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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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국회의원 · 자유당 문화부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영주군에 대한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로 자유당에 입당해 문화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63년 1월에는 자유당계 정치인 100여 명과 함께 5·16군사정변 주역들에 대해 민정이양 및 정치적 속박을 배제하는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1987년 11월 신민주공화당 창당 때 경상북도 김천 및 금릉 지역구의 조직책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9년 11월 26일 광명시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김정식 (金正植)
제2대 국회의원 · 자유당 문화부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출생했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영주군에 대한청년단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로 자유당에 입당해 문화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63년 1월에는 자유당계 정치인 100여 명과 함께 5·16군사정변 주역들에 대해 민정이양 및 정치적 속박을 배제하는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1987년 11월 신민주공화당 창당 때 경상북도 김천 및 금릉 지역구의 조직책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9년 11월 26일 광명시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청도군 출생으로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 국무원 사무국에 근무했다. 1948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활동하다가,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1년 1월 장면(張勉) 정권의 제2차 개각에서 부흥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되어 1961년 5월 20일까지 재직했다. 1965년 9월 민주공화당 당기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1987년 10월 4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김준태 (金濬泰)
대구지방검찰청 검사 ·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5년 경상북도 청도군 출생으로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 국무원 사무국에 근무했다. 1948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활동하다가,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1년 1월 장면(張勉) 정권의 제2차 개각에서 부흥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되어 1961년 5월 20일까지 재직했다. 1965년 9월 민주공화당 당기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1987년 10월 4일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일제강점기 때, 김천청년연맹 집행위원, 부산청년동맹 집행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을 수행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김칠성 (金七星)
일제강점기 때, 김천청년연맹 집행위원, 부산청년동맹 집행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 활동을 수행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2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류홍은 경성방직 도감독, 고려방직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제2·4·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이다. 1899년 충남 천원군 출생이며, 서울 중앙중학교와 경성공업고등학교 방직과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경성방직의 초대 도감독으로 재직하였다. 1945년 12월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신탁관리배격대회의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65년 한일협정 비준무효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재야세력 단합운동에서 민정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한국통일촉진회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 서울 노량진 자택에서 사망했다.
류홍 (柳鴻)
류홍은 경성방직 도감독, 고려방직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제2·4·6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기업인이다. 1899년 충남 천원군 출생이며, 서울 중앙중학교와 경성공업고등학교 방직과를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경성방직의 초대 도감독으로 재직하였다. 1945년 12월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신탁관리배격대회의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1965년 한일협정 비준무효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하였고, 재야세력 단합운동에서 민정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한국통일촉진회 이사,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89년 서울 노량진 자택에서 사망했다.
제2데 · 제5대 국회의원 · 상공부차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 출생으로, 화순금융조합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화순군지부 총무위원, 대한국민회 화순군지부 사무국장, 화순중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1년 윤보선, 장준하가 이끄는 국민당 창당에 참여해, 정무위원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4월 9일 숙환으로 사망했으며,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박민기 (朴珉基)
제2데 · 제5대 국회의원 · 상공부차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2년 3월 20일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 출생으로, 화순금융조합장을 지냈고,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화순군지부 총무위원, 대한국민회 화순군지부 사무국장, 화순중학교 후원회장 등을 역임했다.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71년 윤보선, 장준하가 이끄는 국민당 창당에 참여해, 정무위원 겸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4월 9일 숙환으로 사망했으며,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자유당 중앙당 산업부 차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승하 (朴勝夏)
제2대 국회의원, 자유당 중앙당 산업부 차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애국금헌성회 중앙위원, 제2대 국회의원, 민주당 중앙위원회 중앙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변광호 (邊光鎬)
애국금헌성회 중앙위원, 제2대 국회의원, 민주당 중앙위원회 중앙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양병일 (梁炳日)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제2·5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7년 12월 13일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향인 전북 임실 선거구 대한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7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도비례대표로 참의원이 되었고, 1961년 4월 부정축재처리법의 발의에 따라 만들어진 부정축재특별처리위원회 처리위원에 임명되었다. 1967년 대선을 계기로 창당된 신민당의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전북지구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7년 7월 18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엄병학 (嚴秉學)
제2·5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17년 12월 13일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향인 전북 임실 선거구 대한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7월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북도비례대표로 참의원이 되었고, 1961년 4월 부정축재처리법의 발의에 따라 만들어진 부정축재특별처리위원회 처리위원에 임명되었다. 1967년 대선을 계기로 창당된 신민당의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 전북지구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7년 7월 18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제2대 국회의원, 김천시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여영복 (呂永複)
제2대 국회의원, 김천시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이학림은 제2·3대 국회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 출생으로, 교사로 일하다 만방기업 사장으로 활동했다. 1950년 무소속으로 고향에서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자유당에 입당해 제3대 국회의원으로 재선되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으로 군수용 원면의 부정처리 사건인 원면사건 조사에 참여했고, 김창룡 저격사건 조사특위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5·16군사정변 후 민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중앙사료공사 사장과 한국해양개발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2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학림 (李鶴林)
이학림은 제2·3대 국회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07년 충청북도 음성 출생으로, 교사로 일하다 만방기업 사장으로 활동했다. 1950년 무소속으로 고향에서 제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자유당에 입당해 제3대 국회의원으로 재선되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조사위원으로 군수용 원면의 부정처리 사건인 원면사건 조사에 참여했고, 김창룡 저격사건 조사특위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5·16군사정변 후 민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 중앙사료공사 사장과 한국해양개발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2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민병대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동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다. 1918년 출생으로193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해 축구부 선수로 활동하면서 일제강점기 조선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관서, 관동, 조선 전일본삼지방 축구대회에 출전했다. 1939년 조선인 10명과 함께 일본, 만주국, 중국 3개국 축구대회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1948년에 올림픽 대표선수로 차출되어 영국 런던올림픽 축구 경기에서 수훈을 올렸다. 38세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한 후 은퇴하고 이후 국가대표 감독 등으로 활동하다가 1983년 사망했다.
민병대 (閔丙大)
민병대는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동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다. 1918년 출생으로193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해 축구부 선수로 활동하면서 일제강점기 조선 축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관서, 관동, 조선 전일본삼지방 축구대회에 출전했다. 1939년 조선인 10명과 함께 일본, 만주국, 중국 3개국 축구대회에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1948년에 올림픽 대표선수로 차출되어 영국 런던올림픽 축구 경기에서 수훈을 올렸다. 38세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한 후 은퇴하고 이후 국가대표 감독 등으로 활동하다가 1983년 사망했다.
상업·무역·공업·통상, 통상교섭 및 통상교섭에 관한 총괄·조정, 외국인 투자, 산업기술 연구개발정책 및 자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
산업통상부 (産業通商部)
상업·무역·공업·통상, 통상교섭 및 통상교섭에 관한 총괄·조정, 외국인 투자, 산업기술 연구개발정책 및 자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 수립 및 연구개발, 방송통신 정책, 정보통신산업 등을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1967년 설치된 과학기술처와 1948년 출범한 체신부를 모체로 하며, 이후 여러 부처 개편을 통해 2017년 현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주요 업무는 과학기술정책 수립, 연구개발, 과학기술인력 양성, 정보통신산업, 우편·우편환 등이다. 조직은 장관, 차관, 본부장 및 3실, 19국·관, 70과·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속기관으로 우정사업본부, 국립중앙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전파연구원, 중앙전파관리소가 있으며, 5개의 별도 기구를 두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科學技術情報通信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 과학기술 정책 수립 및 연구개발, 방송통신 정책, 정보통신산업 등을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1967년 설치된 과학기술처와 1948년 출범한 체신부를 모체로 하며, 이후 여러 부처 개편을 통해 2017년 현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주요 업무는 과학기술정책 수립, 연구개발, 과학기술인력 양성, 정보통신산업, 우편·우편환 등이다. 조직은 장관, 차관, 본부장 및 3실, 19국·관, 70과·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속기관으로 우정사업본부, 국립중앙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전파연구원, 중앙전파관리소가 있으며, 5개의 별도 기구를 두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과 과학기술에 관한 업무를 총괄적으로 관장한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다. 모체는 문교부와 과학기술처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설치되었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폐지되었다. 인적자원 개발정책의 수립·총괄·조정, 학교교육·평생교육 및 학술, 과학기술 혁신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 원자력 및 과학기술 협력 그 밖의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교육부로 개편되고 일부 기능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되었다. 교육 살리기와 과학기술 강국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 (敎育科學技術部)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과 과학기술에 관한 업무를 총괄적으로 관장한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다. 모체는 문교부와 과학기술처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설치되었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폐지되었다. 인적자원 개발정책의 수립·총괄·조정, 학교교육·평생교육 및 학술, 과학기술 혁신정책의 수립·총괄·조정·평가, 원자력 및 과학기술 협력 그 밖의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다. 교육부로 개편되고 일부 기능은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되었다. 교육 살리기와 과학기술 강국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정부혁신·조직관리, 전자정부, 지방행정, 재난·안전·국가비상 관리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
행정안전부 (行政安全部)
정부혁신·조직관리, 전자정부, 지방행정, 재난·안전·국가비상 관리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행정기관.
국무회의 의안정리, 법령 및 조약 공포, 공직자 재산등록, 공무원 인사·시험·훈련관리, 행정기관 조직 및 정원 관리, 상훈, 공무원 보수 및 연금 등의 사무를 관장한 중앙행정기관.
안전행정부 (安全行政部)
국무회의 의안정리, 법령 및 조약 공포, 공직자 재산등록, 공무원 인사·시험·훈련관리, 행정기관 조직 및 정원 관리, 상훈, 공무원 보수 및 연금 등의 사무를 관장한 중앙행정기관.
지식경제부는 산업·기술 및 무역·투자·에너지·자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 중앙행정기관이다. 1948년 설치된 상공부에서 출발했다. 1993년 상공자원부, 1994년 통상산업부, 1998년 산업자원부로 개편되었으며,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을 계기로 지식경제부가 되었다. 조직은 제1차관 기획조정실, 산업경제실, 성장동력실, 제2차관은 무역투자실, 에너지자원실로 구성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폐지되면서, ICT 관련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고, 외교통상부로부터 통상 업무를 넘겨받아 산업통상자원부로 재편되었다.
지식경제부 (知識經濟部)
지식경제부는 산업·기술 및 무역·투자·에너지·자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 중앙행정기관이다. 1948년 설치된 상공부에서 출발했다. 1993년 상공자원부, 1994년 통상산업부, 1998년 산업자원부로 개편되었으며,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을 계기로 지식경제부가 되었다. 조직은 제1차관 기획조정실, 산업경제실, 성장동력실, 제2차관은 무역투자실, 에너지자원실로 구성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폐지되면서, ICT 관련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고, 외교통상부로부터 통상 업무를 넘겨받아 산업통상자원부로 재편되었다.
해방 이후 서울대교수, 공보부장관 등을 역임한 학자. 정치인.
김동성 (金東晟)
해방 이후 서울대교수, 공보부장관 등을 역임한 학자. 정치인.
해방 이후 육군헌병사령관, 육군본부 일반참모부 비서실장, 육군소장 등을 역임한 군인. 공무원.
김병삼 (金炳三)
해방 이후 육군헌병사령관, 육군본부 일반참모부 비서실장, 육군소장 등을 역임한 군인.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