음예참문』에 대한 여러 경론을 인용하여 풀이하고 주석을 붙인 불교서이다. 필사본으로 전하며 정확한 필사 시기는 미상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으며, 1책 17장으로, 앞 뒤 일부 낙장이 있다. 『백의관음예참문』에 대한 주석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고려 후기 관음신앙의 일면을 전하는 책으로 관음신앙과 밀교의 융합 그리고 예참신앙의 성행을 잘 드러낸다.
상원사는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보천과 효명이 창건한 절이다. 통일신라시대 중대에 조성된 진여원 자리에 새로 확장하여 조성하였다.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의 기도처로, 오대산 문수 신앙의 중심지이다. 조선 전기 왕실의 원찰이 되었으며, 근대에 다시 중창되었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상원사 동종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평창 상원사 목조제석천왕상 수습 복장전적, 평창 상원사 영산전 석가삼존·십육나한상 및 권속,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등이 있다.
상원사 (上院寺)
상원사는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보천과 효명이 창건한 절이다. 통일신라시대 중대에 조성된 진여원 자리에 새로 확장하여 조성하였다.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의 기도처로, 오대산 문수 신앙의 중심지이다. 조선 전기 왕실의 원찰이 되었으며, 근대에 다시 중창되었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상원사 동종과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평창 상원사 목조제석천왕상 수습 복장전적, 평창 상원사 영산전 석가삼존·십육나한상 및 권속,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등이 있다.
요세는 고려 후기에 백련결사를 개창한 천태종 승려이다. 천태종의 수행과 참회를 통해 당시 불교계의 폐단을 개혁하려 하였으며, 정토신앙을 수용하여 결사의 저변을 넓혔다. 요세의 백련결사는 지눌의 정혜결사와 함께 고려 후기 결사 불교를 대표한다.
요세 (了世)
요세는 고려 후기에 백련결사를 개창한 천태종 승려이다. 천태종의 수행과 참회를 통해 당시 불교계의 폐단을 개혁하려 하였으며, 정토신앙을 수용하여 결사의 저변을 넓혔다. 요세의 백련결사는 지눌의 정혜결사와 함께 고려 후기 결사 불교를 대표한다.
『조상경』은 조선시대 불보살상 조성에 따른 제반 의식과 절차에 관한 것을 모아 간행한 불교의례서이다. 불복장 및 점안의식에 필요한 절차를 체계화한 불서로, 조선시대에 꾸준히 간행·유통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망폐화된 사찰을 중건하면서 불상과 불화를 새로 조성하는 일이 많았는데, 조선 후기 『조상경』의 간행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하였다.
조상경 (造像經)
『조상경』은 조선시대 불보살상 조성에 따른 제반 의식과 절차에 관한 것을 모아 간행한 불교의례서이다. 불복장 및 점안의식에 필요한 절차를 체계화한 불서로, 조선시대에 꾸준히 간행·유통되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망폐화된 사찰을 중건하면서 불상과 불화를 새로 조성하는 일이 많았는데, 조선 후기 『조상경』의 간행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하였다.
불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사된 절터에 일제강점기 우담이 다시 창건한 절이다. 불곡사창건비의 비문에, 통일신라 말 진경대사가 지었던 절이 폐사되어 없어진 자리에 1930년대 우담이 절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있던 절의 이름이나 폐사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된 창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창원 불곡사 일주문이 있다.
불곡사 (佛谷寺)
불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사된 절터에 일제강점기 우담이 다시 창건한 절이다. 불곡사창건비의 비문에, 통일신라 말 진경대사가 지었던 절이 폐사되어 없어진 자리에 1930년대 우담이 절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있던 절의 이름이나 폐사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된 창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창원 불곡사 일주문이 있다.
『불조직지심체요절』은 고려 후기 승려 경한이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1372년에 초록한 불교 서적이다. 14세기 고려 선승이었던 백운경한이 스승인 원나라 승려 석옥청공이 지은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2권으로 증보하여 편찬한 것으로 직지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要節)
『불조직지심체요절』은 고려 후기 승려 경한이 선의 요체를 깨닫는 데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1372년에 초록한 불교 서적이다. 14세기 고려 선승이었던 백운경한이 스승인 원나라 승려 석옥청공이 지은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2권으로 증보하여 편찬한 것으로 직지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1377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하였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삼화사는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창건한 사찰이다. 9세기 후반 조성된 철조 노사나불 좌상의 명문이 삼화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늦어도 9세기 무렵에는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사찰이었으며, 조선 초에는 태조의 명으로 1395년부터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을 위한 국행 수륙재가 열렸던 곳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중창했으며, 이후 옛 삼화사 터와 중대사 터를 반복하며 옮겨 다니다가 1977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최근 원래 삼화사가 있던 절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두타산 삼화사 (頭陀山 三和寺)
삼화사는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창건한 사찰이다. 9세기 후반 조성된 철조 노사나불 좌상의 명문이 삼화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늦어도 9세기 무렵에는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사찰이었으며, 조선 초에는 태조의 명으로 1395년부터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을 위한 국행 수륙재가 열렸던 곳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조선 후기 중창했으며, 이후 옛 삼화사 터와 중대사 터를 반복하며 옮겨 다니다가 1977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최근 원래 삼화사가 있던 절터에 대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는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조동오위』를 중편하여 간행한 불서이다. 1260년 당시 유행하던 선종 서적인 『조동오위』의 오류를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일연으로 바꾸기 이전 법명인 회연(晦然)이 중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17세기 일본 교토에서 간행되어 조동종의 오위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서적으로 평가되면서도 일연이 편찬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970년 민영규(閔泳珪)가 경도대학(京都大學) 소장본이 일연의 저술임을 처음으로 밝혔다.
중편조동오위 (重編曹洞五位)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는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조동오위』를 중편하여 간행한 불서이다. 1260년 당시 유행하던 선종 서적인 『조동오위』의 오류를 바로잡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여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일연으로 바꾸기 이전 법명인 회연(晦然)이 중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17세기 일본 교토에서 간행되어 조동종의 오위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서적으로 평가되면서도 일연이 편찬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970년 민영규(閔泳珪)가 경도대학(京都大學) 소장본이 일연의 저술임을 처음으로 밝혔다.
지눌은 고려 후기 정혜결사를 개창한 승려이다. 조계산 송광사를 창건하였다.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제창하고 수행의 방법으로 3문 체계를 제시했으며, 선의 입장에 화엄을 수용하는 등 지눌 당시까지의 동아시아 선종을 재정립하며 고려 선종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고려 후기 불교를 이끌어 나갔다.
지눌 (知訥)
지눌은 고려 후기 정혜결사를 개창한 승려이다. 조계산 송광사를 창건하였다.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제창하고 수행의 방법으로 3문 체계를 제시했으며, 선의 입장에 화엄을 수용하는 등 지눌 당시까지의 동아시아 선종을 재정립하며 고려 선종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고려 후기 불교를 이끌어 나갔다.
상원사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 있는, 조선시대 세조가 행차하여 관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하는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미상이나 고려시대에는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상원암(上院庵 )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원찰로, 세조가 왕비, 세자, 신하들과 이곳에 들러 관음보살의 이적을 체험하였다.
용문산 상원사 (龍門山 上院寺)
상원사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 있는, 조선시대 세조가 행차하여 관음보살을 친견했다고 전하는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미상이나 고려시대에는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상원암(上院庵 )이라고도 한다. 조선 초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원찰로, 세조가 왕비, 세자, 신하들과 이곳에 들러 관음보살의 이적을 체험하였다.
신효사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이 중창하고 원당으로 삼은 사찰이다. 고려시대 개경의 광덕산(廣德山)에 있던 사찰이다. 처음 창건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충렬왕 대 크게 중창한 뒤 원간섭기 주요 왕실 사찰 중 하나였다. 충렬왕 때에는 원 황실을 위한 원찰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진전이 마련된 사찰이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절이 있었으나 그후 폐사되었다.
광덕산 신효사 (廣德山 神孝寺)
신효사 고려 후기 제25대 충렬왕이 중창하고 원당으로 삼은 사찰이다. 고려시대 개경의 광덕산(廣德山)에 있던 사찰이다. 처음 창건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충렬왕 대 크게 중창한 뒤 원간섭기 주요 왕실 사찰 중 하나였다. 충렬왕 때에는 원 황실을 위한 원찰이 되었으며, 충혜왕의 진전이 마련된 사찰이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절이 있었으나 그후 폐사되었다.
십육국사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전라남도 조계산 송광사에서 활동한 16명의 승려이다. 고려시대에 수선사(修禪社)의 사주(社主)로서 국사의 칭호를 받았던 15인과 조선 초기에 송광사를 중창하였던 고봉(高峰)을 합쳐서 이른다. 이들의 영정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십육국사의 배출로 인하여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십육국사 (十六國師)
십육국사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초에 국사로 책봉되었거나 후대에 국사로 추인된 전라남도 조계산 송광사에서 활동한 16명의 승려이다. 고려시대에 수선사(修禪社)의 사주(社主)로서 국사의 칭호를 받았던 15인과 조선 초기에 송광사를 중창하였던 고봉(高峰)을 합쳐서 이른다. 이들의 영정은 송광사 국사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십육국사의 배출로 인하여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쌍계사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현전하는 기록과 절터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 사세가 컸음이 확인되고, 조선 후기까지도 사찰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룡산 쌍계사 (德龍山 雙溪寺)
쌍계사는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남송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이다. 창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고, 현전하는 기록과 절터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에서 조선 중기까지 사세가 컸음이 확인되고, 조선 후기까지도 사찰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법왕사는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창건한 개성시에 있던 사찰이다. 고려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절차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사가 있었던 것에서 보듯 팔관회외 밀접한 관계가 있던 절이었으나 조선 건국 후 절이 급속도로 퇴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개성 법왕사 (開城 法王寺)
법왕사는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창건한 개성시에 있던 사찰이다. 고려 태조가 개경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919년 개경에 창건한 10개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고려시대 중동팔관회 절차 중에 국왕의 법왕사 행사가 있었던 것에서 보듯 팔관회외 밀접한 관계가 있던 절이었으나 조선 건국 후 절이 급속도로 퇴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림사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던 사찰 터이다.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후기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범우고』에 폐사된 절로 나오므로 조선 후기 어느 시기엔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절터에 석종형 부도가 남아 있다.
영축산 보림사 (靈鷲山 寶林寺)
보림사는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에 있던 사찰 터이다. 창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통일신라 후기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범우고』에 폐사된 절로 나오므로 조선 후기 어느 시기엔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절터에 석종형 부도가 남아 있다.
대곡사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봉산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시대 창건설, 공민왕 대 지공 창건설 등이 있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이후 크게 중창(重創)되었으며 18세기에 조성된 불상(佛像)과 불화(佛畵)를 비롯한 문화유산이 다수 전하는 것으로 조선 후기 대곡사의 위상을 볼 수 있다.
비봉산 대곡사 (飛鳳山 大谷寺)
대곡사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봉산에 있는 사찰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시대 창건설, 공민왕 대 지공 창건설 등이 있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이후 크게 중창(重創)되었으며 18세기에 조성된 불상(佛像)과 불화(佛畵)를 비롯한 문화유산이 다수 전하는 것으로 조선 후기 대곡사의 위상을 볼 수 있다.
거돈사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이다. 통일신라 말에 중창되어 고려 초에 큰 사찰이 되었다. 지증대사 도헌, 원공국사 지종, 정각국사 지겸 등이 주석하였으며 조선중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3층석탑, 원공국사 승묘탑비가 남아 있다.
현계산 거돈사지 (玄溪山 居頓寺址)
거돈사지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이다. 통일신라 말에 중창되어 고려 초에 큰 사찰이 되었다. 지증대사 도헌, 원공국사 지종, 정각국사 지겸 등이 주석하였으며 조선중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에는 3층석탑, 원공국사 승묘탑비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