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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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으로, 초기국가시대에는 마한의 중심 지역이었다. 차령산맥을 기점으로 동쪽은 대목악군, 북쪽은 위례성, 남서쪽은 도솔이라 불렸다. 대목악군은 757년에 대록군, 940년에 목주현, 1413년에 목천군으로 개명되었다. 위례성은 687년에 사산현, 940년에 직산현, 1396년에 직산군으로 개명되었다. 도솔 지역은 930년에 천안부가 설치되고, 995년에 환주, 1309년에 영주, 1413년에 영산군, 1416년에 천안군으로 개칭되었다. 천안시는 2025년 기준 충청남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경양 (慶陽)
경양은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옛 지명으로, 초기국가시대에는 마한의 중심 지역이었다. 차령산맥을 기점으로 동쪽은 대목악군, 북쪽은 위례성, 남서쪽은 도솔이라 불렸다. 대목악군은 757년에 대록군, 940년에 목주현, 1413년에 목천군으로 개명되었다. 위례성은 687년에 사산현, 940년에 직산현, 1396년에 직산군으로 개명되었다. 도솔 지역은 930년에 천안부가 설치되고, 995년에 환주, 1309년에 영주, 1413년에 영산군, 1416년에 천안군으로 개칭되었다. 천안시는 2025년 기준 충청남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괴산군읍지』는 1801년경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전부 항목에서 창고 항목에 이르기까지 경제·군사 관계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조선시대 괴산군의 지방행정과 경제사회적 배경 및 지역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문헌이다. 괴산군의 지역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괴산군읍지 (槐山郡邑誌)
『괴산군읍지』는 1801년경 충청북도 괴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전부 항목에서 창고 항목에 이르기까지 경제·군사 관계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조선시대 괴산군의 지방행정과 경제사회적 배경 및 지역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문헌이다. 괴산군의 지역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남포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남포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는 19세기의 지방 읍지 『남포읍지』보다 5개 항목이 더 적은데, 그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와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남포읍지 (藍浦邑誌)
『남포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남포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는 19세기의 지방 읍지 『남포읍지』보다 5개 항목이 더 적은데, 그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와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노성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노성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는 19세기의 지방 읍지 『노성읍지』보다 6개 항목이 더 적은데, 그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와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노성읍지 (魯城邑誌)
『노성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노성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는 19세기의 지방 읍지 『노성읍지』보다 6개 항목이 더 적은데, 그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와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단양군읍지』는 1899년 충청북도 단양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1871년에 편찬된 『호서읍지』의 「단양읍지」와 비교하여 풍속, 군액, 교량 등의 항목이 빠져 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단양군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단양군읍지 (丹陽郡邑誌)
『단양군읍지』는 1899년 충청북도 단양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1871년에 편찬된 『호서읍지』의 「단양읍지」와 비교하여 풍속, 군액, 교량 등의 항목이 빠져 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단양군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대흥군읍지』는 1750년경 충청남도 대흥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호서읍지』와 비교하여 방리, 창고, 목장, 전세, 대동, 균세, 봉름 등의 항목과 갑자년 이후에 신설한 창고 항목이 빠져 있다. 조선 후기 대흥 지역의 사회와 경제, 문화적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는 문헌이다.
대흥군읍지 (大興君邑誌)
『대흥군읍지』는 1750년경 충청남도 대흥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호서읍지』와 비교하여 방리, 창고, 목장, 전세, 대동, 균세, 봉름 등의 항목과 갑자년 이후에 신설한 창고 항목이 빠져 있다. 조선 후기 대흥 지역의 사회와 경제, 문화적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는 문헌이다.
『덕산현읍지』는 1896년 충청남도 덕산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보다 6개 항목이 더 적다. 항목 수의 차이뿐 아니라 내용도 많이 다른데, 그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와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덕산현읍지 (德山縣邑誌)
『덕산현읍지』는 1896년 충청남도 덕산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보다 6개 항목이 더 적다. 항목 수의 차이뿐 아니라 내용도 많이 다른데, 그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와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면천현읍지』는 대한제국기 충청남도 면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인 『여지도서』, 1871년에 제작된 『호서읍지』와 항목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다. 이는 시대에 따라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지역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앞서 편찬된 문헌들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면천현읍지 (沔川縣邑誌)
『면천현읍지』는 대한제국기 충청남도 면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인 『여지도서』, 1871년에 제작된 『호서읍지』와 항목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 차이가 있다. 이는 시대에 따라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지역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앞서 편찬된 문헌들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목천현지』는 1817년 충청도 목천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779년 안정복이 편찬한 『대록지』를 증보하여 편찬하였다. 2책의 목판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모든 항목의 내용을 충실하게 기록하였다. 조선시대의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읍지 또한 조선시대 충청도 목천현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역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목천현지 (木川縣誌)
『목천현지』는 1817년 충청도 목천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779년 안정복이 편찬한 『대록지』를 증보하여 편찬하였다. 2책의 목판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모든 항목의 내용을 충실하게 기록하였다. 조선시대의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읍지 또한 조선시대 충청도 목천현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역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문의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도 문의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영조 연간에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호구 수 및 월별 특산물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기사가 끝나는 곳에 ‘○’ 또는 ‘△’를 표시한 점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서, 문의현의 지역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문의읍지 (文義邑誌)
『문의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도 문의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영조 연간에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호구 수 및 월별 특산물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기사가 끝나는 곳에 ‘○’ 또는 ‘△’를 표시한 점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서, 문의현의 지역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보령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8~19세기에 펴낸 『충청도읍지』 중 46책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한제국기에 다시 정리하여 편찬하였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여지도서』와 비교하여 항목 수가 차이 나는데, 이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읍지는 당시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지방행정 및 경제, 사회적 배경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보령읍지 (保寧邑誌)
『보령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8~19세기에 펴낸 『충청도읍지』 중 46책에 해당하는 것으로, 대한제국기에 다시 정리하여 편찬하였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18세기 후반의 『여지도서』와 비교하여 항목 수가 차이 나는데, 이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읍지는 당시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지방행정 및 경제, 사회적 배경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보은군읍지』는 1899년 보은군수와 청산군수를 지낸 김병설이 충청북도 보은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방리 항목과 산천 항목에 속리산과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당시 보은군에 대한 지역사 연구에도 보탬이 된다.
보은군읍지 (報恩郡邑誌)
『보은군읍지』는 1899년 보은군수와 청산군수를 지낸 김병설이 충청북도 보은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방리 항목과 산천 항목에 속리산과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당시 보은군에 대한 지역사 연구에도 보탬이 된다.
『부여현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도 부여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으며, 영조 때까지의 사실을 기록하였다. 호구 항목은 따로 없으며, 군병, 조적, 제영, 고적 항목을 자세히 기재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부여현의 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여현읍지 (扶餘縣邑誌)
『부여현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도 부여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으며, 영조 때까지의 사실을 기록하였다. 호구 항목은 따로 없으며, 군병, 조적, 제영, 고적 항목을 자세히 기재하였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부여현의 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인현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비인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여지도서』의 항목이 32개인 것에 비해 이 읍지는 13개 항목이 더 많다. 특히 인물 관련 항목과 군사 관련 항목이 추가되어, 비인군 출신 인물과 지역의 지정학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재정과 군사 관련 기록을 충실히 한 점도 눈에 띈다. 두 문헌의 비교 검토를 통해 당시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비인현읍지 (庇仁縣邑誌)
『비인현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비인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여지도서』의 항목이 32개인 것에 비해 이 읍지는 13개 항목이 더 많다. 특히 인물 관련 항목과 군사 관련 항목이 추가되어, 비인군 출신 인물과 지역의 지정학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재정과 군사 관련 기록을 충실히 한 점도 눈에 띈다. 두 문헌의 비교 검토를 통해 당시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서산군읍지』는 1902년경 충청남도 서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선생안 항목에 1902년에 부임한 이휘면까지 기록되어 있어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해안지대인 서산군의 지형적 특징을 반영하여 국방과 군사에 관련한 항목을 상세히 기재하였다. 『여지도서』와 항목 구성에 있어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편찬관이 변화하였고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행정과 제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서산군읍지 (瑞山郡邑誌)
『서산군읍지』는 1902년경 충청남도 서산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선생안 항목에 1902년에 부임한 이휘면까지 기록되어 있어 편찬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해안지대인 서산군의 지형적 특징을 반영하여 국방과 군사에 관련한 항목을 상세히 기재하였다. 『여지도서』와 항목 구성에 있어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편찬관이 변화하였고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행정과 제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서천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서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군사 관련 항목이 자세하며, 특히 ‘서천군사례’의 군총과 원장부 항목은 당시의 지방재정과 군사제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지도서』와 항목 구성에 있어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편찬관이 변화하였고, 그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행정과 제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서천읍지 (舒川邑誌)
『서천읍지』는 1901년 충청남도 서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군사 관련 항목이 자세하며, 특히 ‘서천군사례’의 군총과 원장부 항목은 당시의 지방재정과 군사제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지도서』와 항목 구성에 있어 차이가 나는데, 그 이유는 편찬관이 변화하였고, 그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두 문헌을 통해 조선 후기 행정과 제도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석성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남도 석성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편자 및 편찬 시기는 알 수 없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호구 항목이 따로 없고, 방리 항목에 각 면의 ‘이’ 단위로 해당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조선시대 석성현의 지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석성읍지 (石城邑誌)
『석성읍지』는 조선 후기 충청남도 석성현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편자 및 편찬 시기는 알 수 없다. 1책의 필사본이며, 국립중앙도서관 도서이다. 호구 항목이 따로 없고, 방리 항목에 각 면의 ‘이’ 단위로 해당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을 연구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며, 조선시대 석성현의 지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되는 문헌이다.
진주 가진리 새발자국과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 화석 산지이다. 경상남도교육청 과학교육원에 자리한다. 중생대 백악기의 수천 점의 새 발자국 화석과 함께 목 긴 초식 공룡 발자국, 육식공룡 발자국, 익룡 발자국, 거북 발자국 화석, 공룡 피부 자국이 발견되었다. 백악기 호숫가에 살았던 물떼새, 물갈퀴가 있는 백악기 저어새 등 4종류의 새 발자국 화석도 확인되었다. 이외에 건열, 물결자국, 빗방울 자국 등 다양한 퇴적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다.
진주 가진리 새발자국과 공룡발자국 화석산지 (晉州 嘉津里 새발자국과 恐龍발자국 化石産地)
진주 가진리 새발자국과 공룡발자국 화석산지는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 화석 산지이다. 경상남도교육청 과학교육원에 자리한다. 중생대 백악기의 수천 점의 새 발자국 화석과 함께 목 긴 초식 공룡 발자국, 육식공룡 발자국, 익룡 발자국, 거북 발자국 화석, 공룡 피부 자국이 발견되었다. 백악기 호숫가에 살았던 물떼새, 물갈퀴가 있는 백악기 저어새 등 4종류의 새 발자국 화석도 확인되었다. 이외에 건열, 물결자국, 빗방울 자국 등 다양한 퇴적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다.
진주 유수리 백악기 하성퇴적층은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가화천 하상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 하성퇴적층이다. 1983년 유삼각 민물조개 화석이 발견되었고, 1990년에 공룡 분화석과 사족보행 초식 공룡인 카마라사우리데과의 이빨이 발견되었다. 이외에 척추동물 골격 화석과 발톱 화석, 거북 등 껍데기 파편, 민물 어류 비늘 화석 등 다양한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진주 유수리 백악기 화석산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2021년 7월 26일 진주 유수리 백악기 하성퇴적층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진주 유수리 백악기 화석산지 (晋州 柳樹里 白堊紀 河成堆積層)
진주 유수리 백악기 하성퇴적층은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가화천 하상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 하성퇴적층이다. 1983년 유삼각 민물조개 화석이 발견되었고, 1990년에 공룡 분화석과 사족보행 초식 공룡인 카마라사우리데과의 이빨이 발견되었다. 이외에 척추동물 골격 화석과 발톱 화석, 거북 등 껍데기 파편, 민물 어류 비늘 화석 등 다양한 화석들이 발견되었다. 1997년 12월 30일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진주 유수리 백악기 화석산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2021년 7월 26일 진주 유수리 백악기 하성퇴적층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는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 화석 산지이다. 아시아 최초로 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고, 2종의 물갈퀴 새 발자국과 이족 보행 초식 공룡 발자국, 대형 목 긴 초식 공룡 발자국, 절지동물 보행렬 화석 등이 발견되었다. 1998년 10월 17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화석 산지는 보호각을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해남공룡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 (海南 牛項里 恐龍·翼龍·새발자국 化石産地)
해남 우항리 공룡·익룡·새발자국 화석산지는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 화석 산지이다. 아시아 최초로 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고, 2종의 물갈퀴 새 발자국과 이족 보행 초식 공룡 발자국, 대형 목 긴 초식 공룡 발자국, 절지동물 보행렬 화석 등이 발견되었다. 1998년 10월 17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화석 산지는 보호각을 건립하여 보존하고 있다. 가까운 곳에 해남공룡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