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문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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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 등의 해당 기관 내에 북조선로동당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핵심간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체.
당조 (黨組)
북한에서 정부기관이나 사회단체 등의 해당 기관 내에 북조선로동당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핵심간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체.
북한에서 전원회의 보고서, 결정서, 붉은 편지 등 세 문헌들을 통해 당 생활과 당성을 재검토하여 당원들을 교양, 각성시키기 위한 사업.
문헌토의사업 (文獻討議事業)
북한에서 전원회의 보고서, 결정서, 붉은 편지 등 세 문헌들을 통해 당 생활과 당성을 재검토하여 당원들을 교양, 각성시키기 위한 사업.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을 벌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북조선로동당 황해도당위원장, 중앙당 농업부장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박훈일 (朴勳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하며 항일무장투쟁을 벌였고 해방 이후 북한에서, 북조선로동당 황해도당위원장, 중앙당 농업부장 등을 역임한 관료·독립운동가.
해방 이후의 북조선 중앙행정기관.
북조선 오도 행정국 (北朝鮮 5道 行政局)
해방 이후의 북조선 중앙행정기관.
고용된 농민이나 토지분배 대상자로 구성되어 있는 북한의 순수 농민조직이다. 북조선 빈농위원회의의 명칭은 농촌위원회다. 1946년 1월 31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북조선연맹’이 결성되고, 단위조직의 성격이 정식으로 ‘농민위원회’로 규정되었다. 이후 조직은 통칭 ‘북조선농민연맹’이라 불리게 되었다. 동리마다 ‘농민총회’가 개최되었으며 여기에서 빈농․소작인․농업노동자 가운데 열성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농촌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토지개혁 주체를 주민 선거에서 선출되는 ‘농촌위원회’로 한 사실이 주목된다.
빈농위원회 (貧農委員會)
고용된 농민이나 토지분배 대상자로 구성되어 있는 북한의 순수 농민조직이다. 북조선 빈농위원회의의 명칭은 농촌위원회다. 1946년 1월 31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북조선연맹’이 결성되고, 단위조직의 성격이 정식으로 ‘농민위원회’로 규정되었다. 이후 조직은 통칭 ‘북조선농민연맹’이라 불리게 되었다. 동리마다 ‘농민총회’가 개최되었으며 여기에서 빈농․소작인․농업노동자 가운데 열성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농촌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토지개혁 주체를 주민 선거에서 선출되는 ‘농촌위원회’로 한 사실이 주목된다.
유일관리제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지배인 1인이 전권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던 최초의 공장관리체제이다. 1948년 이전에는 제한적으로 시행되다가 1949년 11월에 제도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지배인이 기업관리, 운영의 모든 권한을 가지며 결과를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여 중간관리층으로서 상부와 하부를 연결한다. 생산자 대중으로 구성된 생산협의회가 생산관리의 문제들을 토의하고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일관리제는 1961년 ‘대안의 사업체계’가 도입되기까지 적용되었다. 이때에 독립채산제와 함께 공장관리체제로 통합되어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유일관리제 (唯一管理制)
유일관리제는 해방 이후 북한에서 지배인 1인이 전권을 갖고 기업을 운영하던 최초의 공장관리체제이다. 1948년 이전에는 제한적으로 시행되다가 1949년 11월에 제도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지배인이 기업관리, 운영의 모든 권한을 가지며 결과를 책임진다. 또한 국가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여 중간관리층으로서 상부와 하부를 연결한다. 생산자 대중으로 구성된 생산협의회가 생산관리의 문제들을 토의하고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일관리제는 1961년 ‘대안의 사업체계’가 도입되기까지 적용되었다. 이때에 독립채산제와 함께 공장관리체제로 통합되어 기본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주관리운동은 해방 직후 노동자들이 일제 소유의 기업과 공장을 자주적으로 관리하였던 운동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전국 각지에서 주민들에 의한 인민위원회가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되어 일본인 기업가들이 철수한 공장을 접수·운영하는 (노동자)자주적 관리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자주관리운동은 일시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었지만, 인민위원회와 공장관리위원회의 관계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북조선 지역에는 집중된 대규모 중공업시설의 자주관리운동은 소련군이 공장관리권을 맡으면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자주관리운동 (自主管理運動)
자주관리운동은 해방 직후 노동자들이 일제 소유의 기업과 공장을 자주적으로 관리하였던 운동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전국 각지에서 주민들에 의한 인민위원회가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되어 일본인 기업가들이 철수한 공장을 접수·운영하는 (노동자)자주적 관리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였다. 자주관리운동은 일시적으로 활발히 전개되었지만, 인민위원회와 공장관리위원회의 관계로 인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였다. 북조선 지역에는 집중된 대규모 중공업시설의 자주관리운동은 소련군이 공장관리권을 맡으면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공산당에서 사회주의운동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공산당함경남도 책임비서, 평안북도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관료.
정달헌 (鄭達憲)
일제강점기 때, 조선공산당에서 사회주의운동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조선공산당함경남도 책임비서, 평안북도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관료.
북한에서, 북조선기자동맹 위원장, 문화선전성 부상, 로동신문 책임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
태성수 (太成洙)
북한에서, 북조선기자동맹 위원장, 문화선전성 부상, 로동신문 책임주필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
혁명 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의 고위간부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에 있는 북한의 특수 교육기관.
혁명자유가족학원 (革命者遺家族學院)
혁명 유가족의 자녀들과 당․정의 고위간부 자녀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는 평양직할시 만경대구역에 있는 북한의 특수 교육기관.
일제강점기 때,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중앙당 기요과장, 외무성 부상 등을 역임하다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된 관료·외교관·독립운동가.
고봉기 (高鳳基)
일제강점기 때,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중앙당 기요과장, 외무성 부상 등을 역임하다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된 관료·외교관·독립운동가.
해방 이후 좌우합작위원회 서무부장, 민족자주연맹 비서처 총무,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권태양 (權泰陽)
해방 이후 좌우합작위원회 서무부장, 민족자주연맹 비서처 총무,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북한에서, 최초로 시작된 대중적 증산운동인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교통상, 중앙인민위 경제정책위원회 참사 등을 역임한 관료.
김회일
북한에서, 최초로 시작된 대중적 증산운동인 건국사상총동원운동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교통상, 중앙인민위 경제정책위원회 참사 등을 역임한 관료.