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권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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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2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719~737년이다. 본명은 대무예(大武藝)이다. 726년 흑수말갈 토벌과 동생 대문예의 당 망명 등으로 당과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732년 요서 지역의 거란을 지원하기 위해 당의 등주를 공격하고 돌궐 및 거란과 연합하여 마도산전투를 벌였다. 무왕대의 활발한 영역 확장 정책으로 문왕대의 황제국 체제를 확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무왕 (武王)
무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2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719~737년이다. 본명은 대무예(大武藝)이다. 726년 흑수말갈 토벌과 동생 대문예의 당 망명 등으로 당과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732년 요서 지역의 거란을 지원하기 위해 당의 등주를 공격하고 돌궐 및 거란과 연합하여 마도산전투를 벌였다. 무왕대의 활발한 영역 확장 정책으로 문왕대의 황제국 체제를 확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이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다.
발해 (渤海)
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이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다.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서경압록부 (西京鴨綠府)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연해 크라스키노성지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연해주) 크라스키노 마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터이다. 성터는 발해 동경용원부 아래에 있는 염주의 중심 유적지로 인정되고 있다. 크라스키노성은 평면이 불규칙한 장방형이다. 성문은 북쪽과 동쪽, 남쪽에 각기 1개씩 있고 성문에 모두 장방형의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1,380m이다. 성벽은 대부분 표토로 덮여 있으나 성벽 능선을 따라 석축 골격이 보이는 곳도 있다.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발굴에서 발해에 앞선 문화층과 고구려 시기의 유물 및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연해주 크라스키노성지 (沿海州 Kraskino城址)
연해 크라스키노성지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레이(연해주) 크라스키노 마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터이다. 성터는 발해 동경용원부 아래에 있는 염주의 중심 유적지로 인정되고 있다. 크라스키노성은 평면이 불규칙한 장방형이다. 성문은 북쪽과 동쪽, 남쪽에 각기 1개씩 있고 성문에 모두 장방형의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1,380m이다. 성벽은 대부분 표토로 덮여 있으나 성벽 능선을 따라 석축 골격이 보이는 곳도 있다.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발굴에서 발해에 앞선 문화층과 고구려 시기의 유물 및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고원망 묘지는 고구려 유민 고원망의 묘지이다. 사위인 해동 서찰(徐察)이 작성하였는데 묘지에는 고원망의 가계와 이력 등이 나온다. 고원망은 697년에 당나라에서 태어나 740년에 44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가계는 고구려 말기에 당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고구려 유민 2~3세대로, 아버지 고흠덕과 함께 하북과 요서 지역에서 군사 활동에 종사하였다. 사망 당시 발해, 돌궐, 거란 등을 대비하는 군사 최고 지휘관인 안동도호부 부도호 겸 송막사를 역임했다. 고원망 묘지를 통해 당나라에 살고 있는 현실과 고구려 계통이라는 고원망의 이중적 출자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고원망 묘지 (高遠望 墓誌)
고원망 묘지는 고구려 유민 고원망의 묘지이다. 사위인 해동 서찰(徐察)이 작성하였는데 묘지에는 고원망의 가계와 이력 등이 나온다. 고원망은 697년에 당나라에서 태어나 740년에 44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가계는 고구려 말기에 당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고구려 유민 2~3세대로, 아버지 고흠덕과 함께 하북과 요서 지역에서 군사 활동에 종사하였다. 사망 당시 발해, 돌궐, 거란 등을 대비하는 군사 최고 지휘관인 안동도호부 부도호 겸 송막사를 역임했다. 고원망 묘지를 통해 당나라에 살고 있는 현실과 고구려 계통이라는 고원망의 이중적 출자 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 유민 고제석의 묘지.
고제석 묘지 (高提昔 墓誌)
고구려 유민 고제석의 묘지.
고질 묘지는 고구려 유민 고질(626~697)의 묘지(墓誌)이다. 고질은 이름이 질이며, 자는 성문이다. 고질의 묘지는 1990년대 중국 낙양시에서 출토되었다. 찬자는 위승경이며, 글씨는 유종일이 썼다. 19대 선조인 고밀이 연나라에 맞서 고구려를 지키는데 공을 세워, 고씨 성을 하사받았다. 고질은 삼품 위두대형 겸 대장군이었는데, 고구려와 당의 전쟁 때 형제를 이끌고 당으로 귀화하였다. 거란이 반란을 일으키자 697년에 72세의 고령에도 좌옥금위대장군이 되어 마미성에서 싸우다 죽었다. 사후 공을 인정받아 진군대장군, 행좌금오위대장군, 유주도독에 추증되었다.
고질 묘지 (高質 墓誌)
고질 묘지는 고구려 유민 고질(626~697)의 묘지(墓誌)이다. 고질은 이름이 질이며, 자는 성문이다. 고질의 묘지는 1990년대 중국 낙양시에서 출토되었다. 찬자는 위승경이며, 글씨는 유종일이 썼다. 19대 선조인 고밀이 연나라에 맞서 고구려를 지키는데 공을 세워, 고씨 성을 하사받았다. 고질은 삼품 위두대형 겸 대장군이었는데, 고구려와 당의 전쟁 때 형제를 이끌고 당으로 귀화하였다. 거란이 반란을 일으키자 697년에 72세의 고령에도 좌옥금위대장군이 되어 마미성에서 싸우다 죽었다. 사후 공을 인정받아 진군대장군, 행좌금오위대장군, 유주도독에 추증되었다.
고구려 유민 고흠덕(677~733)의 묘지.
고흠덕 묘지 (高欽德 墓誌)
고구려 유민 고흠덕(677~733)의 묘지.
고구려 유민 두선부(684~741)의 묘지.
두선부 묘지 (豆善富 墓誌)
고구려 유민 두선부(684~741)의 묘지.
비우성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삼가자향 고성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이다. 1981년 지린성 성급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성 밖에는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성의 평면은 비대칭 사다리꼴이며 둘레는 2,023m이고, 높이는 3.6m이다. 각 성벽의 중앙에는 문지가 있고, 남쪽 성벽과 서쪽 성벽의 문지에는 옹성이 남아 있다. 성내에서 발견되는 줄무늬 판와와 연꽃무늬 와당 등은 발해 유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이 성은 발해시기에 처음 축조되어 요금대에 개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우성 (斐優城)
비우성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 삼가자향 고성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이다. 1981년 지린성 성급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성 밖에는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성의 평면은 비대칭 사다리꼴이며 둘레는 2,023m이고, 높이는 3.6m이다. 각 성벽의 중앙에는 문지가 있고, 남쪽 성벽과 서쪽 성벽의 문지에는 옹성이 남아 있다. 성내에서 발견되는 줄무늬 판와와 연꽃무늬 와당 등은 발해 유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이 성은 발해시기에 처음 축조되어 요금대에 개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광탑은 중국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진에 있는 발해의 벽돌탑이다. 이 탑은 본래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발해의 벽돌탑 가운데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오랜 세월에도 의연히 남아 있다는 의미로 영광탑이라고 불렀다. 이 탑은 벽돌로 축조한 누각 형태의 탑으로, 탑 아래에는 지하 무덤을 두었다. 탑의 동서면은 연꽃무늬 벽돌로 국(國)과 왕(王)자를, 남북면은 구름무늬 벽돌로 입(立)과 토(土)자를 형상화하였는데, 이를 통해 이 탑이 발해의 왕 또는 왕실과 관련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탑은 중국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영광탑 (靈光塔)
영광탑은 중국 길림성 백산시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진에 있는 발해의 벽돌탑이다. 이 탑은 본래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발해의 벽돌탑 가운데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어 오랜 세월에도 의연히 남아 있다는 의미로 영광탑이라고 불렀다. 이 탑은 벽돌로 축조한 누각 형태의 탑으로, 탑 아래에는 지하 무덤을 두었다. 탑의 동서면은 연꽃무늬 벽돌로 국(國)과 왕(王)자를, 남북면은 구름무늬 벽돌로 입(立)과 토(土)자를 형상화하였는데, 이를 통해 이 탑이 발해의 왕 또는 왕실과 관련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탑은 중국이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영승 유적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강남진 융성촌[永勝村]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집터이다. 융성촌의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목단강에 인접한 충적평원에 위치한다. 둔화시에 있는 발해 유적지 중 가장 큰 규모로, 남북 길이가 1,000여m, 동서 너비가 700여m, 전체 둘레는 3,400여m이다. 이 유적은 1974년에 발견되어 이후 여러 차례 지표조사가 있었다. 유적에서는 5곳의 건축지가 확인되었다. 영승 유적이 발해 유적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으나 발견된 유물 중에 동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발해문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영승 유적 (永勝 遺蹟)
영승 유적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 강남진 융성촌[永勝村]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집터이다. 융성촌의 북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목단강에 인접한 충적평원에 위치한다. 둔화시에 있는 발해 유적지 중 가장 큰 규모로, 남북 길이가 1,000여m, 동서 너비가 700여m, 전체 둘레는 3,400여m이다. 이 유적은 1974년에 발견되어 이후 여러 차례 지표조사가 있었다. 유적에서는 5곳의 건축지가 확인되었다. 영승 유적이 발해 유적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으나 발견된 유물 중에 동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발해문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珲春市) 삼가자향(三家子鄕) 고성촌(古城村)에 있는 고구려·발해 시기의 성곽.
온특혁부성 (溫特赫部城)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珲春市) 삼가자향(三家子鄕) 고성촌(古城村)에 있는 고구려·발해 시기의 성곽.
홍준어장 고분군은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발해진 서안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집터와 돌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발굴 조사 결과 323기의 무덤 및 방형 구조물과 주거지가 확인되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발해 시기 고분군 가운데 가장 많다. 발해 지역 귀족과 부민의 공동묘지로 여겨진다. 주로 돌무덤이 많고 그 밖에 전실무덤, 전석혼축무덤도 있다. 축조 방식으로 석실묘가 247기로 가장 많은데 묘도가 중앙에 있는 삽모양, 칼모양, 장방형 석실묘 등이 있다. 유물도 많이 출토되어 발해의 물질문화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홍준어장 고분군 (虹鱒魚場 古墳群)
홍준어장 고분군은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영안시 발해진 서안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집터와 돌널무덤·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발굴 조사 결과 323기의 무덤 및 방형 구조물과 주거지가 확인되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발해 시기 고분군 가운데 가장 많다. 발해 지역 귀족과 부민의 공동묘지로 여겨진다. 주로 돌무덤이 많고 그 밖에 전실무덤, 전석혼축무덤도 있다. 축조 방식으로 석실묘가 247기로 가장 많은데 묘도가 중앙에 있는 삽모양, 칼모양, 장방형 석실묘 등이 있다. 유물도 많이 출토되어 발해의 물질문화 연구에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추리구진(秋梨沟镇) 횡도하자촌(橫道河子村)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횡도하자고성 (橫道河子古城)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추리구진(秋梨沟镇) 횡도하자촌(橫道河子村)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간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17~818년이며 발해 제6대 강왕의 아들이자 제7대 정왕과 제8대 희왕의 동생이다. 이름은 대명충이다. 817년에 왕위에 올라 연호를 태시(太始)로 고쳤으나, 바로 다음해에 죽었기 때문에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간왕이 죽은 뒤에는 제1대 고왕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4대손인 선왕 대인수가 왕위에 오르게 되어, 발해 왕실의 왕계가 달라졌다.
간왕 (簡王)
간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817~818년이며 발해 제6대 강왕의 아들이자 제7대 정왕과 제8대 희왕의 동생이다. 이름은 대명충이다. 817년에 왕위에 올라 연호를 태시(太始)로 고쳤으나, 바로 다음해에 죽었기 때문에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간왕이 죽은 뒤에는 제1대 고왕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의 4대손인 선왕 대인수가 왕위에 오르게 되어, 발해 왕실의 왕계가 달라졌다.
강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95~809년이며 연호는 정력(正曆)이다. 제3대 문왕의 작은 아들이자 제5대 성왕의 숙부이다. 이름은 대숭린이다. 문왕 사후 집안의 아우인 대원의가 왕위를 찬탈하고 1년 만에 다시 문왕의 적장손인 성왕이 즉위하는 내분이 있었다. 성왕이 즉위 후 얼마 안 되어 서거하자 강왕이 왕위를 이어 내분을 수습했다. 당나라는 이 내분을 발미로 국왕을 군왕으로 낮추어 책봉했으나 적극적 외교활동으로 국왕의 지위를 회복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고구려 계승의식을 강조하며 주도적인 외교를 펼쳤다.
강왕 (康王)
강왕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95~809년이며 연호는 정력(正曆)이다. 제3대 문왕의 작은 아들이자 제5대 성왕의 숙부이다. 이름은 대숭린이다. 문왕 사후 집안의 아우인 대원의가 왕위를 찬탈하고 1년 만에 다시 문왕의 적장손인 성왕이 즉위하는 내분이 있었다. 성왕이 즉위 후 얼마 안 되어 서거하자 강왕이 왕위를 이어 내분을 수습했다. 당나라는 이 내분을 발미로 국왕을 군왕으로 낮추어 책봉했으나 적극적 외교활동으로 국왕의 지위를 회복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고구려 계승의식을 강조하며 주도적인 외교를 펼쳤다.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남경남해부 (南京南海府)
발해의 지방행정기구.
발해의 제4대(재위: 793년~794년) 왕.
대원의 (大元義)
발해의 제4대(재위: 793년~794년) 왕.
대인선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1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6년∼926년이며, 발해의 마지막 왕이다. 대인선이 즉위했을 때는 거란이 부족 통일을 이루고 발해를 크게 위협하던 시기였다. 대인선은 후량과 신라, 여진 등과 긴밀히 연계하여 거란의 팽창과 침략에 맞서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면서 수십 년 동안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서방원정을 마친 야율아보기가 925년 12월에 친정을 감행한 뒤 한 달 만에 발해의 수도 상경성을 함락시키고 발해를 멸망시켰다. 대인선은 야율아보기가 거란으로 회군할 때 끌려가 거란의 수도에서 살다가 사망했다.
대인선 (大諲譔)
대인선은 남북국시대 발해의 제1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6년∼926년이며, 발해의 마지막 왕이다. 대인선이 즉위했을 때는 거란이 부족 통일을 이루고 발해를 크게 위협하던 시기였다. 대인선은 후량과 신라, 여진 등과 긴밀히 연계하여 거란의 팽창과 침략에 맞서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면서 수십 년 동안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서방원정을 마친 야율아보기가 925년 12월에 친정을 감행한 뒤 한 달 만에 발해의 수도 상경성을 함락시키고 발해를 멸망시켰다. 대인선은 야율아보기가 거란으로 회군할 때 끌려가 거란의 수도에서 살다가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