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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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한국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한글학자, 정치인이다. 1913년 대동청년단 가입 후, 주시경 밑에서 한글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20년 공산당 입당을 계기로 1935년 한국민족혁명당 결성 및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1945년 12월 평양 귀환 후, 김일성대학 총장, 북조선인민회의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1차 공산당대표자대회에서 축출된 후 1960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김두봉 (金枓奉)
김두봉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한국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한글학자, 정치인이다. 1913년 대동청년단 가입 후, 주시경 밑에서 한글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의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20년 공산당 입당을 계기로 1935년 한국민족혁명당 결성 및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1945년 12월 평양 귀환 후, 김일성대학 총장, 북조선인민회의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1차 공산당대표자대회에서 축출된 후 1960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남조선노동당 서울지도부 책임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김삼룡 (金三龍)
해방 이후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남조선노동당 서울지도부 책임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공산주의 이론에 의거하여 기존사회의 변혁을 이루려는 운동.
공산주의운동 (共産主義運動)
공산주의 이론에 의거하여 기존사회의 변혁을 이루려는 운동.
권오직은 북한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 북한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3년 청년운동에 투신한 이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두 번의 수형 생활(1930년 6년형, 1939년 8년형)을 치른 후 광복을 맞아 출감하였다. 광복 직후 재건조선공산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피신해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을,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박헌영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후 평안북도 삭주의 농장으로 추방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권오직 (權五稷)
권오직은 북한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 북한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3년 청년운동에 투신한 이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유학하였다.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두 번의 수형 생활(1930년 6년형, 1939년 8년형)을 치른 후 광복을 맞아 출감하였다. 광복 직후 재건조선공산당 및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약하다가 북한으로 피신해 인민위원회외무성 부수상을,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주중공 대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박헌영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후 평안북도 삭주의 농장으로 추방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약수 (金若水)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조선노동총동맹 창설에 참여한 노동운동가, 정치인이다. 1890년 부산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한국 최초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 이후 건설사(建設社)와 조선청년총동맹의 창설에 참여하였다.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을 조직하여 국제공산당의 승인을 받았으나 이듬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좌익노선에서 이탈해 중간파 노선을 취했으며, 정부 수립 후 제헌의원과 초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1949년 국회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었다가, 6·25전쟁으로 출옥하여 월북하였다.
김오성은 일제강점기 때, 문학, 철학 비평 분야에서 활약하였고, 해방 이후 조선인민당 선전부장,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평론가이자 정치인이다. 평안북도 용천출생으로 일본의 니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7년 일본 동경에서 학생독서회사건으로 피검되었다. 1928년 이후에는 문학과 철학에 관련된 문화비평에 종사하였다. 동경에서 『대중지광』을 발간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0년대 백철과 함께 네오 휴머니즘을 주창하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48년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였으나, 1953년 노동당중앙위원회에서 제명당하였다.
김오성 (金午星)
김오성은 일제강점기 때, 문학, 철학 비평 분야에서 활약하였고, 해방 이후 조선인민당 선전부장,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평론가이자 정치인이다. 평안북도 용천출생으로 일본의 니혼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27년 일본 동경에서 학생독서회사건으로 피검되었다. 1928년 이후에는 문학과 철학에 관련된 문화비평에 종사하였다. 동경에서 『대중지광』을 발간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0년대 백철과 함께 네오 휴머니즘을 주창하여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48년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였으나, 1953년 노동당중앙위원회에서 제명당하였다.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제1지대장 및 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58년 사망했다. 1919년에 의열단을 조직하여 요인 암살, 국내 경찰서 폭파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이끌었다. 이후 중국 국민당의 북벌에 합류했으며, 한국민족혁명당 조직,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 조선의용대 편성 등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임시정부의 군사부분 주요직을 역임했고 해방 후에는 좌우합작에 주력했다. 여운형 암살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국가검열상, 내각노동상 등을 역임하다 1958년 숙청당했다.
김원봉 (金元鳳)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제1지대장 및 부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1898년에 태어나 1958년 사망했다. 1919년에 의열단을 조직하여 요인 암살, 국내 경찰서 폭파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이끌었다. 이후 중국 국민당의 북벌에 합류했으며, 한국민족혁명당 조직, 조선민족전선연맹 결성, 조선의용대 편성 등 항일무장투쟁을 주도했다. 임시정부의 군사부분 주요직을 역임했고 해방 후에는 좌우합작에 주력했다. 여운형 암살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국가검열상, 내각노동상 등을 역임하다 1958년 숙청당했다.
박헌영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남조선노동당 부위원장, 북한 정권 부수상, 외상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00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1920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이르츠크파 고려공산당 상해지부에 입당하였다. 1925년 박헌영이 속한 화요회(火曜會)가 중심이 되어 고려공산청년회를 창설하였다. 1946년 남조선노동당 부위원장에 취임하였으며 남로당의 활동을 지도하였다. 1948년 9월 북한의 부수상 및 외상에 취임하였으나 김일성에게 실권을 빼앗겼다. 1953년 남로당계 숙청이 감행되면서 미국의 첩자·정부 전복 음모 등의 죄목으로 1956년 처형되었다.
박헌영 (朴憲永)
박헌영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남조선노동당 부위원장, 북한 정권 부수상, 외상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00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1920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이르츠크파 고려공산당 상해지부에 입당하였다. 1925년 박헌영이 속한 화요회(火曜會)가 중심이 되어 고려공산청년회를 창설하였다. 1946년 남조선노동당 부위원장에 취임하였으며 남로당의 활동을 지도하였다. 1948년 9월 북한의 부수상 및 외상에 취임하였으나 김일성에게 실권을 빼앗겼다. 1953년 남로당계 숙청이 감행되면서 미국의 첩자·정부 전복 음모 등의 죄목으로 1956년 처형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해방 이후,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목사·독립운동가.
김창준 (金昌俊)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해방 이후,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목사·독립운동가.
내무부장관,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효석 (金孝錫)
내무부장관, 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지회를 설립하는 등 사회주의운동을 벌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김달현 (金達鉉)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지회를 설립하는 등 사회주의운동을 벌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북한에서,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함께한 혁명 제1세대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수립과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힘쓴 군인·관료.
오진우 (吳振宇)
북한에서, 김일성과 항일투쟁을 함께한 혁명 제1세대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수립과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에 힘쓴 군인·관료.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인민검열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남로당계 숙청재판에서 미제국주의자 간첩 혐의로 숙청된 관료.
이승엽 (李承燁)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인민검열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남로당계 숙청재판에서 미제국주의자 간첩 혐의로 숙청된 관료.
북한에서, 조국전선 서기국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아버지 여운형을 따라 월북하여 정치활동을 한 관료.
여연구 (呂鷰九)
북한에서, 조국전선 서기국 부국장,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아버지 여운형을 따라 월북하여 정치활동을 한 관료.
해방 이후 북조선노동당 정치위원, 노동당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주영하 (朱寧河)
해방 이후 북조선노동당 정치위원, 노동당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조두원 (趙斗元)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근우회를 결성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조선부녀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하다가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유영준 (劉英俊)
일제강점기 때, 근우회를 결성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조선부녀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 등을 역임하다가 월북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북대표위원회 중앙집행위원, 신간회 무임소상무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이주연 (李周淵)
일제강점기 북대표위원회 중앙집행위원, 신간회 무임소상무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북한에서 노동당 중앙 지도부에 의하여 실시된 주민의 사상·성향 조사사업.
중앙당 집중지도사업 (中央黨 集中指導事業)
북한에서 노동당 중앙 지도부에 의하여 실시된 주민의 사상·성향 조사사업.
북한의 정당.
조선사회민주당 (朝鮮社會民主黨)
북한의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