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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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장은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승과고시의 과장이나 사찰의 승당이나 선방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선불’은 승려들이 부처나 조사가 되기 위하여 하는 좌선 등의 수행을 의미한다. 선불장은 중국의 선승 단하 천연(739~824)과 방 거사(?~808)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선불장은 부패한 과거제도의 현실에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한국불교에서 선불장은 승과고시를 치르는 과장을 의미하거나,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승당이나 선방을 의미한다.
선불장 (選佛場)
선불장은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승과고시의 과장이나 사찰의 승당이나 선방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선불’은 승려들이 부처나 조사가 되기 위하여 하는 좌선 등의 수행을 의미한다. 선불장은 중국의 선승 단하 천연(739~824)과 방 거사(?~808)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선불장은 부패한 과거제도의 현실에 좌절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실현하는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한국불교에서 선불장은 승과고시를 치르는 과장을 의미하거나,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승당이나 선방을 의미한다.
총림은 선원, 강원,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가리킨다. 총림법에는 “선원, 승가대학(승가대학원), 율원, 염불원을 갖추고 방장의 지도하에 대중이 여법하게 정진하는 종합수행도량”이라고 규정하였다. 고려 중기부터 나타난 총림 또는 총림회는 선종계 일반, 또는 선종 사찰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 총림은 대부분 일반 사찰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 한국 불교에서 성철(性徹)과 청담(靑潭)은 총림을 승가 대중이 공동 수행을 하는 종합수행도량이라고 정의하였다.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2016년 현재 총 8개의 총림이 있다.
총림 (叢林)
총림은 선원, 강원,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가리킨다. 총림법에는 “선원, 승가대학(승가대학원), 율원, 염불원을 갖추고 방장의 지도하에 대중이 여법하게 정진하는 종합수행도량”이라고 규정하였다. 고려 중기부터 나타난 총림 또는 총림회는 선종계 일반, 또는 선종 사찰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조선 시대 총림은 대부분 일반 사찰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 한국 불교에서 성철(性徹)과 청담(靑潭)은 총림을 승가 대중이 공동 수행을 하는 종합수행도량이라고 정의하였다.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2016년 현재 총 8개의 총림이 있다.
고려 후기에, 경주 기림사 주지, 대선사 등을 역임한 승려.
각유 (覺猷)
고려 후기에, 경주 기림사 주지, 대선사 등을 역임한 승려.
일제강점기, 직지사 조실, 조선불교선리참구원 상임이사 등을 역임한 승려.
광언 (光彦)
일제강점기, 직지사 조실, 조선불교선리참구원 상임이사 등을 역임한 승려.
운문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금룡 (金龍)
운문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일제강점기 때, 보문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긍탄 (亘坦)
일제강점기 때, 보문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삼국시대 신라의 『기신론소』, 『대승기신론소』, 『대승의장』 등을 저술한 승려.
대연 (大衍)
삼국시대 신라의 『기신론소』, 『대승기신론소』, 『대승의장』 등을 저술한 승려.
일제강점기 때, 친일승 강대련의 명고축출사건을 주도한 승려·독립운동가.
문성 (汶星)
일제강점기 때, 친일승 강대련의 명고축출사건을 주도한 승려·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태고종 승정, 한국불교태고종중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승려.
박서봉 (朴瑞峰)
해방 이후 태고종 승정, 한국불교태고종중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한 승려.
해방 이후 관암사 주지, 태고종 총무원장, 태고종 제14대 종정 등을 역임한 승려.
백암 (柏巖)
해방 이후 관암사 주지, 태고종 총무원장, 태고종 제14대 종정 등을 역임한 승려.
고려전기 왕사, 국사 등을 역임한 승려.
법경 (法鏡)
고려전기 왕사, 국사 등을 역임한 승려.
조선후기 율봉(栗峯) 청고(靑杲)의 법통을 계승한 승려.
법첨 (法沾)
조선후기 율봉(栗峯) 청고(靑杲)의 법통을 계승한 승려.
일제강점기 심원사 주지, 성불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보담 (寶潭)
일제강점기 심원사 주지, 성불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
서경보는 해방 이후 해인대학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 등을 역임한 학자이다. 1914년에 출생하여 1996년에 사망했다. 호는 일붕(一鵬)으로 일붕선교종의 종정을 지냈다. 19세(1932)가 되던 해 출가하였다. 완주군 위봉사 주지인 춘담이 일붕이라는 법호를 지어 주었다. 1969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에 취임하였다. 1988년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창종(創宗)하였다. 국내외 포교 활동을 하며 157개국을 방문하였다. 1992년에는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 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법왕(法王)이 되었다. 세속 나이 83세, 법랍 64세로 입적하였다.
서경보 (徐京保)
서경보는 해방 이후 해인대학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 등을 역임한 학자이다. 1914년에 출생하여 1996년에 사망했다. 호는 일붕(一鵬)으로 일붕선교종의 종정을 지냈다. 19세(1932)가 되던 해 출가하였다. 완주군 위봉사 주지인 춘담이 일붕이라는 법호를 지어 주었다. 1969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장에 취임하였다. 1988년 대한불교 일붕선교종을 창종(創宗)하였다. 국내외 포교 활동을 하며 157개국을 방문하였다. 1992년에는 세계불교 법왕청 설립 총회를 개최하고, 초대 법왕(法王)이 되었다. 세속 나이 83세, 법랍 64세로 입적하였다.
해방 이후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학원 이사장, 조계종 원로위원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재가자의 신분으로 20대 이후부터 김법린(金法隣) · 최범술(崔凡述) 등과 함께 불교청년운동에 가담하였다. 세간과 출세간의 경지를 넘나들던 그는 1950년 11월 15일, 48세라는 늦은 나이로 본격적인 승려생활에 들어섰다. 1960년, 1962년, 1983년 세 차례에 걸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다. 1980년 강화 전등사(傳燈寺)의 조실(祖室)로 추대된 이후에는 계속 전등사에 머물렀다. 입적 얼마 전에 직지사(直指寺)로 거처를 옮겼던 그는 서별당에서 입적하였다.
서운 (瑞雲)
해방 이후 조계종 총무원장, 동국학원 이사장, 조계종 원로위원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재가자의 신분으로 20대 이후부터 김법린(金法隣) · 최범술(崔凡述) 등과 함께 불교청년운동에 가담하였다. 세간과 출세간의 경지를 넘나들던 그는 1950년 11월 15일, 48세라는 늦은 나이로 본격적인 승려생활에 들어섰다. 1960년, 1962년, 1983년 세 차례에 걸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다. 1980년 강화 전등사(傳燈寺)의 조실(祖室)로 추대된 이후에는 계속 전등사에 머물렀다. 입적 얼마 전에 직지사(直指寺)로 거처를 옮겼던 그는 서별당에서 입적하였다.
해방 이후 중앙총무원 원장, 통합종단 초대 총무원장 등을 역임한 승려. 학자.
석진 (錫辰)
해방 이후 중앙총무원 원장, 통합종단 초대 총무원장 등을 역임한 승려. 학자.
해방 이후 진각종의 종조인 승려.
손규상 (孫珪祥)
해방 이후 진각종의 종조인 승려.
해방 이후 보원사 주지, 내원사 주지, 조계종 종회의원 등을 역임한 승려.
수옥 (守玉)
해방 이후 보원사 주지, 내원사 주지, 조계종 종회의원 등을 역임한 승려.
해방 이후 대한불교진각종의 총인, 대한불교진각종유지재단 이사 등을 역임한 불교인.
원정각 (圓淨覺)
해방 이후 대한불교진각종의 총인, 대한불교진각종유지재단 이사 등을 역임한 불교인.
고려후기 천태종 소속으로 백련사의 제5대 조사인 승려.
이안 (而安)
고려후기 천태종 소속으로 백련사의 제5대 조사인 승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