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권대웅"
검색결과 총 15건
권애라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때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 그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1월 극동인민대표회의 한민족여성대표로 참석하였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여성지위 향상과 조국 광복운동에 활약하였고, 이후 동삼성에서 지하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권애라 (權愛羅)
권애라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때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하였다. 그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22년 1월 극동인민대표회의 한민족여성대표로 참석하였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여성지위 향상과 조국 광복운동에 활약하였고, 이후 동삼성에서 지하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고앙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 독립만세운동인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삼진의거에 군중들이 몰려들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김수동 등 7명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고앙주 (高昻柱)
고앙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 독립만세운동인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삼진의거에 군중들이 몰려들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김수동 등 7명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곽영준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 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와 격문 수백 매를 시장에 집합한 군중에게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행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뒤로 독립운동자금의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다시 체포되어 7년의 옥고를 치렀다. 1932년 이후 양평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하였다.
곽영준 (郭英俊)
곽영준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 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와 격문 수백 매를 시장에 집합한 군중에게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행진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뒤로 독립운동자금의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다시 체포되어 7년의 옥고를 치렀다. 1932년 이후 양평적색농민조합에서 활동하였다.
구수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읍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뒤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고문의 휴유증으로 병을 얻어 병보석되었다. 1920년 5월 1일 나이 20세로 순국하였다.
구수암 (具壽巖)
구수암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읍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뒤 체포되어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고문의 휴유증으로 병을 얻어 병보석되었다. 1920년 5월 1일 나이 20세로 순국하였다.
권채근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1920년 1월 2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권채근 (權采根)
권채근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의 형이 확정되었다.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1920년 1월 2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김도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운동 시위대는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김도주 (金道周)
김도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1일 만세운동 시위대는 주재소 및 면사무소를 점거하고 건물과 기물, 그리고 각종 문서 등을 파기하였다. 임하면 남산으로 피신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김수동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인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중 김수동을 포함한 시위 군중 8명이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수동 (金守東)
김수동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인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중 김수동을 포함한 시위 군중 8명이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영환 (金永煥)
김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재화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의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진주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작성하였다. 3월 18일 진주 장날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징역 3년형의 옥고를 치르다가 병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되어 1920년 3월 29일 석방되었다. 출감 직후 순국하였다.
김재화 (金在華)
김재화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의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진주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 진주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작성하였다. 3월 18일 진주 장날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징역 3년형의 옥고를 치르다가 병으로 형의 집행이 정지되어 1920년 3월 29일 석방되었다. 출감 직후 순국하였다.
김호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호현 (金浩鉉)
김호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김산의진 (金山義陣)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동공보 주필로 활동하며 스티븐스 저격 사건의 주모자를 위한 구명운동을 벌였고, 한인노동자의 권익 옹호를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
문양목 (文讓穆)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대동공보 주필로 활동하며 스티븐스 저격 사건의 주모자를 위한 구명운동을 벌였고, 한인노동자의 권익 옹호를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의회를 개편하고 고려공산당 및 독립군 유격대를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문창범 (文昌範)
일제강점기 때, 대한국민의회를 개편하고 고려공산당 및 독립군 유격대를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1923년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단체.
혁청단 (革淸團)
1923년 서울에서 조직된 사회단체.
박렬(朴烈)의 정신을 계승한 무정부주의운동단체로서, 불령사(不逞社)를 전신으로 삼아 1928년 1월 일본 동경(東京)에서 출범한 단체.
흑우연맹 (黑友聯盟)
박렬(朴烈)의 정신을 계승한 무정부주의운동단체로서, 불령사(不逞社)를 전신으로 삼아 1928년 1월 일본 동경(東京)에서 출범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