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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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물거미 서식지이다. 물거미는 분류학적으로는 절지동물문 거미강 거미목 잎거미과에 속하고, 생태학적으로는 거미줄을 이용하여 그물을 만드는 조망성 거미로 구분된다. 1999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물거미의 서식이 처음으로 확인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693-18번지 등 82필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2017년에는 환경부에서 물거미를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하였다. 물거미는 평생을 물속에서 지내는 세계 유일의 수중성 거미로, 학술적으로 연구 가치가 크다.
연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 (漣川 隱垈里 물거미 棲息地)
연천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는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물거미 서식지이다. 물거미는 분류학적으로는 절지동물문 거미강 거미목 잎거미과에 속하고, 생태학적으로는 거미줄을 이용하여 그물을 만드는 조망성 거미로 구분된다. 1999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물거미의 서식이 처음으로 확인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693-18번지 등 82필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2017년에는 환경부에서 물거미를 멸종위기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하였다. 물거미는 평생을 물속에서 지내는 세계 유일의 수중성 거미로, 학술적으로 연구 가치가 크다.
주기철은 일제강점기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 등에서 목회한 장로교 목사이다. 1937년 이후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서 미결수로 5년여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교하였다.
주기철 (朱基徹)
주기철은 일제강점기 마산 문창교회, 평양 산정현교회 등에서 목회한 장로교 목사이다. 1937년 이후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서 미결수로 5년여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4월 21일 옥중에서 순교하였다.
최봉석은 일제강점기, 만주와 북한 지역에서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하고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을 하다가 순교한 장로교 목사이다. 그의 전도 방법은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의 전도에는 기적적인 일이 자주 일어나 최권능 목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봉석 (崔鳳奭)
최봉석은 일제강점기, 만주와 북한 지역에서 적극적인 전도활동을 하고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을 하다가 순교한 장로교 목사이다. 그의 전도 방법은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의 전도에는 기적적인 일이 자주 일어나 최권능 목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상동은 일제강점기, 장로교 목사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투신하고 해방 이후 고려신학대학 창설자 및 초대 학장을 역임한 목사이다. 1938년 마산 문창교회를 담임하다가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사임하고 무임 목사로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에 투신하였다. 해방 후 산정현교회를 담임하다가 1946년 월남하여 고려신학교를 창설하였다.
한상동 (韓尙東)
한상동은 일제강점기, 장로교 목사로 신사참배 거부 운동에 투신하고 해방 이후 고려신학대학 창설자 및 초대 학장을 역임한 목사이다. 1938년 마산 문창교회를 담임하다가 신사참배 거부 문제로 사임하고 무임 목사로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에 투신하였다. 해방 후 산정현교회를 담임하다가 1946년 월남하여 고려신학교를 창설하였다.
김길창은 일제강점기,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및 조선교단 경남 교구장으로서 적극적으로 부일협력 활동을 한 장로교 목사이다. 해방 후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실업여학교의 재산을 인수하고, 대규모의 적산(敵産) 땅을 불하받아 학교법인 남성·훈성·대동·한성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한국기독교연합회 회장과 부산신학교 교장, 이사장도 역임했다.
김길창 (金吉昌)
김길창은 일제강점기,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 및 조선교단 경남 교구장으로서 적극적으로 부일협력 활동을 한 장로교 목사이다. 해방 후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실업여학교의 재산을 인수하고, 대규모의 적산(敵産) 땅을 불하받아 학교법인 남성·훈성·대동·한성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한국기독교연합회 회장과 부산신학교 교장, 이사장도 역임했다.
김선두는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서 평양 장로교계 3·1운동을 주동했던 목사이다. 1938년 8월경에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 참배 결의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에까지 건너가 활동했으나, 일제 경찰의 사전 검속으로 무산되었다.
김선두 (金善斗)
김선두는 일제강점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서 평양 장로교계 3·1운동을 주동했던 목사이다. 1938년 8월경에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신사 참배 결의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에까지 건너가 활동했으나, 일제 경찰의 사전 검속으로 무산되었다.
대한성서공회는 기독교 성서의 우리말 번역·출판·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초교파적 단체이다. 한말·일제 강점기에는 영국성서공회 한국 지부, 미국성서공회 한국 지부가 설립되고, 스코틀랜드성서공회가 협력하여 한국에서의 성서 사업을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철수하고, 1941년 정태응을 총무로 한 조선성서공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1942년 적산(敵産)으로 압류되어 성서 사업이 중단되었다가 1945년 해방 후 재건되어 성서 사업을 재개하였다.
대한성서공회 (大韓聖書公會)
대한성서공회는 기독교 성서의 우리말 번역·출판·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초교파적 단체이다. 한말·일제 강점기에는 영국성서공회 한국 지부, 미국성서공회 한국 지부가 설립되고, 스코틀랜드성서공회가 협력하여 한국에서의 성서 사업을 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철수하고, 1941년 정태응을 총무로 한 조선성서공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1942년 적산(敵産)으로 압류되어 성서 사업이 중단되었다가 1945년 해방 후 재건되어 성서 사업을 재개하였다.
도인권은 일제강점기, 안악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평양 3·1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군사 국장, 무관학교 교관, 임시 의정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감리교 목사이다. 구한국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무관학교 군사특과에 들어가 졸업한 뒤 하사관 간부 훈련 교관으로 임관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이후부터 국권 회복 운동에 투신하였다.
도인권 (都寅權)
도인권은 일제강점기, 안악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평양 3·1운동에 참여한 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군사 국장, 무관학교 교관, 임시 의정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감리교 목사이다. 구한국 군대에 자원 입대하여 무관학교 군사특과에 들어가 졸업한 뒤 하사관 간부 훈련 교관으로 임관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이후부터 국권 회복 운동에 투신하였다.
박용희는 일제강점기 서울 경기 지역 3·1운동과 한성정부 조직, 신간회에 참여하고, 광복 후 남조선 과도정부 입법의원, 대한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역임한 장로회 목사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박용희 (朴容羲)
박용희는 일제강점기 서울 경기 지역 3·1운동과 한성정부 조직, 신간회에 참여하고, 광복 후 남조선 과도정부 입법의원, 대한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역임한 장로회 목사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변성옥은 일제강점기 조선기독교회 창설에 참여하고 해방 후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 중앙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감리교 목사이다. 1930년 남북감리교합동에 참여하여 합동전권위원회 교칙위원회 위원장, 총회 통역위원을 맡았다.
변성옥 (邊成玉)
변성옥은 일제강점기 조선기독교회 창설에 참여하고 해방 후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 중앙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감리교 목사이다. 1930년 남북감리교합동에 참여하여 합동전권위원회 교칙위원회 위원장, 총회 통역위원을 맡았다.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는 1905년 11월 재한 선교사들이 초교파적으로 선교 현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한국 선교 상황을 본국 교회와 선교 후원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선교 잡지이다. 1941년 11월 폐간될 때까지 36년간 매월 평균 20쪽, 12,000부씩을 발행하여 총 429호에 이른다. 당시 한국의 선교 상황과 교회 성장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코리아 미션 필드 (The Korea Mission Field)
『코리아 미션 필드』(The Korea Mission Field)는 1905년 11월 재한 선교사들이 초교파적으로 선교 현장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한국 선교 상황을 본국 교회와 선교 후원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영문으로 발행한 월간 선교 잡지이다. 1941년 11월 폐간될 때까지 36년간 매월 평균 20쪽, 12,000부씩을 발행하여 총 429호에 이른다. 당시 한국의 선교 상황과 교회 성장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1890년 7월 조선 정부의 토지 제공으로 조성된 외국인 묘지이다. 서울외국인묘지라고도 한다. 1890년 7월 주조선 미국공사관의 요청으로 양화진 언덕 일대를 외국인 매장지로 획정하였다. 1985년 6월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 사업회에서 묘지 경내에 기념관을 건축하고, 1986년 ‘서울외국인묘지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6년 5월 묘역의 공식 명칭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개칭하였다. 묘원의 면적은 13,224㎡, 안장자 수는 15개국 417명이다.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楊花津 外國人 宣敎師 廟院)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은 1890년 7월 조선 정부의 토지 제공으로 조성된 외국인 묘지이다. 서울외국인묘지라고도 한다. 1890년 7월 주조선 미국공사관의 요청으로 양화진 언덕 일대를 외국인 매장지로 획정하였다. 1985년 6월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 사업회에서 묘지 경내에 기념관을 건축하고, 1986년 ‘서울외국인묘지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2006년 5월 묘역의 공식 명칭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개칭하였다. 묘원의 면적은 13,224㎡, 안장자 수는 15개국 417명이다.
1885년 4월 백홍준, 이성하, 서상륜 등 초기 개종자들의 전도로 평안북도 의주에 설립된 장로교회.
의주서교회 (義州西敎會)
1885년 4월 백홍준, 이성하, 서상륜 등 초기 개종자들의 전도로 평안북도 의주에 설립된 장로교회.
평양에 설립된 감리교의 홀기념병원과 장로교의 평양제중병원, 감리교 여선교회의 평양부인병원이 통합되어 합동으로 경영하던 기독교 의료 기관.
평양연합기독병원 (平壤聯合基督病院)
평양에 설립된 감리교의 홀기념병원과 장로교의 평양제중병원, 감리교 여선교회의 평양부인병원이 통합되어 합동으로 경영하던 기독교 의료 기관.
종교단체법은 일본 정부가 종교단체를 통제할 목적으로 1939년 제정 공포한 법률이다. 종교단체의 통제를 목적으로 일본 정부는 1939년 1월 37조로 된 종교단체법안을 제74회 제국의회에 제출하였다. 1939년 4월 8일 법률 제77호로 종교단체법이 공포되었다. 교단의 설립을 위해서는 문부대신에게 허가를 받아야 했다.(제3조) 주무대신은 공익을 해할 만한 행위를 한 종교단체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17조) 1940년 6월 문부성은 종교단체법에 따라 교회수 50, 신도수 5,000명 이상이 못 되면 교단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종교단체법 (宗敎團體法)
종교단체법은 일본 정부가 종교단체를 통제할 목적으로 1939년 제정 공포한 법률이다. 종교단체의 통제를 목적으로 일본 정부는 1939년 1월 37조로 된 종교단체법안을 제74회 제국의회에 제출하였다. 1939년 4월 8일 법률 제77호로 종교단체법이 공포되었다. 교단의 설립을 위해서는 문부대신에게 허가를 받아야 했다.(제3조) 주무대신은 공익을 해할 만한 행위를 한 종교단체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17조) 1940년 6월 문부성은 종교단체법에 따라 교회수 50, 신도수 5,000명 이상이 못 되면 교단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1925년에, 기독교청년면려회 조선연합회에서 청년들의 질적 향상과 신앙 훈련을 위하여 창간한 개신교 월간 잡지.
진생 (眞生)
1925년에, 기독교청년면려회 조선연합회에서 청년들의 질적 향상과 신앙 훈련을 위하여 창간한 개신교 월간 잡지.
해방 이후 고려신학교 교장, 총신대학 대학원장, 합동신학교 명예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 교육가, 신학자.
박윤선 (朴允善)
해방 이후 고려신학교 교장, 총신대학 대학원장, 합동신학교 명예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 교육가, 신학자.
최중진은 대한제국기 자유교회 창설자인 목사이다. 1870년 전라북도 정읍 출생으로, 1894년 동학농민군에 참여하였다가 농민군이 해산된 후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9년 9월 제3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독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태인, 정읍 지역 교회를 돌보다가 세례자 자격 제한 및 선교 재정 사용 차별에 불만을 품고 5개 항의 개선을 요구했다. 개선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1910년 노회로부터 독립을 선업하고, 1915년경 자유교회를 이끌고 장로회를 떠났다. 이후 조선일보 정읍지국장, 신간회 정읍지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1940년 사망하였다.
최중진 (崔重珍)
최중진은 대한제국기 자유교회 창설자인 목사이다. 1870년 전라북도 정읍 출생으로, 1894년 동학농민군에 참여하였다가 농민군이 해산된 후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9년 9월 제3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독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태인, 정읍 지역 교회를 돌보다가 세례자 자격 제한 및 선교 재정 사용 차별에 불만을 품고 5개 항의 개선을 요구했다. 개선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1910년 노회로부터 독립을 선업하고, 1915년경 자유교회를 이끌고 장로회를 떠났다. 이후 조선일보 정읍지국장, 신간회 정읍지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1940년 사망하였다.
대한제국기 연동교회 초대 장로, 장로회공의회 전도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사회운동가.
고찬익 (高燦益)
대한제국기 연동교회 초대 장로, 장로회공의회 전도위원 등으로 활동한 개신교인. 사회운동가.
일제강점기 평양 장대현교회, 철산군 세평교회, 평양 오촌리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
변인서 (邊麟瑞)
일제강점기 평양 장대현교회, 철산군 세평교회, 평양 오촌리교회 등에서 목회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